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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주신 명령(신1:1-8) 2020O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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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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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22 23:31 조회 7,472 댓글 0
 
                    여호와께서 주신 명령(신1:1-8)           2020. 3. 22


모세는 120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번의 설교를 하였다. 신명기는 모세의 그 세 번의 설교 내용을 담고 있다. 출애굽 이후 사십년째 되던 해의 열한 번째 달 첫날에 있었던 일이다. 

신명기 1장 3절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를 앞장세우고 가나안에 들어간 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뿐이었다. 평균 연령이 40살 미만의 청년교회였다. 사도행전 7장 38절에 보면 집사 스데반은 광야 백성들을 ‘광야교회’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광야 백성들은 40대, 30대, 20대, 10대와 그 어린 세대들로 형성된 풋풋하고 젊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생각하여 보라. 120세의 노장 모세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설교의 모습을.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전하느냐보다 무슨 내용을 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신명기(申命記)란 뜻은 ‘계명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란 뜻이다. 한자로 ‘새롭다’는‘신’(新)자를 쓰지 않고 ‘거듭하다. 되풀이하다. 말하다’는 뜻의‘신’(申)자를 쓴다. 영어로 ‘Deuteronomy’라고 한다. ‘제 2의 율법’이란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하데바림’( דְּבָרִים)이라고 하는데‘그 말씀들’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신명기는 평소에 하던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다시 반복해서 하신 설교 내용이다. 왜 그랬을까. 그만큼 중요하다는 강조가 아닌가. 

2절에 보면, 호렙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고 했다. 열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동안 지내야 했다. 그런 배후에는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셨다. 언약 민족, 말씀 민족으로 다듬어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으셨다. 

앞으로 날마다 신명기의 말씀을 새벽마다 묵상할 것이다. 개인별로 어느 시간이든 정하여 날마다의 말씀 분량을 묵상해 가는 성실한 말씀 생활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 첫 시간에 묵상하는 신명기 1장 서두의 말씀 묵상이 이 시간에 은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싸워서 이기라.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말씀을 받은 말씀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두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 뿐만 아니라 자세한 율례와 법도와 계명의 말씀을 일일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셨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와 그의 동족들이 나아가는 길을 막아서는 대적자들과 싸워 이기게 하셨다. 

동서고금에 남녀노소 그 누구나 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겨야 기분이 좋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해도 따야 기분이 좋지 빨리면 기분이 영 찝찝하다. 땅 따 먹기를 해도 많이 따 먹어야 기분이 좋지 동네 애들에게 지면 그 날 기분은 영 별로다. 

팔씨름을 해도 이겨야 좋고, 닭 싸움을 해도 이겨야 좋다. 가을 운동회 때에는 청군과 백군의 싸움에서 기마전을 하면 이겨야 신이 난다. 줄다리기를 해도 이기는 편의 기분과 지는 편의 기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더군다나 전쟁에서 이겨야지 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전쟁의 승자와 패자의 차이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싸움마다 이기게 하셨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막고 방해하던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모세는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싸웠다. 아론과 훌은 모세의 지친 두 손을 양편에서 서로 맞잡고 기도하였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모세의 기도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지친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다. 하나님은 절대 기도의 힘을 이 전쟁 승리의 과정에서 보여 주셨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을 막아서고 방해한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셨다. 뿐만 아니라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아갈 길을 방해한 바산 왕 옥을 모세의 군대로 하여금 ‘아드레이’에서 쳐 죽이게 하셨다. 

이는 모세가 전쟁을 즐겨해서가 아니었다. 모세가 전략에 능해서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방해하거나 반대하는 세력들을 다스려서 이기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승리로 이끄시기 위해서 저들이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신 것이다. 민수기 21장 3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를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은 모세의 군대로 하여금 싸우는 싸움마다 이기게 하셨다.

왜 모세는 죽음을 한 달 앞으로 남겨 놓고 자신의 지난날에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던 전쟁 승리담을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이는 결코 모세 자신이 이긴 전쟁이 아니라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전쟁이란 것을 알려 주기 원해서였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은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반드시 이룩하신다. 

