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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께 감사하라(사12:1-6)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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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11-14 03:54 조회 276 댓글 0
 

                    주 여호와께 감사하라(사12:1-6)          2022. 11. 13

 

 

사람은 누구나 ‘그 날에’대한 기대와 소망 가운데 살아간다. 전쟁을 겪는 백성들은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 올 날을 고대하고 고대한다.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끼니 걱정하지 않고 배부르게 살날을 원하고 바랄 것이다. 병들어 고생하는 이들은 질병이 떠나가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하루 하루의 일상을 그리워 할 것이다. 여러해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그 날을 소망하고 소망할 것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이들은 자신의 누명을 벗고 세상에 나와서 자유롭게 생활할 날을 소망하며 답답한 옥중 생활을 이겨 낼 것이다. 아들 귀한 가정에서는 아들 낳기 원하는 간절함이 엄청날 것이다. 시집 장가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언제나 그 날이 찾아 올까”하며 지낼 것이다. 

 

이러한 염원과 소원을 담은 표현이 ‘그 날에’라는 표현이다. 오늘 읽은 아사야 12장에 보면 1절과 4절에 ‘그날에’라는 표현이 나온다. 영어로는 ‘in that day’라고 하였다. 이사야 10장 20절과 27절, 11장 10절과 11절에도 ‘그 날에’라는 표현이 연이어 계속된다. 여기서 말씀하는 ‘그 날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룩하실 구원의 날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물론 가까이로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고 구원받는 날에 대한 소원과 예언이 담겨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전쟁, 기근, 테러와 같은 사건과 사고 혹은 재난 등을 겪다가 보면 죽은자와 산자로 나누어진다. 환난과 역경과 사고와 사건과 재난과 시련 속에서 역사 속에 사라진 이들이 있고 남아 있는 이들이 있다.

 

이사야서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남은 자’(remnant)에 대한 교훈이다. 가령 이사야 10장 20절을 보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21절의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이라.”라고 하였다. 22절에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 오리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이 절정에 달하는 구절이 이사야 11장 마지막 절인 16절 말씀이다.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라고 하였다. 이 모든 내용은 ‘남은 자’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그렇지 않나. 남북 왕조로 나누어져 있던 이스라엘은 북 왕조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망하였다. 남 왕조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명하였다. 예루살렘 성은 초토화 되었고 솔로몬의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 유다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웃시야 임금이 죽던 해인 주전 739년에 부르심을 받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던 때, 히스기야 임금이 죽은 주전 687년 이후까지 40년이 훨씬 넘도록 활동하였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680년경에 므낫세 왕의 우상 숭배에 반대하다가 톱으로 켜서 죽이는 순교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히브리서 11장 37절의‘톱으로 켜는 것과’라는 내용은 이사야 선지자의 죽음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성경 주석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 그러면 그런 환난과 우상 숭배와 변화가 많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자로 쓰임 받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 중에서 오늘 제 12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주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 찬송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1절 끝에 보면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라고 하였고, 4절에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라고 하였다. 그러면 무엇을 감사하라는 말씀일까.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감사.

1절에 보면 이전에는 진노하시던 하나님이 그 진노를 멈추시고 이제는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니 내가 주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사람이 고난을 겪고, 불행한 일을 겪고, 사고를 겪고, 질병으로 고생하고, 되는 일이란 없고 일마다 꼬이고 꼬여서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 인생길을 가고 있다면 쉽사리 감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성경은“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하시던 때는 남북 왕조인 이스라엘과 유다가 앗스르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한 불안에 휩싸여 있던 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고난과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미 다 지나가고 포로의 땅에서 복역의 때가 끝난 후에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땅에 되돌아 와서 용서받은 자의 회복의 은혜를 누릴 날이 있을 것을 미래 완료형으로 말씀하고 계시다. 이는 포로 생활로부터의 회복 뿐만 아니라 장차 누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메시아의 통치를 예언한 말씀이시다. 악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은 완전한 멸명을 향한 징벌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서 누릴 위로에 향한 초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선택 받은 자의 특권이며 복인 것이다. 

 

