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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이신 여호와(시118:25-27)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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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3-20 00:27 조회 17,908 댓글 0
 
29절로 되어 있는 시편 118편의 말씀을 오늘 3주째 주일마다 묵상해 가고 있다. 구구 절절이 반복되는 표현이 ‘여호와’라는 표현이다. 시편 전체를 대해 보아도 시편 1편부터 150편까지 가장 자주 언급되는 하나님 표현이 ‘여호와’라는 표현이다. 시편 1편에도 보면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다. 그 유명한 시편 1편의 마지막 절인 6절은 “무릇 의인들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인 성도의 특징은 계속하여 여호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마지막 시편인 시편 150편의 마지막 절인 6절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끝난다.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계속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에게 기도하고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에게 찬양을 올려 드리며 살아가는 생활인 것이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히브리어의 네 자음인 YHWH 즉 만들어진 이름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대표적인 이름이 야웨, 야훼, 여호와라는 이름이다. 발음이 조금씩 다를 뿐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고 두려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을 쓸 때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표기하는 것조차 두려운 마음을 갖고 아도나이(adonay) 즉 ‘주’(主)라고 기록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13절부터 15절까지 하나님과 모세와의 대화의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의 동족들에게 뽑아 지도자로 보내려 하실 때에 모세는 몹시 당황하였다. 그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하나님을 소개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 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그르쳐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 스스로 “영원한 이름” 이며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라고 소개해 주셨다.(출3:15)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하나님 표현은 무슨 뜻이 있기 보다는 그냥 그분 자체를 지칭하는 표현인 것이다. 오늘 본문인 27절에 보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그분,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우리 인간은 상대자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역사 중에  살아가는 단지 인생일 뿐이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고 인간은 한계 속에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창조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섭리자이시다.

그 분, 하나님이신 여호와, 여호와이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온갖 범사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어떤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가.

구원(救援)하여 형통(亨通)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25절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제 구원하소서.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개인을 향한 구원과 형통의 온갖 복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길흉화복(吉凶禍福)이 그분의 손 안에 있다. 우리가 자주 부르지 않지만 찬송가 1장의 가사를 기억하는가.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 아멘”

그렇다. 이와 같은 고백 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이 같은 고백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교만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인생을 헛사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의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가치들보다 더욱 더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마음에서 출발해야 인생이 인생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복 즉 만복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구원과 형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한해의 논과 밭과 바다의 농사가 그러하다. 나라와 민족의 모든 일이 구원하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가정과 개인의 나날도 마찬가지다.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교만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지금 잘되어 가고 있고 지금 형통하다고 해서 어리석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는 재물의 문제와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누가 부요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가난하게 사는 게 아니다. 누가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병약하게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매사가 그러하고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의 말씀과 사역의 현장을 기록한 복음서의 내용들을 보라. 거의 모든 사건들이 인간의 한계 앞에서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령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산상수훈이 끝나지 마자 마태복음 8장을 시작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절하면서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는 요청이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고 말씀하시자마자 그의 나병이 깨끗하게 낳았다. 그 이후에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네 병 낳은 것을 보여 주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서  병 나은 것을 입증하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곧 이어 나오는 치유 사건이 있다. 중풍병에 든 하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 왔던 백부장의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지역을 지나실 때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하도 간절하게 부하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환자 곁에 가시기도 전에 말씀으로 그 환자를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 사실 그 장면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예수님 바쁘신데 가실 것도 없으시니 말씀만 해 주세요. 그러면 제 하인의 중풍병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 남 다른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극찬의 말씀을 그 백부장에게 해 주셨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 우리들 가운데 이런 믿음의 주인공들을 만나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런 믿음의 주인공으로 살아 갈 수는 없는 것일까.

병을 앓아 본 사람들은 병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오랜 질병으로 고생하였거나 난치병으로 재산이 다 날아가고 가난과 질병 가운데 허덕여 본이들은 질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줄을 안다. 지금 건강하다가 항상 건강한 것도 아니고 지금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늘 그런 것도 아니다.

인간의 길흉화복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이영훈 목사의 <4차원의 영성 전도학교> 책에 보면 50페이지에 최복순 권사의 간증이 나온다. 그는 23살에 불심이 강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부유한 집 아들이었던 남편은 기회만 있으면 사찰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모든 살림을 새댁인 젊은 부인이 떠맡게 되었다.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지고 전세방에 가서 근근이 지내게 되었다. 남편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커 갔고 부부 싸움이 잦았다.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엇엔가 끌리듯이 그 주인 집에 들어가 끼어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경험을 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위로를 체험하였다. 그 후부터 교회도 다니기 시작하였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니 하는 일도 술술 잘 풀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전셋집에서 새 집도 다시 장만하였다. 가게의 매상도 점점 좋아졌다. 기도하는 중에 남편에게 새로운 직장도 생겼다. 남편에게 직장이 생기면 가게를 정리하고 주님만 위해서 일하겠다던 부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게도 정리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부지런하게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간증을 들은 이웃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불심이 대단하던 그녀의 남편도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교회 생활을 시작하더니 세례도 받고 집사도 되고 지금은 안수 집사가 되었다. 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던 그의 가정을 무시하던 일가친척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친척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구원하심과 형통하게 하시는 은혜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오늘 시편 기자처럼 구원과 형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성경의 역사나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나 다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에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말씀 중심으로 살면서 기도하고 간구한 이들 중에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형통하게 하심을 체험하지 못한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천하 만민 가운데 주를 의지하며 간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영원한 구원과 모든 형통의 근원이시다.

