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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갈5:22-24) 20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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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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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6-27 23:18 조회 2,854 댓글 0
 

                           성령의 열매(갈5:22-24)            2022. 6. 26

 

오늘은 유월 마지막 주일이다. 이번 금요일이면 한해의 절반이 다 지나가고 칠월 첫날을 맞게 된다. 우리는 해마다 이 때가 되면 ‘헐몬산 새벽 기도회’를 계속해 왔다. 올해도 헐몬산 새벽 기도회에 매일 새벽마다 달려와서 예배당에 모여 찬송하고 말씀 붙들고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의 열매가 있기를 간구한다.

 

다음 주일은 맥추절이다. 출애굽기 23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은“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라고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 세 절기란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다. 무교절이란 애굽에서 출애굽하게 하신 유월절을 기념하여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 즉 무교병을 먹는 칠일 간을 포함하는 절기이다. 

 

무교절에는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말라”(출23:15)고 하셨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16)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날의 추수감사절을 출애굽기에서는 ‘수장절’이라고 하였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라고 하였다. 

 

오늘은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려고 한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성령의 열매’란 갈라디아서 5장 19절의 ‘육체의 일’에 대조되는 표현이다. 19-21절까지에는 무려 15가지 이상의 육체의 일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은 성적 타락에 대한 내용이다. “우상 숭배, 주술”은 영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과 종교적인 죄악에 대한 언급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은 나와 이웃 즉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하여 내용들이다. 여기에 포함된 ‘이단’이란 종교적인 면에서의 이단이 아니라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주장하며 주변 사람과 분쟁과 다툼을 일삼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자,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육체의 소욕에 의해서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육체의 일 말고 성령을 따라서 살아가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에게 맺히는 성령의 열매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삼등분하면 그 첫째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맺히는 열매인 것을 알 수 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사랑이란 우리가 흔히 헬라어로 구분하는 ‘아가페’( ἀγάπη)의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는‘에로스’(ερος), 형제자매의 사랑이나 동족애를 말하는 ‘스톨게’, 친구의 우정을 말하는 ‘필리아’(φιλία)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아가페’의 사랑이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사랑을 말한다. 십자가 대속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성령의 열매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 준 곳은 요한일서 4장7-21절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정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사랑은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내어 주신 대속의 사랑, 희생의 사랑, 완전한 사랑, 값을 수 없는 사랑, 영원한 사랑, 값 없이 주신 사랑이다. 그 사랑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랑의 열매’이다.

 

희락이란 기쁨이다. 사람들은 기쁨을 원한다. 그러나 쉽게 기쁨을 찾지 못한다. 기쁨이란 것은 현상이며 감정의 상태일 수 있다. 그래서 육체의 일을 찾아 나서고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인 ‘희락 즉 기쁨’이란 하나님을 믿는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려 할때에 주어지는 기쁜 마음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로서의 희락 즉 기쁨이란 세상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주 안에서의 희열과 영적 만족의 상태인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전11:1)라고 권면했던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기쁨과 기도와 감사 생활은 하나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교훈하였다. 기뻐하면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면 기뻐하게 된다. 기뻐하고 감사하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기쁨과 감사의 제목들이 깨달아진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라는 제목의 325장 찬송가 1절은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라고 되어 있다. 맞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기쁨의 근원이신 것을 날마다 순간마다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령 안에 살아가는 성도의 열매 중의 하나인 기쁨인 것이다. 

 

기쁨은 영어로 ‘JOY’ 이다. 과거에 무슨 책을 읽다가 발견한 내용이다. 성도의 기쁨 즉 JOY는“Jesus First/ Other Second/ You Third”라고 하였다. 꿰어맞추어 만든 것이라고 할지라도 의미는 크다. 맞다. 예수 그리스를 삶의 우선으로 하고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이웃을 섬기며 자신 자신을 삶의 우선순위의 나중으로 하며 산 이들은 기독교 역사에서는 ‘성자’(聖者)라고 한다.

