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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히4:12-16) 2018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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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10-14 23:58 조회 12,114 댓글 0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히4:12-16)     2018. 10. 14


모세의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형인 아론을 첫 대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제사장은 모세가 속한 레위 지파에서 계속하여 계승하여 왔다. 하나님은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 삼으셨다. 대제사장이란 24반차를 따라 하나님의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를 집전할 때에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직임을 감당하는 제사장을 일컫는다. 그런데 예수를 히브리서 기자는 그냥 대제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큰 대제사장이라고 하였다. 이 의미에는 그 어떤 대제사장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큰, 지극히 큰 대제사장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맞다.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모세 이후에 1500년 동안 계속되던 대제사장을 통한 대속을 위한 제사의 마지막 제물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송아지나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대신 제사하는 대제사장의 제사가 아니라 친히 제물이 되셔서 지극히 큰 대제사장의 대속의 사명을 감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서 예수를 ‘승천하신 이’라고 강조한 것은 아론 이후의 그 어떤 대제사장도 승천한 이는 없다. 그러므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사흘간의 무덤에 갇혀 계시던 기간과 부활 후에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강조한 말씀이 바로 오늘의 본문이다. 

요즘 주일 오후에 커피브레이크를 통해서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주제로 요한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히브리서의 본문도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있어”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말씀으로 불러내신 아브람 한 사람과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하여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언약 민족을 삼으셨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7대 손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바로 왕 앞에 보내셔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하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출애굽시켜 주신 것이다. 광야 생활 40년이 무엇인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민족으로 만들어 가시는 연단의 과정이었다. 광야 40년과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여호수아를 앞장 세운 가나안 점령 과정을 통틀어 보면 아말렉의 군대나 가나안 일곱 족속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앗수르의 군대 185000명이라도 마병과 병거를 동원하거나 칼과 창을 쓰지 않고 하루아침에 송장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게 해 주셨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생활이다.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도 명문대학교 졸업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권력을 갖고 거부가 되고 세상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넘쳐난다. 중동이나 인도나 일본이나 유럽이나 세계 처처에 보면 평생 우상만 숭배하며 살면서도 이 세상에서 군림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입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세상적이고 현세적인 면에서 큰소리치려고 예수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지 않나. 물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복이 있다. 물론 신명기 28장 말씀에 보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그런 생활이 없지 않다. 성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는 축복을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과 주변을 둘러 보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늘 기도하면서 산다고 해서 이 세상 상위 1%의 사람들이 누리는 세상 복을 다 누리며 살아가나. 그렇지 않다. 또한 우리는 상대적으로 누구를 부러워 할 수 있다. 어느 가정을 부러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살아가는 형편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누리는 분복(分福)이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천석꾼 천 가지 걱정 만석꾼 만 가지 걱정”이란 말이 있지 않나.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혼, 육을 감찰하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연약(軟弱)함을 동정(同情)하시는 이. 
예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시다. 옛 성경 번역에서는 ‘체휼’이란 단어로 번역하였었다. ‘쉼파테오’라는 이 단어의 뜻은 ‘함께 고난을 당하다’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나. 건강한 자식보다 연약한 자식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에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잘나고 유능한 자식보다 부족하고 연약한 자식에게 늘 사랑이 가고 관심이 가고 애착이 가고 연민이 가는 것이 부모의 당연하고 마땅한 모습이 아닌가. 

신앙생활이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극복해 나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를 체험할 때에 더 크고 풍성한 삶의 열매를 거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높이고 돌려 드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는 이중 부정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의 연약함을 반드시 동정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강한 강조이다.