지금 무슨 슬픈 일과 답답한 일과 남에게 하소연 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일과 속이 상한 일과 초조하고 염려되고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초조와 우울과 낙담과 불안한 일들 가운데 지내고 있는가. 수고 하고 염려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인생의 문제를 갖고 주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면 주께서 우리 인생의 무거운 멍에를 쉽게 하시고 가볍게 하시고 쉼과 안식과 위로뿐만 아니라 지금의 골치 아픈 숙제들을 풀어 해결해 주시는 영원한 대답이 되실 것이다.

서로를 축복(祝福)하여 복(福)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시118:26)를 통해서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말씀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누구일까.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곧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자신이시다. 요한 계시록 1장 8절에 보면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고 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모든 모습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좋은 것으로 우리의 심령에 공급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요 은총이요 축복이다. 26절의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집은 서로를 축복하는 곳이다. 하님께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인정하고 힘을 북 돋아 주고 용기를 주고 축복해 주는 곳이 ‘여호와의 집’ 즉 교회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 그런 이상적인 교회를 가꾸어 가자.

여호와의 집 즉 교회 생활은 어른 아이 그 누구나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축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과 회복의 은총을 복으로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요즘 사순절 새벽 기도 기간에 지난 주 월요일부터 속별로 찬양을 준비하여 드리고 있다. 어제 토요일 새벽에는 청년들과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찬양하였다. 놀토가 아니라 학교에 가는 날 새벽인데도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 부른 273장 찬송의 가사가 이런 것이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주여 옵니다.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이 병든 맘을 고치려 이제 옵니다. 큰 힘과 소망 바라고 주여 옵니다.
 나 바랄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날 위해 죽임 당하심 믿고 옵니다.
 (::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뭐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찬송이다. 그러나 어린 중학교 일학년부터 청년들까지 부른 그 찬송의 가사를 들으면서 어린 나이에 저런 고백의 찬송이 가슴에 와서 닿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여하튼 주께로 나아오면 그 누구나 주님은 여호와의 집에서 모든 인생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축복해 주시는 줄로 믿는다.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27절에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라고 했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어둠과 흑암 속에 사는 죄악된 인생들 곁에 다가 오셔서 빛을 비추어 주시는 주님이시다.

지난 2010년 8월 5일 칠레의 산호세 구리 광산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약 70만 톤의 암석과 토사가 갱도를 뒤덮었다. 지하 700m 지점에 광부 33명이 갇혔다. 관계자들은 광부들의 생존 확률을 2%로 예상했다. 그러나 69일이 지난 10월 3일 그들은 모두 다 살아 돌아왔다. 매몰된 지 17일 동안 거의 굶으면서 사경을 헤매던 저들에게 18일째 되는 날 관통된 관을 통해서 액체로 된 마실 거리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매몰 21일째부터는 지하에 비디오카메라까지 설치되었다. 그들의 지하 갱도 700미터의 상황이 세계의 안방에 TV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세계의 최 현대식 공법이 총동원된 역으로 파들어 가는 직 갱도 공사가 성공하여 69일 만에 33명 모두가 다 살아난 것이다. 직경 46센티미터의 탈출 캡슐을 연결하는 공사에 성공한 것이다. 삶과 죽음이란 인간의 선택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흑암 가운데서 광명을 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죄와 악과 죽음의 영에 눌려서 사망 선고를 받았던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 은총이요 예수님의 절대 구원의 축복인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런 구원의 빛 된 광명의 영원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그런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이들의 절기 제물 신앙은 다른 것이다. 시편 기자는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라고 선언하였다. 구약 시대에는 감사제물을 드릴 때에 밧줄로 제단 뿔에 매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하고 영원하게 완성되었다. 예수님은 단번 제물로 화목제물 되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제물로서의 완전한 희생을 이루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제물로서의 생을 사시다가 죽으시고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의 생애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캄캄한 인생의 어둠과 흑암의 동굴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건져 내실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빛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그런 빛의 광명한 역사가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열방 가운데 영원한 빛으로 비추어 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

달리다굼이란 찬양이 있다.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어두운 죄악의 길을 걸어가다
상하고 찢기어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내 영혼 어둠속에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 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주님을 떠나서 세상을 향해
맘대로 고집하며 내 영혼 먼 곳으로 나갔었네
인생의 어려움 절망가운데
눈물과 한숨과 내 영혼 슬픔 속에 잠이드네
주님을 떠나서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 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 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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