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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할 일(살전2:1-8)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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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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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25 20:32 조회 5,899 댓글 0
 
                           마땅히 할 일(살전2:1-8)             2020. 10. 25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 주일

물론 어느 시대에나 역사의 주관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역사를 이룩해 가신다. 노아 시대에는 노아를 택하여 쓰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는 수 많은 족장들이 있었지만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이 그런 주인공들이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형 에서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동생 야곱이었다. 하나님의 역사에 주인공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모세의 시대에는 모세를, 여호수아 시대에는 여호수아를 택하여 쓰셨다. 다윗 시대에는 다윗을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예수의 12제자들을 보라. 그 당시에 예루살렘의 성전 중심으로 생활하던 얼마나 많은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산헤드린 의원, 사두개인 등이 있었나. 저들 나름대로 지도자 역할하고 지도자 행세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그러나 예수께서는 12명의 제자들 중에서 7명을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 중에서 택하셨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러하고 야고보와 요한이 그러하다. 저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었으나 예수께서 선택하셔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셨다. 

교회를 잔멸하려 하고 예수 믿는 이들을 극렬하게 박해하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변화 받고 사도 바울이 된 것은 놀라운 주의 은혜요 섭리요 부르심이 아닐 수 없다. 

503년 전인 1517년에 독일의 젊은 수사였던 34살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등장은 역사적인 일이었다. 1517년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해였다. 후대는 그것을 마틴루터의 종교 개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틴 루터 한 사람이 이룩한 일이 아니라 배후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 것이다. 마틴 루터는 그가 속해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교 성당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개혁을 위한 반박문을 내다 붙였다. 그것이 오늘 날 개신교를 탄생시키는 발화점이 되었다. 그는 반박문에서 그 당시 가톨릭 교회의 교리적 오류와 교황의 비성경적인 결정들과 성경에서 벗어난 불의함에 대하여 조목 조목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는 1505년 7월 2일, 22살 때에 부모님을 방문하고 학교로 돌아 가던 길에 천둥 번개를 만나면서 공포에 휩싸였다.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는 함께 길을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아 현장에서 숨을 거두는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였다고도 한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죽음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보름 뒤인 1505년 7월 17일에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들어가 신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마틴 루터는 명석하고 은혜를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기대는 그가 법률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요에 못 이겨 법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심각하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그를 주변의 친구들은 ‘철학자’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신부가 되고, 성경학자요 언어학자요 종교 개혁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29살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성서학자의 길을 걸었다.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4년 후인 1521년 1월 3일, 교황의 교서에 의해서 사제직에서 파면되었다. 처형 당해 죽을 위기 가운데서 제후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제나흐의 바르트 부르크 성에 은거하게 되었다. 아이제나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산꼭대기의 바르트 부트크 성에 갇혀 지내는 동안에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대 역사를 이루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일이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는 오늘처럼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기념하는 주일을 맞을 때마다 그의 복음에 기초한 신앙 정신을 다시 되 짚어 보고는 한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이  다섯 가지는 그 당시에 마틴 루터로 하여금 역사적인 종교 개혁의 대 역사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게 한 다섯 기둥과 같은 것이었다. 

이 다섯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복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복음이다. 복음에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 은혜이다. 은혜의 바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복음을 알고 믿고 따르고 선포하고 증거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누구나 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 데살로니가서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말하지 않고 7절에서“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라고 말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1장 1절을 보아야 답이 나온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실루아노 즉 실라와 디모데와 더불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들은 가는곳마다 기사와 이적과 별의 별 표적들이 수 없이 많이 일어났다. 당시에 저들 사도의 권위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그러나 도리어 유순한 유모가 어린 자녀를 기르는 심정으로 주변의 성도들을 대하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마땅히 할 일”이라고 정한 것이다. 오늘 날 우리 각 사람도 주님께로부터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사도성을 갖고 사는 성도라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할 일이 무엇일가. 


