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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시면(사61:1-3)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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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17 20:41 조회 1,046 댓글 0
 

                            그가 오시면(사61:1-3)                   2023. 12. 17

 

 

미국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이란 소설이 있다. 피천득 교수께서 번역해서 1970-1980대에 한동안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 어느 시골 마을의 뒷산에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어니스트라는 이름의 아들은 엄마에게서 “언젠가는 때가 되면 저 바위산의 얼굴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이 마을에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 들었다. 그 날 이후 어니스트는 “언제쯤이나 그런 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며 살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날, 큰 부자, 군대의 장군, 성공한 정치인,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을 차례로 만날 기회를 가졌지만 역시 저들은 다 무언가 부족하고 아쉽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큰 부자의 인상은 영악하고 탐욕스러워 보였다. 때때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선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말년에 재산을 모두 다 잃고 망했다. 초라하게 몰락하고 비참하게 객사하고 말았다. 어니스트는 그 마을에서 목수로 일하며 지냈다. 나중에 만난 장군은 강한 의지와 늠름함이 보였다. 그러나 그에겐 자애와 지혜가 없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인정사정을 모르는 전쟁광이었다. 어니스트는 나중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 후에 만난 성공한 정치가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만나 보니 권력욕과 명예욕에 찌들어 있는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달고 달은 정치꾼이었다. 어느덧 노년기에 들어선 어니스트가 만난 네 번째 인물은 시인이었다. 나이가 들어 노년기에 접어든 어니스트는 목수 일을 자녀들에게 맡긴 뒤  은퇴하였다. 그 후에 사람들을 깨우치는 설교가가 되었다. 이번에는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시를 보고 감탄하며 그 주인공인 시인이 혹시 큰 바위의 얼굴 주인공이 아닐까 기대하였다. 그러나 시인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어니스트는 그 시인에게서도 실망을 하고 말았다. 시인 자신도 본인에 대하여 말하기를 “평생 시를 쓰며 훌륭한 이상을 꿈꿨지만, 빈약하고 비천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신념을 지키지 못한 채 현실과 타협하며 나약하게 살아왔다.”라고 털어 놓았다. 그래도 둘은 그 날 이후로 서로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들으러 온 시인은 어니스트가 곧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놀란 시인이 사람들에게 "보세요. 어니스트 씨야말로 저 바위 얼굴과 닮지 않았나요”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비로소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니스트 자신은 “자신보다 더욱 훌륭한 인물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인물로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라고 차분하게 말하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철저한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주홍글씨>와 같은 시대적인 교훈을 담은 소설을 쓰기도 했던 작가 나다니엘 호손은 역시 이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현실의 부, 권력, 명예, 인기 등을 가진 자들보다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지혜를 교훈하는 인물이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소설 속에 담아내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시대의 어느 민족, 어느 나라나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이루고 국민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공헌할만한 뛰어난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소원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소원이기도 하고 나라와 민족의 소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서 그런 약속을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신약성경의 시작인 마태복음 1장 1절은“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오늘 읽은 본문인 이사야 61장은 소위 ‘종의 사명’을 언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 1절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일인칭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예언을 담고 있다. 예수 자신도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오늘의 본문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바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이 말씀은 고향 나사렛에 방문하셨을 때에 나사렛의 회당에서 펼쳐서 읽으신 이사야 61장의 본문이시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깨닫고 나의 구주로 영접하므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혜택과 도우심과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그 자세한 예언의 말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그가 오시면>이라고 정한 것이다. 

 

 

주의 영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 아기.

예수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천하게 공포하셨다. 하나님은 나사렛의 정혼한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셨다. 예수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성령과 기름을 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에게 성령과 기름을 부으신 사명과 목적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보냄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수 많은 기사와 이적과 비유의 말씀을 안다. 예수는 스스로의 판단과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 많은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 결코 아니셨다. 예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공급과 도우심이셨다. 하나님은 끊임이 없이 성령과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예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해 가셨다.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병든자와 가난한 자를 만나셨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를 배 불리 먹이셨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산상수훈, 팔복 말씀의 첫 교훈을 보라. 예수께서는 몸과 마음이 가난한 자를 주목하셨다. 삶이 가난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는 굶주리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시는 선한 목자셨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장래에나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 안에서 삶의 가난을 호소하는 이들을 푸른 풀밭과 잔잔한 시냇물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시다. 

