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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우리가 전파하는 것(고후4:5-12) 201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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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6-10 15:12 조회 12,429 댓글 0
 
                    우리가 전파하는 것(고후4:5-12)           2018. 6. 3
 
우리 각 사람은 누군가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가 나의 부모이든 친구이든 그 어떤 이웃이든 말이다.
지난주일 저녁에 안산남지방의 웨슬리 성회에 초청 받아 말씀을 전하고 밤늦게 돌아 왔다. 안산의 그 많은 교회들 중의 모교회와 같은 교회는 샘골교회이다. 샘골교회는 1907년 7월에 한 가정 집 마루에서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였던 1931년에 최용신(1909-1935) 전도사가 농촌 계몽사로 샘골교회에 부임하였다. 우리가 아는 김활란도 함께 하였다. 그들 외에 그의 신학교  교수였던 황에스더, 선교사였던 쿨란 박사 등이 함께 동행하였다. 최용신은 우리가 아는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채영신의 실제 주인공이다. 안산에 지하철역의 이름 중에 상록수 역이 있는 것도 그런 역사적인 사연 때문이다.
 
최용신 전도사는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울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던 가정이었다. 그의 부모가 이미 기독교 복음을 받아 드린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러하다 보니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19살 때에 감리교회에서 세운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곧 서울여자협성신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일찍부터 농촌계몽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여자협성신학교는 오늘 날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한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전신이다. 그녀는 여고 졸업을 준비할 즈음에 담임선생에게 “저의 희망은 농촌에 들어가 농촌계몽에 일생을 바치는 것입니다.”라고 분명하게 꿈을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러한 그녀의 사상은 그녀가 졸업시에 쓴 “교문에서 농촌으로”라는 글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 오늘 교육받은 여성들이 농촌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이가 드문 것은 사실인 동시에 크게 유감 된 바이다. 여성도 농촌의 발전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농촌으로 하여금 어두움 속에서 걸어 나오게 못한다면, 이 사회는 어느 때까지든지 완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농촌 여성의 향상은 우리들의 책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중등교육을 받은 우리가 화려한 도시생활만 동경하고 안일의 생활만 꿈꾸어야 옳을 것인가 거듭 말하노니 우리는 손을 서로 잡고 농촌으로 달려가자.”
위 내용은 유달영의 책 <최용신 전기-눈 속에 피는 나무>에 실린 내용이다.
 
신학교에 입학한 최용신은 스승 황에스더를 만나게 된다. 황에스더는 이화학당을 거쳐 미국에서 교육학 및 농학을 공부한 협성신학교 여성으로 교수로 재직하면서 농촌운동을 하였다.  최용신은 스승인 황에스더 교수의 영향으로 황해도, 경상북도  등에서 농촌활동을 하였다. 그 후에 1931년 10월, 당시 수원지방 여선교회 총무로 있던 밀러(L.A. Miller)부인의 소개로 천곡으로 가게 되었다. 40여 가구의 샘골 마을은 1907년에 설립된 교회에 주민 거의가 출석하는 복된 마을이었다. 최용신의 농촌 자금은 황에스더의 주선으로 기독여자청년회(Y.W.C.A)에서 부담하였다.
 
천곡에 입성한 그녀는 별의 별 수모를 다 당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약 40명의 아동들을 모집해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밤에는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야학당을 열어서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깨우쳐 주었다. 시작한 지 2개월 정도가 되니까 그녀의 헌신이 차차 알려지게 되었다.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 좁은 교회로서는 넘쳐나는 학생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최용신은 교회를 중심으로 “천곡 학술학원 건축발기회”를 조직하고 동네 유지들을 찾아다니면서 기금을 모아갔다. 기금모금과 동시에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서서 돌을 나르고 새끼를 꼬고 터를 닦았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일치단결하여 천곡학원을 건축하게 되었다. 1933년 봄이 되어 학생을 새로 모집하니, 예년보다 훨씬 많은 110명이나 몰려와, 새로 지은 교실 건물마저도 모자랐다. 그녀는 한글, 역사, 성경 등의 과목에 중점을 두고 가르쳤는데, 이러한 과목을 통해서 신앙과 애국심을 고취시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노력을 다하였다.
 
최용신은 일본의 고베여자신학교로 유학을 떠나지만 몇 년 동안의 과로가 회복되지 않고 각기병에 들고 말았다. 다시 제 2의 고향인 천곡으로 돌아갔다. 온 성도들이 그녀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힘껏 기도하였다. 그러나 육신을 돌보지 않고 가르치는 일과 모금하는 일을 위해서 각계각층을 찾아다니며 호소하던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말았다. 수원도립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화농복막염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으나 1935년 1월 23일 깊은 밤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았다.
 