하나님을 힘 입은 복음 전파.
사도 바울은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 중에 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이 없다고 할 정도의 위대한 복음 전파자였다. 그런 그가 2절에서 자신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 하나님을 힘 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그 앞에 보면 빌립보라는 지명이 나온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빌립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려다가 큰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다. 우리가 아는 사도행전 16장의 내용이다. 그 때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 복음을 전한 이유로 붙잡혀 매맞고 감옥에 갇힌 적이 있다. 귀신 들려 점치는 여자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았다. 그 주인이 바울과 실라는 고관들에게 고발했다. 붙잡힌 바울과 실라는 매 맞고 감옥에 갇혔다. 그 밤에 기도하며 찬송하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렸다. 간수장이 자결하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들이 도망하지 않고 감옥 안에 그대로 있으니 죽지 말라고 하였다. 간수장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겠냐고 물었다. 그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다음 날 상관들은 부하를 보내서 바울과 실라는 석방하라고 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의 시민인데 죄가 있는지 없는지 확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더니 이제는 가만히 나가라 하느냐고 항의하였다. 이 말을 들은 부하가 상관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하였다. 상관은 그제서야 두려운 마음을 갖고 직접 감옥에 찾아 와서 바울과 실라는 옥 밖으로 모시고 나갔다. 그리고는 제발 빌립보 성을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때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머물더 루디아의 집에 둘러서 복음으로 만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도행전 17장에 데살로니가 지역 전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언급하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라는 말씀은 그런 자신들의 고난 체험을 말씀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바울 자신이 말씀하는대로 그 어려운 고난과 능욕을 저들은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며 감당하며 선교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우리 하나님을 힘 입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세 상 사람들은 세상의 힘으로 버티고 살아간다. 그게 건강이든, 재력이든, 권력이든, 뒤를 봐주는 어떤 인간 관계이든 힘이 되겠다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힘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대 기업의 총수라도 그러하고 국가의 정상을 지낸 누구라도 그러하다. 수 천만명 아니 수 억명의 팔로워들이 그를 주목하는 인기 배우나 가수나 스포츠 스타라도 힘의 한계를 느끼면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과 달라야 한다. 그것이 복음의 가치를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다. 그렇지 않나.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을 힘 입는 믿음이었다. 하나님을 힘 입으니 사자 굴도 두렵지 않았다.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군 풀무 불 속에 던져 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동족과 함께 금식을 선포하고 금식에 앞장서던 에스더의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을 힘 입는 믿음이었다. 

이것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임 당한 베드로 사도의 믿음도 그랬고, 복음 전하다가 목 베임을 당하여 죽음의 순간을 맞은 사도 바울의 믿음도 그러하였다. 그렇지 않나.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힘 입는 생활이 아닌가. 우리가 요즘 주일마다 예배 마지막에 부르는 찬양의 가사가 무엇인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나의 힘의 근원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의 전부여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의 비결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분이셔야 한다. 당뇨로 고생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힘이 쪽 빠질 때에는 사탕 한 개만 얼른 입에 물어도 새 힘이 생긴다고 했다. 급할 때는 사탕 한 개만 입어 넣어도 없던 힘이 생기거늘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녀에게 만가지 힘의 근원이 되심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하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의 위탁.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성경 책을 선물로 주어도 관심이 없다. 그런 선물 반갑지도 않다.  손도 대려 하지 않고 펼쳐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성경을 펼쳐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씨름하고 하는 것은 놀라운 주의 은헤가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이다. 죄 사함이 복음이다. 구원과 영생이 복음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셔서 복음을 위탁받은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간사함이나 부정이나 속임수에 연루될 수 있나. 3절 말씀처럼 복음을 권한다고 하면서 간사함이나 부정함이나 속임수로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천벌을 받을 것이다. 지옥 불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고 담대하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나 죽으나 “오직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가.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를 위하여 향유 나드 옥합을 깨트려 부을 수 있겠는가. 가롯 유다는 삼년을 예수 곁에 제자랍시고 머물렀지만 그는 거듭난 제자가 아니었다.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그는 도둑이었다. 예수를 배반하고 팔아버린 반역자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섬김과 복음의 주체이신 주님을 향한 설명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음의 능력이 있었다. 마리아의 마음 중심에는 활활 타오르는 위탁 받은 복음의 감격과 기쁨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가만 두어라 저는 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장차 이 일에 후대에 계속하여 알려 지게 하여라”

