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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받은 구원(엡2:1-10)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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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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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3-15 17:09 조회 14,998 댓글 0
 
                     은혜로 받은 구원(엡2:1-10)          2018. 3. 1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도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에베소서 2장 8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 가운데 복음의 핵심이 모두 다 담겨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받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그 구원의 은혜를 깨달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는 은혜는 하나님 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고 인간은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구원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혀 주시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본문 5-6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함께 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된다. 그리고 “살리셨고,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세 가지의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이룩하신 구원의 역사이다.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부활, 승천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시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정리해서 설명해 준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로 받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누리는 그 하늘나라의 영광을 더불어 누리는 자로 변화 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로 받는 구원이다. 

세상적인 지위나 권세가 조금 더 올라가도 사람들은 어깨에 힘을 주면서 살아간다. 
옛날 시골에서는 이장 면장 군수 그랬다. 그래서 관개수로 사업이 잘 안정 되기 전에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만 의지해서 농사하던 천수답 농사의 때에는 한창 농사철에 논에 물을 대는 일이 일 중의 일이었다. 그러하다 보니 시골 사람들이 논밭에서 농사하면서 누구네 논에 물을 좀 더 먼저 대느냐 누구네 논에 물을 좀 더 많이 대느냐의 문제를 갖고 서로 실갱이를 하고 민감하게 대하였다. 

그러다가 불화라도 생기는 날에는 ‘니가 이장이냐 면장이냐’하면서 으르렁 거리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 간에“자네가 이장 면장 다 해 먹어라.”하며 삽자루를 집어 던지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어려서는 이장이나 면장이 대단한 지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위에 군수도 있고 시장도 있고 도지사도 있고 대통령도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시골 사람들은 누구네 애들을 칭찬할 때에 풍성하게 해 준다는 칭찬이 “너 대통령감이다. 너 장군 감이다.”라고 덕담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커서 보면 그런 자리들이 참으로 얼마나 복잡하고 참으로 얼마나 민감한 자리인데도 말이다. 그 높은 권력 그 다음에 드나드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알면서도 서로 그 길을 가려하고 그 자리와 그 지위를 탐한다. 

세상은 죄와 악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인간의 허물과 악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해법을 경험에 근거해서 전해 주고 있다. 1절에 나오는 허물과 죄에 대하여 보라. 허물과 죄의 차이가 뭘까. 허물이란 ‘함께 넘어지다’는 뜻의 ‘위반’을 말한다. 그리고 ‘죄’란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성 어거스틴은 이 본문을 해석하면서 ‘허물’은 고의성이 없는 악이고, ‘죄’는 고의성이 있는 악이라고 설명하였다. 여하튼 바울이 이런 단어들을 동원해서 설명하려고 한 것은 타락한 인간의 악이다. ‘죽었던’이라는 상태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대하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상태를 말한다. 

자 그러면 본문을 통해서 ‘은혜로 받은 구원’이란 제목으로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묵상하도록 하자. 

그 때에 그리고 전에는.
구원 받기 이전의 인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다.
구원 받기 이전의 인간은 늘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늘 이 세상 풍조를 따랐다. 여기서 ‘세상 풍조’란 하나님을 거슬리는 모든 인간의 악을 거론하는 것이다. 세상 풍조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삶이라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느냐 아니면 마귀의 지배를 받느냐 둘 중의 하나이다. 바울 사도의 논리에 따르면 그 중간 상태란 없다. 거듭 나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기 이전의 모든 인생들은 다 그런 상태에서 살던 자들이다. 바울 자신도 말한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자신의 과거의 삶을 포함하여 설명하였다. 이 설명 중에서 2절에 나오는 ‘불순종’이란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별의 별 사건 사고들을 보라. 인생을 부끄럽고 불행한 악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인간이 탐심과 탐욕과 죄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불순종이 아닌가.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안에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그렇게 허물과 죄가 덕지덕지 한 상태에서 자신을 숨기고 살아 갈 수 있겠는가. 한센 병 환자들이 일상생활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되던 것처럼 숨겨진 인간의 죄와 허물과 악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나면 그 허물과 죄로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악으로 치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하는 세상의 풍조를 보라.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접하고 받아들이기 이전의 불순종의 상태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허물과 죄 앞에서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로마서 7장 17-25절까지에 보면 사도 바울 자신이 그런 죄의 문제를 안고 괴로워하고 씨름한 흔적이 역력하지 않나.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이 얼마나 솔직한 신앙인의 자기 고백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아니고는 구원 받을 수 있는 인생이란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크신 사랑이다. 
우리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쉽게 다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란 어떤 사랑인가. 우리는 그렇게 찬송하지 않나. 304장 찬송,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람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 찬송의 절정은 3절이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네”