요즘 우리는 창세기의 후반부를 묵상하고 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열 일곱 살에 노예로 팔려 갔다. 애굽의 노예 시장에서 바로 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 갔다. 그 집의 제반 살림살이를 맡는 종살이를 했다. 십일년 세월이 흘렀다. 28살때에 요셉은 안 주인의 성적 유혹을 피하다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옥 중에서 만난 바로 왕의 떡 맡은 관원과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감옥에서 2년 세월이 흘러갔다. 요셉의 나이 30살 때에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꾸었다. 복직된 술 맡은 관원은 옥중에서 만났던 히브리 노예 청년 요셉을 왕께 소개하였다. 요셉은 왕 앞에 불려 나갔고 왕의 꿈을 시원하게 해석해 주었다. 바로 왕은 요셉을 나라의 제 이인자로 등용하였다. 하나님은 요셉 한 사람을 통해서 애굽의 칠년 풍년 후에 이어진 칠년의 흉년을 견뎌 내게 하셨다. 그 흉년이 계속되던 둘째 해에 가나안에도 큰 기근이 있었다. 이로 인해서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려고 내려 갔다. 요셉을 만나게 된 저들은 우여 곡절 끝에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칠십명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대 이주를 하게 되었다. 애굽과 근동 지역의 칠년 대 기근의 때에 굶어 죽은 자와 살아 남은 자가 있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그의 아버지 야곱의 온 집안 사람 칠십명을 대 기근의 때에 살아 남은 자로 생명을 보존 하셨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이사야 12장 1절의 ‘전에는’과 ‘이제는’이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언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다. 그러나 언제는 하나님이 안위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사야 7장부터 이어지는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의 우상 숭배와 죄악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와 장차 이룩하실 구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올 2022년도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한 해의 삶을 뒤돌아보아 진심으로 하나님 안에서 매 순간 나의 범사를 안위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며 찬송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주께서 나의 힘과 노래와 구원이시니 감사.

오늘 말씀은 일인칭으로 되어 있다. 2절에 보면“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라고 하였다. 맞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시다. 이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의지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고 선포이다. 이것은 시편의 주류를 이루는 고백이고 선언이기도 하다. 가령 모세의 시편인 시편 90편 1절에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하였다. 시편 100편 3절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라고 하였다. 시편 36편 9절에 보면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하였다. 끊임이 없는 사고와 사건의 현장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성경이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살다 보면 사고와 사건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호흡과 걸음과 범사가 주님의 손길 안에 있다. 시편 37편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라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고백은 출애굽한 모세와 그의 백성들의 고백에도 담겨 있다. 출애굽기 15장 2절에 보면“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힘은 추격해 오는 애굽의 군대와 병거를 홍해의 물 가운데 수장되게 하셨다. 출애굽기 15장 3절부터 8절까지를 보면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도 늘 그렇게 찬양하지 않는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말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과 이 세상에는 돈이 힘이고 부동산이 힘이고 주식이 힘이고 권력이 힘이고 지위가 힘이고 젊음이 힘이라고 믿고 사는 이들이 많다. 다 좋고 다 필요하다. 이 땅에서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세상 재물의 힘이 없이 살 수는 없다. 돈이 없으면 풍산개 한 마리를 선물 받아도 키울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다.”이런 분명한 믿음과 확신과 소망 가운데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이런 은혜와 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주께서 지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으니 감사.

성도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마르지 않는 우물 샘을 퍼 마시듯이 계속하여 누리게 되는 영원한 복인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러므로 너희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성경은 곳곳에서 물을 구원으로 연결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사야 55장 1절에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라고 초청하였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라고 하였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스스로를 말씀하셨다. 요엘서 2장 28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하였다. 성령의 충만함을 물 붓듯이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스가랴 14장 8절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수가 성 여인에게“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요7:37-38)라고 축복하셨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를 찬양하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우리는 무엇을 감사하여야 할까. 오늘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야만 하는 이유는 “지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성도는 주께서 행하신 지극히 아름다운 일을 온 땅에 알리고 또 알려야만 할 것이다. 5절의 ‘아름다운 일’이란 ‘장엄한 일, 영광스러운 일’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며, 장엄한 일이며, 영광스러운 일이시다. 북한에는 5만여 개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집집마다 김일성, 김정은의 액자가 걸려 있다. 김일성, 김정일이 우상이다. 삼대 세습 왕국이다. 어젯밤 고양 예수인 교회에서 고양 파주 장로 합창단 발표회가 있었다. 북한 제 1호 공훈 배우 출신 탈북 여성 주순영 전도사의 짧은 간증이 있었다. 기도 형식이었고 화면에 북한의 굶어 죽어가는 이들의 시체 사진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메웠다.

 

모세 시대의 출애굽이 꿈처럼 일어난 일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처럼 북한 땅에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런 지극히 아름다운 일, 그런 장엄한 일, 그런 영광스러운 일이 어서 속히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출애굽이 그러하고, 바벨론 포로의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되 돌아 오는 귀환의 순간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개인과 가정과 나라 안팎의 범사에 크고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행하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자. 찬송하고 또 찬송하자.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6절의 말씀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우리 가운데 크시도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또 외쳐야 할 것이다. 

 

나라의 민심이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경제적으로도 점점 어두운 먹구름이 덮치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그리고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세 불안 등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불안정한 안개 정국을 버티고 살아가야만 한다. 이러한 때에 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감사의 제목을 찾아서 낱낱이 감사하고 일일이 감사하고 자세하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감사의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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