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효도다운 효도(룻1:15-18) 20210509 어버이주일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6-19 14:20 조회 5,432 댓글 0
 

                        효도다운 효도(룻1:15-18)              2021. 5. 9 어버이주일



짐승도 자기 새끼는 사랑하는 법인데 낳은 자녀, 기르는 아들딸을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패역한 소식을 들을 때에 누구나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반대로 제 부모를 함부로 대하거나 나를 낳아주고 길러 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함부로 대하는 패륜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에 세상이 점점 악해져만 가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명령하신 첫 계명이다. 부모 공경이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연세 들어가시는 부모님 보살피고 병 간호해 드리고 맛있는 것 대접하고 아름다운 곳 모시고 여행할 수 있다. 보약 마련해 드리고 용돈 부족하지 않게 드리고 하는 것 다 좋다. 하지만 예수 모르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예수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도 중의 효도이다. 그러나 사실 평생 우상 숭배하고 무속인에게 묻고 굿하고 점치고 부적 부치고 사주 보며 지내던 부모가 “어머니 예수 믿으세요. 아버지 예수 믿으세요.”하고 한 두 마디 건넨다고 “그래 알았다”하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여러 해 전에, 일본 히브아 공원에서 밤중에 한 여성이 강도의 칼에 살해당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19살 나이에 강도의 칼에 찔려 죽은 그녀는 그 강도의 딸이었다. 강도로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긴긴 세월이 흐른 후에 세상에 나와서도 전혀 새로워지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딸은 결심하였다. 딸은 얼굴을 가리고 변장하고 아버지의 범행 현장에 나타나서 아버지의 칼에 살해당한 것이다. 아버지는 강도 짓을 한 후에 피해자의 가방을 열어 보니 그 속에서는 아버지께 보내는 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 이제는 새 사람이 되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사시다가 천국에서 만나세요. 아버지의 불효녀를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 믿어지지 않는 참담한 사건 후에 평생 강도짓을 일삼던 아버지가 변화되었다. 아버지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새 사람이 되어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프고 답답한 이야기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구원을 받고, 가족이 구원을 받고, 자식들이 구원을 받고, 내 주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예수께서는 나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은 것이다. 예수의 핏값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바쳐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 아니,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를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가정, 하나님 안에서 부모께 효도하고 공경하는 가정처럼 복된 가정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효도 중에 가장 복된 효도는 부모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 믿으시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녀 교육 중의 최고는 아들딸이 예수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참담한 불행 가운데 살아가던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었다. 사사 시대 말기에 유대 땅에 큰 흉년이 들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이란 이웃 나라로 이주하였다. 그러던 중에 모압 땅에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 나오미는 모압 여자들 중에서 며느리를 맞아들였다. 큰 아들 말론과 작은 아들 기룐이 차례대로 결혼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두 아들도 차례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어머니 나오미 곁에는 모압 며느리 둘만 남았다. 세월이 흐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셔서 유다 땅에도 풍년이 들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었다. 세 여인이 함께 유다 땅을 향하여 가던 길에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그러자 두 며느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시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높여 울었다. 얼마 후에 시어머니 나오미는 똑같은 말을 다시 하였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그러자 두 며느리 중에 한 며느리인 오르바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친정으로 가 버렸다. 그러니까 사람이 우는 것만 보고 서로의 의지나 결심을 판단하거나 너무 z게 기대하면 안 된다. 소리 높여 운다고 큰 변화를 기대해서도 섣부른 판단이 되고 말 수 있다. 


시어머니는 홀로 그의 곁을 지켜 주는 며느리 룻에게 “너도 네 동서를 따라서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그 때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대답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 담겨 있다.


동행(同行)

사람은 말이 곧 그 사람이다. 사람이 진실하면 말이 진실하다. 사람이 거짓되면 매사에 말이 거짓되다. 우리 조상들은 “입은 삐뚤어 져도 말은 바르게 하라고 했다.”는 속담을 사용해 왔다. 무슨 말인가. 말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이다. 동서 오르바가 친정으로 돌아가 버린 후에 착잡해 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조근 조근 말하는 며느리 룻의 대화 내용을 보면 마치도 이 대답 속에 룻의 미래가 담겨 있는 것만도 같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룻1:16)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7)


“홀로 늙고 불쌍하고 외롭게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시는 곳에 같이하고 머무시는 곳에 같이 머물고 설령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어머니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같이 장사될 것입니다. 어머니와 나의 사이를 죽음이 갈라 놓기 전까지는 절대로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난다면 여호와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리신다고 해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이 내용을 접하다 보면 마치도 결혼 서약문을 읽는 것 같다. “나 아무개는 그대 아무개를 배우자로 맞아 앞으로 평생토록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그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그대를 지키고 사랑하며 죽음이 다하는 그 날까지 사랑할 것을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다.”이런 내용말이다.