 

이는 이천년 역사가 입증한다. 예수의 복음이 받아들여진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을 주목해 보라. 물론 예수를 모르고도 떵떵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누리는 몸과 마음의 풍요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누리는 풍요와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부자들 중에서도 초라한 부자, 더러운 부자, 형편없는 부자, 인간성이 형편없는 부자도 많다. 그러나 주님이 기대하시는 가난하지 않은 삶이란 “심령의 가난을 깨달은 자”로서의 풍요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이 곧 복음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아름다운 소식의 가치를 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된 소식의 가치를 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먹고 마시는 일상에 깨닫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그 은혜가 다른 것이다.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 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 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526장 찬송가 <목마른 자들아>의 가사처럼 이런 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권속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각 사람의 상한 마음을 싸매 주시며 고쳐 주시고 평온케 해 주신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 죄에 갇혀 살고 악에 갇혀 살고 불안에 갇혀 살고 탐욕에 갇혀 살고 중독에 갇혀 살고 시기와 증오와 패배감과 열등감에 갇혀 사는 인생들을 그 결박으로부터 풀어내시고 참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해 주신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에 강화도 시골 섬 고향 마을 뒷산에 절만 있고 마을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인생이 되었을까. 자연스럽게 불교의 영향권 안에서 자라나고 살아 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불교를 뭐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불교에는 구원이 없다. 이 땅의 천하 만민들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의 길이 있다. 사람이 아무 종교나 믿고 선하게 살면 다 천국에 가고 극락에 가고 뭐 그런 식으로 말하고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처럼 어리석고 불행한 인생도 없다.

 

베들레헴에 나신 아기, 그 하나님의 아들이 오직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것을 깨닫고 믿고 증거하는 것이 신자의 사명이다. 예수는 이 사명을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만 아니라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으로 인하여 주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아름다운 소식이다. 주님은 결코 마음이 상한 자가 세상에 버려지고 방치되길 원하 않으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해서 상처를 입고 저렇게 해서 상처를 입는다. 이렇게 해서 금이 가고 저렇게 해서 깨어진다. 그러나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한 가지 색깔의 통유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깨어진 유리, 깨트린 유리의 형형 색색을 모아 붙여서 영롱하고 찬연하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완성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상한 마음, 나의 깨어진 마음, 나의 병든 마음, 나의 슬픔 마음, 나의 곤고한 마음, 나의 우울한 마음, 나의 나약한 마음에 은혜의 유약을 바르시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주의 은혜를 깨닫게 하셔서 명품 인생이 되게 하시는 나의 생의 주인이시다. 주님께 나의 삶을 맡겨 드리면 주님은 나를 통해서 아름다운 소식을 깨달은 복음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올해 54살이 된 134cm의 거인 국제사회복지사 김해영 선교사의 생을 보라.  어느 가정에 손녀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계집애를 위해서 왜 미역국을 끓이느냐고 소리쳤다. 술 먹고 들어오던 아버지가 그 말에 화가 나서 아기에게 분통을 터트고 아기를 집어 던졌다. 아기는 척추를 심하게 다쳤다. 그 여자 가의 키는 134cm까지 자라다 멈추었다. 구박덩어리로 자라나면서 초등학교 글 겨우 마쳤다. 월급 3만원을 받는 식모가 되었다. 식모 일을 하면서 편물을 배웠다. 손재주가 있어 국제장애인기능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탔다. 나중에는 철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편물로 전문인 선교봉사를 하며 14년을 보냈다. 기술학교도 만들어 교장으로 섬겼다. 후에 미국 나약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국제사회복지사로, 밀알복지재단 희망사업본부장으로 아프리카에서 활동 하고 있다. 그는 <숨지마, 네 인생이잖아>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라는 책을 통해 그가 얼마나 대단한 거인인지를 알게 해 준다. 

 

국민일보 <역경의열매>에 간증이 연재되었다. 그에게 작은 거인이란 별명이 붙은 계기가 있다. 편물학원에서 교사를 만났다. 최영숙 편물 교사는 30년 동안 그녀의 스승이자 멘토였다. 기숙사 사감이던 편물 교사는 주일마다 원생들과 교회에 갔다. 그러나 김해영은 몸도 아프고, 종교난에 ‘자신교’라고 적을 만큼 교회에 관심이 없었다. “교회에 가자”라고 말할 때마다 거절했다. 그때 편물 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해영이가 세상 살려면 예수님을 친구 삼아야 하는데.

 교회 안 간다니 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이 아프다…”. 지금까지 자기 때문에 마음을 아파해준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맏딸의 장애에 분노를 처리하지 못하고 술에 행패를 부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려 “너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라고 늘 딸을 구박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데… “누가 나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니까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로 인해서 내 마음이 아프다”라는 편물 교사의 그 말 한 마디가 이전까지의 김해영과 이후의 김해영으로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전도자의 한마디의 말이 키 134cm의 사랑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하였다. 예수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 예수 만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몸과 마음에서 가난과 저주가 떠나고 풍요롭고 은혜로운 삶이 임한다. 예수 만나면 치유되지 않을 것 같던 상한 마음이 고침을 받게 된다. 예수 만나면 자유가 임하고 예수 만나면 삶의 만족과 보람과 기쁨과 충만하게 된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아기.