독일 출신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의 교향곡 중에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은 그의 나이 32살 때의 작품이다. 1802년, 베토벤은 그해 32살 때에 거의 청력을 잃어 가고 말았다. 그는 유서를 써 놓고 죽으려고 하였다. 그런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극복하며 써 내려간 교향곡이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이다. 그래서인지 그 작품 속에는 어둡고 음울한 시작으로부터 역동적이고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에 이어지기 까지 마치 자신의 운명을 극복해 나가듯이 장엄하고 섬세하며 천둥 번개가 치는 것 같은 격정이 느껴지게 한다. 그는 이 곡을 써서 그 다음 해인 1803년에 러시아의 황제에게 헌정하였다. 음악을 사랑하던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태어나면서 세례를 받은 베토벤인데 어머니도 그가 13살 때 돌아가셨다. 맏아들인 그는 소년 가장으로 지내야 했다. 32살 때 두 동생에게 유서를 써서 전했다. 청력을 잃어 가면서 그는 착잡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창작의 요구를 다 채우지 못하고는 세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당시 친구 프란츠베겔러에게 편지하면서 “나는 운명의 끈을 붙잡겠다”고 썼다. 그는 49살에는 어떤 소리도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그를 57살까지 살도록 붙든 힘은 누군가에서 주어지는 그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체휼해 주시는 큰 힘의 공급이었다.  결핵에 걸린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다. 57살이던 1827년 3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간경변증으로 눈을 감았다. 3일 뒤에 치러진 장례식에는 2만여 명의 조문객들이 모여들어 그의 가는 길을 슬퍼하고 아쉬워하였다. 그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 후멜 등의 그의 관을 운구하였다. 슈베르트는 횃불을 들고 그의 관 뒤를 따랐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극작가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추도사를 낭독하였다. 베토벤 그는 오래 살지는 못하였으나 연약함을 극복하며 역사에 빛나는 교향곡들을 후대에 남겼다. 그의 공헌은“베토벤의 교향곡들과 현악 4중주곡들은 그 이전의 그 어떤 선배 음악가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던 기악음악의 최고봉의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목사의 아들로 연약함을 극복하였던 천재 화가 반 고흐는 어떤가. 온 얼굴이 숯덩어리처럼 타고 일그러졌지만 지금의 모습을 더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한동대학교의 이지선 교수는 어떤가. 

어제 주말 신물 삽지 전면 기사로 30대 후반의 시각 장애인 부부의 결혼 생활과 건강한 아들을 낳아 양육하는 기사가 실렸다. 내일은 시각 장애우들을 기억하는 ‘흰지팡이의 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의 수는 지난 해 통계로 25만 3000여명이라고 한다. 부인인 조현영씨는 20대 초반부터 ‘망막색소변성’이란 질병으로 점점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고 한다. 38살인 지금은 전혀 빛조차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어려서부터 앞을 못 보았던 남편 최정일 씨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아내와 세상을 대하며 굳굳하게 살아간다. 아내는 웹접근성정보센터에서 일한다. 남편은 11번가 헬스키퍼에서 일한다. 부부가 국가 보조 없이 떳떳하게 소득을 갖고 생활하며 건강한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 소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무인 자동차”라고 했다. 무인자동차 타고 여행 다니는 꿈이 아니라 한 밤중 지금 15개월 된 아들이 한 밤중에라도 아프면 남의 도움 받지 않고 병원으로 빨리 달려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수 많은 각색 병자들의 연약함을 돌보셨다. 저들의 연약함을 동정하셨다.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 광야에서 배고프게 저녁을 맞은 벳세다 광야의 2만여명의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는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손 마른 자가 펴지고, 못 걷던 이들이 걷고 뛰었다. 말 못하던 이들이 말하고, 못 보던 이들이 보게 되었다. 거픔을 물고 불 가운데 뛰어 들어가며 무덤 사이에서 지내던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깨끗한 삶을 회복시켜 주셨다. 

지난 2천년 동안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열방을 섬긴 이들에 의해서 이런 일들은 계속되어 왔다. 

인요한(John Linton, 1959-) 박사는 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이고 연세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과장이다. 그의 선조들은 이 땅에 와서 지낸 선교사들이었다. 그는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얼마나 한국에서 나서 살면서 한국을 사랑하는 지를 절절히 밝히고 있다. 

