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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높여 외치라(사40:1-11)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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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2-14 20:18 조회 1,094 댓글 0
 

                          소리를 높여 외치라(사40:1-11)             2023. 12. 10

 

 

오늘날까지 살아 오면서 크게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분이 좋고 감격스러웠던 때가 언제였나. 아들딸을 낳았을 때인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인가. 좋은 수능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때인가.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원하는 회사, 원하는 직장에 합격 소식이 전해졌을 때인가. 아파트가 당첨되었을 때인가. 언제인가. 연세가 드신 분들은 일제 식민지가 끝나던 8.15 광복, 그 해방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가 그런 때가 아니었나.

 

이사야의 예언은 장차 150년 쯤 후에 있을 장래의 일들을 이미 경험한 일처럼 묘사한 미래 완료형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인 주전 739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 후 주전 701년,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한 일도 겪었다. 히스기야 왕이 죽던 해인 주전 687년 이후까지도 선지자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런 계산으로 하면 그는 거의 60여년 간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그런 그가 100년 150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적으로 말씀하는 내용이 본문인 이사야 40장에 담겨 있다. 본문에 보면 ‘외치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힘써 소리를 높여 외치라”라고 하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힘써서 소리를 높여 큰 소리로 외치라는 것일까.

 

 

자유와 죄 사함을 받으리라.

2절에 보시면 모든 것을 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언이다. 위로가 되게 말하고 마음에 닿도록 말하라고 하셨다. 무슨 책에서“물건을 훔치면 도둑이 되고 마음을 훔치면 애인이 된다”라는 표현을 읽어 보았다. 하나님은 이처럼 백성들의 마음에 닿도록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노역의 때가 끝났다,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 지은 죄의 대가를 이미 두 배로 치루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셨다. 두배를 값는다는 것은 출애굽기 22장 9절에, 도둑질한 자는 두 배로 값으라는 말씀에 근거한 표현이다. 그러하니 이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소리쳐 외치라는 것이다.

 

남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한 기간은 주전 605년부터 주전 538년까지의 기간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유다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수없이 바벨론 땅으로 끌려갔다. 우리가 아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모두 다 그런 고난과 고통의 세월을 하나님 신앙으로 이겨 낸 자들이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고 해방과 6.25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은 식민지가 뭔지, 압박과 수탈을 당하는 설움이 뭔지,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한이 뭔지 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남 유다의 백성들이 그랬다. 예루살렘 성민들이 그랬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을 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안다. 남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언약 민족인 저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이웃 나라들의 도움이나 힘만 의지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려고만 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런 고난의 날들을 겪게 되었다. 남 유다의 군대가 약하고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군대의 수가 열세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이다.

 

웃시야 왕은 남 유다의 제 10대 왕이다. 주전 792년에 왕이 되었다. 16살에 왕위에 올랐고 52년간 왕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은 청년 이사야를 선지자로 택하셨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웃시야 왕은 나름 선한 왕으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을 청년 이사야는 무척 슬퍼하였다.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며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던 이사야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은 그를 60여년 간이나 유다에서 활동하는 선지자로 불러 쓰셨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없이도 살 것처럼 생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 언약 백성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비록 저들이 범죄하고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하였지만 하나님은 저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민족이 되길 원하셨던 것이다. 

 

“어서 돌아 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어서 돌아오오>라는 527장 찬송가이다. 주님은 우리가 주께로 돌아오길 원하신다. 개인, 가정, 가족, 민족, 국가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되길 원하신다. 

 

강림절기는 주께로 돌아가는 절기이다. 세상을 향하던 시선을 돌이켜서 주께로 향할 줄 알아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성탄 트리도 바라 보아야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을 생각해야 한다.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은 사랑하는 언약 민족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들이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언약 백성들을 버리시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백성들로 돌이키시기 위해서 바벨론을 고난의 용광로로 사용하신 것이다. 정금보다 더 신실한 언약 민족으로 뽑아 내시기 위해서 저들을 고난의 풀무 불에 집어넣으신 것이다. 

 

그렇지 않나. 예수 믿고 하나님 믿으며 산다고 만사가 형통한가. 아니다. 주님의 자녀들에게도 고난고 있고 역경도 있고 환란도 있고 질병도 있고 실패도 있다. 억울한 일도 있고 답답한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다. 사자 굴도 있고 풀무 불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최근에 무슨 사회 심리학자의 책을 읽다가 보니까 “오르樂 내리樂”이라는 표현의 ‘낙’자가 즐거울 ‘낙’(樂)자라는 재미있는 설명을 보았다. 맞다. 그네를 타 보면 올라갈 때도 즐겁고 내려갈 때도 즐겁다. 시소를 타 보면 내가 올라가면 상대방이 내려가고 내가 내려 가야만 상대방이 올라갈 수 있다. 이처럼 인생은 오르락 내리락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올라갈 때도 즐거워해야 하지만 내려갈 때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나. 어떻게 사람이 계속 올라가기만 하나. 산 정상에 올라갔으면 내려가야 하지 않나. 하산하지 않고 등산만 계속하는 인생이 있나. 등산을 시작했는데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119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벤살렘교회 원로 장로 중에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라는 찬송을 좋아하는 분이 계셨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서 만주에서 살다가 격동기에 남한에 와서 살다가 미국에 이민 가서 살았다. 그 가사를 보라.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 버릴 염려 없네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언제 나의 노역의 때가 끝날 것인가. 언제 나의 죄악이 사함을 받을 것인가.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마음에 와서 닿도록 선포하신다. 큰 소리로 외쳐 말하게 하신다. “너의 노역의 때가 끝났다. 너의 그 많던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라고 선포하신다. 주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은 이런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이어야 한다. 맞다. 하나님의 자녀는 죄의 대가를 짊어지고 사는 인생이 결코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부강한 왕국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가 벌을 받아 날마다 언덕 위로 거대한 돌을 밀어 올리는 듯한 그런 형벌을 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노역의 때가 끝난 기쁨과 즐거움을 주 안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다. 죄 사함을 받은 감격과 감사와 그 은혜를 누리며 영원한 소망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기대하신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은 결코 광야와 사막 생활이 아니다. 험한 골짜기와 언덕에서 고생 고생만 하며 헐떡거리며 연명하며 사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광야 40년은 결코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광야 생활을 뒤로 하고 요단 강 건너 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광야 길을 40년 동안 배회하며 지내야 했다.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각 사람과 각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는 결코 우리가 광야에 머물고 사막에 던져진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광야 생활이 끝나고 사막을 통과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평탄한 대로를 걷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험한 골짜기에서 방황하고 고르지 못한 언덕 길을 넘어 가느라 허덕거리고 있지는 않나. 주님은 주님의 아들딸된 우리들의 인생길이 골짜기가 돋우어지길 원하신다.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고 고르지 못한 곳이 평탄하게 되길 원하신다. 험한 곳이 평지가 되길 원하신다. 그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앞장 서셔서 골짜기를 돋우신다.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게 하신다. 고르지 아니한 곳을 평탄하게 하신다.  험한 곳이 평지가 되게 하신다. 

