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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의 약속(행1:1-8)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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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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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5-23 23:27 조회 126 댓글 0
 

                        성령 강림의 약속(행1:1-8)            2022. 5. 22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을 쓴 의사 누가의 기록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마지막 내용은 예수의 승천 장면을 다루고 있다. 가령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16장의 끝 부분에서는 예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이런 내용을 사명으로 교훈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사실을 기록해 주고 있다. 이 후로 제자들은 두루 다니며 예수의 부활 승천 사실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함께 역사하셔서 각양 표적이 일어났고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증언하게 하셨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24장의 끝 부분에도 예수의 승천 장면을 다룬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 손을 들어 그의 승천을 지켜보는 11제자들을 축복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께 경배하였다. 그리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저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지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회심(回心) 284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회심이 무엇인가. 1738년 5월 24일, 영국 런던 올더스케이트 모라비안 교회의 수요 예배 시간에 회심을 체험한 존 웨슬리는 그 날 밤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교회에 갔다.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전 쯤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역사하사 일으키시는 변화’를 말할 때에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도 뜨거워지는 것’(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이처럼 284년 전의 한 사람의 회심 체험이 오늘 날 세계에 거대한 감리교회를 탄생하게 한 불씨가 되었다. 존 웨슬리의 외할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주교였다.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 사이에서 19남매 중에서 15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9남매는 어려서 죽었다. 세 아들과 일곱 명의 딸들이 장성하였다. 큰형 사무엘과 동생 찰스를 비롯한 삼 형제는 모두 다 목사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 수산나(Susanna)는 학식과 재능, 신앙 면에서 비범하였다. 존 웨슬리는 그의 어머니 수잔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기본고전 교육의 기초를 잘 닦았다. 특히 구약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를 제대로 터득하였다. 

그의 형제들은 헬라어로 신약 성경을 외울 정도의 열심을 그의 어머니 수나나로부터 강요 받으며 자라났다. 17세가 되었을 때 웨슬리는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엡워스에서 런던에 있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생활 중에도 동료들과 경건운동을 일으키면서 회원들과 함께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매일 성경 읽고 아침저녁으로 모여서 기도하였다. 희랍어 신약 성경 공부와 고전을 연구하였다. 매주일 성찬식에 참여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금식을 했다. 또한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의 모든 죄악을 경계하면서 올바르고 순결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가난한 이웃들과 병든 이들, 감옥에 있는 이들을 방문하고 선행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의를 쌓기에 열중하였다. 선행을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율법 아래에 있었지 은혜 아래에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 받는 믿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칭의(稱義) 없이 성화를 이루려고 애를 썼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슴 속에서는 늘 영적 싸움이 계속되었다. 또한 그는 32살 때인 1735년, 미국 선교사로 출발했을 때 선교 여행 중 대서양을 건너던 배 안에서 폭풍 가운데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모라비아 교도들을 보면서 깊은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 존 웨슬리 자신은 아직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뿐만 아니라 구원의 확신도 없었음을 나중에 자세하게 증언하였다. 

 

그는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진리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사하셨으며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그의 마음에 가득 채워졌다. 그는 구원에 대한 확증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해서 오는 것이라는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그 밤에 존 웨슬리는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회심을 체험했던 존 웨슬리를 그 날 이후로 사용하시기 시작했다. 그의 회심 체험은 18세기 영국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존 웨슬리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는 스가랴 3장 2절의“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Is not this man a burning stick snatched from the fire)라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존 웨슬리 의 나이 6살 때 아버지가 목회하던 엡워스의 목사관에 큰 불이 났다. 불길 속에 2층 창가에서 울부짖던 그를 키큰 동네의 두 장정이 어깨 위에 무등응을 타고 올라가서 기적적으로 그를 창문 밖으로 구출하였다. 이처럼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 구출 받은 어렸을 적 체험은 먼 훗날 감리교를 태동시키도록 그를 준비시킨 하나님의 섭리였다. 존 웨슬리는 회심 후 하나님께서 영국의 복음 전도 사역을 하도록 자신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을 더욱 더 갖게 되었다. 

