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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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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당하거든(약1:2-4)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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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8-20 02:23 조회 12,648 댓글 0
 
                          시험을 당하거든(약1:2-4)         2018. 8. 19
   

우린 살아가다 보면 별의 별 일들을 다 겪게 된다. 하루를 살아도 무슨 일을 만날는지 모르는 사고와 사건이 끊임이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행복하고 평안한 나날을 살아가고 싶다고 해서 그런 날들이 저절로 주어지질 않는다. 야고보가 말씀하는 ‘시험’(試驗)이란 외부에서 오는 시련(試鍊)을 의미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유혹이나 미혹이 아니라 외부적으로 당하고 겪는 시험과 시련을 의미한다. 마귀는 신자의 마음을 유혹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시험이란 그야말로 시험이다. test 즉 학생이 시험을 잘 보면 발전할 수 있다. 진학의 길이 잘 열리게 된다. 인생의 시험도 마찬가지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스스로 점점 더 불행해 지고 만다. 그러나 멀리 바라보고 나아가면 지금 당장의 시험이나 시련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지난 월요일에 청소년부 학생들과 함께 고려대 아이스링크에 갔다. 100여명의 어린이들이 3-4살부터 어린이들과 십대의 소년소녀들로 가득했다. 주로 유초등부의 어린이들이었다. 엄마들은 링크 밖에서 구경하고 있다. 어린이들만 아이스링크의 여기저기에 적색 안내 봉을 세워놓고 레슨을 받게 하고 있었다. 아마도 김연아 효과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인재가 발굴되는 것이다. 중간에 포기 하고픈 유혹과 시련을 끝 없이 극복해야 한 분야의 정상에 설수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날 우리나라의 환경은 예수 믿는데 있어서 별 큰 시험이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게으르다던지 관심이 없다던지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은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세상이 너무 좋아서 세상으로만 치달을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를 따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신자다운 신자로 살아가려면 시험과 시련이 없지 않다. 유혹도 있다. 그건 시간 앞에, 재물 앞에, 돈 앞에, 내 관심거리 앞에서 나를 시험한다. 제 갈 곳 다가고 제 쓸 곳에 다 쓰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따른 경우란 없다.  

엄격히 말하면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주의 은혜를 깨닫고 나면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시련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늘 좋을 수만도 없고 늘 안 좋을 수만도 없다. 
야고보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 이후로 예루살렘에서 처처로 흩어져 나가서 신앙 생활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편지를 썼다. 그러므로 그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는 시험이란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이었다. 그 큰 시련과 박해를 어떻게 이겨 나가고 감당해 나가냐는 것이 숙제였다. 

히브리서 11장 36절 이하에 그 당시의 그런 시험과 시련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말씀이 나온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요즘 예수 믿는 일이 이런 시험과 시련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누가 쉽게 예수를 믿겠나. 그러나 초대교회로부터 지난 이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이 전파되는 곳곳마다에서 이런 시험과 시련을 감당해야만 하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시험과 시련들을 끝없이 겪어야 했다. 고린도 후서 11장의 23절 이하의 내용이 그러하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요즘 사도행전 말씀을 매일 분량으로 다시 묵상할 기회를 날마다 가졌다. 바울 사도의 사역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요즘 우리의 신앙생활과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 무슨 고난이 있나. 무슨 시험이 있나. 무슨 시련이 있나. 그 당하는 시험과 시련은 내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나.  
 
중국 속담에, "한 시간 동안 행복하려면 낮잠을 자고, 하루가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고, 한 달 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1년이 행복하려면 많은 유산을 상속 받고, 일생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을 도와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세상 기준의 행복이란 것은 마치도 중국 속담이 말하는 그런 것들과 같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아무리 온 세상을 찾아 헤매어도 행복의 파랑새를 찾기란 그리 쉽질 않다. 몸과 마음만 지치고 피곤할 뿐이다. 흔히 행복의 파랑새로 일컫는 동화극 <파랑새>는 벨기에의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가 지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 작품이다. 마테를링크는 19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이 작품은 어린 남매의 꿈을 빌려서 작자의 인생관을 아름답고 알기 쉽게 나타낸 세계적인 명작이다.

