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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내신 목적(갈4:4-7)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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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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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03 10:24 조회 832 댓글 0
 

                       아들을 보내신 목적(갈4:4-7)          2023. 12. 31

 

 

성탄절을 맞아 예배한 후에 맞이하는 첫 주일이다.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날을 주일로 맞게 되었다. 오늘 밤에 다 함께 모여서 예배할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맞이하는 새해에 노아처럼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범사가 되길 소망한다. 오늘 본문은 “성탄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사도 바울의 신학적인 설명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본문 속에 담겨 있다. 

 

송년 주일인 오늘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중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속량(贖良)하시려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첫 번째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속량의 은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다. 갈라디아서 4장 5절의 ‘속량’(贖良)이란 단어는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도 이미 사용한 바가 있다. ‘엑사고라조’라는 이 단어의 뜻은 ‘되돌려 사다’는 의미이다. 즉, 노예의 값을 주고 사서 나의 소유로 삼은 후에 자유하게 해 준다는 뜻이다. 노예를 해방해 준다는 의미이다. ‘해방, 자유’이 말처럼 복되고 귀한 말이 없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자유’이다. 인간은 억압받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창조이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죄의 길을 택하여 불순종하므로 타락하고 말았다. 스스로 범죄하고 말았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죽게 된 인간, 죄로 인해 죽은 인간을 살리고 구원하고 영생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이 성탄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외우는 요한복음 3장 16절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그렇다. 성탄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인류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선물로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누구라도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이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5절의 ‘속량’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놀라운 선물이다. 죄로 인해 죽은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루셔서 죄에서 자유하게 해 주신 것이 속량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에만도 얼마나 많은 죄수들이 감옥에 갇혀서 지내나. 저들은 들어 난 죄 때문에 감옥에 갇혀서 산다. 감옥 밖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그러므로 죄의 결박을 해결 받지 못한 인생들은 누구나 다 죄에 갇혀서 지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우리가 하는 이런 저런 행위로 지은 죄의 차원이 아니다. 인간은 죄 속에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다 죄인이다. 인간에게는 첫 아담의 죄게 전가 되어 있다. 아담이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예수를 둘째 아담이라고 한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를 주로 믿고 영접한 인생들을 첫 아담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일 이것이 ‘속량’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중에서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이시다. 이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의 뜻이 5절의 ‘속량’이다. ‘다 이루었다’라는 뜻은 ‘죄의 값을 다 치루었다’라는 의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나면 그 죄에 갇히게 마련이다. 사람이 죄에 갇히게 되면 감옥에 갇힌 것처럼 그 죄의 결박 속에서 살게 된다. 죄의 결박이란 인간을 죄인인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죄의 결박을 끊으시고 그를 구주로 믿는 이들을 죄 사함 받은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은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를 한 몸에 짊어지고 죽임 당하신 것이다. 이것을 어려운 표현으로 하면 ‘죄의 전가’라고 한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 예수께 대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고 선포하고 증언하였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라고 찬양하지 않나.

 

성탄은 세상 죄를 한 어깨에 짊어지고 영문 밖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신앙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속량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더불어 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날마다의 삶을 말한다. 우리가 깨달은 이 진리와 주로 부터 은혜로 덧 입은 구원의 감격과 사랑이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기에 이 진리를 전파하며 살아가는 것이 전도자의 삶인 것이다. 내가 깨달은 구원의 진리, 속량의 은총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안다면 어떻게 내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전파하지 않겠는가. 

 

어제 입관 예배 후에 어느 70대 후반 쯤 되는 여성분이 아들과 함께 저에게 다가와서 정중히 인사하면서 “돌아가신 고인이 복음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얼마나 오래도록 기도해 왔는데 입관 예배에 와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고인이 예수를 영접하고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였다. “누구신가요”라고 여쭈었더니 “저는 고인의 부부와 수십년 지기로 지내 왔습니다. 예수 믿기를 오래 도록 기도해 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다. 5절 말씀대로 ‘속량’의 은혜를 받는 복이 복 중에 가장 큰 복이다. 

 

 

아들의 명분(名分)을 얻게 하시려고.