예수 만나면 모든 슬픔에서 자유로워지게 된다. 알 수 없는 하늘의 위로가 임하게 된다. 세상에는 슬픈 일을 격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슬픔이 널려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슬픔을 이겨 보려고 술을 마셔댄다. 슬픔을 잊어 보려고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놀음에 빠져들기도 한다. 성 중독과 같은 일탈행위에 빠져들기도 한다.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세익스피어의 <당신이 지금 비참하다고 여기는 것은 더 큰 비참한 일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세익스피어가 왜 그런 경솔한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슬픈일이나 참담한 일이나 충격적인 일이나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겪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다 겪게 된다. 슬픈 일, 괴로운 일, 답답한 일, 억울한 일, 힘든 일, 참담한 일, 비참한 일들을 피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누가 슬픈 일 겪기를 선택하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였다. 누가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인가. 신앙이 무엇인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 다 다른 삶의 무게 가운데 살아간다. 우리는 서로가 각기 다른 삶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이란 찬송가의 가사처럼 인생은 살아가다 보면 내 모든 시험과 내 모든 무거운 짐이 있다. 내 모든 괴롬과 닥치는 환난이 있다.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지는 때가 있다. 마음의 시험과 무서운 죄가 나를 억누르고 옥죄일 때가 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를 불쌍히 여겨서 구원해 주시는 은혜의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면 인생은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는 근심에 싸인 나를 돌아 보아주신다. 내 모든 근심을 맡아 주신다. 예수는 나의 구원의 능력이 되어 주신다. 세상을 넉넉히 이길 힘을 부어 주신다. 슬픔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외로움을 이기고 낙담과 우울과 참담함을 이겨 낼 수 있는 알 수 없는 하늘의 위로를 내려 주신다. 

 

호라티오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는 1860년대에 시카고의 유명한 변호사였다. 린든 대학교와 시카고 의과대학교에서 법리학 교수로도 생활했다. 노스웨스트 장로교 신학대학교의 이사이고 운영 위원이었다. 그 당시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디 엘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 목사가 섬기는 교회의 회계집사이며 교회학교 교사였다. 그의 믿음은 독실하였다. 그는 재산가였다. 그러나 그가 43살 때인 1871년 시카고 대 화재로 그 많던 부동산을 다 잃었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건물들은 모두 다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자기 집인 대 저택도 불에 모두 탔다. 그 화재 사건 한해 전에는 큰 아들을 악성 피부병으로 잃었다. 그가 섬기던 무디 교회도 불탔다. 그는 다른 일을 뒤로 하고 예배당 재건에 앞장 섰다. 그러던 중에 그의 아내인 안나 스패포드는 심신이 허약해져서 휴직을 해야만 했다. 1873년, 남편은 아내와 네  딸들을 영국과 유럽 여행길에 나서게 했다. 여행과 휴식이 저들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마침 무디 목사는 유럽 전역의 집회 중이어서 집회에도 참석할 겸 계획을 세웠다. 1873년 11월 15일, 뉴욕항을 출발하는 프랑스 여객선에 아내와 네 딸이 승선하였다. 남편은 일정을 조정하지 못해서 뒤 늦게 출발해서 합류하기로 하고 아내가 네 딸을 데리고 떠났다. 일주일 후인 11월 22일 새벽 2시경 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의 철갑선 ‘라키언 호’와 정면 충돌하였다. 배는 침몰했고 226명이 죽었다. 네 딸은 숨졌고 아내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 9일 후에 영국 웨일지 카디프에 도착한 아내는 남편에게 전보를 보냈다. ‘홀로 살아 남음(Saved Alone)

 

급하게 미국을 출발한 남편은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선장의 안내를 받았다. “이곳이 배의 충돌과 침몰로 당신의 네 딸을 포함한 226명이 죽은 곳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스패포드는 좁은 선실의 침실에 들어가서 밤을 새워 통곡하며 울었다. “주님,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 온 저와 저의 아내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겪게 하십니까”라며 절규하였다. 얼마의 긴 시간이 흘렀는데 그의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평안이 찾아 왔다. 그 때의 평온하고 고요한 심경을 글로 적었다.

 

“평안하도다 내 영혼이 평안하도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어다”(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God’s will be done)라고 썼다.  긴긴 밤이 지나고 맞이한 아침 나절 그는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마음을 나머지 글로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길>이 탄생하였다. 

 

아내와 함께 시카고로 돌아 온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가슴에 뭍고 주변 친구와 동료들에게 그 날의 그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무디 목사 곁의 음악 사역자 필립 블리스(Philip P. Bliss, 1838-1876)는 그의 가사에 곡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찬송가의 후렴은 이렇게 반복된다.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호라티오 스패포드의 삶은 성경의 욥과 같다. 그는 그 후에 아내를 통해서 두 자녀를 낳았다. 저들 네 식구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서 살면서 남은 여생 15년을 더 살면서 다섯 자녀을 앞서 보낸 슬픔을 가슴에 뭍고 낯설은 고아와 가난한 이들을 섬기며 살다가 주님 앞으로 돌아갔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이사야 61장 2절은 말씀한다. 주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고 여호와께 기름 부으심을 받은 그 분이 오시면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말씀하신다. 주 안에서 슬픔을 이기며 살아가는 삶의 신비가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그 누구에게든 분명하게 주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아기.

주님은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신다. 그 재를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신다. 그 슬픔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을 입게 해 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처럼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이다. 맞이하는 성탄절과 함께 각 사람의 앞으로의 삶이 오직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승리와 환희에 가득찬 인생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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