교회를 섬기다 보면 더러 가롯 유다 형의 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향유 옥합을 깨트려 주님의 머리에 붓고, 발 잔등에 붓던 마리아와 같은 유형의 교인들이 있다. 그러면 누가 과연 이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일까.

4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되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위탁 받은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생활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이다. 

우리가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그렇게 찬송하지 않나.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맞다.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은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매 순간 살아가는 것이다. 마틴 루터 당시에 교황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였다. 교황 주변에서 불의를 일삼고 성경에서 벗어난 교리를 고수하는 패역한 종교인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기쁨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자신들의 탐심만을 채우려 하고 스스로의 기쁨을 구하는 자들이었을 뿐이다.오늘 날 우리 각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며 복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은혜의 바른 길을 걸어가야만 할 것이다. 


목숨까지라도 주기를 기뻐하는 사랑.
사도 바울은 고난의 사도이기도 하지만 눈물의 사도요 사랑의 사도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 사랑, 성도 사랑, 교회 사랑의 심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7절에서는 어린 자녀를 키우는 유모의 사랑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11절에 가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의 권면, 위로, 경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하면 사도 바울은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과 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골고루 갖춘 훌륭한 영적 아버지의 역할을 가는 곳곳마다에서 감당해 왔던 것이다.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는 아가야 지방의 큰 도시이다.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경기도 안에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이고 인천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항구도시인것처럼 말이다. 데살로니가는 아가야의 수도였다. 우상 숭배의 도시였다. 거기서 유대인의 회당을 만났다. 세 안식일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헬라의 경건한 큰 무리가 복음을 받아 들였다.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복음을 영접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시기로 인해서 시장 어귀의 불량배가 동원되었다. 유대인들은 야손의 집에 습격하여 바울과 실라는 끌어 내려 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못 만나자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가서 읍장에서 고소하였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들이 저희 집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저들은 황제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는 자들이고 예수라하는 다른 이름을 전하는 자들이다”라고 고발하였다. 무리와 읍장은 보석금을 받고 야손과 나머지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복음을 받아 들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밤 중에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를 벗어나서 뵈뢰아라는 도시로 탈출하였다. 거기서도 유대인이 회당을 찾아 갔다. 뵈뢰아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럽고 간절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던 자들로 넘쳐 났다. 그 중에 믿는 자도 많았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도 적지 않았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뵈뢰아에서 복음 전하는 사도 바울을 시기해서 거기까지 방해꾼들을 보냈다. 무리를 충동질해서 소동을 일으키려 하였다. 바울을 보호하는 복음의 형제들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바다로 보내고 며칠 후에는 아덴으로 피신하게 하였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가는 곳곳마다에서 열정적으로 예수의 부활 복음을 전파하였다.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 전파는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복음을 받아 들이는 큰 부흥이 계속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바탕에는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유모의 심정과 같은 영혼을 사랑하는 식지 않는 구령열이 샘 솟고 있었다. 바울은 지금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이 첫 편지에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쓴 것이다. 다시 7-8절을 보자.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그렇지 않나. 요즘 세상에는 병든 엄마 아빠로 인해서 무너지고 금가고 깨어지고 풍지박산이 되는 가정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이 어느 가정에서인가  끊임이 없는 엄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청년이 되고 사회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오늘 칼럼에 5년 전인 2015년 3월 1일 예배때 인용했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기고문을 실었다. 

