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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Ⅱ(요20:24-29) 201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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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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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4-08 22:58 조회 13,204 댓글 0
 
부활신앙Ⅱ(요20:24-29)             2018. 4. 8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 중에는 화가 ‘카라바치오’의 <의심 많은 도마>라는 그림이 있다.  도마가 예수의 허리에 있는 창으로 찔린 자국의 흔적을 확인하고 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외경 중에는 제자 도마가 썼다고 전해지는‘도마행전’(Acts of Thomas)에는 예수께서 부활 하신 이후 몇 번씩이나 더 도마를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신약성경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단 한번만 도마를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도마행전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도마를 인도에 보내어 전도하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인도 북부 타지마할(Taj Mahal) 인근의 ‘화테푸르 시키리’(Fatehpur Sikiri)에서 발견된 돌비석에도 적혀 있다고 한다. 도마가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다. 도마는 선교지인 인도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인도의 아유타 국의 공주 허황후가 가야의 김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하여 왔을 때 그 당시 한반도까지 동행했다는 설도 있다. 특히 경북 영주시 평은면 왕유동에는 히브리어로 새겨진  암석이 있는 데 그것을 ‘도마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도 그것은 더 분명한 고증 자료들이 필요하지만 히브리어만은 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한국의 역사신학자 중에는 도마가 인도를 거쳐 가야 시대에 한반도에 와서 김해를 중심으로 전도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김수로왕의 왕릉에 오병이어에 대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자, 이런 이야기에만 너무 귀가 솔깃하지 마시고............)
 
요한복음의 본문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 중의 하나인 도마를 만나 주신 장면이 나온다. 도마의 이름은 ‘디두모’라고도 한다. ‘디두모’는 헬라어이고 ‘도마’는 아람어이다. 그 뜻은 ‘쌍둥이’라는 의미이다.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숨어 있던 곳을 방문하셨을 때에 거기에 없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숨어 있던 것에 비하여 도마는 밖으로 나 다닌 것을 보면 그는 베드로 보다 훨씬 용감하고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요한복음 11장 16절에 보면,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가“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이런 표현을 한 것 보면 다른 제자들과 달랐던 것이 분명하다.
 
뒤 늦게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해들은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반응하였다.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여드레 째 되던 날도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숨어 지내듯하였다. 그 곳에 예수께서 다시 찾아 가셨다. 그 날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그 날 있었던 주님과 제자 도마와의 사이에 있었던 말씀을 대하는 중에 은혜가 되길 원한다.  

평강한 자가 되라.
예수께서 부활하시던 날에도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 가셨다. 그리고 하신 첫 말씀은“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는 인사였다. 부활하신 후 여드레가 지난 날 다시 제자들을 만나신 주님은 여전히“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인사하셨다.
본문에 26절에 보면 다시 한 곳에 모여서 문들마다 다다 걸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설명해 놓았다. 여전히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웠으면 문들마다 굳게 닫고 한 곳에 모여 있었을까. 그런데 그들을 찾아 가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문안하신 것이다. 물론 ‘샬롬’하고 인사하는 이와 같은 인사는 예수께서 평소에 늘 제자들과 나누시던 인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불안하고 착잡하고 자신들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심란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던 제자들이었다. 그런 저들 제자들에게 주께서 하신 문안 인사는 한결 같았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어떤가. 어려분의 가정에 가장 많고 가장 집안 가득하였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주식인가. 금고 가득한 금과 은과 다이아몬드와 각종 진기하고 값비싼 보석인가. 건강보조식품인가. 나라에서 준 훈장인가. 뭐가 집안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나.
 
생각해 보면 가족 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평강(平康)한 일상생활이다. 넓고 좋은 집에 못 살아도 좋고, 잘 못 먹어도 좋고, 좋은 옷 못 입어도 좋다. 집안에 평화가 금가고 평강이 깨어지면 넓은 집이 무슨 의미가 있고 좋은 차가 무슨 소용이 있고 좋은 옷이 뭐가 그렇게 좋고, 맛있는 음식이 뭐가 그렇게 맛이 있게 되나. 그러므로 가정이 평안하고 화목하고 평강한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코카서스 세 나라 중의 하나가 아르메니나,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조지아(Georgia)라는 나라이다. 지금이야 독립한 국가이지만 오래도록 소련의 지배를 받던 나라이다. 일찍이 기독교 국가로 발전해 오던 평화로운 나라이다. 국기에는 붉은 색 십자가가 5개나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남한의 1/15 정도로 작은 국토 면적이다. 인구는 500만 명 정도가 산다. 우리나라에도 산이 많은데 그 나라의 2/3가 산악지대이다. 그 나마의 평원에는 목축을 하거나 포도 농사를 주로 한다. 조지아의 러시아식 발음은 구르지아이다.
 
