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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마5:13-20)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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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2-05 22:22 조회 1,705 댓글 0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마5:13-20)          2023. 2. 5

 

 

 

팔복에 관한 여덟가지 교훈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신앙 관리에 관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예수의 팔복 설교 뒤에 이어지는“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는 교훈은 이웃과 세상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다.

 

소금이 무엇인가. 현대인이 건강 관리를 위해서 소금 적게 먹기 운동을 벌이지만 생명과 건강 유지에 소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소금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고 생명 유지가 불가능하다. 음식의 맛도 결국은 소금 맛이다. 요즘이야 소금이 흔하지만 과거에는 소금이 금처럼 귀하던 때가 있었다. 소금은 맛을 내는 것이고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가르침은 그 교훈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 보면 예수께서 “소금은 좋은 것이라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라고 교훈해 주셨다. 그 바로 앞절에 보면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시다가 “지옥은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라는 설명을 하시기도 하셨다. 

 

소금이 좋은 것이듯 빛도 좋은 것이다. 세상 창조의 시작이 “빛이 있으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이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세상은“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였다. 선과 악을 구분할 때에 선이 빛이라면 악은 어둠이다. 진리와 거짓을 구분할 때에 진리가 빛이라면 거짓은 어둠이다. 의와 불의를 구분할 때에 정의가 빛이라면 불의는 어둠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는 가르침을 통해서 악과 거짓과 불의가 가득한 어둠의 세상을 밝히는 선과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7장을 산상수훈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께서 산 위에서 무리를 바라보시며 특히 곁에 나아 온 12제자들을 상대로 교훈하신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의 자세한 가르침을 산상수훈의 말씀 속에서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소금처럼 살고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라고 강조하셨다. 오늘 읽은 본문을 좀 더 자세히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은 너무나도 흔해서 그 소중함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생명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가르침은 성도가 세상 중에서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 

 

소금(salt)이란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의 쌀라리움(salarium)이라는 단어이다. 영어로 봉급을 쌜러리(salary) 라고 하는데 이는 로마 시대에 군인들의 봉급을 소금으로 주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소금의 가치는 황금처럼 소중하고 값비싼 것이었다. 그래서 봉급 생활자를 쌜러리 맨(salary man)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소금의 가치와 금의 가치는 대등하였다. 소금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거나 식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전체 소금 생산량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유리, 비누, 가죽, 플라스틱, 종이, 페인트, 약품, 고무, 화장품, 배터리를 만드는데 쓰이거나 도로포장이나 콘크리트 공사 등에 사용된다. 이처럼 소금은 우리 생활 중에 없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공기나 물처럼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오스트리아 잘츠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가 나온다. 유명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진 이 도시가 ‘잘츠부르크’(Salzburg) 인데 그 이름의 뜻이 ‘소금의 성’이다. 그 주변에 암염 산지가 있어 소금으로 부를 쌓아 지금의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세계의 곳곳에는 소금과 관련된 지명이나 사연을 가진 도시가 참으로 많다. 수백만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판이 유럽 대륙판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대륙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면서 알프스 산맥이 형성되었다. 그 때에 바닷물은 증발되고 암산이 형성된 것이다. 소금은 하얀 금이란 뜻을 갖고 있다. 8세기에 로마 교황청은 잘스부르크에 주교청을 설치하고 주교를 파견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안군처럼 소금을 염전에서 만들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천연 암염을 채취해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소금을 식품이 아닌 광물로 분류한다. 소금은 종류에 따라 맛도 영양도 값도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종종 열심히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땀을 흘린다. 그 땀에 소금기기 가득하다. 혹은 울다가 흘리는 눈물을 맛보게 되면 그 맛이 짭짜름하다. 그처럼 땀이나 눈물의 맛은 바로 우리 몸에 녹아 있는 소금의 농도를 의미한다. 우리 몸은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는 0.9퍼센트의 소금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링거 액에도 반드시 소금이 일정한 양 포함되어 있다. 이는 바닷물의 염도와 거의 비슷한 정도이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지만 소금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소금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영양소이다.

 

현대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간 짠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해 건강을 해치는 사람도 많지만 소금이 지금처럼 흔하고 값싸게 된 지는 사실 몇십 년밖에 안 된다. 과거에는 소금 한 가마니 값과 쌀 한 가마니 값이 똑같던 때도 있었다. 소금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인류의 문명 발전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처럼 인류의 역사와 문화, 사회, 경제, 과학, 의학 전 부문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소금이다. 