나무꾼 집 어린 남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마술 할머니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마술 할머니의 앓고 있는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추억의 나라’에서 죽은 혼령을 만났다. ‘밤의 궁전’에서 재앙의 비참한 참상을 보았다. ‘숲’에서 자연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의 궁전’에서 물질적인 행복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에 참다운 행복(幸福)은 건강(健康)과 정의(正義)와 특히 어머니의 사랑 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남매는 ‘파랑새’는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미래의 나라’에서 장차 태어날 아이들을 만나고 꿈에서 깨어났다. 남매는 자기들의 머리맡에 있는 새장 속의 새가 파랗게 보였다. 이웃에 사는 마술 할머니의 딸에게 그 새장 속의 파랑새를 가져다주자 병이 나았다. 그러나 파랑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남들이 겪는 고난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고 정작 내가 겪는 일들만 심각해 보이는 이기적인 모습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라는 복음성가가 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사실 가만히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뒤 돌아 보면 시험과 걱정과 환난과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이 전혀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란 단 한사람도 없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시험과 시련이 닥쳐온다. 성경 말씀 그대로 갑자기 시험을 당하게 된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주님의 사람들에게는 부르심을 따라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에 겪는 남다른 고난과 시험이 있을 수 있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정의와 공의와 선과 진리 편에 서서 불의와 맞서서 싸우고 악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가령 세례 요한 당시의 헤롯 대왕은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취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저의 오만불손하고 패륜한 삶을 세례 요한이 지적하였다. 그런 세례 요한을 미워한 것은 헤롯 보다 헤로디아가 더 했다. 헤롯은 오히려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선지자로 알아서 두려워하였고 보호하려 하였다.(막6:20) 그러나 세례 요한이 헤로디아와 헤롯과의 사생활을 문제 삼자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원수시하였다. 결국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혔고  헤롯의 생일날 잔치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요청에 의해서 목 베임을 당하여 죽고 말았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을 선포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던 선지자 세례 요한이 억울하게 옥에 갇히고 어느 날 갑자기 목 베임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라면 세례 요한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현장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까.

본문을 <새번역>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세상에 시험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본문의 ‘시험’이란 영어 단어는 ‘trial’이다. 적합성·진가·힘·성능 등을 시험한다는 뜻이다. 맞다. 신앙생활이란 매 순간마다 우리의 믿음의 진가를 시험하는 시험이 찾아온다. 그럴 때 나의 반응이 신앙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화초도 온실에서 자란 것들보다는 야생에서 자란 것들이 더 향기가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온실의 화초처럼 매사에‘오냐 오냐’하고만 자란 경우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면 쉽게 주저앉고 만다. 그러나 어린 시절과 젊은 날부터 산전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다 겪은 이들은 웬만한 시련이나 시험이나 어려움쯤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야고보가 말씀하는 시험이란 지극히 외부적인 것이고 환경적인 것이다. 가령 일제 시대로 하면 신사참배를 강요받았다. 북한 공산당원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 이외의 어떤 신적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방 이후 6.25를 겪기 까지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였다.

여러해 전에 충남 강경지방 연합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집회가 없는 오후 시간에 두 곳을 방문하였다. 1924년 10월 11일 강경공립보통학교에서 강경교회 주일학교 김복희 교사와 57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해 일어났다. 이는 일제시대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단체행동’이었다. 오늘 날은 강경 교회에 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강경읍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있는 병촌교회를 방문하였다. 6. 25때에 마을의 기독교 신자 66명이 순교 당한 곳이다.  6·25전쟁 발발 후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이 다시 밀려오자 전세가 불리해진 공산세력은 병촌교회 성도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뒷산으로 끌고 갔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살려주겠다”면서 위협했다. 하지만 성도들은 고문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가 결국 순교했다. 젖먹이 어린아이부터 백발노인까지 모두 66명이 모두 다 순교하였다. 6. 25 중에 있었던 한국교회 순교사건 중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와 같은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다. 오늘 날 믿음으로 살아가는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학교의 시험이란 것도 시험 준비가 잘 된 학생의 경우에는 시험 날짜와 시험 시간이 다가 오는 것 기다려지고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시험 준비를 성실하게 안했거나 게을리 했거나 못한 경우에는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불안하고 초조하기 짝이 없다. 하루 이틀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한들 그 준비도 대수롭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시험, 겪는 시험들은 학생이 시험의 답안지를 채우는 정도의 시험과는 그 차원이 다르지 않나. 