조지아 출신의 알려진 인물 중의 한 사람은 이오시프 죠셉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이다. 스탈린은 레닌에 이어 소련의 제2대 공산당 서기장에 올라 30여 년 간 통치했다. 그는 유독 자기가 태어난 나라인 조지아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대하였다. 스탈린의 본명은‘이오시프 주가시빌리’이다. 조지아의 작은 소도시 ‘고리’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는 성직자를 원해서 트빌리쉬신학교에 진학했었다. 그러나 몹시 가난하고 난폭한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의 무자비하고 끝없는 폭력으로 인해서 그의 가슴 속에는 점점 반항심과 분노심이 차오르고 있었다.  결국 신학교를 중퇴하였다. 그 후에 마르크스의 폭력 혁명론에 빠져든 스탈린은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혁명가의 선봉에 섰다. 스탈린은 레닌의 총애를 받았고 34살 때인 1912년에 볼셰비키 중앙위원에 등용됐다. 이 때부터 본명을 버리고 러시아어로 ‘강철인’이란 뜻의 ‘스탈린’이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신은 조지아인이 아닌 러시아인이라 불리어지길 원했다.
 
스탈린의 잔혹함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그가 1922년 제2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르면서부터다. 소련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그는 자신의 혁명을 반대했던 조지아인들은 물론 1인 지배를 공고히 하는데 방해되는 주변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1934년부터 3년 넘게 이어진 대숙청 시기엔 친인척들까지도 처형하며 철권통치를 본격화했다.
 
이 시기엔 산업화와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하며 근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심한 착취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굶어 죽었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아버지는 상대방을 인민의 적으로 판단하면 어떤 인연이든 소멸하였다”고 아버지 스탈린의 폭력성을 고발하였다. 스탈린의 지나친 광기에 무수한 사람들이 숙청당하자 조지아 사람들은 그를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 부르기도 했다.
 
스탈린의 일생은 한 사람에게서 떠나가 버린 평강, 한 가정 혹은 한 젊은이의 피폐해진 마음이 세상에 어떤 해와 악을 끼치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과거이든 오늘 날이든 주를 믿는 신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평강’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평강을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께서 이룩하신 평강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주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평강을 선물해 주신 구세주이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평안을 너에게 주노 라’라는 찬양이 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기쁨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을 너에게 주노라
 

믿는 자가 되라.
부활 후 여드레 만에 제자 도마를 만나신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친히 도마의 손가락으로 예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에 넣어보고 확인하라고까지 하셨다.  그리고“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분부하셨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라.” 그리고 반대로 “믿는 자가 되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도마는 예수를 삼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에게 그렇게 충고하셨다. “도마야 너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는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교회도 다니고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기도 좋아하고 하지만 내 속에 꽉 찬 불신앙의 여리고 성과 같은 장벽을 느끼지는 않는가. 늘 해결되지 않는 불신앙말이다. 사사 건건 믿어지기는커녕 비판적이고 냉소적이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의심이 가고 그래서 내 믿음이 자라나야 할 것 같은데 항상 그 타령인 그런 상태 말이다.
 
믿음이 자리 잡기 전에는 주를 위한 충성, 헌신 뭐 이런 것들이 다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지난 주말에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병원 원장으로 지내던 중에 노년기를 맞이하면서 필리핀의료 선교사로 떠나기 전에 파송 예배를 드린다는 초대장을 받아 보았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났다. 60여 년 전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난 다는 환경이 그렇고 그렇지 않나. 그런 그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평생 의사로 지낸 그가 초로의 나이에 낯설은 필리핀 땅에 가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기를 결심하게 된 배경, 동기...그런 것을 상상해 보라.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벌어 모아 놓고 노년기에 안정되게 노후를 즐기며 살겠다는 식에 생활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대개의 모습이라면 그는 달랐다.
 
대한매일신보는 1909년 10월 9일 잡보란에 '미국 부인 별세'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이십여 년 전에 한국으로 와서 이화학당을 처음 설시하고 여자 교육에 열심하던 미국인 시크란돈씨의 대부인(메리 F. 스크랜턴, Mary F. Scranton, 1832-1909)이 수개월을 신음하다가 작일 상오 8시경에 별세하였는데 명일 하오 1시에 장례식을 상동회당 안에서 거행하고 2시에 양화진(楊花津)으로 발인하여 안장한다더라.'
스크랜턴 여사는 1886년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한국에서 근대적인 여성 교육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미국 감리회 해외 여선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여사는 1884년 52세 때 한국에 파견되어 1885년 서울에 도착했다. 서양인에 대한 편견과 의도적인 기피로 인하여 스크랜턴 여사의 초기 한국생활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여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한국의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한국 여성의 열악한 삶의 조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여성에 대한 근대적 교육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이듬해 스크랜턴 여사는 경성 황화방(皇華坊; 지금의 중구 정동)의 한옥에서 한국 최초의 사립 여성교육기관의 문을 열었다. 기독교 정신에 기초하여 한국여성을 당당한 사회인으로 양성하고자 했던 이 학교는 몇 안 되는 학생으로 초라하게 출발하였지만 1887년 2월 고종황제가 외아문(外衙門)을 통해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함으로써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출발한 작은 규모의 학교였음에도 최초의 근대적인 여성 교육기관으로 국가의 공인을 받은 셈이다. 스크랜턴 여사의 활동은 여러 차례 신문에 보도되었고, 이화학당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행사가 모두 기삿거리가 되었다. 학당 안에서 거행된 신식 결혼식도 신문에 올랐고, 학당의 학생들이 봄놀이를 나가는 광경까지도 화제(독립신문, 1899. 5. 1.)가 되었다.
 