남편 잃고 두 아들 다 잃고 삶의 희망이 끊겨 버린 슬픔과 비통함과 비애에 빠져 있는 연세 들어가는 유다의 시어머니 나오미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말 다르고 문화가 다른 모압의 며느리 룻이었다. 그 모압 며느리 룻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감격하게 하고 있다. 


“어디를 가든, 어디서 머물든, 어떤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든지 저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동안도 가난했지만 앞으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남편의 고향 나라, 고향 마을 베들레헴에 가서 뭘 먹고 살수 있을지 앞날이 깜깜한 먼 길을 떠나며 모압의 며느리 룻은 너무나 분명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어머니 염려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라고 함께 갈께요.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이면 그 어디라도 함께 곁에서 머물께요. 죽는 순간이 찾아 오더라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을께요.”


여기 “머무시는 곳”이란 히브리 표현은 ‘룬’이란 단어를 썼다. 이 단어의 뜻은 “불편한 상태로 밤을 지새우다”라는 뜻이다. 우리 중에 연세 드신 어른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6. 25 전쟁을 겪은 분들이 계시다. 피난을 경험한 세대들이다. 언제 죽음의 순간이 찾아 올지 모르는 불안한 날들을 지내며 1. 4 후퇴를 경험한 세대들이시다. 


우리나라에 6. 25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접한 화가 피카소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한국에서의 학살>이 70년 만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시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되는 중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공개된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은 군인보다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더 큰 불행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의 며느리 룻이 겪은 사사 시대 말기의 시대 상이 그러하였다. 마치도 전쟁터와 같았다. 흉년과 가난과 굶주림과 사별의 슬픔과 고독과 버려진 듯한 처절한 외로움 가운데 어느 누구도 평안한 내일을 장담 할 수 없는 막막하고 불안한 현실 앞에서 곁에 남아 있는 모압 며느리 룻의 이 말은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요 희망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곁에 마음을 같이 해 주는 길벗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가족이란 것이 그런 것 아닌가.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죽음으로 잃은 불쌍한 노파이다. 모압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만 남은 가정에 출가해 와서 남편의 두 형제를 다 잃은 가정의 젊은 나이에 홀로 남은 비운의 여인이다. 


그런데 룻의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대답하는 대답이 너무나도 단호하고 분명하였다. 


“어머니의 가시는 곳...

어머니의 머무시는 곳...

어머니의 죽으시는 곳...

그 어디든지 어머니의 곁에 제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젊어 홀로 된 룻, 나중에 베들레헴의 대 지주 보아스의 아내가 된 룻, 오벳을 낳은 어머니 룻,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낳은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의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된다. 그 누군가와 운명을 같이 하며 함께 걷는 동행의 그 자리에 마른 나무 가지에 꽃이 피고 싹이 돋고 열매가 맺어 풍성해 지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뿌리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라는 말은 자신의 민족의 뿌리를 새롭게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사람이 살면서 국적을 바꾸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자기가 태어나 성장한 나라의 국적을 버리고 새 나라의 국적을 선택하는 경우는 어쩌다 있다. 물론 오늘 날에도 세계 그 많은 나라의 국민들 중에는 미국의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수고를 다 하는 이들이 있다. 더군다나 난민들 중에는 미국의 시민으로 입국 허락을 받기를 학수고대한다. 