최근에 서울 시내 모 명문 여자 고등학교의 쌍둥이 자매 사건을 보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저들 쌍둥이 여학생 자매는 지난 해 1학년 때 성적이 59등과 121등이었다. 그런데 2학년 때인 올해 자매간에 각각 이과 1등, 문과 1등이 되었다. 물론 그동안 열심히 잘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같은 학교의 교무부장인 저들 자매간에 아버지와 두 딸들 사이에 무슨 부정한 행위가 있었던 사실이 세상에 알려 지고 있다.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일등을 하면 뭘 하고 명문대를 나오면 뭘 하겠나.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기업을 망치고 사회를 어지럽히고 나라를 부끄럽게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시험이란 시험지의 정답 몇 개를 잘 맞추었느냐의 문제 정도가 아니지 않나. 저들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는 두 딸들과 아내와 자신이 속한 학교와 주변의 교사들과 이 사건을 알게 된 학생들에게 되 돌이킬 수 없고 씻기 어려운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꼭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진실(眞實)하여야 하는 문제 앞에서 부끄러운 죄를 범하고 말았다.

1960년대 초에 대통령 선거 유세 중이던 존 에프 케네디 (John F. Kennedy, 1717-1963)는 미국 국민들을 향해서 이렇게 질문하였다. 

“우리가 죽을 때에 역사가 우리에게 물어올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질문 앞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용감하였습니까
당신은 헌신하였습니까
당신은 봉사 하였습니까
당신은 사랑 하였습니까”

어떠한가. 오늘 날 우리는 내게 다가오는 수많은 각종 시험과 시련과 유혹과 미혹 앞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그 대답을 분명하게 찾아 나설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시험을 기쁘게 여기지 못하며 어떤 결과가 다가오나.
아브라함은 애굽 임금 바로 앞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라고 속였다. 결국 사실이 드러났고 언약의 조상 아브라함은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하고 말았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마찬가지였다. 부전자전이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동생 야곱이 내어 미는 팥죽 한 그릇 앞에서 장자권을 팔아 보리고 말았다. 장자권이 팥죽 한 그릇 값이란 말인가.

그 어떤 시험이든지 시험을 잘 이기고 극복하고 해결해야 기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야곱의 열 명의 배 다른 형제들은 열한 번째 동생인 요셉을 미워하였다. 평소에 요셉이 꿈을 꾸고 나서 말한 그 꿈 이야기가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도단 성에서 양을 치던 형들을 면회하려고 갔던 요셉을 열 명의 형들이 작당해서 애굽으로 향하는 대상들에게 팔아 넘겼다. 요셉의 옷을 벗긴 형들은 그 옷을 발기발기 찢었다. 짐승을 잡아서 짐승의 피를 그 옷에 발랐다. 아버지 야곱에게는 동생 요셉이 맹수에게 물려 찢겨 죽었노라고 거짓말로 전했다. 그 후 열 명의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을 그렇게 속이고 22년 세월을 지냈다. 저들 야곱의 열 명의 아들들은 자신들에게 찾아 온 시험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로 그 부끄러움을 가슴 깊이 감추고 비겁하고 진실하지 못한 자들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 나중이 어찌되었나.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시험을 기쁜 마음으로 잘 이기고 나면 그 나중의 상급이 크고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주인공으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권에 말려든다든지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든지 시험 앞에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하거나 반목하는 것으로 그 시험을 대하고 나면 자신은 결국 점점 깊은 어둠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런 은혜가 늘 함께 하길 축원한다. 


