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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의미(마26:26-29)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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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0-04 22:06 조회 4,504 댓글 0
 

성찬의 의미(마26:26-29)         2021. 10. 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작품의 장면이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이다. <주의 만찬>이라고도 한다. 왜 최후의 만찬인가. 왜 마지막 만찬인가.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맞이한 유월절이기 때문이다. 17절에 보면 ‘무교절의 첫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기록한 요한복음 13장 1절에 보면 ‘유월절 전에’라는 내용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긴 설명을 나눌 시간이 없지만 사 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당일이 아니라 유월절 전날에 이루어졌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예수의 수난 주간에 성찬을 행하는 성 목요일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끝으로 밤새 기도하시고 안식일 전날 새벽에 붙잡혀 아침 9시경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날 오후 3시 경에 운명하셨다. 그리고 3 시간 쯤 후에 안식일이 시작되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그 하루 전날에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예비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신 것이다. 유월절 준비 음식이지만 떡도 있고 포도주도 있었으나 양의 고기는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 자신이 유월절 희생양이신 것을 상징적으로 교훈하시기 위해서였다. 유월절 전날 밤 제자들과 작별하는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다음 날 다가올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유언처럼 교훈해 주신 것이다. 


유월절이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날을 말한다. 유월(踰越)이란 ‘뛰어 넘었다’(pass over)는 뜻이다. 출애굽기 12장에 기록된 사건이다. 그 역사적인 날 밤에 하나님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다. 양과 염소 중에서 흠 없는 일년 된 수컷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게 하셨다.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누룩 교자를 사용해서 무교절(無酵節)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예수의 탄생의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 이상으로 예수의 죽음의 날을 기억한다.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십자가 죽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다하는 순간이었다. 즉 예수는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오셨다.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게 하시면서 하신 말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라는 그 말씀 안에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각색 병자를 고치셨다. 귀신 들린 수 많은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셨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리셨다. 배고파하는 광야의 무리에게 배 불리 먹이셨다. 시시때때로 제자들과 무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선포하고 가르치셨다. 예수는 그를 만나기 원하는 모든 사람의 완전한 해답이셨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 귀신이 떠나갔다.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매진하셨다. 신학교에 들어가니까 <사복음서 연구>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 첫 시간에 찾아 읽은 성경 구절이 마태복음 4장 23절이었다. 1977년의 봄이니까 44년 전의 일이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라는 말씀이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니”(teaching, preaching, healing)라는 강조였다. 


맞다, 예수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이 세 가지 사역에 그의 전 생애를 바치셨다. 예수의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가 때가 찼다. 석류가 잘 익어 때가 되면 그 붉은 속을 피를 흘리듯 드러낸다. 이처럼 예수가 누구신지를 숨김이 없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순간의 날이 다가왔다. 마태복음 26장은 마태복음 전체 28장 분량 중에 가장 길다. 무려 75절이다. 그 내용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향한 마지막 순간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중의 일부를 읽은 본문이 오늘 성찬 전에 묵상할 내용이다. 



마지막 유월절 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교절 예비일의 밤을 맞아 음식을 잡수시던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밤이 사실은 유월절 예비일이다. 


사복음서를 대조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의 본문도 마찬가지다. 17절에 ‘무교절 첫날에’라고 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어디서 준비해야 할지를 여쭈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유월절 이틀 전부터 분주하게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집안에서 누룩의 흔적이 없도록 청소하였다.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다. 누룩을 치우는 것은 죄를 청소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예수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은 외롭고 고독하였다. 18절에 보면 “내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의 그런 모습을 묘사하듯이 20절에 보면 “저물 때에”라고 표현하였다. 유대인들은 해가 저무는 저녁 6시가 하루의 시작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의 묘사이기도 하지만 예수는 이 땅에서 맞이하는 그 마지막 유월절 에비일 밤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에게 처절하게 배반을 당하셨다. 가롯 유다는 이미 대 제사장들에게 예수를 은 삼십을 받고 팔아넘긴 후였다.(마26:15)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유월절 식사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21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11제자들은 몹시 근심하였다. 그리고 합창을 하듯이 예수께 여쭈었다. “나는 아니지요.” 그 때에 예수는 비장한 각오로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그리고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경고하셨다. 예수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롯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뻔뻔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에수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네가 말하였도다”


사실 예수는 옷 벗김 당하는 것이 부끄럽고 채찍에 맞는 것이 아프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셨다. 그러나 예수는 그 이전에 이미 제자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로부터 이 같은 배반의 아픔을 처절하게 겪으셔야만 했다. 우리는 쉽게 가롯 유다에 대하여 말하지만 예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반으로 대하는 가롯 유다의 모습 속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숨겨져 있다. 