 

오늘 날 우리가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나. 지난 가을에 회의와 모임을 위해서 강원도 고성과 강릉에까지 간적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터널을 통과한다. 길고 긴 다리를 건넌다. 상상해 보라. 100년전, 300년 전, 500년 전에 백두대간인 태백산맥을 넘어서 한반도의 동해 바다가에 도착하려면 산을 넘고 넘어서 며칠 몇 날을 산적 때의 출몰을 막고 무리 지어 가지 않으면 안되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2-3시간이면 웬만한 곳에 도착한다. 

 

문명의 발전과 국가 경제력의 발전은 국토 기간 시설의 비약적인 발전의 혜택을 국민들이 누리도록 해 준다. 오늘 날도 비참하게 살아가는 나라와 민족이 얼마나 많은가.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에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려 한다. 그러나 중국의 서민들이 생활상이 얼마나 궁핍하고 가난하고 참담한지를 국제 언론에 말했다가 시진핑에게 거세된 중국의 지도자가 있다. 

 

가난을 겪어 본 이들은 안다. 처절한 삶을 경험해 본 이들은 안다. 이사야 40장 3-5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분명하게 선포하셨다. 큰 소리로 외쳐 말하게 하셨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라고 외치라고 하셨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하셨다.”“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식언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이루신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성췰하신다.

 

우리 각 사람과 각 가정에 이런 은혜가 임하길 축원한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께서 새 길을 예비해 주시길 축원한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앞날에 하나님께서 대로를 평탄하게 해 주시길 축원한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이런 은혜가 임하길 소원한다. 

한 때 모 정당의 차기 지도자 순위 제 2위에 거론되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라. 장래가 촉망되고 잘 나가던 축구 선수 황의조 청년의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라. 우리는 여호와의 예비하신 길, 하나님이 평탄하게 해 주시는 대로를 가기 위해서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악으로부터 손 씻어야 한다. 받을 벌을 두 배나 받고 나에게 부과된 노역의 때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새 날이 오는 것이다. 그래야 여호와의 영광의 날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함부로 대로를 평탄하게 하지 않으신다. 이런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로부터 떠나야 한다. 하나님이 경계하시는 악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그리할 때에 각 사람과 각 가정을 향하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라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세상에 나아가서 날마다 순간마다의 일상생활 중에 주의 영광을 떠나 살면 안된다는 말이다. 밤이나 낮이나 성(城)안에서나 성(城) 밖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주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나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신다. 작은 소리로 읊조리지 말고 큰 소리로 외쳐 말하라고 하셨다. 무엇을 더 말하라고 하셨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 말하라고 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라고 큰 소리로 외쳐 말하라고 하셨다.

 

이 세상 인생길은 영원하지 않다. 젊음은 가고 아름다움도 시든다. 이 세상에 영원한 젊음이란 없다. 하나님은 전도서 12장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있나. 젊음이 영원한가. 곱고 아름다운 것이 영원한가. 나폴레옹의 영광, 징키스칸의 영광, 알렉산더의 영광이 얼마나 갔나. 클레오 파트라, 마릴린 먼로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얼마나 갔나. 중국의 4대 미녀 왕소군, 초선, 양귀비, 서시의 아름다움이 과연 얼마나 갔나. 조선시대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대를 잇는 왕 경종을 낳은 장희빈도 결국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녀의 나이 43살 때의 일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나. 세계적인 기업가라고 천년을 사나. 나라를 호령하는 절대 권력가라고 백성들보다 열배 쯤 세상을 더 사나. 인생은 풀이다. 인생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이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로 돌아 가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경배할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계속하여 교훈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높은 산에 올라서 이 아름다운 소식을 힘써 높여 시온 성 예루살렘을 향하여 큰 소리를 외쳐 전하라”라고 하셨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이 말씀을 힘써 소리 높여서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셨다. 10-11절을 보라. 우리가 믿고 찬양하는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여호와는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다.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다.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다.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신다.

그는 어린 양을 그의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신다.

그는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신다.

 

성탄절이 두 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 예언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절기가 되기를 축원한다. 여호와는 강한 자로 다가 오셔서 강한 팔로 다스리신다. 개인과 민족을 양떼 같이 먹이시고 안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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