 

그는 25살에 목사직에 준하는 사제가 되었다. 그는 그가 교수로 있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료들을 불러 모아 거룩한 모임( Holy Club)을 만들어 경건 운동에 힘썼다. 이 때부터 그들은 규칙주의자들이란 뜻의 ‘methodist’라고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하였다. 미국 선교에 실패한 그였으나 35살 때의 올더스케인 체험 이후 존 웨슬리는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쓰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복음 전파의 목표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과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집념과 불굴의 정신과 타오르는 열정으로 영국 전역을 말을 타고 다녔다. 그는 항상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도하는 일에 열중했다. 존 웨슬리는 마음 속에 불붙은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순회하면서 하루에도 4-5번씩 설교하였다. 일 년에 8,000km가량을 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도하고 설교하며 교구를 방문하고 돌보았다. 존 웨슬리의 말씀 선포의 주제는 은혜, 믿음, 구원, 값 없이 주시는 은총, 십자가, 죄 사함, 거듭남, 칭의, 성화, 영생 등 그 외에도 사회 성화에 대한 재물관, 청지기 관을 중심으로 한 빛과 소금과 같은 성도의 삶에 대한 강조가 수 없이 담겨 있다. 그는 실로 그런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모범적으로 살았던 신앙의 겸손한 거장이었다. 영국 사회는 16세기의 윌리엄 세익스피어(Willam Shakespeare, 1564-1616)와 18세기의 존 웨슬리 두 사람을 반드시 거론한다. 

 

오늘날 세계에 흩어져 있는 7,000만명에 가까운 감리교도의 탄생의 배후에는 존 웨슬리를 빼어 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올해도 어김 없이 존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을 맞으며 다시 또 존 웨슬리가 누군지를 뒤돌아 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1장의 앞 부분을 읽었다. 누가복음의 기록자인 누가는 사도행전의 시작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있나. 1절의 ‘먼저 쓴 글’이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1-2절의 언급처럼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기사와 이적을 비롯한 다양한 행적과 가르침과 성령의 분부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까지의 기록을 대할 수 있다. 3절 하반절의 내용처럼 예수께서는 이 땅에 부활 후에 사십일 동안 더 계시면서 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강조하셨다. 

 

오늘 읽은 본문을 좀 더 자세히 대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고난 죽음 부활 승천.

교회력으로는 오는 목요일인 5월 26일이 예수 승천일이다. 6월 첫 주일인 6월 5일이 성령 강림절이다. 그러니까 교회력으로는 요즘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십일을 더 머무시던 기간이다. 올해 우리는 4월 17일을 부활 주일로 맞았다. 그리고 지금 예수께서 부활 이후로 이 땅에 사십일을 머무시던 기간을 지내고 있다. 모든 것은 이처럼 역사의 기록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사 복음서가 역사의 기록이다. 예수의 탄생과 성장과 세례를 받으시고 사십일 동안 금식하신 그 모든 기록들이 역사이다. 예수께서 열 두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저들과 함께 사역하신 삼년 간의 기록이 사 복음서에 가득하다. 예수께서 행하신 수 많은 기사와 이적의 기록이 다 역사의 기록이다. 각색 병자들을 고치신 것이 역사이다. 계속해서 다양한 비유로 교훈하신 천국 비유 즉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의 말씀들을 전파하신 것이 다 역사이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록이 각 복음서마다 적지 않은 분량으로 기록된다. 왜일까. 그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머무신 동안에 있었던 일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이천년 전에 이 땅에 몰래 다녀 가신 것이 아니다.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은 헤롯 왕도 알았다. 동방박사들로 인해서 에수의 탄생 소식이 헤롯에게까지 알려졌다. 예수는 구약의 다양한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이미 예수께서 언제 태어나실지, 어디서 태어나실지, 어떤 모습으로 태어 나실지, 왜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시는 것인지, 예수는 어떤 고난을 받을 것인지, 어떤 죽으심으로 죽임 당할 것인지를 성경은 미리 말씀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이 땅을 다녀 가셨다. 예수의 탄생, 성장, 활동과 사역, 남겨 주신 천국 비유의 말씀들, 예수의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역사에서 지울 수도 없고 감출수도 없고 부인 할 수도 없는 엄연한 역사이다. 

 

그렇지 않나.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중이다. 우리는 이미 언론을 통해서 그가 언제 한국을 방문할 것인지 들어서 알고 있다. 그가 대한민국에 도착해서 갖는 모든 일정과 동선은 숨길 수가 없다. 어느 시간에 어디를 방문해서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무슨 성명을 발표하는지 비밀이란 없다. 물론 비공개 회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국민이 모르는 것 뿐이자 세상이 모르는 게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비 공개 회담의 대화 내용도 다 역사의 기록물로 기록되고 영상물로 보관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비밀이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속담이다. 그렇지 않나. 역사 중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도 비밀이란 없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상한 기록의 책이 성경이다. 

 

우리가 지난 수, 목, 금 삼일동안 삼인 삼색 말씀 부흥 성회로 모였다. 삼일동한 세 분의 젊은 강사 목사님들이 서로 다 다른 주제의 다양한 말씀을 선포하였다. 삼일 동안 참석한 이들은 안다. 영상으로라도 접한 분들은 안다. 그것이 다 우리 공동체가 경험하는 올 2022년 5월의 신앙 생활의 한 역사이다. 