여기 ‘아들의 명분’이란 영어 성경에 보면 ‘adoption to sonship’이라고 했다. 이는 아들로 받아들여서 양자로 삼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양자의 특권, 양자의 영광이다. 우리 나라에서 고아로 성장하던 이들 중에서 아주 어린 나이에 해외의 여러 나라에 입양 되어 간 이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1974년 3월 1일, 서울의 한 판자촌에서 발견된 이 여자 아이는 태어난지 6달 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 부모에게 입양되었다. 한국 이름은 김종숙이다. 프랑스 부모를 만나 플뢰르(Fleur.꽃)라는 이름을 얻었다. 양부모는 열과 성의를 다해 플뢰레를 가르쳤다. 그 덕분에 프랑스 명문 에섹경영대, 파리 정치대,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 감사원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프랑수아 올랑트 대통령 당시에 2012~2016년까지 잇달아 중소기업 디지털 경제부 장관과 문화 통신부 장관에 연임되었다. 그의 프랑스 이름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1974-)이다. 최초로 아시아계 장관으로 트리플 크라운의 영예를 누렸다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건 2013년 3월이었다. 한국을 떠난지 40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기업 관계자들과 친분을 맺으며 한국인과의 우정이 싹트면서 닫혔던 마음의 문도 비로소 열렸다고 한다. 이것이 본문의 말하는 양자의 축복이다. 아들의 명분을 얻는 축복, 아들딸의 명분을 얻는 축복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딸 삼으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다. <나의 피난처 예수> 라는 찬양의 후렴이 무엇인가. 

 

“아바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모든 것 주께 드려요 

아바 아버지 내가 여기 있으니 

주님 영광 위하여 써 주세요”

 

라고 찬양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딸의 명분을 얻은 자의 영광스러운 찬송인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아들딸의 명분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며 하나님의 아들딸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거니시는 동산인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살아갈 하나님의 아들딸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인류의 조상이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역사적으로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사울은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그의 말년에 선지자 사무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경홀히 여기다가 왕의 명분을 불행하게 빼앗긴 참담하고 비극적인 인생의 말로를 맞고 말았다. 

 

가롯 유다는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돈에 눈이 멀고 예수께서 평소에 교훈해 주신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스승을 팔아 버리고 스스로 불행하게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게 하신‘아들의 명분’이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것인지를 깨닫고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값을 주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아들딸의 명분을 정신을 차리고 잘 간직하며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부르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유업(遺業)을 받게 하시려고.

우리는 대개 ‘유업’(遺業) 그러면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부자의 유업 즉 부자의 유산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받아 누리는 유업이란 그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우린 대개 “부자는 행복할 것이다.”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자라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론 돈 많은 부자는 돈의 문제에서만큼은 제한이 없는 편리한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 많은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이 정비례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라마다 최고 권력자나 국가적인 재벌들 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생을 불행하게 마감하는 경우를 본다. 왜 그럴까. “아니 저 사람이 돈이 없나. 명예가 없나. 권력이 없나. 도대체 없는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여기는 이들 중에서 불행한 선택을 하는 이들을 보라. 왜 그럴까. 세상적인 기준의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조차 없는 영광스럽고 신비한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아 누리는 유업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기쁨, 감사, 소망, 평안, 위로, 안식, 보람, 만족의 가치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말하는 유업의 가치와 비교 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않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받아 누리는 유업의 영광이요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받아 누리는 유업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 말이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복음 성가의 원조가 ‘내게 강같은 평화’이다. 자신에게 물어 보라. 과연 나에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유업의 영광이 있는가.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바다 같은 사랑

내게 샘 솟는 기쁨

내게 태산 같은 믿음 

내게 믿음 소망 사랑

...............................

이런 것들이 내게 넘쳐흐르고 있다고 찬양할 수 있나. 그래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다. 그렇지 않나.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백 년을 살면 뭐하고 천년을 살면 뭐하겠나.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이런 은혜와 평강이 우리 각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딸로서 누리는 유업의 영광으로 계속하여 이어가기를 축원한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죄를 이겨야 한다. 세상의 유혹을 벗어나야 한다. 세상의 영적 혼미와 미혹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탐심과 온갖 탐욕으로부터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죄를 멀리하고 악을 결과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시편 37편 4절에 보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다. 시편 37편 22절에 보니까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비교하려 하지 말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주를 따르는 굳건한 믿음의 주인공이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불의를 버리고 공의의 편에 서며 거짓을 버리고 진리의 편에 서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한 때 송명희 자매의 고백에 곡을 붙인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라는 제목의 찬양을 얼마나 부르고 또 불렀는가. 1963년생이다. 그 연약한 몸으로 올해 60살이 되었다. 지난 6월 22일에 60회 생일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주의 60회째 맞은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의 가사가 무엇인가.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더 이상 죄의 종도 아니요 율법의 종도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딸 삼으신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유업을 받아 누리길 원하신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아 누리게 하시는 그 은혜와 축복을 간증하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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