 

인류가 소금을 찾아 나서면서 소금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통해 소금을 사고파는 시장이 발전하였다. 또 그 시장을 발판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고대 문명이 발전해 왔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소금을 찾기 위해 버펄로가 소금을 핥기 위해 찾아다니던 소금 길을 따라가다가 도시를 발전시켰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에서 얻은 소금을 이용해 시체를 처리하는 미라 보관법이 발전하였다.

 

고대 도시 로마는 소금을 사고파는 시장을 통해 이룩되었다.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사하라 사막을 건너 소금을 교역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로 이슬람 문명이 전해지기도 했다. 또 소금 무역으로 부유해진 도시를 바탕으로 학문과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소금은 이처럼 문명을 일으키는 디딤돌 역할을 했으며 문화의 교류와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문명의 시작과 발전 과정에는 언제나 소금이 있었다. 중세 유럽의 베네치아처럼 소금 교역으로 나라가 번성하였다. 미국의 독립 전쟁처럼 소금이 영국과 전쟁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는 소금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도 했다. 소금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마하트마 간디의 소금 행진으로 말미암아 독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도 역사의 정설이다. 

산업 혁명 시기에는 소금을 이용해 여러 가지 화학 물질을 만들어 내면서 소금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산업 현장에 막대한 양의 소금이 필요하기 시작했다. 온갖 화학 제품의 연구와 생산 과정에도 소금은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소금이 세계의 역사를 만들고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소금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다. 소금은 세계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물품이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왕조가 바뀌고,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고 식민지 국가가 독립하는 등 세계의 역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잘 아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라는 교훈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같이 소중하고 반드시 필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소금은 맛을 내는 조미제요 부패를 막는 방부제이다. 이처럼 성도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더 이상 타락되지 않고 더 이상 부패하지 않도록 막아서는 소금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만 한다. 염산에서 암염을 채취하면 정제하여 소금 이외의 것은 가차 없이 버렸다. 암염을 소금인 줄 알고 채취했으나 소금이 아닌 것들은 과감히 제거하고 버리게 된다. 그걸 아시는 예수께서“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장 6절에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라는 교훈도 말씀해 주었다. 

 

성도는 세상에서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무 쓸데 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밟히는 불행한 인생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소금이 사람에게 소중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상업의 현장과 학교와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서 영향력 있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께서는 세상에서의 빛과 같은 삶이란 ‘성도의 착한 행실’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소개하신 적이 있으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라고 교훈해 주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이 죄를 방지하고 부패를 막는 소극적인 가르침이라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세상의 어둠을 삼키고 이기는 빛의 적극적인 면을 강조하신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산 위에 동네가 있다면 깜깜한 밤에 그 마을의 환한 빛이 어디에나 비치어서 알려지게 될 것이다. 성도의 삶, 신자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 어둠 속에 삼킴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밤이 어두면 어둘수록 빛은 더욱더 밝게 빛나는 법이다. 밤이 칠흑같이 어두면 어둘수록 바닷가의 등대의 불빛은 더욱 더 선명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둔다는 교훈이 무엇인가. 그렇지 않나.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전기가 없었다. 읍내에서 석유 한 되를 사오면 꽤나 오래도록 사용했다. 부엌, 안방, 건너방, 마루, 사랑방 등등 심지어는 안마당에까지도 등불과 호롱 불이 불을 밝혔다. 그 때는 휴대용 전등이 없어서 소나무의 송진이 많은 부분을 잘라 말려 두었다가 그 관솔에 불을 붙여서 후래쉬로 사용했다

 

등불을 켜면 방 안의 가장 잘 비칠 만한 곳에 높이 두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등잔불은 그늘이 있고 어두운 부분이 있고 못 비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교훈대로 하면 성도는 세상 그 어디에서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집 안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장사하는 곳에서나 그 무슨 사업을 하는 세상의 그 어디에서나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구석 구석 가는 곳마다 있는 곳마다 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빛을 비추어야 한다. 선한 영향력을 반드시 끼쳐야 한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비치는 빛으로서의 성도의 삶을 ‘착한 행실’이라고 교훈하셨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다운 삶의 모습을 말씀하는 것이다. 밤이 깜깜하면 반딧불이 영롱하게 보이는 것처럼 밤이 어두면 어둘수록 성도들의 삶은 점점 더 빛이 나야 한다.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성도의 삶은 더욱 더 세상 중에서 빛이 나야 한다. 