신명기 23장 3-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 성이 유황불 심판을 받기 전에 천사를 통해서 소식을 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소돔 성을 빠져나와 소알 땅으로 피신하였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 롯을 술에 취하게 한 후에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다. 큰 딸이 아버지와 동침해서 낳은 아들의 이름이 모압이다. 둘째 딸이 술 취하게 한 아버지를 통해 낳은 아들의 이름이 암몬이다. 성경이 말하는 모압 족속은 그렇게 시작된 모압의 후손들이다. 암몬 족속도 마찬가지이다. 저들 두 족속은 모세 때에 광야 길을 가던 히브리 백성의 가는 길을 막아 섰던 이들이다. 거짓 선지자 발람을 앞장 세워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가는 길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던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신명기 23장 3절의 내용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압 땅에 피신해서 흉년을 피해 살아가던 이스라엘 가정의 무너져 버리고 풍전등화처럼 이방 땅 모압에 남아 있는 늙어 가던 유다 노파 나오미의 곁에 모압 며느리 룻을 통해서 이렇게 간청하게 하셨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이 고백은 룻의 고백으로 끝날 고백이 아니었다. 생각하여 보라. 남편 죽은 룻, 홀로 남은 룻, 늙어 가는 유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나선들 자신의 장래 운명에 파란 불이 켜질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룻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그런데 하나님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국적인 유다 민족의 뿌리에 접목하여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간청하는 룻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모압 족속의 딸 룻이 어떻게 선민 이스라엘의 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모압 족속은 “이스라엘의 총회”에 받아 들이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금기를 깨고 룻은 다윗의 조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의 조상이 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가. 기도하며 사는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의 편에 서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실감하게 하는 고백이 이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지난 화요일, 그리고 어제 토요일에 저희 교회에서는 두 차례의 예배가 있었다. 화요일에 은평지방의 목회자 50여명이 다녀갔다. 어제 토요일에는 지방과 서울 연회의 장로님 30여명의 임원들과 회장단이 헌신 예배를 드렸다. 두 예배에 모두 피아노 반주를 했던 조현숙 권사는 우리 교회에서 일 주일 동안에 무슨 예배가 드려지고 무슨 설교 말씀이 선포되는지 모두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이것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가는 과정들이다. 


남편 죽고 두 아들 죽은 가정의 홀로 남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운명을 같이 하려던 모압 며느리 룻의 고백 속에서 역사의 인물 다윗이 자라나고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그림 그려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족과 함께, 공동체와 함께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믿음의 사람다운 걸음 걸음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굳굳하게 옮겨가는 동행의 은총과 뿌리의 신앙이 이어져 가질 축원한다.


신앙(信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것이 모압 머느리 룻의 고백의 절정이다. 여기서 시작해서 하나님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한 움쿰의 보리 이삭, 밀 이삭을 주워다고 베들레헴 마을 한 귀퉁이 움막 집에 살면서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매끼니마다 떡 한 덩이씩을 구워 대접하며 살던 모압 며느리 룻으로 하여금 베들레헴의 대 지주 노총각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 하셨다.


베들레헴에 들어가 생활하는 시어머니 나오미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제는 나의 이름을 나오미라 하지 말라 나의 이름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요청하였다. ‘나오미’라는 뜻은 ‘감미롭다’는 뜻이고 ‘마라’라는 뜻은 ‘괴롭다. 쓰다’는 뜻이다. 그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살던 나오미의 운명이 쓴물처럼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오미는 자기의 이름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오미의 그런 탄식이 변해서 다시 나오미가 되게 하셨다. 절망과 흑암의 땅에 주저 앉아야만 했던 모압 며느리 룻의 운명을 마라의 운명에서 나오미의 운명으로 바꾸셨다.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보리 이삭, 밀 이삭을 줍던 추수하던 밭의 낯선 모압의 젊은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베들레헴의 대 지주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세월이 흘러 오벳이란 아들이 태어났다. 룻을 따라 보아스의 가정에 들어가서 지내게 된 시어머니 나오미는 태어난 아기 오벳을 무릎에서 내려 놓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나오미가 오벳을 낳았다고 할 정도였다.


불쌍하고 불행하던 시어머니 나오미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로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라고 신앙을 고백하던 모압 며느리 룻으로 하여금 베들레헴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멋진 집의 안방 마님이 되게 하셨다. 


베들레헴 마을의 여인들은 합창을 하듯이 노래하였다.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있게 하셨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한다.

이 아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 룻이 낳은 자로다”


베들레헴의 여인들은 노래하였다. “나오미가 오벳을 낳았도다” 이것은 계대 결혼 풍습을 빗대어 지어 부른 노래 가사이다. 룻이 남편 보아스를 통하여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오벳이다. 오벳이란 ‘아바드’라는 말은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뜻이다. 


오벳의 가정에 손자 다윗이 태어났다. 하나님은 실로 룻의 남편인 보아스와 오벳의 혈통을 통해서 유다 민족을 섬길 다윗 왕이 태어나게 하셨다. 다윗의 혈통의 후손을 통해서 열방 백성을 섬기고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셨다. 효도다운 효도가 무엇인가.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고”


라는 하나님 신앙,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뿌리 위에서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믿음의 가정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칼럼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다윗의 신앙(시22:..최고관리자
"주님 밖에 없습니다..최고관리자
"나를 통하여"최고관리자
"다윗의 신앙"최고관리자
"내 주 하나님 넓고..최고관리자
"그의 생각"최고관리자
그의 생각(요일3:1..최고관리자
"주님 먼저 가세요"최고관리자
"주는 피난처"최고관리자
"천 번을 불러도"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