감사한 기억들
10여 년 전에 어느 목회자가 부흥회를 인도하러 방문했던 교회에서 경험한 이야기다. 부흥회를 마치던 날 저녁에 한 할머니께서 감사하다며 흰 봉투를 내미셨다. 강사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담임목사와 교우들이 그 곁에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강사님! 우리 이 할머니 권사님이 주시는 이 봉투는 꼭 받으셔야 합니다. 권사님은 폐지를 주워서 생활하시는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 말고는 모두 교회에 헌금하시고 목사님과 주변 사람들을 섬기는 데 드리는 기쁨으로 사시는 분이세요!”
이 말을 들은 강사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봉투를 건네받았다. 나중에 꺼내 보니 흰 봉투 안에는 천 원짜리 지폐 열장과 백 원짜리 동전 두 개가 들어 있었다. 10,200원이다. 오갈 데 없이 외롭게 지내시던 그 할머니 권사님은 교회의 배려로 교회의 시설에 의탁하여 지내면서 늘 교회에서 기도하며 봉사하며 지내시는 분이셨다. 그는 교회와 주변에서 나오는 폐지와 플라스틱 병과 캔과 빈 병과 고철 등을 주워 다 팔아서 용돈을 마련하고 생활하는 분이었다.
강사는 10,200원을 감히 그 어디에도 쓸 수가 없었다. 가끔씩 그 흰 봉투 안에 담긴 돈 10,200원을 꺼내 보며 그 할머니 권사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는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에게 있어서 그 흰 봉투에 담긴 돈 10,200원은 그의 마음을 늘‘감사’의 줄로 묶는 끈이 되었다. 그는 그 돈 봉투를 가보(家寶)를 모시듯 보관하며 지낸다. 아마도 그 할머니 권사님은 주님 앞에 헌금을 드릴 때도 그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표현할 때에도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어느 종교에나 헌금이란 것이 있지만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헌금이란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현이다. 아브라함 때에는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것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 위에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다. 아들과 함께 삼일 길을 간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물로 드리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이나 다급하게 불렀다. 그리고 아들을 치려는 칼을 든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말했다. “네게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은 그 현장 가까이에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을 예비하셨다. 그 현장을 목격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 대신에 그 숫양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번제(燔祭)로 드렸다. 그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뜻으로 그 곳의 지명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어 불렀다. 오늘 날의 유대인들은 이삭과 야곱을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
한국에 개신교의 복음이 들어 온 것은 1885년의 일이다. 물론 그 훨씬 이전에 천주교가 들어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 지나간 132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예배당들이 세워지고 주를 믿는 신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 중에는 상가 지하실에서 몇 명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개척교회도 있고 수만 명이 모여서 주일 날 몇 번씩 나누어 예배드리는 교회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선교 현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양육하시며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열방을 향하여 보냄 받게 하신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인간 창조의 목적을 설명해 주신 바 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그렇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찬송이 무엇인가.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각양의 것들이다. 그것은 찬송, 기도, 말씀, 봉사, 섬김, 나눔, 베품, 돌봄, 드림, 헌신, 희생의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전도와 선교란 나라의 안과 밖에서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들을 구별하여 세워가는 영적 과정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성전이나 베드로 대 성당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주께 감사하는 예배자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거하신다. 그 곳이 화려한 궁궐 안이든 들판이나 광야이든 상관이 없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주를 믿는 성도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은 주를 믿는 성도의 마음 가운데 계시다.”(고전3:16)고 편지하였다.
예수께서는 어느 날 성전의 헌금 함 앞에 마주 앉으셔서 그 당시 교인들이 헌금함에 헌금 드리는 광경을 지켜보신 적이 있으셨다. 부자들은 많이 넣었다. 그런데 어느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의 동전을 넣었다. 렙돈은 헬라 동전의 명칭이고 고드란트는 로마 동전의 명칭이다. 오늘 날 우리로 하면 동전 두어 개를 넣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현장에서 말씀하셨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마12:43-44)
요즘은 추수감사절기이다. 감사는 가진 것과 받은 것과 누리는 것 중에서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형편과 마음의 중심을 아신다.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에 이 낯 설은 땅에 보내온 적지 않은 선교후원금의 힘으로 교회, 병원, 학교, 고아원 등이 세워지고 수많은 기독 인재들이 양성되었다. 학교 중에 배재, 이화, 연세, 경신 등과 병원들 중에 세브란스나 전주 예수 병원들이 그러하다. 감사절의 감사는 이 땅에 복음이 복음 되게 하고 기독교가 기독교 되게 해 온 신앙의 강줄기이며 바다와 같은 힘이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다 지나가기 전에 교회의 안과 밖에서 ‘감사’한 기억을 떠올리며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악한 것 같아도 가슴이 훈훈하고 마음이 따뜻한 이웃들이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사람 살만한 곳으로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감사를 손끝의 감사로 표현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