이처럼 예수의 마지막 밤은 제자 중 하나로부터 배반을 당하시는 밤이었다.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시고 외롭게 홀로 남으시는 밤이셨다. 그 밤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따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려고 가셨다. 예수는 저만치에서 밤새도록 이마의 땀방울에 피가 배어 나오도록 기도하셨다. 그러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졸며 잠들고 말았다. 


예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처럼 처절하게 고독하고 외로운 홀로 남으셔야 하는 밤이셨다. 다 주를 버리고, 다 주를 떠나고, 다 주의 곁에서 도망가 버리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런 실망스런 제자들과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준비하는 음식을 같이 잡수시길 원하셨다. 그 밤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보내시는 마지막 밤이셨다. 



받아서 먹고 마시라.

제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부끄럽고, 너무 민망하고, 너무 부족하고, 너무나도 야속한 이들이었다. 그런 12제자들과 예수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계셨다. 그 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들고 축복기도를 하신 후에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그리고 잔에 담긴 포도주를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생각하여 보라. 유월절 밤마다 먹고 마시던 떡과 포도주인데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 몸이다. 이것이 내 피다”


무교절은 유월절을 시작으로 유대인의 첫 달인 닛산월 14일에 시작해서 7일간 계속된다. 유월절 음식이면 당연히 양이나 염소의 구운 고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유월절 예비일 식사자리에는 떡과 포도주 밖에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예수는 비장한 교훈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내 몸이다. 이것이 내 피다”“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것을 받아 마시라”고 하셨다. 여기에 심오한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맞다. 예수는 출애굽기 12장 이후로 대대로 지켜 오던 유월절 음식 중에 마땅히 준비되어야 하는 양이나 염소의 고기 대신에 자신의 죽으심을 그 밤에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날은 유월절 예비일이다. 하루가 지나면 예수는 유월절 양으로 붙잡혀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처형 당하실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교훈하신 식사자리가 <최후의 만찬>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는 예수의 마지막 밤이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밤이 있다. 그 마지막 밤을 끝으로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온다. 


시인 윤동주는 27살에 죽었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31살에 죽었다. 

윤봉길 의사는 24살에 죽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18살에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저들의 죽음의 가치를 영원히 기억한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칼에 목베임을 당하여 죽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어느 나라 혹은 어느 특정 민족만을 위한 죽음으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육신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내심을 받았다. 사명을 다하시기 위한 죽음을 향하여 유월절 양처럼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의 신비가 있다. 


이것은 설명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음의 신비, 구원의 신비, 영생의 신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택함 받는 권세의 신비이다. 



죄 사함을 위한 언약의 피.

예수는 이 땅에 죄사함을 위해서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시면서“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의 핵심 교훈은 28절에 다 담겨 있다. “죄 사함, 나의 피, 언약의 피”이 세 가지 표현 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그 사명의 전부가 담겨 있다. 


예수는 이 순간을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가 출애굽기나 레위기를 아는 대로 하나님은 짐승 제사를 통해서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이었다. 짐승 제사의 핵심은 피 흘림이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죄 사함이 무엇이며 언약의 피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설명한 곳은 히브리서 8장이다. 히브리서 8장 6절에 보면 예수를 “언약의 중보자시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히브리서 8장 8절 이하에 예레미야 31장 31절 이하의 새 언약에 관한 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이룩하신 죄 사함과 언약의 성취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교훈해 주고 있다. 


그렇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피 흘리심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죽으심이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보면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바탕이다. 전부이다. 


어느 날 왕궁 같은 거대한 성채에 사는 구라파의 대 부호인 귀족이 곁에 있던 바보에게 지팡이를 건네 주었다. “너 보다 더 한 바보를 만나면 이 지팡이를 건네 주어라”그 바보는 주인의 곁을 떠나 자기 보다 더 못난 바보를 찾아 다녔다. 몇 년 세월이 흐르는데 주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바보는 주인을 찾아 문병하게 되었다. “주인님. 얼마나 더 사실 것 같습니까”“나도 알 수 없다.”“주인님. 이 대 저택을 두고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가시면 언제 다시 돌아 오실 겁니까”“아냐 난 영영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 오지 못할 거야”“주인님.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나도 모른다.”“그러면 주인님. 이 지팡이를 주인님이 가지세요.”


누가 바보인가. 미련한 다섯 처녀가 바보이다. 풍년이 들었으나 창고만 늘려 짓고 몇 해 동안 배불리 먹을 것을 쌓아 두었으나 그 밤에 그의 영혼을 부르면 그의 소유가 누구의 것이 되는지 알지 못하는 자가 바보이다.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하였다. 


죄 사함과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되는 길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진 이는 참 지혜자이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예수의 살과 피의 교훈을 깨닫고 믿는 자는 참 행복자요 영원한 언약의 백성이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중에 그런 은혜와 감사와 찬양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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