 

1979년과 1980년은 10. 26, 12. 12, 5.18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격동기였다. 황석영의 이름을 빌려서 출간된 이동철의 <어둠의 자식들> 그리고 이동철의 또 다른 책 <꼬방동네 사람들>의 등장 인물같은 기구한 인생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1981년에 출간된 <꼬방동네 사람들>의 작가 이동철의 본명은 이철용이다. 그는 첫 작품인 <어둠의 자식들>에서 자신의 학력은 초등학교가 전부였다고 소개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다녔다고 보기 어렵다. 기지촌에서 자랐는데 미군부대 주변에서 펨푸(호객)도 하고 뚜룩(좀도둑)도 치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 뒤는 말할 것도 없다. 온갖 범죄로 수없이 감옥을 드나든 ‘어둠의 자식’이 됐다. 그러다가 작품 내에선 공 목사라고 소개된 실제 인물 허병섭 목사를 만나서 간신히 맹목적인 오까네(돈)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 작가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야학을 만들어 ‘어둠의 자식들’을 모아 배우며 가르쳤다. 서른두 살에 자전적 소설 ‘어둠의 자식들’을 썼다.

 

처음에는 황석영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 인지도의 덕을 봤을 것이다. 출간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실제 저자가 ‘어둠의 자식’임이 알려지면서 책의 인기는 더 높아갔다. 이듬해에는 실제 저자 이름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됐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배창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두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넌픽션이다. 서울 동대문 밖 청계천 뚝방을 낀 옛 기동찻길 주변 판자촌 동네의 특이한 생활풍토와 그 주민들이 등장한다. 소위 ‘막차 탄 인생’들의 절박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꼬방동네는 1970년대 헐리고 쫓기고 다시 지으면서 만들어진 도시빈민촌이었다. 당시 사회의 상처이고 치부이며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네 얘기였다. 이 소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우리와 우리 이웃이 함께했던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그래서 더욱더 잊어서는 안 되는 진실의 일부다. 두 책의 출판으로 유명해진 이철용(1948-)은 7년 후인 1988년에 도봉 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때 기독교 도시빈민선교 위원으로 활동했다던 그가 그러나 지금은 무속인이 되어서 누군가의 점을 봐 주면서 살고 있다고 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신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이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다. 주님의 그 빛이 내 삶에 비치다가 사라지게 하면 않된다. 평생토록 그리고 영원히 그 빛이 나와 나의 후손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비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분부이고 성도의 사명이다. 

 

산상수훈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곳이 무려 17번이나 나온다. 이는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곁에 계신 자상하신 사랑의 아버지라는 점을 강조하신 표현인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과 기대에 부응하는 나날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말씀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당시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들이 최고로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는 자들이라는 긍지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시며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다. 그런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라고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일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한 수 많은 가르침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강대강 믿고 대강 대강 따르려고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지난 주일에 묵상한 미가서의 가르침처럼 “정의와 긍휼과 겸손을 하나님과 함께” 실천하여야만 한다.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그치거나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성도인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다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나.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려 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 외에 우상을 만들거나, 우상에게 절하거나,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는 말씀이 무엇인가. 여기서 시작해서 율법과 선지자의 교훈에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가.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근본 정신을 가지고 서로를 사랑으로 대하고 사랑으로 섬기고 사랑으로 보듬고 사랑으로 감싸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신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 소금 만드는 사람을 ‘여맹이’라고 했다. 소금쟁이, 염쟁이라는 말이다. 그런 소금 만드는 사람의 딸이 시집을 갔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소금 만드는 사람을 천하게 여겨서 며느리를 부를 때마다 늘 “여맹이 딸, 여맹이 딸.” 하며 무시하곤 했다. 마음이 상한 며느리는 어느 날 모든 반찬에서 소금을 빼 버렸다. 밥상을 받은 시아버지는 싱거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이쿠, 여맹이 딸아 반찬이 왜 이러냐?” 시아버지가 반찬 타박을 하자 며느리가 대답했다.“아버님이 늘 여맹이 얘기를 하시는 걸 보니 소금을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오늘부터는 모든 반찬에 소금을 안 넣기로 했습니다.”그 뒤로 시아버지는 더 이상 며느리를 여맹이 딸이라 천대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소금을 생산하는 여맹이를 존경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빛도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너희 착한 행실이 빛처럼 사람 앞에 비치게 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벌써 입춘(立春)이 지났다. 어제가 입춘이었다. 구정을 맞은지도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다. 이렇게 출발한 새해 2023년이 복되고 은혜로운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우리 각 사람의 착한 행실을 보고 믿는 자의 수를 점점 더해가는 은혜로운 교회로 부흥해 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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