 

우리는 주일 예배 시간마다 사도 신경을 고백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고백한다. 고백이란 믿음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 고백의 내용에 대한 나 자신의 믿음이 없이 그냥 예배 시간에 따라 읊조리는 내용을 끝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나는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나는 죄를 용서 받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영생을 믿습니다. 

 

이것이 사도 신경의 주요한 고백이 아닌가. 사도 신경에는 ‘믿습니다’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된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년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로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고백을 구구절절이 담고 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믿음 없는 자로 살아가지 말고 믿음 다운 믿음을 가진 믿음의 주인공으로 살아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4절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성령이다. 예수의 말씀이시다. 

4절을 다시 보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내게서 들은 바를 기다려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성령 받기를 기다려라. 

교인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성령 받은 교인과 성령 받은 이들과 어울려서 그저 교회가 좋으니까 다니는 교인으로 말이다.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어른청년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성령 충만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올 봄이 얼마나 가무나. 겨우내내 가물고 이번 봄도 엄청나게 가문다. 가물면 온갖 식물이 타들어 간다. 말라 죽어 간다. 계속하여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비가 내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헐몬산의 이슬이 비와 같은 강수량을 유지해서 산과 들에 초목이 우거진다. 꽃이 피고 새와 벌과 나비가 넘쳐난다. 열매가 풍성해 진다. 헐몬산의 이슬의 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거대한 비느하스 폭포를 이루어 흐르기도 한다. 

 

2022년 5월, 예수 승천일과 성령 강림절을 가다리며 284년 전의 한 사람, 존 웨슬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던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 각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라는 제목의 183장 찬송 후렴을 부르자.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 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가물고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기도하자. 

 

 

권능을 받은 증인이 되라.

왜 성령 받기를 간절히 원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대답하시는 예수의 대답은 분명하였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7-8)

 

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 받기를 원해야 하는가.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기 때문이다. 요즘 아파트 단지에 보면 전기 자동차를 밤새도록 충전하는 장면을 본다. 밤새 전기를 충전하고 아침에 출근할 때에 가득히 충전된 전기 자동차를 몰고 출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이 그래야 한다. 성령의 임재를 계속하여 사모하여야 한다. 그래야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권능이 무엇인가. 영어 성경에 보면 ‘power’라고 했다. 성령이 임해야 힘이 생긴다. 이기서 말하는 권능 즉 힘이란 성령의 힘이다. 육체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힘이야 이만기 강호동을 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성령의 권능이란 육체의 힘과 같은 세계가 아니다. 그야말로 영의 세계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원하고 바라고 사모할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된다. 빨래를 세탁기 건조기로 말린 것과 햇볕에 말린 것은 그 뽀송 뽀송하기가 차원이 다르다. 햇빛과 햇볕은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생명력 있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야 한다. 악령을 몰아내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귀신의 영, 마귀의 영, 사탄의 영을  추방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임해야 성령으로 인한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령 받은 증거는 그 열매로 안다. 성령을 받아야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명동이나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예수 천당 불신 지옥”그렇게 원색적으로 복음을 전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이들의 그런 방법의 복음 전파 방법을 많은 사람들은 손가락 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그런 미련해 보이는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역사하신다. 

 

문제는 내가 전혀 복음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이다. 복음 전파의 방편은 다양할 수 있다. 우리가 다 사도 바울처럼 이 시대에 내 삶을 다 정리하고 오대양 육대주의 태평양 건너 지구 저편 나라로 선교하러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교회는 속회에서 드리는 헌금이 그런 목적으로 100% 후원되고 있다. 귀한일이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푼돈의 헌금을 드리지만 모아지고 쌓이면 저들 선교사들의 선교 현장에서는 매우 요긴한 선교 후원금이 되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 묵상한 시편 127편 말씀처럼 잘 자라난 자식이 장사의 화살통에 가득한 화살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가든지 보내든지

가든지 후원하든지 해야만 한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어제 오후에도 구파발 지하철 2번 출구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전도하였다. 요즘은 핸드폰을 들여다 보며 걷는 이들이 많아서 전도지를 건네려고 해도 관심도 없다. 눈길도 안 준다. 그래도 해야 한다. 하나의 씨앗이 좋은 땅 심령에 뿌려지면 존 웨슬리 같은 역사적인 인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존 웨슬리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는 세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들을 훌륭한 믿음으로 양육하였다. 그 중에 15번째로 태어난 아들 존 웨슬리가 역사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다 신학교 가고 다 목사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각계 각 분야에서 성령 충만 받고 권능을 받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가정, 학교, 직장, 사업장, 생업의 현장에서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복음 전파의 통로가 되고 예수 부활 복음 전파의 능력자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므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를 축원한다. 각양 은사를 따라 가정과 세상과 교회 안팎에서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혀지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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