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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마5:9) 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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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4-05 14:50 조회 189 댓글 0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마5:9)           2022. 4. 3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집안에 거는 액자의 글 중에 가장 많은 내용일 것이다.“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 때때로 불이 나는 것을 방비하고 밤마다 도둑이 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時時防火發, 夜夜備賊來.) 이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치가(治家)편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이다. 

 

신앙을 떠나서라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화평하게 하는 자란 단순히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있다든지 혹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정도의 차원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화평하게 하는 자”란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를 일컫는 것이다. 영어 성경에도 보면 ‘peacemaker’라고 되어 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 평화를 조성해 나가는 사람, 화평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개인과 이웃 사이의 구체적인 평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평화의 회복을 교훈하는 것이다.

 

요즘 에덴동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타락하기 이전의 에덴동산은 평화의 동산이었다. 하나님이 거니시는 화평한 동산, 평온한 동산이었다. Will L. Thompson (1847-1909)이 작사하고 작곡한 성가곡<주님의 동산/The Lord’s Garden>에 보면, 

 

“아름다운 주 동산

우리 다 함께 가보세

슬픔과 고통 없는

영원한 기쁨 있는 곳

오 평화의 왕 주님 계시고 사망이 없는

아 저 아름다운 주 동산 (주 동산 주 동산)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음악

천군 천사 화답함이라

 

아름다운 주 동산

우리 다 함께 가보세

슬픔과 고통 없는

영원한 기쁨 있는 곳

아름다운 주의 동산 (아름다운 주의 동산)

아름다운 주의 동산 (아름다운 주의 동산)

아름다운 주의 동산 (아름다운 주의 동산)

주님이 계신 동산이라 (주님 동산이라)”

 

라고 찬양하고 있다. 그렇다. 에덴동산은 평화의 왕 주님이 계신 동산이었다. 그런데 그 아름답고 온전한 평화가 깨어지고 말았다. 화평이 금가고 말았다.

 

에덴 동산의 뱀은 사탄의 상징이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아담이 930년을 살았으니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도 아담은 아내 하와와 두고두고 오래오래 서로를 탓하며 다투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불행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화평이 깨지고 평화가 사라진다. 사탄이 개인의 마음에 스며들면 가롯 유다처럼 역사적으로 불행한 길을 걷고 만다. 

 