1996년 초겨울, 연변은 몹시 추웠다. 피골이 상접한 탈북자들이 밤마다 두만강을 넘어 몰려왔다. 그때 머리 흰 50대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연길에선 가장 넓은 축에 속하는 40여 평 형의 아파트를 3채나 사서 탈북 고아들을 데려다 돌봤다. 1999년까지 3년 동안 그곳을 거친 탈북 고아는 200명이 넘었다. 그의 이름은 박준재(1941-2005)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를 주변 사람들은 제프리 박이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흑룡강 성에서 사비를 들여 50여 개의 교회를 만들어 농민들을 전도했다. 미국에서 모텔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가 무엇에 끌려 중국 전도에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연변에서 탈북자들을 돕다가 연길로 자리를 옮긴 박 씨는 흑룡강 성에서 전도했던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아 탈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꽃제비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이 박 씨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 공안에 두 번씩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 잠깐 돈을 벌고는 그 돈을 들고 다시 태평양을 넘어 지구 반대편 중국으로 날아오기를 50여 차례나 반복했다.

 

그런데도 2004년경부터는 더 이상 탈북자를 돌볼 수 없었다. 당시 탈북자의 공관 진입이 잇따르자 중국 당국은 대대적으로 탈북자를 검거했다. 박 씨는 도와주던 조선족에게 계속 탈북자를 돌본다는 조건으로 연길의 집 세 채를 넘겨주었다. 20041123, 그는 마지막까지 돌보던 10대 부흥이를 포함한 6명의 탈북자를 데리고 연길에서 한국행 길에 올랐다. 하지만 유일한 길이던 베트남 루트는 그 즈음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머무르던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데려오면서 막혀버렸다. 박 씨는 어느덧 63세의 노인이 되었지만 항상 일행의 맨 앞에서 열대림을 헤쳤다. 정글에서 헤맨 지 일주일 만에야 드디어 라오스가 건너다보이는 메콩강에 도착했다. 밀항선을 구해 보았지만 1인당 1만 위안을 불렀다. 돈이 없었다. 고민하던 박 씨는 마을 시장에 가 튜브를 사려 했다. 시장을 다 돌아봐야 4 개밖에 살 수 없었다. 그는 튜브를 여성과 아이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배낭만 메고 메콩 강에 뛰어들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든 뒤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안 보이고 배낭만 물에서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부흥이는 나중에 알았다. 박 씨는 헤엄을 잘 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가에서 몇 시간째 할아버지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행은 라오스 경찰에 체포됐고 한국 대사관에 통보가 됐다. 하지만 라오스 대사관도 이들을 무시했다. 이들은 목숨 걸고 넘어왔던 메콩 강을 다시 넘어 미얀마 경찰에 넘겨졌다. 미얀마는 이들을 북송하려 했다. 하지만 박 씨의 넋이 이들을 끝까지 지킨 것일까. 미국 시민권자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정부가 미얀마 한국 대사관에 박 씨의 생사 확인을 요청했다. 그제야 한국 외교관이 나타났다. 미얀마 경찰이 말했다. “여기 들어온 북한 사람은 다 북에 보냈지만 너희는 한국 외교관이 왔으니 한국에 가게 될 것이야.” 정글을 헤맨 지 석 달 뒤 그들은 한국에 왔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200512일 메콩 강에서 탈북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박준재, 제프리 박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오늘 날 탈북민과 새터민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가 살려낸 탈북 어린이 중에 부흥이는 커서 지난해에 미국의 명문대학인 컬럼비아 대학교에 당당히 입학하였다.

 

감동적이지 않나. 도전이 되지 않나. 우리가 다 그처럼 살진 못할지라도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유모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야 하지 않겠나. 이는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계속되는 비대면의 코로나 시대이지만 주변의 가족과 성도들을 서로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살뜰한 마음, 목숨을 주어서라도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의 사람으로 세우길 원하던 사도 바울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서로의 믿음을 든든하게 세워가는 은혜의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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