 

4세기의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AD 354-430)은 로마 지배령이었던 북 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16살 때에 아들을 카르타고로 유학을 보냈다. 그 곳에서 수사학을 공부하길 원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 다음해에 어느 여성을 만나서 동거를 시작했다. 아들도 낳았다. 14살 때 아들이 죽기까지 그 여성과 동거하였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던 어거스틴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이단이었던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이단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모니카는 세상으로 나가 버린 아들과 단교하면서까지 안타깝게 기도하였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그 당시 저명한 목회자였던 암브로스(Ambrose, A.D. 334-397) 감독은 수사학과 철학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어거스틴은 암브로스 감독의 설교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어거스틴은 32살 때에 13살 된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암브로스 감독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로마서 말씀에 심취하였다. 이듬해에 아프리카 북부의 고향으로 가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해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들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6살에 주교 서품을 받은 그는 76살에 주님 품에 안기기 까지 존경 받고 덕망 높은 성직자의 삶을 살았다. 신학자, 성직자, 주교였던 그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 등을 망라하여 서방 기독교에서 교부로 존경받는 4세기의 역사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희락 즉 기쁨이란 이처럼 청년기에 쫓던 세상 열락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누리는 기쁨과 주께서 누리게 하시는 희락인 것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총을”강조하였다. 그의 책 <고백록>(Confessiones)은 이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기독교 고전이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과 기쁨의 가치를 깨달은 성도에게 맺히는 성령의 열매 중의 또 하나가 ‘화평’이다. 화평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과 불화하였던 인생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에서 사랑과 관계로 회복된 역사적인 사건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하게 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사명과 과제는 이웃과 화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평은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성령의 열매이다. 

 

우리는 <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이라고 찬양한다.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주께 영광 할렐루야 주만 찬양해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열매로 풍성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이웃에 대하여.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나와 이웃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맺히는 열매이다. 그렇지 않나. 내가 내 스스로에 대하여 절제하고 금욕하고 참는 것도 참는 것이지만 나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에 대하여 오래 참는 것은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이다. 원 단어의 뜻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견뎌 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것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불의한 일 앞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믿고 기대하며 평안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오래 참는 것이 왜 성령의 열매인가. 로마서 2장 7절에 보면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고 하였다. 오래 참지 못하는 자가 받는 심판에 대해서는 그 다음 절인 로마서 2장 8절이 교훈한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라고 하였다. 

 

야고보서 2장 7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라고 교훈하였다. 

 

자비(慈悲)란 상대방의 대하여 인자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양선(良善)이란 적극적으로 상대방에 대하여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9절에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에서는 “모든 선을 기뻐하라”라고 교훈하였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공산당을 말할 때에 무자비한 공산당이라고 말한다. 6.25 전쟁 발발 72주년 기념일인 어제 국민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50년 11월 5일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빨치산은 추수하느라 곤히 잠자는 성도를 한 사람씩 불러냈다. 잡혀 온 성도의 손을 결박했고 서로 대화하지 못하게 했다. 자정을 넘길 때쯤 “교육받으러 가야 한다”며 일렬로 세워 인근 숲으로 끌고 갔다. 삼나무 껍질로 모아 만든 외삼줄로 굴비 엮듯 손을 줄줄이 묶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빨치산은 윗옷을 벗기고 미리 준비한 몽둥이와 예리한 죽창, 서슬 시퍼런 도끼와 삽, 망치, 칼 등으로 성도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매장했다.

 

사건 당시 20살 청년이던 올해 92살인 임수삼 씨는 빨치산에게 가족을 잃은 그날 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 두 동생이 손이 묶인 채 학살 현장으로 끌려갔고 임씨 혼자 탈출에 성공했다. 임씨는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 기독교인 35명이 희생된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그리스도의교회’ 집단 학살사건의 생존자이자 목격자이다. 당시 가족과 함께 끌려가다 간신히 줄을 풀고 피신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현재 경기 김포시에 살고 있는 임씨는 “할아버지 임유삼(당시 60세) 집사와 할머니 김춘동(당시 61세) 집사는 처형장으로 질질 끌려가는 중에도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로 시작하는 찬송을 성도와 함께 부르셨다. 특히 나이 어린 자녀가 죽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이셨다. 빨치산은 나중에 잡혀 온 손자를 보며 애절한 눈빛으로 볼을 비비면서 이 세상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를 구타하며 못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성령의 열매에 반대되는 것은 세속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간절히 구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나 자신에 관한 성령의 열매이다. 충성(忠誠)이란 믿음과 같은 ‘피스티스’(πίστις)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충성된 자들이다. 반대로 자신에 대하여 충성된 자라야 주변 사람에 대하여도 그러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충성스러운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온유(溫柔)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예수께서는“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라고 권면하셨다. 온유란 “완고하지 않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마음가짐”을 말한다. 예수의 팔복 말씀 중의 세 번째가 온유한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다.“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라고 하였다. 

 

절제란 “자제 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고 균형이 있는 삶을 유지하는 소중한 신앙 덕목으로 강조하였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교훈하였다. 

 

무더워지는 계절에 믿음 생활의 열매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충만한 은혜의 나날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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