믿음의 시련으로 받아들이라.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의 기도 내용을 통해서“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셨다. 베드로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이 찾아오면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고 교훈하였다.(벧전1:6) 오늘 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시험이 찾아오면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통해서 무슨 축복을 주시려는가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아랍 사람들의 속담 중에는 “날마다 햇볕만 내려 쪼이면 모두 다 사막이 되고 만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어떻게 날마다 밝고 빛난 햇볕 만 보며 살 수 있겠는가. 살아가다 보면 해 나는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도 있다. 천둥 번개 소리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 때도 있다. 태풍이 불어 와서 큰 피해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태풍과 홍수로 인해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여러 해 전의 양재동 우면산 산사태처럼 큰 산사태가 나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어떤 때 어떤 곳에는 비가 너무 안 오고 가물어서 큰 재난을 겪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가을에 달걀만한 우박이 쏟아져 내려서 채소와 과일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 자연 재해 말고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이전보다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주의 시험이 찾아 올 때가 있다.

예수께서도 사십일 금식 후에 마귀로부터 세 가지의 시험을 차례대로 받으셨다. 예수는 그 모든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시고 물리치셨다. 예수는 사십일 금식 후에 찾아온 마귀의 시험을 넉넉히 이기심으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셨다. 성령께서는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는 예수를 도우셨다. 예수께서 세 가지의 마귀 시험을 모두 이기시자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를 수종 들었다.

우리교회가 2013년 8월 18일, 이곳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꼭 오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삼 년 내내 교회의 안과 밖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는 시험을 겪었다. 그러나 그 당시 거의 모든 성도들은 시험이 오면 올수록 점점 믿음이 견고해져 가고 점점 믿음이 여물어져 갔다. 달걀에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점점 딴딴하게 익어 가듯이 성도들의 믿음은 점점 견고해져 왔다. 

사도 바울은 시험을 이겨 가는 믿음의 과정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하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야고보는 시련 그 자체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연단의 과정으로 주시는 일이라고 여겼다. 마치도 은과 금을 연단해서 순은, 순금을 만들어 내듯이 말이다. 

늘 묵상하지만 그렇지 않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어떻게 그런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사자의 입이나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였다.

오늘 날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어른 아이 청년 노인 그 누구나 시험을 잘 이겨서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상급 받고 칭찬 받는 승리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세상이 인내하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일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가 보라. 모든 것은 인내의 열매이다. 야고보는 ‘온전히’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온전히’라는 헬라어 ‘텔레이오스’이란 단어의 뜻은 ‘완전히’ 흔들림 없이, 끝까지’란 말이다. 매사가 그렇지 않나. 끝을 보지 못하고 하다 말고 포기하고 가다 말고 주저앉는 다면 무슨 열매가 있나. 이 말씀은 “힘들다고 어렵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주저 않지 말고 끝가지 참고 견디고 나아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권면하였다. 

나의 목회 좌우명인 갈라디아 6장 9절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 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말씀하였다. 

요즘도 여전히 우리나라 여성들 중에서 골프의 여제들이 적지 않다. 신지애, 박인비 선수들을 보라. 그러나 역시 신화적인 인물은 박세리(1977-)이다. 박세리는 1998년에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LPGA)투어에 참가하여 우승하였다. 20년 전 이야기이다. 18번홀 연장 티샷이 헤저드 앞 러프에 간신히 걸렸다. 쉽게 말하면 호수가의 풀숲에 간신히 걸렸다는 말이다. 그 첫 대회에서 연못가에 얹힌 공을 퍼 올리기 위해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간 장면은 IMF를 겪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시대적인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큰 도전과 교훈이 되었다. 새까맣게 탄 다리 골프화를 벗고 양말을 벗자 흰운동화색 같은 하얀 발이 세계의 카메라에 크로즈업되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18번 홀 비기고 19번, 20번 홀까지 끌고 갔다. 3미터 퍼트를 성공시켰다. 그 해의 박세리 나이는 21살이었다.  그 후 4연승의 기록을 세웠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공주지방 연합 집회를 두 차례 간 적이 있다. 박세리 모교인 금성 여고 맞은편 언덕에 문화회관 화강석 벽 동판에 박세리의 손바닥이 새겨져 있고 싸인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뒤 숙소에서 묵는데 그 곁에서 온천을 파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나 깊이 파야 온천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현장 소장이 명답을 했다.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파면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야고보는 말씀하였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그리하여 “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이런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 하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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