지난날 출애굽의 장면이 그렇지 않나. 그 당시의 애굽이란 오늘날로 하면 미국과 같은 가장 힘센 나라였다.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양을 치던 나이 팔십이 된 히브리 노인이 감히 어떻게 해서 애굽의 바로 왕을 만났을까. 그것부터가 쉽게 풀리지 않는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장면을 안다. 하나님은 모세와 그의 형 아론으로 하여금 바로 왕을 만나게 하셨다. 만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 시작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바로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말게 하셨다. 그리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출애굽이 가능하게 하셨다. 그 출애굽 장면이 이미 전쟁의 시작이 아닌가. 모세가 동족을 이끌고 뒤 쫓아 오는 바로의 군대의 위협을 이기고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미 전쟁 승리의 시작이었다.

사사 기드온 300명의 용사를 이끌고 나가서 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 16만명과 싸워 이기게 하셨다. 처음에 모병에 참여했던 3만명들을 차례대로 거의 다 돌려 보내고 남아 있는 300명으로 기적의 전쟁 승리를 이루셨다. 하나님은 왜 그런 방법을 쓰셨을까. 많은 군대와 충분한 마병과 병거로 싸워 이겼다면 사사 기드온 자신이 잘해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승산이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하심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드러 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전쟁을 이기게 하시기 위해서 사사 기드온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6)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거창한 약속의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하나님께 표징을 요구하였다.

기드온은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준비하고 가루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았다. 국은 양푼에 담고 상수리 나무 아래로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렸다.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고 명하였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명하는 대로 하였다. 그 때에 천사가 손에 잡고 있던 지팡이 끝을 내 밀어서 고기와 무교병에 대는 순간에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순식간에 고기와 무교병을 불 살랐다. 그 순간 천사는 떠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 때에 기드온이 한 말이 ‘여호와 샬롬’이란 말이다. (삿6:24)

하나님의 승리를 믿으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이기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매사에 너무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나아가라.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의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행하는 범사를 이기게 해 주실 줄로 믿기를 축원한다.  


지시하시는 방향으로 가라.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게 하셨다. 7절에 보면,“방향을 돌려 행진하여...가고...가고...가라.”고 명하셨다. 지난 40년 동안 출애굽한 이후 광야길을 헤메고 헤메며 여기까지 온 것도 가고 가고 간 것은 맞다. 그러나 광야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목적지는 아니었다. 이제 한 달 후면 모세는 죽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대로 하나님은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대를 이어서 여호수아를 지도자 삼으셨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점령을 시작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지금 모세의 입을 통하여 이 명령을 하고 계신 것이다. 

6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했다. 여기서 모세가 사용하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 세 표현이 모두 다 신중하고 적절한 표현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 각별한 연대성을 표현할 때에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권능을 나타낼 때에 ‘하나님’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언약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 ‘여호와’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소개하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는것이다. 방향을 돌려 행진해서 지시 하는 땅으로 가고 가고 가라는 명령은 모세 개인의 명령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하신 명령이시다. 

하나님은 오늘 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이시다. 우리 중에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떠나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나.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태어난 고향에서,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사는 이들이 있나. 아무 우리 중에 그런 이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개의 사람들이 다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가 태어난 곳을 떠나고 새로운 곳을 향해서 떠나고 또 떠난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다. 그 결정은 아브라함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는 땅을 향하여 떠날 것을 명령하셨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역사는 떠나가고 또 떠나가고 또 떠나가는 역사였다. 지난 4천년 동안 줄기차게  떠나고 따나고 또 떠났다. 지난 삼일 동안 대하신 학개서의 배경인 포로의 땅에서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돌아간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그 이후로 2500년 동안을 나라 없는 백성들로 세계 열방에 흩어져서 살아왔다. 지난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건국되기 까지 그런 상상할 수 없는 긴긴 세월을 가고 또 가고 가고 또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 한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이 사라지지 않게 하셨다. 저들은 철저히 언약 민족 삼아서 붙들고 인도하셨다. 

이는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늘 말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은평구의 이 곳 북한산 자락의 폭포동 입구에 둥지를 틀고 사역을 이어 갈 것을 누가 미리 알았는가. 아무도 없다. 단지 하나님이 구비 구비 이 곳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혹자는 “성북구 안에서 자리를 찾으실 것이지 왜 이 멀리 까지 오셨는가”하고 질문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걸 누군들 시원하게 대답하겠는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왜 26년 전인 1994년도에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인도하실 때에 필라델피아로 인도하셨을까. 미국에서도 LA나 샌프란시스코나 시카고나 뉴욕이나 뉴저지나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로 나의 가족을 인도하시지 하필 필라델피아로 인도하셨을까.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 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역하기를 원할때에도 사실은 살기에 익숙한 대전쯤을 원했다. 서울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셨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993년에 어느 권사께서 분당을 보여 주시면서 “목사님 유학가지 마시고 이곳 분당에 개척하세요.” 그랬는데 그게 27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가는 길을 다른 길로 인도하셨다. 