예수는 이 땅에 화평하게 하는 자로 오셨다. 예수는 이 땅에 화평하게 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 각 사람이 개인이든 가족들 간에든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화평’이 아닌가. 히브리어로‘샬롬’(שלום),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이다. 이는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평화를 의미한다. 예수는 이 땅에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사이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시는 분으로 오셨다. 화평하게 하는 자로 오셨다. 영원한 화평을 만드는 분으로 오셨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세워 가기 위해 오셨다. 죄와 사망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 주기 위해 오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다. 죄 사함을 받는다. 거듭난다. 구원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는 화평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화평하게 사는 자’로서 최고의 삶을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유엔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했느냐. 유엔사무총장을 지냈느냐. 국가 간에 화평을 위해서 헌신했느냐. 국제간의 갈등 해결과 전쟁 종식을 위해서 수고했느냐. 이 세상에 살인, 강간, 도적질 정도가 사라지는 평화의 땅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정도를 가지고 ‘화평하게 하는 자’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수고도 수고이고 그런 노력도 대단한 것이다. 매우 가치가 높은 일이다. 과거에 주전 1세기 말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서 200여년간‘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외치던 로마 시대의 번영과 영광이 어디로 갔는가. 그렇다. 세상의 통치술로는 영원한 평화, 영원한 화평이란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화평하게 하는 자’란 인간관계의 화평, 국제간의 화평, 민족 간의 화평 그런 정도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심오한 차원의 화평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다.‘평안, 평강, 평화, 화평’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레네’(εἰρήνη)는‘결합하다’라는 뜻의‘에이로’(eiro)에서 파생된 단어다. ‘평화, 번영, 하나됨, 고요, 안식, 다시 하나가 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은‘완전, 건강, 행복, 번영, 고요, 안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완전하다, 건전하다, 완성하다, 마치다, 회복하다, 보답하다’라는 뜻의 솨람(םלש)을 기본 어근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이란 단순히 서로가 평화로운 관계(relationship)나 평화를 유지하려는 태도(attitude)를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평안 그 자체인 완성된 의미에서의 상태(state)를 뜻한다. 즉 하나님께 결합되어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예언된 한 아기는 평강의 왕, 샬롬( שלום)의 왕으로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평안 그 자체인 나,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끼친다, 너희에게 준다” 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끼치다’ 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피에미(ἀφίημι)는‘쫓아내다, 용서하다, 성취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인류 구원의 완성(테레오 / τελέω)을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으로 쫓아내듯 보내신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청산하시고 인간을 죄로부터 용서하신 그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완성이란 테레오 (τελέω)는 ‘끝마치다, 완전히 하다, 빚을 청산하다’라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선언하신 ‘ 다 이루었다.’라는‘테테레스타이’이 이러한 뜻이다. 완전히 성취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화평을 이룩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이 아니고는 내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평화를 누릴 수는 없다.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그 평안이 나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고 영접될 때에라야만 성도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화평이란 인간의 노력과 수고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이 사사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칠년째 미디안의 지배를 받았다. 미디안의 군대는 온갖 곡물과 과일을 수탈하고 심지어는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않고 빼앗아 갔다. 절망 중에 두려움에 갇혀 지내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숨소리를 죽여 가며 숨어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기드온을 하나님이 불러내셨다. 어느 날 기드온을 찾아 온 천사가 말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그 때에 기드온은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 조상들의 때에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날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신 것입니까.”하며 항의 하듯이 말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친히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거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그 때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기드온이 다시 대답하였다.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여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기드온은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였다. 기드온은 급하게 가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준비하였다. 고운 가루로 무교병도 만들었다. 삶은 고기는 소쿠리에 담았다. 국은 양푼에 담았다. 그리고 상수리나무 아래로 나아갔다. 그 때에 천사가 말했다.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아라. 국을 그 위에 부어라.”기드온은 천사의 지시대로 하였다. 그 때에 천사가 손에 잡고 있던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는 순간에 불이 바위에서 나왔다. 고기와 무교병을 불살랐다. 그 순간 천사는 떠나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기드온은 그 곳에 다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 곳을 ‘여호와 샬롬’(삿6:24)이라고 이름하였다. 그곳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오늘날까지 있다고 하였다. ‘여호와 샬롬’이란 ‘여호와는 평강이시라’는 뜻이다. 그렇다. 이 땅의 평화, 평강, 화평, 화목, 안녕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평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맞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평강의 아버지이시다. 화평의 왕이시다. 다윗은 평화를 구하는 왕, 화평을 간구하는 왕이었다. 그의 시편 중에 하나인 시편 122편 6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이 땅에 영원한 평화란 없다. 지금의 평화가 언제 금이 가고 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국도 없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제간의 협약을 언제 헌신짝 버리듯 할지 모른다. 러시아가 주변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들어갔다. 전쟁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평화를 깨어지고 말았다. 구라파와 미국과 세계열강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평화, 화평은 궁극적으로는 종말론적으로라야만 성취될 것이다. 스가랴서 9장 9절의 예언이 바로 그것이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다음 주일이 종려 주일이다.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시고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 그대로 예루살렘에 호산나 찬미 소리 가운데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다. 

 

누가복음 1장 78-79절에 보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예언 찬송이 나온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다. 맞다. 세례 요한도 이 평강을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평강을 위하여 보냄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실 때에 홀연히 수 많은 천군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 찬송의 가사가 무엇인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까이 가시던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 보며 우셨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2)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우리 눈에 숨겨진 이 평화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남은 사순절 새벽 순례 가운데 그런 평화, 그런 화평이 선물로 각 사람의 마음 속에 가득하길 축원한다. 이런 평화의 세계를 선포하는 요한 계시록 19장 1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평하게 하는 자”란 단순히 주변 사람과 사이좋게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인생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그런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아들’이란 상속자의 영광을 계승할 신분을 일컫는 말이다. 상속자의 영광이 무엇인가. 우린 대개 상속자 그러면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누구의 외아들의 상속자의 영광 그런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거부의 외아들의 상속자로서의 영광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상속자의 영광이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의 아들딸로서 누리는 그런 정도의 상속자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한 상속자의 영광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쓴 잔으로 비유하신 그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다. 좌편 강도의 조롱까지도 다 받아 들이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여섯 시간의 고통을 감당하신 후에 운명하셨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묘실에 장사 지낸바 되셨다. 부활의 영광, 승천의 영광,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상속자의 영광이 아니라면 우리는 죽은 종교를 따르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우리 믿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화평하게 하는 자”로 오셔서 “화평하게 하는 자”로서의 생을 사셨다. 그리고 죽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무덤에서 불러 내셨다. 이것이 부활의 영광, 상속자의 영광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새번역 성경>으로 마태복음 5장 9절을 읽으면 이렇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이런 평화, 이런 화평, 이런 평강, 이런 화목, 이런 화해, 이런 은혜의 역사를 누리며 증거하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아버지의 상속자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며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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