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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은 자의 감사(시116:12-19) 20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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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7-30 17:41 조회 8,488 댓글 0
 
                  은혜 받은 자의 감사(시116:12-19)          2019. 7. 28


시편 116편은 누가 언제 쓴 시인지 모른다. 오늘 우리는 시편 116편의 후반부 몇 절을 읽었다. 그러나 그 내용 전체를 대하다 보면 아마도 다윗의 고백이 아닐까 하고 여겨진다. 성경 주석가들 중에서도 혹자들은 이 시편이 다윗의 시편이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왕위를 빼앗기고 왕궁을 벗어나서 피신해 다니던 괴롭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던 때에 쓴 시일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70세에 눈을 감기까지 고생을 참 많이 한 인물이다. 죽을 고비도 수 없이 넘겼다. 3절에서 언급한 대로 사망의 줄이 그를 두르고 죽음인 스올의 고통이 닥쳐서 환난과 슬픔을 겪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다윗은 지금 이런 고백을 하는 그 순간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 기적이요 전적인 주의 은혜였다. 그래서 8절에 보면 이런 고백도 하고 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오늘 묵상하는 시편인 116편의 기록자는 파도처럼 끊임이 없이 밀려오는 각가지 어려움과 고난과 환난과 죽음의 위기를 겪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그 때 그 때마다 여호와께서 지켜 주시고 건져 주시고 후대해 주신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며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에 대하여 그 고난을 극복하는 태도나 자세는 각기 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본 시편 기자는,

1절, 내가 주를 사랑하는도다.
2절,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10절, 주 안에서 나는 믿는도다.  

라고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이라는 복음성가를 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시편 기자는 사망의 줄이 그를 두르고 죽음의 고통이 그에게 이르고 환난과 슬픔을 당하였을 때에도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시116:4)

5절에 보면, 그에게는 평소에 늘“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다”는 믿음이 있었다. 

6절에 보면 그는 그 동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오며 체험한 하나님 신앙이 분명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절의 고백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후대하시는 주님이시다. 

8절에 보면 이런 고백도 하고 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하나님 안에서 이처럼 다양한 신앙 체험 가운데 살아온 그는 9절에서 사명(使命)을 고백하고 있다. “내가 생명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생명 있는 땅에서” 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라는 말이다.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라는 고백은 ‘코람 데오’(CORAM DEO)‘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겠다는 엄숙한 신앙 고백이며 선언이다.

10절의 우리말 번역은 ‘주 안에서’라는 표현이 빠져있다. 원래는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주 안에서 믿었도다.”라는 고백이다.

계속되는 그의 고백과 믿음이 무엇인가. 모든 인생은 거짓되고 거짓말쟁이로 살아갈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그에게 부르짖고 간구하는 믿음의 사람의 음성을 들으시고 간구를 들어 주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신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주변을 보고,  믿음의 마음가짐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주의 은혜가 아닌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읽은 본문인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자, 그러면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시편 기자는 그 은혜의 고마움을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가겠노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치켜 든 구원(救援)의 잔(盞).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라고 고백하였다. 여기 ‘구원의 잔’이란 하나님 앞에서 제사할 때에 포도주를 제물에 붓는 전제를 말씀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 전제를 기억하며 ‘구원의 잔’을 들고 라고 고백하고 있다.

민수기 28장 11절 이하에 보면 매월 초하루에 여호와 앞에서 번제를 드리도록 하였다.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번제를 드렸다. 그 때에 고운 가루로 소제도 드렸지만 전제를 동시에 드리게 되어 있었다. 그 전제의 내용물은 포도주이다. 수송아지 한 마리에 포도주 반 힌을 드렸다. ‘힌’(HIN)이란 액체의 부피 단위인데 1 힌은 3. 6 리터이다. 숫양 한 마리에 삼분의 일 힌을 드렸다.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도록 하였다. 

상상하여 보라. 새 달을 맞아 하나님께 제사하는데 수송아지와 숫양을 준비하여 번제할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양의 포도주를 전제로 부어 드리는 장면을 생각하여 보라. 

지금 시편 기자가 고백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전제로 준비한 포도주를 제물에 부어 드리듯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을 보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진실한 예배자로 살아가겠노라는 고백이며 선언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전제처럼 여호와의 부르심 앞에 쏟아 부어 드려지는 전제와 같은 헌신적인 섬김의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고백이다. 

