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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오직 믿음으로(롬1:17, 5:1-11) 20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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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10-25 12:21 조회 8,684 댓글 0
 
                    오직 믿음으로(롬1:17, 5:1-11)           2019. 10. 6 세계성찬주일


사람은 누구나 다 그 무엇인가를 믿으며 산다. 이 세상에 종교가 없는 사람은 없다. “난 아무것도 안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불신앙’그 자체가 일종의 신앙이다.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 그래서 자신감이 넘쳐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젊음을 믿고, 자신의 건강을 믿고, 자신의 외모를 믿고, 자신의 학력이나 배경이나 인맥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지난날의 화려했던 경력을 신앙처럼 자랑으로 붙들고 살아간다. 혹은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산과 부와 경제력을 믿는다. 

그런데 생각하여 보라. 내가 나 자신을 신(神)인 것처럼 믿고 자신감 넘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 또한 그런 것들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 가나. 지난 주 첫 삼일 새벽기도 시간에 대한 베드로 전서의 묵상대로 인생은 거류민과 같고 나그네와 같은 존재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법이다. 오직 주의 말씀만이 세세무궁한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권력, 명예, 재물, 인기, 미모, 건강, 자랑 등 그 모든 것들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천하를 통일하려 하던 알렉산더(BC356-323)는 33살 열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미모를 자랑하던 마릴린 몬로(1926-1962)는 36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던 이소룡(1940-1973)은 32살에 죽었다. 그의 사인을 분석한 주치의는 그의 죽음을“대마초”관련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의 히틀러(1889-1945)는 56살에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했던 진시황(BC259-210)은 49살에 죽었다. 북한의 김정일(1942-2011)은 69살에 죽었다. 

1980-1990년대 흑인과 백인을 막론하고 10대 소녀들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의 우상과 같았던 가수요 배우요 보컬리스트로 명성을 날리며 디바로 불리던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은 48살에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셀린 디온(Celine Dion)과 함께 미국 3대 디바로 불리던 그녀의 주옥같던 목소리는 알콜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에미상 2번, 그래미상 6번을 비롯해서 총 415번의 상을 탔다. 2010년에 <세계에서 가장 상을 많이 받은 여성 아티스트>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그녀인데 41살 때부터 그의 삶과 목소리는 회복 불능상태가 되고 말았다. 언론은 그의 사망 원인을 코카인 과다 복용 의심 상태로 발표하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의 마지막 무대에서 “Jesus Loves Me”(예수 사랑하심은)라는 찬양을 불렀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이들의 마음에 더 찡한 아쉬움을 남겼다. 

성경의 인물로 하면 역사적인 왕 솔로몬도 60살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자신의 생명이나 자신의 건강을 자신의 힘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그 누구든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서로 위하고 돌보아야 하는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뿐이시다.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런 주제의 말씀을 시월 한 달 동안 네 번에 나누어서 이어서 묵상하려고 한다. 이는 AD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의 선봉에 서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일해 나가시는 분명한 믿음 가운데 붙들렸을 때에 주창했던 내용들이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가 무엇인가.
로마서 1장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말씀하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하박국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보내셨다. 예수는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지셔서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구세주이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 당하심과 부활을 통하여 그를 구주로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선물로 주셨다. 이 사실이 복음이며 이를 믿는 믿음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 앞에는 상대방이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가 문제 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누구나 다 복음 앞에서는 공평한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믿음의 사람은 복음을 믿는 믿음 가운데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복음 앞에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등이 없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말하는 그 믿음의 바탕이 무엇인가.

믿음과 하나님의 의(義).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그 믿음 생활의 바탕이 복음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의“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는 언약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나. 75살이 되도록 자녀 없이 살아온 아브라함인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후손이 큰 민족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갈 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지 않으셨다. 기다리다 지친 상태였다. 그런 어느 날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 그 때에 아브라함은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 무엇을 내게 주시려고 그러십니까 나는 자식이 없으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하나님은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아브라함을 장막 안에서 바깥으로 이끌고 나가셨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해 주신 말씀이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하고 축복해 주셨다.

그날 아브라함에게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그와 같은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18-22)

오늘 날 우리들의 믿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4)

그렇지 않나. 성도 된 우리 각 사람의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인가. 우리는 누구를 믿는 것인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믿음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을 누린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날 구원하시고 날 자녀 삼아 주신 그 은혜를 누리고 증거하고 전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때에 예수를 찾아 나섰던 각색 병자들과 저들의 가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무한한 믿음이 있었다. 

가령 마태복음 8장의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 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시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바탕은 믿음이 아닌가.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실 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어느 해 부활 주일 아침에 미국의 어느 교회 마당 앞으로 돼지 한 마리와 닭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돼지가 닭에게“우리도 부활주일인데 이 교회에 들어가서 부활절 예배를 드릴까. 그런데 말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뭘 좀 바치고 가야 하지 않겠어”하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교회 입구 유리창에 커다란 글씨로 “햄에그 샌드위치 판매” 수익금으로 노숙자에게 부활절 선물을 한다는 바자회 광고를 보았다. 

그 때에 닭이 말했다.“오빠 그런데 햄 에그 샌드위치라는 것이 모두 다 우리들을 재료로 만드는 거쟎아”“그렇긴 그런데 너야 날마다 꼬꼬댁거리며 달걀만 한 개씩 낳으면 되지만 나는 당장 죽어야 햄이 되는데 그럼 너는 달걀만 한 개씩 낳고 살아남고 나만 죽고 만단 말이냐”“그렇긴 하지만 오빠  한 번에 죽는 것이 낫지 난 달걀을 낳을 때마다 날마다 꼬꼬댁 거리며 울어야 하는데 그건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어떠한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에 낳게 하신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셨다. 그 때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걸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의 현장에서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셨다. 아들 이삭을 칼로 치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신 하나님은 그 곁의 수풀 사이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번제로 드리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믿음은 내 뜻대로 아니하실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평(和平).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열매 중의 또 하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 안에서 그 은혜를 누리며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와 같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라면 웬만한 환난과 시험을 참고 견디며 영원한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주 안에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신다.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깨닫게 해 주신 역사적인 사건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에 젊은 미국 병사 한 사람 유럽 전선에서 두 눈을 다 실명하였다. 미국으로 돌아 간 후에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 군 병원에 누워 있었다. 이 사실이 그의 부모에게 알려졌고 아들을 보러 군 병원을 찾아 온 부모의 충격과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 자신도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3개월 후에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다. 담당 군의관은 그에게 개안 수술이 가능하고 비록 한쪽 눈이지만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수술이 가능한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눈 한 개를 아들에게 빼어 준 것이었다. 날 낳아 준 엄마의 사랑, 날 위해 눈 하나를 빼어 준 것이 엄마의 사랑이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우리가 알고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믿고 우리가 감사해하고 우리가 찬송하고 우리고 소망을 갖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확증은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救援)의 은혜(恩惠).
믿는 자에게는 은혜가 주어진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자녀 삼아 주신 것이 구원의 은혜이다. 깨닫고 보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인 것이다. 6절 말씀대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은혜다. 이것이 참 소망이다. 

“예수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563장, 예수사랑하심은 1, 3절)

성도인 우리가 세상을 우울하게 살지 않고 기쁘고 감사하고 즐겁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세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 주심으로 우리와 화목하게 하시고 구원을 완성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 안에서 즐겁고 기쁘게 그 구원의 감격을 찬송하고 증거하고 전파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오늘도 성찬을 통하여 날 자녀 삼아 주신 주님의 구원의 은혜가 풍성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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