그렇지 않나. 깨닫고 보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란 그런 사랑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각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허물과 죄로부터 살아 날 수 있는가. 그런 길이란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다. 할렐루야. 이러한 구원은 우리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인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인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인가. 무슨 역량이 있어서인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죄와 허물에서 구원할 수 있는 무슨 힘과 능력이 있는가. 없다. 전혀 없다. 그런 우리 각 사람의 영혼을 허물과 죄로부터 건져 구원해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딸들이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던 인생들을 한 영혼 한 영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 주셨다. 이것이 그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선물인가.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1926-) 2세는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16개국을 대표하는 여왕이다. 그녀의 후손들은 증손자들에 이르기까지 할머니가 여왕이기에 할머니의 모든 생활공간에 그 모든 혜택과 왕족의 후손의 영광을 더불어 누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4대가 이 땅에서 살아간다. 엘리자베스는 올해 92세다. 1952년에 여왕에 등극하였으니 올해로 66년째이다. 저 지난 해에 90세 생일잔치를 국가적으로 풍성하게 하였다. 그 영광을 본인뿐만 아니라 남편과 온 가족과 자손들이 모두 다 함께 누린다. 

성도가 누리는 구원 받은 자의 은혜란 그런 것이다. 공로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구원이기에 더욱 더 귀한 것이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여건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와 긍휼과 인애와 사랑을 날마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받는 자녀의 권세를 덧입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그 넉넉하신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덧입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적으로도 부모가 누구냐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성도들은 세상 부모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맏형이시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우리를 친구 삼기를 원하신다. 누구라도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라면 구원 그 자체를 자랑할 수 있지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 공로나 행위로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모든 믿는 자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지난 1월 15일에 미세 먼지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겠다고 서울시가 나서서 하루동안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무료로 승차하게 하였다. 서울 시청과 구청등 공공 기관 360곳의 주차장을 하루 종일 폐쇄하고 대중교통 사용을 권장하였다. 물론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도시든 농촌이든 공기란 것이 누구나 다 같은 하늘 아래서 서로 같이 마시며 생활하는 것이다. 부자라도 산소통 메고 다니며 사나. 아니다. 권력자라고 부자라고 서민과 다른 공기 마시며 사나. 물론 실내에 있는 동안에 제대로 된 공기 청정기를 사용하여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성도가 받는 구원의 은혜란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라도 자랑할 수 없다. 이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깨닫고 나면 구원 받은 감격을 갖고 은혜에 빚진 자의 마음가짐을 갖고 세상을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선교 현장에 나서는 것이 아닌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깨닫고 나면 내가 받은 그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하면 이웃에게 전하고 나누며 살까 하고 거룩한 부담 가운데 살아가게 마련이 아닌가.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 1862-1931)선교사는 미국 인디아나주에서 출생하였다. 매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29살 때인 1891년 부산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사랑방 문화를 깨닫고 사랑방전도를 시작했다. 당시 조선 양반들의 집에는 사랑방이 있었다. 이곳은 외부 손님들을 접대하거나 모임이 이루어지는 등 사람들 간에 대화와 교제가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리하여 베어드 선교사는 자신의 집에도 사랑채를 짓고 그곳에 누구든지 모일 수 있도록 개방했다. 그곳에서는 기독교 문서를 배포하거나 집회와 기도모임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사랑방은 선교사역의 거점이 되었다. 사랑방을 떠날 때는 주로 전도여행을 갔는데 가는 곳곳마다에서 복음을 전했다.