인요한 교수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턴(인돈)은 22세 때 대한민국에 와서 48년간 의료와 교육 선교 활동을 했다. 한국형 세브란스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한국과 미국 이중 국적을 가진 그는 남한은 물론이고 미국인 신분으로 북한에 수 십 차례 드나들며 결핵 퇴치 운동에 앞장서 왔다. 공식통계는 11만 비공식 통계로는 북한에 100여 만명의 결핵 환자가 있다. 그 중에 30만 정도는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인요한 박사의 할아버지인 윌리엄린턴이 유진 벨의 사위다. 인요한 교수의 외가는 구한말인 1895년 외가의 증조부(外家 曾祖父)인 유진 벨(Eugene Bell, 1868-1956)선교사가 전라도 전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면서 남북한 전역의 결핵 퇴치에 앞장 서 왔다. 현재까지 5대째 대한민국에 살면서 선교해 온 가문이다. 

할아버지 윌리엄 린턴 선교사는 신사참배 반대한 항일운동가이며 대전 한남대학교 설립자이다. 인요한의 아버지인 휴 린턴(인휴)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지방도서 촌 지역에 600여 개 교회를 개척했다. 인천 상륙 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인요한 교수의 형인 스티브 린턴(인세반) 前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는 '유진 벨 재단'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인요한 교수의 외가는 구한말인 1895년 외가의 증조부(外家 曾祖父)인 유진 벨(Eugene Bell, 1868-1956)선교사가 전라도 전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면서 현재까지 5대째 대한민국에 살면서 선교해 온 가문이다. 

봉사활동, 북한결핵퇴치사업과 의료장비 지원 관련 사업 등을 크게 펼치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인요한 교수는 어려서 미국에 갔고 고등학교까지 미국에서 마치고 한국에 돌아 와서 연세대와 고려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의 가정은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때부터 연약한 한국 백성을 진심으로 예수의 마음을 갖고 사랑하고 섬긴 이들이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試驗)을 받으신 이.
세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다.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이기셨다.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은 오늘 날 우리들도 누구나 다 당하는 시험들이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명예와 권력과 인기에 대한 유혹과 시험들이 끊임없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계속되는 내 안에서의 시험을 주님의 심정을 갖고 지혜롭게 극복하고 이기고 뛰어 넘고 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 겪으신 시험에 대한 15절의 강조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 같이”라는 표현이다. 그렇다. 엘리야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선지자였듯이 예수께서도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의 희로애락 가운데서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나는 죽고 내 안에서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안에 백번 천번 만번 계속하여 일어나는 끊임이 없는 유혹과 시험을 어떻게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극복하며 살아가느냐가 신앙생활의 과제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때를 따라 은혜(恩惠)로 도우시는 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의 은혜를 덧입는 경험의 연속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주의 은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은혜. 은혜는 무슨 은혜. 은혜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에 대하여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를 믿는 성도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반복된 표현 중의 하나는 은혜에 대한 고백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주의 은혜이다. 부모가 내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었든 지금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요 부모의 은혜이다. 지금 나의 건강 상태, 가족 관계, 사회적인 신분, 경제적인 여건, 주변의 일상적인 환경 등 그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한 시대를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이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말씀의 ‘때를 따라’라는 말씀은 ‘적절한 시기’를 말씀하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그렇지 않나. 밤과 낮, 아침과 저녁,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 이 모든 것이 때를 따라 돕는 자연의 혜택이며 공급하시는 주의 은혜이다. 일 년 내내 겨울만 계속되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반대로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여건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겨울이 뭔지, 눈이 뭔지, 고드름이 뭔지, 얼음이 어떻게 어는지 상상만 할 뿐 추운 겨울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일 년이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서 건기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러나 지구촌의 동서남북 오대양 육대주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주의 은혜를 깨닫고 적응하며 감사하며 나름대로 살아간다.
평생을 바다 구경을 한 번도 못해보고 살다 죽는 이들도 있다. 산이란 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모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 평원에서 나서 자라고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아시아의 동쪽 한반도에 위치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분명하고 얼마나 좋은 자연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요즘 세상은 공해가 심해져서 봄만 되면 심각한 미세먼지로 고생하지만 한반도가 원래 그런 땅은 아니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서 얼마나 계절마다 넘쳐나는 물고기들이 잡히나.  

