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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는 자(시119:1-8)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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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2-15 10:37 조회 1,651 댓글 0
 

                           복이 있는 자(시119:1-8)                   2023. 2. 12

 

신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긴 본문의 장이 시편 119편이다. 시편은 장이라고 하지 않고 편이라고 한다. 무려 176절 분량이다. 시편 119편을 답관체(踏冠體, acrostic style)라고 한다. ‘머리를 밟아 가는 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는 모두 22자인데 각각의 글자에 여덟 절씩이 따로따로 쓰여서 22연을 이루어서 모두 176절이다. 이는 고대 정형시(定型詩)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122, 132절 두 절 이외에는 각 절마다 174번이나‘율법’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 읽은 본문을 예로 보면, “율법, 증거, 도, 법도, 율례, 계명, 판단, 율례”이처럼 때로 반복되기도 하지만 무척 다양한 표현의 내용들이 각기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시편 119편은 언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끊임이 없는 유혹과 박해 속에서 신앙을 굳게 지켜나갈 수 있도록 믿는 자의 태도를 분명하게 깨우쳐 주는‘지혜시’의 하나이다. 물론 시편에는 119편을 포함해서 모두 9편의 답관체가 있다.(9, 10, 25, 34, 37, 111, 112, 119, 145) 그러나 이처럼 완벽한 양식을 지닌 답관체의 시편은 오직 119편이 유일하다. 

 

그 첫 연을 이룬 1-8절의 분량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겠다는 서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자의 삶이라고 교훈하고 있나. 1, 2절에 보면 “복이 있음이여,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복이 있는 자>라고 정한 것이다. 우리는 시편의 말씀 중에서 <복이 있는 자>라는 제목을 정하면 대개 시편 1편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복이 있는 사람은...”이렇게 시작되는 시편 1편 말씀 말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대하는 시편 119편의 1 ∼ 8절에 보면 과연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에 대하여 분명하게 교훈해 주고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 하면 “진학, 진급, 취직, 돈, 명예, 권력, 인기, 출세, 성공, 출산, 내 집 마련 등등 ”그 기준이 대개 비슷비슷하다. 며칠 전인 2월 9일 뉴스 기사에 따르면 구정에 친정에 갔다가 처음으로 연금 복권을 구매한 여성이 연금 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 20년 동안 매달 700만원에서 세금을 제외한 546만원을 20년 동안 240번에 매달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처럼 날마다 출퇴근 길에 복권을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며 복권에 당첨될 확률에 기대를 걸고 살아가는 이들을 복이 있는 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자를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율법을 따라 온전히 행하는 자.

여기서 말씀하는 ‘온전’(穩全)이란 “더 이상 흠잡을 데가 없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를 일컫는 표현이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라고 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이 세상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단 말인가”라고 말이다. 그 대답은 “없다, 불가능하다”이다. 맞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 과연 누가 복이 있는 자란 말인가. 인간은 그 누구라도 여호와의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타밈’(תמים)은 ‘비난받을 것이 없는', ‘오염되지 않은' 등을 뜻한다. 즉 인생을 살 때 비난받을 죄악된 행실에 오염되거나 빠져들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자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의 노력이나 수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행실을 매 순간마다 여호와의 말씀에 합당하게 복종시키며 날마다 주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고자 할 때에라야만 그런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으며 살아가는 자녀된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하나님께 속한 자의 복을 매 순간 누리며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 행위가 율법에 비추어 온전하기 때문에 복된 인생이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계명과 율례와 법도의 모든 율법을 받은 모세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였다. 지난 이천년 기독교 역사 중에서 카톡릭은 누군가에게 성 어거스틴, 성 프란시스 이처럼 그 누군가에게‘성인’(聖人) 칭호를 주기고 하지만 그것조차 인간적인 기준일 뿐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8절에서 분명하게 교훈해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 30절 말씀에 보니까 “또 미리 정(定)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義)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榮華)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였다. 

 

예수의 비유 중에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바로 그러하다. 집 나간 자도 탕자이고 집에만 붙어 있던 큰아들도 탕자이긴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큰 아들은 동생처럼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오해가 컸다. 그 비유에서 큰아들을 설득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주목해 보라.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0-31)

 

우리가 이런 찬송을 부르지 않나 <예수 따라 가며> 라는 449장 찬송의 1절 가사를 보라.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이런 은혜와 동행의 은총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는 자.