당시 부산에는 교회당이 없었다. 사랑방모임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랑방모임은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고 부산에 처음으로 교회당이 세워졌는데 그것이 바로 초량교회다. 그의 선교 열정은 오늘 날의 대구제일교회, 오늘 날의 대구 계명 대학교로 발전하는 초석이 되었다. 

윌리엄 베어드는 학업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도 철학과 신학공부를 계속하여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의 교육열에 의해서 세워진 대학이 평양의 숭실대학이다. 이는 오늘 날 서울 숭실 대학의 전신이다. 이미 사랑방에서부터 시작된 ‘중등반’은 1901년 ‘숭실학당’으로, 1905년 이후로는 실질적인 대학교육과정으로 이루어져 ‘숭실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고당 조만식 장로도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사랑을 입고 큰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평양숭실대학은 일제강점기 을사보호조약 반대운동, 3.1 만세운동, 105인사건, 광주 학생운동 등 당시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 또한 한반도에 교회를 만드는 전도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10년에는 학생들이 학비를 아껴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수많은 독립운동의 주역들을 배출하였다. 베어드는 신학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보수적이었고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평양숭실대학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엄격히 반대하다가 1938년 결국 폐교 조치를 당하게 되었다.

그의 부인 애니 베어드(Annie L. Baird, 1864-1916)는 한글로 물리학, 동식물학 교과서를 번역하고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안타깝게도 암으로 52살에 주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가 지은 찬송시 중에 하나가 387장 찬송, “멀리 멀리 갔더니”라는 찬송이다. 그 3절은 이렇다.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아내를 장례 한 후에 윌리엄 베어드는 숭실대학교 학장을 사임하고 성경을 번역하는 일과 기독교 문서 출판을 통한 문서 선교사역에 전력을 다하였다. 계속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그는 선교사로 한학자로 교육자로 헌신하다가 1931년에 69살에 장티푸스로 평양에서 눈을 감았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이전에 허물과 죄에 빠져 살던 죄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풍성하신 은혜와 긍휼을 깨달아 알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주 안에서 거듭난 자녀답게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자 다운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는 사람을 살리는 종교다. 죄에서 건지고 악에서 건지고 허물에서 건지고 사망에서 건져 내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그 크신 사랑을 찬송하며 그 입은 은혜와 구원의 감격을 누군가에게 전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어제(2018. 3. 10) 인터넷 뉴스다. 뉴질랜드에서 한 남자가 바비큐 파티에서 고기를 먹다 목에 걸려 질식해 쓰러졌다. 옆에 있던 여자 친구가 커터 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기도를 절개해 구조하는 일이 일어났다. 뉴질랜드 헤이스팅스에 사는 이작 베스터(50)는 지난 달 조산사로 일하는 여자 친구 새러 글래스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목장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다 스테이크 조각이 목에 걸리면서 질식해 쓰러졌다. 친구들이 달려들어 질식 상태에 빠졌을 때 실시하는 하임리히 요법을 썼는데도 베스터는 얼굴색이 보라색으로 변했다가 검어지고 심장박동이 약해졌다.

그러자 재빨리 여자 친구인 새러 글래스가 상황 판단을 하고 칼을 찾았다. 친구 중 한 명이 커터 칼을 집어주자 새러 글래스는 침착하게 베스터의 설골(舌骨) 아랫부분 기도를 칼로 절개했다. 친구 한 명은 재빨리 산소 호흡기가 달린 가정용 출산 장비를 가져다가 베스터의 뇌에 산소가 계속 공급될 수 있도록 도왔다. 만일 산소 호흡기가 없었다면 베스터가 살아난다고 해도 뇌나 장기에 손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했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져 사흘 가까이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를 더 입원했다. 현재 회복단계에 있는 그는 가슴이 통증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회복되고 있다는 뉴스다. 글래스는 그 후 위험하고 스트레스가 큰 처치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는 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무엇하는 곳인가. 신앙생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 한 사람 겨우 구원 받고 신앙 유지하는데 그쳐서야 되겠는가. 나를 통하여 또 누군가가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도록 하는데 계속하여 쓰임 받는 우리 각 사람이 모두 다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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