그녀의 병명은 ‘장중첩증’이었다. 이는 극도의 과로와 제대로 먹지 못한 영양부족 탓이었다. 샘골교회의 부흥은 주변에 반월중앙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가 태동하는 모체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한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종된 것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우리들 또한 전파하여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진화론을 믿거나 혹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아무 관심이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미신을 신앙으로 따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상식적이지 않은 미혹의 영에 빠져 사는 이들도 있다. 사람을 신격화해서 신봉하는 어리석은 이들도 있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 들 중에 힌두교를 신봉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든다. 뱀이나 코끼리나 원숭이를 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신앙이 한 나라, 한 민족의 일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복 중의 복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 하나님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시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 인용한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는 말씀은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하는 천지 창조의 첫 장면을 인용한 말씀이다. 무슨 말씀인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 “빛이 있으라" 하고 말씀하심으로 이 세상에 빛이 창조되었다.
 
그 창조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그를 믿는 성도들의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 전파의 첫째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치기 시작하면 그 삶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성도들은 세상의 빛이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아가길 원하신다. 이는 가족들에게도 그렇고 세상의 이웃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은퇴한 퇴직 교사가 있었다. 그는 교감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교장도 아니었다. 해마다 한결같이 30년 동안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담임 맡아 가르쳐온 교사였다. 그는 은퇴 후에 밤이면 지난날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첩과 졸업 앨범을 펼쳐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고는 했다.
 
“이 아이는 참 말썽꾸러기였지. 그래도 잔정이 많고 얼마나 심성은 고운 아이였나 몰라."
“유진이는 참으로 의젓하고 밝고 총명한 여학생이었어. 병든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지. 그래서 가끔씩 나는 쌀과 반찬거리를 마련해 다가 그 집 앞에 몰래 놓고 돌아오고는 했지. 엄마가 아프셔서 그랬는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어 엄마의 병을 고쳐 드리고 싶다고 말하고는 했지....”
 
그처럼 늘 과거를 회상하던 그가 아침 산책을 다녀 온 후에 집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급하게 병원에 모시고 가서 보니 폐암 말기였다. 회복의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자녀들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와서 모셨다. 지난 날의 제자들이 퇴직한 스승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날이면 날마다 문병을 오고는 했다. 아버지는 약한 중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제자들 사이에 둘려 앉으셔서 옛 이야기를 하시고는 했다. 그런 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밤새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 내며 잠 못 이루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모두 다 지쳐 가고 있었다. 가래 끓는 소리는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나중에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서 대화도 불가능해졌다.
 
그런 어느 날 병원에서 파견된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젊은 여의사가 날마다 그 집을 방문하였다. 그 젊은 여의사는 환자의 곁을 지키면서 가래가 끓으면 젖은 가재를 손가락에 감아서 목구멍의 가래를 훑어 내고는 하였다. 20대 후반의 그 여의사가 방문하면 힘이 없던 아버지는 눈을 크게 떠서 눈 인사를 하면서 그를 반가워하고는 하였다. 하루는 아침부터 기침이 심하고 어느 날보다 더 가래가 심하게 끓고 있었다. 마침 그 집을 방문한 그 젊은 여의사는 가족들에게 음료수 빨대를 갖다 달라고 요청하였다. 무엇에 쓰려나 하고 빨대를 갖다 주자 그 여의사는 환자의 목구멍에  빨대를 꽂고 입으로 가래를 빨아내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상황이라 가족들도 당황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시던 아버지는 목에 가득찬 가래를 빨아 내 드리자 얼굴에 화색이 들면서 곤하게 잠이 드셨다. 두 어 달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경겁 중에 장례를 마친 가족들은 그 젊은 여의사를 보내 준 병원을 찾아 갔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그런 여의사를 파견해 드린 적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몇 주일이 지난 후에 아프리카에서 국제우편물이 날아 왔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과거에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저와 저희 어머니가 모르게 쌀과 반찬을 갖다 주시던 것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조차 한 번도 드리지 못했던 저는 선생님과 어머니와의 약속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지금 저는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국경을 넘어 다니며 선교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모처럼 한국 방문길에 선생님을 수소문하여 찾았으나 선생님은 폐암 말기로 몹시 쇠약해져 있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에 선생님은 ‘우리 유진이는 사람의 몸만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사람의 아픈 마음도 헤아려 주고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하며 격려해 주시던 말씀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토록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마음도 치유해 주는 의사로 살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선생님.”
아프리카에서 날아 온 이 편지를 받아 든 가족들은 이 젊은 여의사 제자의 편지를 고인의 묘소 앞에 갖다가 고이 펼쳐 놓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둠을 이기신 빛의 근원이시다.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고, 소망으로 절망을 이기며, 믿음과 신뢰로 불신과 의심을 이기는 삶을 살며 불평과 원망 대신에 감사함으로, 반목과 대립 대신에 평화로운 서로의 관계를 가꾸며 살아가는 것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추어진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가 다 그런 가족,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의 연합, 그런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가꾸어 가야만 할 것이다. 아멘
 

질그릇에 담긴 보배.
우리가 전파하는 또 한 가지는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인생이지만 내게 허락하신 이복음의 보배를 간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인간처럼 약한 존재도 없다. 인간이 병들거나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면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처럼 나약한 인간의 마음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복음을 선물해 주셨다.
 