사도행전의 사도 바울은 아시아 선교에 열정이 불붙어 있었다. 그런데 성령은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사도행전 16장 9절에 보면 어느날 밤중에 하나님이 환상 중에 “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유럽 선교의 불이 붙여지게 하셨다. 이는 사도 바울 자신의 꿈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바울의 가는 길을 그렇게 인도하신 것이다. 

다윗이 전쟁할 때의 모습을 보라. 사무엘하 5장 17절 이하에 보면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 소문을 들은 불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쳐들어 왔다. 다윗은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하나님은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 전쟁을 불을 흩어 버리듯이 대적을 흩으셨다. ‘바알브라심’이란 말이 그 때 거기서 나온 말이다. 얼마 후에 르바임 골짜기에 블레셋이 또 쳐들어 왔다.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은 “올라가지 말로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나거든 공격하라.” 다윗이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했더니 게바, 게셀까지 추격하여 승리하게 하셨다. 

다윗은 신중한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요 응답의 사람이요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다윗이 고백하지 않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출입하고 내 마음대로 드나들고 내 마음대로 오고 가면 안된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방향으로 분명하게 방향을 정하고 행진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 곳이 산지이든 평지이든 해변이든 큰 강가이든 그 어디이든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방향으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데까지 가고 또 가고 가고 또 나아가야 한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그렇게 정처 없이 살아가면 안된단 말이다. 매 순간 방향과 목적지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여쭙고 대답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그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다.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의 때에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나안을 차지하였다. 그 역사를 지금 하나님은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다시금 확증하시는 장면이 8절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리라는 약속을 이미 아브라함때에 하셨다. 그 언약이 이삭과 야곱을 때를 거치고 지금 모세의 때를 지나서 여호수아의 때에 응답되어 가는 과정을 여기서 미리 다시 한번 확증하신 것이다.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다. 
너희는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서울의 땅 값이 대단하고 남산 주변과 명동의 땅 값은 세계적이다. 미국의 뉴욕시가 대표적이고 맨해튼이 더욱 그러하다. 맨해튼은 400년 전인 1626년 네덜란드의 초대 뉴네덜란드 주 장관 페테르 미노이트가 이 지방의 인디언들에게서 사들였다. 와핑거 연맹의 한 종족인 맨해튼족에게 당시 은 700g의 값에 해당하는 방물과 옷감 등을 주고 섬을 통째로 샀다고 전해진다. 이미 1653년 뉴앰스터댐 시로 시의 이름이 정해졌다. 1664년에는 영국인들 손에 넘어가 오늘 날의 뉴욕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후 맨해튼은 미국 초기 발전의 군사, 정치, 의회의 중심이 되었다. 미국의 국회가 그곳에서 열렸다.(1785~90) 1789년 그곳에서 조지 워싱턴이 초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19세기, 특히 1825년 이리 운하의 개통과 함께 번창하고 확장되어 대도시의 심장부로 발전했다. 오늘 날 맨해튼에는 사거리 곳곳에 목 좋은 곳마다 웅장한 예배당들이 처처에 세워져있다. 과거에 기독교 복음의 전성기기 있었음을 입증하는 역사의 흔적들이다.

오늘 날의 맨해튼은 세계최고의 상업·금융·문화 중심지이다. 흥미 거리가 많다. 맨해튼의 남북을 사선으로 잇는 브로드웨이는 세계적인 거리이다. 금융가인 월스트리트도 그 곳이 있다. 그밖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911테러를 당했던 WTC세계무역 센터, 그리니치빌리지, 할렘, 센트럴 파크, 국제연합(UN) 본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링컨 센터, 현대미술관, 컬럼비아대학교, 뉴욕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의 두 분교 등 다양한 문화·교육 기관들로 넘쳐 난다. 그 시작은 무엇인가. 은 700g의 값에 해당하는 방물과 옷감 얼마큼이 전부였다고 하지 않나.  

신앙 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리라 하시는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생활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성령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령 받은 언약의 사람을 붙드셔서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고 성취하신다. 이 어수선한 때에 자기 건강을 잘 지키고 존귀하게 쓰임 받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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