1절의 ‘율법’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2절의 ‘증거’는 여호와께서 직접 선포하시고 확증하신 것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 않나.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 증거를 따라 지키는 것” 이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한다는 의미에서 일치한다. 그렇지 않나.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늘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지난 주일에도 묵상하였지만 우리는 십계명의 말씀을 기억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창호지에 십계명을 써서 궤도에 걸어 놓고 막대기로 넘겨 가며 따라 읽게 하였다. 

가령 십계명의 말씀을 읽는 것이 중요하고 외우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지 못한다면 십계명의 말씀이 나의 신앙생활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 말이다. 

 

가령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율법 교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 라고 분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나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였다.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이 본문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담겨 있다. 

 

예수께서 그와 대화하셨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그가 물었다.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대답했다. “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런데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예수의 곁을 떠나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시편 119편 2절의 말씀 그대로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우리 지방의 어느 교회 젊은 담임 목사는 주일 설교의 본문 중에 일부에 곡을 붙여서 그 주중에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성경 말씀을 찬양으로 따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암송하도록 한다고 한다. 맞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육화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 즉 성육신하신 분이시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 그대로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5남 8녀 13남매를 낳아 키우는 경북 구미 황산교회 김석태 목사(엄계숙 사모) 가정은 다둥이 가정으로 이미 여러 언론에 소개되었다. 이미 첫째 둘째 딸과 셋째 아들은 시집 장가를 가서 손주도 여럿이다. 그 동안 아침마다 조반 먹기 전에 아침 가정 예배를 드렸다. 밤 10시 30분에는 성경 4장씩 읽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게 하였다. 평생을 날마다 그렇게 해 왔다. 형이 동생을 언니가 동생을 가르치면서 15식구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씨름하는 질서가 있는 행복한 가정으로 자리 잡았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는 가정과 가족으로 자리잡았다. 황산교회 목사관 응접실에는 이런 현액이 걸려 있다.

 

月色花色不如 吾家族和顔色

달색 꽃색깔이 비록 좋다 한들 내 집 식구 웃는 얼굴색만 하랴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는 19남매 중에서 15번째로 태어났다. 찰스 웨슬리는 18번째 아들이다. 19명 중에서 9명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3남 7녀 중에서 3아들은 모두 다 목사가 되었다. 어머니 수산나는 10남매를 철저하게 성경 말씀으로 키웠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우리가 아는 요한 웨슬리이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의 찬송가를 우리가 부른다. 그 중의 하나가 23장 <만입이 내게 있으면>이다. 우리 찬송가에만도 13곡이나 실려 있다.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이라는 강림절 찬송도 찰스 웨슬리 작품이다. 126장 <천사 찬송하기를..거룩하신 구주께> 라는 성탄 찬송도 그의 가사이다. 164장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찬송하여라할렐루야> 이 부활 찬송가의 가사도 그의 작품이다. 280장 <천부여 의지없어서>도 그의 작품이다. 522장 <웬말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값으로 지옥형벌 너도 받겠구나>라는 찬송의 가사도 그의 작품이다. 595장 <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도 그의 묵상에서 나왔다. 

놀랍고 복되고 감사하지 않나. 사무엘 웨슬리와 수산나의 몸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영국의 역사와 영국의 교회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 된 것이다.

 

교회가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켜가고 성도들이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켜가고 속회와 속도원들과 가정과 가족들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켜 갈 때에 놀라운 간증과 은혜가 우리 가운데 점점 풍성해 갈 것이다. 

 

 

 

전심(全心)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복된 자 답게 사는 것인가. 본문 2절은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대강 대강 믿고 대강 대강 주를 따르려 하다가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붙들어  쓰신 역사적인 인물이 있는가. 그런 경우란 없다. 요즘 우리는 사무엘상을 날마다 대하고 있다. 왜 사무엘상이고 왜 사무엘하서인가. 사무엘서의 주인공이 사울왕인가 아니다 사무엘이 주인공이다. 울며 금식하며 슬퍼하며 아들 낳기를 서원하며 기도하였던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한나는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품 안의 자식으로 키우려 하지 않고 젖 떼기가 무섭게 실로의 성막으로 아들 사무엘을 데려다 맡겼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하는 엄마 한나의 기도는 역사적인 인물 사무엘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무엘상 3장 10절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평생에 그를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으로 붙들어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제사장 엘리와 그의 가문을 버리시고 평범하지만 사무엘을 역사적인 인물로 택하여 쓰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6:7)라는 말씀이시다. 

 

4, 5, 8절 “잘 지키고”, 6절 “계명의 말씀 앞에 부끄럽지 않고”, 7절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며”살아가고자 하는 말씀 신앙의 서원이 담긴 내용이 오늘의 본문이다. 말씀과 더불어 복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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