가령 사도 바울은 몹시 병약한 평생을 살면서 복음을 전파하다고 순교하였다. 그는 자신이 질병으로부터 고침 받기를 위하여 ‘육체의 가시’가 사라지기를 하나님께 세 번 간구하였다. 세 번이란 하나, 둘, 셋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차례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으나 하나님의 그를 향한 응답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는 응답으로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하실 뿐이었다. 실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약할 그 때에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수도 없이 체험하며 쓰임 받고는 하였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그의 약함을 자랑하고 약함을 기뻐하였다. 사도 바울은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뻐하노라.”(고후12:10)고 고백하였다.
 
그렇지 않나. 교회에도 보면 약할 때 겸손하고 겸비하던 이들이 세상적으로 지위가 높아지고 돈 꽤나 벌고 삶이 형통해지기 시작하면 교만해 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나마 있는 것 같던 신앙과 은혜를 다 까먹고 만다.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 권력과 돈과 명예와 세상 출세와 인기가 신앙을 이기고 만다. 그때부터 신앙은 병들고 만다. 직분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기도나 말씀이나 예배의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농사가 잘되어 창고를 늘려 지은 부자 농부의 비유와 같다. 그 비유의 끝에서 주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부르면 네 가진 소유가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인간이 지혜로운 것 같아도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른다. 아이성 전투의 뽑힌 특전용사 중 하나였던 아간이 그랬고, 사울 왕이 그랬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그랬고, 예수의 제자들 중에 도시 출신인 잘났던 가롯 유다가 그랬다. 다윗 왕의 아들들 중에서는 외모와 능력과 역량 면에서 다른 왕자들보다 뛰어났던 아들 압살롬이 그랬다. 교만하면 안 된다. 자랑하면 안 된다. 뽐내면 오래 못 간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쓰신다. 심히 큰 능력은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깨닫고 보면 매사가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훈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것이 무슨 말인가.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주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당하지 않으며
맞아서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
 
그렇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지난 이천년 기독교 선교 역사에 믿음으로 산다는 사람들이 이래서 삐지고, 저래서 주저 않고, 이래서 낙심하고 저래서 죽은 자처럼 쓰러져 있었다면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이 여기까지 번져 올 수 있었겠는가. 
 
신앙생활에는 후퇴란 없다.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처럼 그렇게 평생토록 쓰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 감 같이 그렇게 성령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이다.
 
미국의 두 팔 없이 태어난 제시카 콕스(Jessica Cox, 1984-)는 그런 몸으로 건강한 사람 이상의 삶을 살아간다. 젓가락질, 글씨 쓰기, 화장, 캔 뚜껑 따기, 컴퓨터 등등 모두 두 다리와 열 발가락으로 해결한다. 피아노 연주, 수영, 자전거타기, 태권도 3단, 심지어는 3년간의 노력 끝에 비행기도 조종사 자격도 땄다. 미국 아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오늘 날 그는 세계를 날아다니는 동기 부여 유명 강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도는 세상과 죄와 절망과 환경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딸 다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생명 주신 것 감사하며 시간과 세월과 재주와 역량을 사장시키지 말고 갈고 닦아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과 의를 위하여 쓰임 받는 충성된 천국 일꾼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수의 생명.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을 일생이라고도 한다. 이 세상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그 어느 누구나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 생애에 남은 날들로 하면 오늘은 가장 젊은 날이다.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살아서 일 년을 살고 한 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왕의 생도 한번이고 세계적인 재벌의 생도 단 한번이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도 다시 태어나 살 수는 없다.
 
환생을 말하거나 윤회를 말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의 시간관은 직선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계21:6)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우리의 짧은 생각이나 소견이나 주장이나 경험이나 철학이나 입장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아는 빛을 받아 전하는 것이다. 주를 믿는 성도된 우리는 질그릇처럼 연약하나 우리 안에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복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연약하나 우리 몸이 나타나는 예수의 생명을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언제나 항상 죽음과 생명 사이에 끼어서 살아간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자와 같은 고난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예수의 생명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12절의 말씀은 그런 사도 바울의 심정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고백한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이 말씀은 자신을 비롯한 복음 전도자들이 그 어떤 고난, 그 어떤 시련, 그 어떤 환란, 그 어떤 핍박, 그 어떤 역경을 겪을지라도 상대방에게 ‘예수의 생명’만 증거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하리라는 복음 전도자의 고백이다.
 
그렇다. 예수의 죽음, 예수의 생명 즉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다시 오실 재림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10절에서 말씀하는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살고,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는 삶이란 곧 갈라디아 2장 20절의 삶이 아닌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지난주일에 대한 로마서 8장 17절의 말씀 또한 그러한 말씀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것이요.”(딤후2:11)
오늘의 성찬이 이와 같은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다시 새롭게 하는 아침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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