스크랜턴 여사는 이화학당의 규모가 커지자 학제를 정비하고 중등과를 설치했다. 그리고 보통과와 고등과를 신설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초등교육에서부터 고등교육에 이르는 일관된 교육과정과 학제를 갖추었다. 1908년 6월, 제1회 중등과 졸업생 5명을 배출했다. 정동 감리교 제일회당에서 거행된 이 졸업식은 각부대신들도 참여할(대한매일신보, 1908. 6. 13.)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스크랜턴 여사는 한국의 여성의료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여성병원 설립기금을 본국에 요청했다. 1887년 미국 감리교 의사인 M.D. 하워드씨가 한국으로 파견되어 이화학당 구내에서 여성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명성황후는 이 같은 여성 의료사업을 치하하고 보구여관(保救女館)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보구여관은 최초의 여성 전문 의료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곳을 기반으로 여성에 대한 의학교육도 병행할 수 있었다. 한국의 여성교육과 여성 의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스크랜턴 여사는 기독교 정신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한국에 남길 원했고, 끝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혔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이화학교, 수원 매향여자고등학교등을 설립하였다.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도 우리나라에서 평생토록 선교한 선교사 가족들이다.
 
의심 많던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 곁에서 그의 손의 못 자국와 옆구리의 창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길 원하던 그 현장에서 역사적인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My Lord and my God!"
 
이와 같은 고백은 감탄사에 가깝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렇게 외친 것이니 말이다. 예수의 부활을 똑똑히 확인한 도마가 감격에 겨워서 소리 지른 감탄사에 가깝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성경에서 무엇을 믿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시면 나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는 고백이 다르고, 찬송이 다르고, 기도가 다르고, 섬김이 다르고, 충성이 다르고, 헌신이 다르고, 열심히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고, 씀씀이가 다르고 다 다르다.
 
한 생애 주님 믿고 살면서 믿음이 없는 자로 살지 말고 믿는 자 답게 살아가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복된 자가 되라.
누가 과연 복된 자인가. 임금인가. 대기업의 총수인가. 팔로어가 수 백 만, 수천만, 아니 수억 명씩 따르는 인기 연예인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복된 자란 어떤 자인가.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그렇다.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이 훨씬 더 복된 자들이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 하신 이후의 세대들은 예수를 본고로 믿는 자들이 아니다. 보지 못하였으나 믿는 자들이다. 믿음이 왜 복된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교훈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그렇다.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건설하며 하나님의 하시려 하시는 일에 준행하였다.  나이 75세된 아브라함은 경수가 끊긴지 오랜 나이 65살 된  아내 사라를 통해서 아들 이삭을 주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25년 후인 아브라함의 년세 100세 때에 90세된 아내 사라를 통하여 주시는 언약의 아들 이삭을 낳아 품에 안았다.
 
그 믿음이 연약해 지고 흔들릴 때에 아내 사라의 말을 덜컹 받아들이고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침소에 들여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왜 이스마엘은 아닌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태어난 아들이 아니란 말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왜 믿음이 복된 것인가. 하나님은 믿음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이 하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주를 기다리고 주님이 행하시기를 바라는 것이 복된 믿음이다.
 
우여곡절과 믿음 생활의 시행착오를 수 없이 경험한 베드로는 그의 편지인 베드로전서 1장 8-9절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맞다. 이 믿음은 소중하고 존귀한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믿음에 대하여 이런 말씀도 전해 주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불같은 시험이 많다. 그러나 이기고 살아야 한다.
왜 그런가. 그래야 복된 자이기 때문이다. 450장 찬송 “내 평생소원 이것 뿐”의 가사가 무엇인가.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꿈같이 헛된 세상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살 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
 
어린이이든, 젊은이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주의 일에 충성되게 살면서 믿음 있는 자답게 살아 복된 역사를 이루어가는 주인공 그런 가문을 이루기를 축원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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