우리 어렸을 적에는 봄철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운 밴댕이 두 어 마리를 가지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기억에 숭어 잉어를 비롯한 온갖 바다와 민물의 물고기들을 지게에 지고 마을의 집집마다 살아 퍼덕거리는 생선을 팔러 다니는 어부 어머니와 말 못하는 아들이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집안 마당에까지 찾아오고는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갈릴리 호수가에 가니까 점심 시간에 갈릴리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해변의 야외 식당에서 ‘베드로 물고기’라는 고기 한 마리씩을 반찬으로 생선구이 점심으로 한끼를 해결하였다. 그 ‘베드로 물고기’라고 이름 붙여 부르는 그 물고기는 베드로 이전에 갈릴리 호수가 생긴 이래로 천년 만년  아니 수천년 전부터 그 호수에서 살았다.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이니 2000년 전의 인물인데 지금도 그 갈릴리 호수에는 베드로 물고기가 넘쳐난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부였다. 저들의 아버지도 그 조상들 대대로 갈릴리를 중심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부였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가에 찾아 오셔서 저들을 한 사람씩 예수의 제자로 부르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다.

그렇지 않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비롯한 12제자들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기독교 역사의 길이 빛나는 12제자의 반열에 들었겠나.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가롯 유다 이외의 모든 제자들이 한 자리에서 성령 충만을 받았다. 그리고 열방에 흩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사도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사도가 무엇인가.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주께서 일방적으로 저들을 만나 주셨고 택하셔서 제자 삼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체험한 사도의 삶을 살아갔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은혜생활이다. 은혜를 받아야 신앙생활이 신앙생활다워진다. 은혜가 임해야 신앙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믿음 생활에 역동성이 생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은혜를 체험해야 일상이 달라진다. 

예수께서 하루는 베데스다 연못가를 찾아 가셨다. 거기 솔로몬의 행각을 중심으로 수 많은 병자들이 모여서 지냈다. 소문에 베데스다 못이 동할 때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병에서 낫는다고 하였다. 그런 수 많은 환자들 중에서 38년 된 병자가 예수를 만났다. 예수는 그에게“네가 낫고자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곧 나았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갔다. 그가 챙겨 든 자리가 무엇인가. 38년 동안 깔고 덮던 누더기가 아닌가. 병들어 시체처럼 지내던 38년 된 병의 흔적을 스스로 정리하고 건강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의 힘이다. 이것이 예수 만난 은혜이다.  

열두해 혈루병 여인이 나은 내용을 우리는 잘 안다. 하혈병이다. 12년을 고생했다. 그런데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으면 병이 나을 까하고 붙잡았을때에 예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고 깨끗해졌다. 사모하고 간구하고 찾아 나서고 매어 달리고 의지할 때에 기적이 일어나고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 성가 중에 “은혜로다”라는 찬양이 있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주가 계신 지성소에서 주를 찬송함이
내 영혼에 부어 주신 주의 큰 은혜로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은혜로다 주와 함께 거함이 은혜로다

요즘 수요일마다 묵상하는 출애굽기에 보면 성막의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그 법궤 위를 덮는 것이 시은좌(施恩座)이다. 두 천사가 날개를 편 채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은혜를 베푸시는 곳이란 말씀이다. 히브리서 9장 5절도 그것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으니”라고 기록하였다. 그렇다. 주께로부터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누구이기에, 내가 누구이기에 주의 이런 크고 높고 놀라운 은혜를 덧입고 살아가게 되었단 말씀인가.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담대함으로 주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자녀의 권세를 덧입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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