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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요1:9-18) 20211225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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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7 18:43 조회 417 댓글 0
 

                         예수님은 누구신가(요1:9-18)           2021. 12. 25

 

 

예수의 이름은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에게 보내셨다. 마리아의 태에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될 것을 말씀하셨다. 두려움과 무서움에 휩싸인 마리아는 당황스러워 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재차 하나님이 마리아를 통해서 하실 일을 소상하게 말씀해 주셨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그런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눅1:31-32)

 

누가복음 1장 33절에 보면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라고 하였다. 맞다. 예수는,

 

큰 자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시다.

그는 영원히 이 세상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의 이름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즉 구세주란 뜻이다. ‘자기 백성’이란 의미를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라면 ‘ 자기 백성’ 즉 ‘하나님이 자녀’가 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법이다. 

 

구원이란 것은 구체적인 것이다.

2018년 5월 10일 새벽 2시 40분경 미국 군용기 한 대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가까운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하였다. 그 시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저들을 마중나갔다. "세 명의 위대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밤...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도착한 한국께 김동철 씨 "꿈만 같다. 정말 정말 행복하다. 하나님과 미국 정부,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장관, 미국민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저들은 북한에 장기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부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은 이들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새벽 3시가 가까운 그 시간데 직접 공군기지에 마중을 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방된 미국인들을 태운 군용기로 직접 올라가 이들을 데리고 나온 뒤 기자들에게 "이 시간은 이 세 명의 위대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밤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침례교 목사를 비롯한 한국계 미국인인 이들 세 사람은 "하나님과 우리의 귀환을 위해 기도한 우리 가족 모두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라고 31개월 만에 풀려나 가족의 품에 안긴 심정을 밝혔다. 

 

구원이란 그런 것이다.

굶주리는 이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한 그릇의 밥이 구원이다.

입을 옷 한 벌이 없는 이들은 한 벌 옷이 구원이다. 

몸이 병든 이들은 건강이 구원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은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 구원이다. 

슬픔과 두려움에 갇혀 지내는 이들은 기쁨과 평안이 구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이룩하시길 원하신 구원은 그런 정도의 구원이 아니다. 영혼육의 온전한 구원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각색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귀신을 내어 쫓고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셨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 주셨다.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늘 천국 비유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또  가르치시셨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교훈하고 또 교훈하셨다. 

 

자 그러면 과연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나.

 

예수는 구원의 참 빛이시다.

맞다. 그냥 빛이 아니시다. 참 빛이시다. 빛이란 것이 촛불도 빛이고, 호롱불도 빛이다. 문명의 발달은 빛의 연구와 그 개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빛의 사용이 가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얼마나 강하고 밝은 빛을 개발하여 사용하는가. 우리가 어려서는 겨울에 호롱불 앞에서 벽에다가 손으로 토끼 모양, 코끼리 모양, 나비 모양 등을 만들며 놀았다. 

 

예수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다”문제는 이미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참 빛이신 예수를 세상 사람들이 모른다는 점이다. 10절에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그러면 빛으로 오신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하였다. 

 

많은 비가 내려도 그릇을 엎어 놓으면 그릇 속에 빗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빛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빛을 벽으로 쌓고 거부하면 아무리 강한 빛이라도 나와는 상관이 없게 된다. 영접한다는 것은 빛을 받아 들이는 행위다.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라는 그 이름의 권세를 믿는 행위이다. 그리할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휴전선을 넘어서 귀순하는 이들을 본다. 수만 리 길을 도망치듯해서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는 탈북민들을 본다. 지성호 국회의원은 함경북도 회령에서 기차에서 석탄 덩이를 훔쳐다 팔아서 강냉이를 몇 박아지라도 마련해서 먹고 살던 앵벌이였다. 달리는 기차에서 추위에 떨며 졸다가 떨어졌고 달려드는 기차에 한쪽 팔다리를 잃었다. 그런 심각한 장애를 입은 몸으로 목숨을 건졌다. 나중에 중국을 거쳐서 미얀마 태국을 거쳐 수 만리 길을 걷고 걸어서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1982년 생인 그는 지금 비례 대표 국회의원이다. 남한에 와서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형사법을 전공하였다.

 

앵벌이로 한끼의 먹을 거리를 구하던 악몽과 같은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그의 모습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천국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에 구체적으로 삶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창조되었다. 사람의 말에도 권세가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는 인간의 말의 힘과 비교할 수 없는 창조의 근본이시다. 하나님은 살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신다. 예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자 죽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못 걷던 사람이 걸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못 듣던 사람이 듣고 못 말하던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못 보던 사람이 보게 되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서 2000마리의 돼지떼에게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나사로가 살아나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이 살아나고, 나인성 과부의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다. 예수의 말씀에는 이처럼 고치는 권세, 회복하는 권세, 살리는 권세, 심지어는 죽이는 권세도 있으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203장 <하나님의 말씀은>이라는 찬송가를 보라. 그 가사를 쓴 조창희 목사는 신학교 때 출석하던 대전목동교회 장로님의 아들이다. 형제가 다 감리교 목사이다. 그는 동화 동요 작가이기도 했다. 그 가사를 보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라”고 찬송하고 있다 그렇다.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광야 같은 세상에 길 잃고 방황할 때 절망 중에 빠진 이몸을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생명샘이 솟아 나와 새힘이 넘치게 하신다. 은혜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든지 믿고 참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가이 없는 큰 은혜로 늘 품어 주신다.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지키어 나가는 자에게 자유를 얻게 하신다. 어려운 일 힘든 일도 담대히 이겨 내게 하신다. 온전하신 말씀으로 승리하게 하신다. 사랑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돌보아 주시고 변함 없는 사랑으로 우리 각 사람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신다.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그 자체이시다. 예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다. 예수는 세례 요한 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를 제대로 믿고 따르면 날마다 은혜 위에 은혜가 가득한 은혜 생활을 하게 된다. 율법은 모세로 인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의 충만 그 자체이시다. 

 

 

예수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 따로 예수 따로가 아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분을 우리는 예수라 한다. 

 

어린 아이의 아빠는 직장에 출근하였다. 그러나 그 어린이의 엄마는 집에 있다. 엄마의 남편은 직장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빠는 사랑스런 어린 아들의 마음 속에도 있다. 사랑스러운 아내의 마음에도 동시에 있다. 아빠도 한 사람, 남편도 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빠 혹은 남편이란 존재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잠시 안 보이기도 하고 저녁 시간이 되면 아들 눈에도 보이고 아내 눈에도 보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이 되면 다시 남편은 안 보이기도 한다. 아빠가 안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빠 그 남편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창조 이전에 계시던 말씀이신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즉 독생자(ONLY BEGOTTEN SON, the one and only Son)의 몸을 입고 보냄을 받은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탄절은 요한복음 1장 18절의 말씀대로 그 분 ‘독생하신 하나님’의 탄생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새번역>성경에서 보면 이렇다.“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예수는 늘 하나님 안에 계셨다. 그래서 예수는 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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