우리가 <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라고 찬송하지 않나.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내 손을 주께 높이듭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엽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그렇지 않나. 내가 그 동안 겪으며 살아 온 크고 작은 나의 범사가 주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무슨 더 할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의 잔을 높이 치켜들고 여호와께 기도하며 찬송하며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서원(誓願)을 지키리라는 맹서(盟誓).
또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서원을 여호와의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지키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개인적인 서원이니 은밀하게 지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증인 삼고 여호와의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 서원을 갚고 지켜 가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켜 가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공개적인 태도이며 적극적인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보여 주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서원을 이루기까지 자기 주변의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지켜 가겠노라는 진지하고 엄숙한 선언이고 신앙적인 다짐인 것이다. 

14절과 18절에서 언급하는 서원(誓願)이 무엇인가. 서원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제게 이러 이러하게 해 주시면 이러 이러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로 맹세하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무엘을 낳은 어머니 한나이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다. 다른 부인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는데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자식 없는 것도 한스러운데 브닌나는 언제나 한나에게 적수로 행동하였다. 기회만 있으면 한나의 마음을 격분시켰다. 한나는 자주 울고 잘 먹지도 않고 슬퍼하며 우울하게 지냈다.

절기가 되어서 실로의 성막에 갈 기회가 있으면 괴로운 마음을 달래며 여호와 앞에 통곡을 하며 기도하고는 하였다. 사무엘상 1장 11절에 보면, “서원하여 이르되”라는 표현이 나온다. 실로의 성막에 간 한나가 하나님 앞에서 괴로운 심정을 갖고 통곡하며 서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고 때가 되어 한나에게 사무엘이란 아들이 태어났다. 그 사무엘이 우리가 아는 사무엘이다. 

사무엘이 누구인가. 홍해 건나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긴 세월 동안 사사 시대를 거쳤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로 쓰임 받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사울 왕을 기름 부어 세우고 40년 후에 다윗 왕을 기름 부어 세운 선지자가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존귀한 선지자였다. 사무엘 상 3장 19절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하였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권위 있게 하셨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의 동서남북 그 어디에 살든지 온 나라의 백성들은 사무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여호와의 선지자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한나의 서원을 존귀하게 응답해 주셨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딸을 낳아 키운다. 어떻게 키워야할까.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그 서원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증거를 드러내고 간증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성전 지어 드리고 싶은 서원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서원을 아들 솔로몬의 때에 이루셨다. 하나님은 왕이 된 솔로몬에게 서원을 이루려는 선한 마음과 예배자의 태도를 덧입혀 주셨다.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사람다운 서원을 지키려 하였다. 일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어느 날 밤에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내게 구하라.”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 솔로몬이 대답하기를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6, 9)

당신은 요즘 무슨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나.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서원 기도를 드리며 주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고 있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감사제(感謝祭).
17절에 보니까,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여기서 감사제란 화목제의 일종이다. 화목제는 기름은 태워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로 올려 드리고 제사장 몫의 제물을 제외한 나머지 제물을 백성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제사이다. 

시편 50편 14절에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라는 말씀이 있다. 맞다. 지금 시편 기자는 그러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노라고 고백하고 모든 백성들 앞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14:2)라고 고백하였다. 

요나서 2장에 보면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 가서 회개 기도하는 요나의 모습이 나온다. 요나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2:9)라고 기도하였다. 이러한 기도가 끝나자 하나님은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내게 하셨다. 

생각하여 보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뒤돌아보면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 밖에 또 무엇이 있는가. 

15절에 보면,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소중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자들의 죽음을 하나님은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이다. 

16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자신이 겪어 온 결박으로부터 주께서 자신을 풀어 주신 도우심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이 겪은 결박을 자신의 지혜나 능력으로 헤쳐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신의 결박을 풀어 주셨다고 시인하고 있다. 이것이 신앙인의 태도가 아닌가. 내가 지혜롭고 내가 잘나고 내가 현명하고 내가 분별력이 있고 내가 역량이 있고 내가 탁월해서 그 때 그 때마다 그 결박을 풀어냈다고 말하면 인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의 고백은 달라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죽음이 고통이 내게 있고 환난과 슬픔을 피하여 살수 없는 이 세상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날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담대하게 증거하며 살아가는 복음의 증인들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늘 감사함으로 넘쳐나는 나날과 평생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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