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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르치라(신6:4-9, 엡6:4) 20170507 어린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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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5-08 21:46 조회 13,841 댓글 0
 

이렇게 가르치라(6:4-9, 6:4) 2017. 5. 7  어린이주일



 

어린이는 가정의 소망이다. 어린이는 나라의 꿈나무이다. 어린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여 보라. 사람은 태어나는 것만으로 사람다워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사람다워지고 양육을 통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늑대에게서 키워진 두 어린이가 있었다. 고아원에서 싱 목사는 2살과 7살 된 이 두 여자 아이들을 구출해서 돌보았다. 한 여자 아이는 1년 만에 눈을 감았다. 한 여자 아이를 9년 동안 돌보고 양육하며 일기와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1941, 미국의 덴버 대학과 엘 대학의 두 교수가 이 자료를 세상에 공개하였다. 인도 사람들 중에는 딸이 태어나면 종종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여자 아이들을 늑대가 젖을 먹여 키운 것이다. 작은 아이에게 '아마라', 큰아이에게 '카마라'라고 이름을 붙였다.

 

늑대 굴에서 자란 이 아이들은 네 발로 기고, 눈은 늑대와 같이 암흑 생활에 익숙하고 코는 대단히 예민했다. 네 발로 달리면 개처럼 빨라서 사람이 쫓아갈 수 없었다. 물건을 집을 때는 손을 쓰지 않고 입을 이용했다. 음식이나 물을 주면 개처럼 먹었다. 7살인 카마라는 늑대처럼 날고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썩은 고기에도 강한 매력을 느꼈다. 외부 온도의 변화에 익숙해 땀을 흘리지 않고, 더울 때는 혀를 늘어뜨리고 개처럼 헐떡거렸다. 소리가나면 귀를 세우고 긴장하며, 화나게 하면 개처럼 코를 실룩거렸다.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귀찮게 하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7살인 카마라는 어둠을 좋아하고 달빛과 태양을 무서워했다. 낮에는 자거나 드러누워 있고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했다. 이 지방의 늑대는 밤중에 반드시 세 번씩 밤 10, 새벽 1시와 3시에 밀림의 늑대 무리끼리 서로 울부짖는 습성을 갖고 있다. 카마라와 아마라도 이 정해진 시간에 늑대를 따라서 함께 울부짖었다. 밤에 울부짖는 이 습성은 두 아이가 인간 세상에서 완전히 교육받고 자란 나중에까지 남아 있었다. 특히 7살이었던 카마라의 목소리는 사람의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또래의 어린이들과 함께 놀게 해 주려고 해도 혼자서 벽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경계의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옆에 가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성을 냈다. 다른 어린이가 그들 옆에 가면 장난을 치면서 심하게 물어뜯어서 다른 어린아이들이 무서워하며 더 이상 그들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늑대의 세계에서 구출되어 인간 세상에서 어울린 지 3년 동안 계속해서 7살 카마라는 접시에 입을 처박고 늑대처럼 음식을 먹었다. 두 다리로만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처음으로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것이 늑대다운 면이 없어진 최초의 특징이다.

 

싱 목사의 부인은 이후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고 먹는 것을 익히도록 가르치려 했지만 개처럼 물을 핥아 마시는 것만은 고쳐지지 않았다. 카마라는 7년 동안 어미 늑대에 의해 길러졌지만 2살 된 아마라는 실질적으로 늑대에게서 1년 여 간 지내다가 구출되었다. 그 때문에 언니와 비교해서 동생은 인간으로 교육되기가 훨씬 쉬웠다. 2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후에 목이 마를 때 ''이라고 하는 한 마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어린이 친구들보다 오히려 개에 대해서 많은 흥미를 나타내며 같이 따라가서 놀려고 하였다. 2살 아마라는 인간 세계로 나온 지 1년 만에 죽었다. 7살 언니 카마라의 슬픔은 매우 컸다. 이때 비로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며칠이나 음식을 먹지 앉고 미친 것처럼 돌아다니거나 울부짖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7살 카마라는 조금씩 싱 부인을 따르게 되어 부인이 손으로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싱 목사 부부를 따라서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해보면 다시 옛날처럼 네 발로 달렸다. 인간 세계에 나온 지 3년 만에 싱 부인을 향해 무엇인가 배고픔이나 갈증을 호소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4년째에는 다섯 마디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에야 겨우 색깔을 구분하여 말할 수 있게 되었다. 5년째에야 컵으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고 대변과 소변도 깨끗하게 처리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목욕하는 습관도 생겼다. 문명 세계로 나온 지 6년 만인 14살이 되었을 때에야 어느 정도 사람답게 걷게 되었고 얼굴 표정도 인간답게 보였다. 7년째에야 45개의 단어를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7년 만에야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의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다. 7년 째 봄에는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옷도 7년 만에 제대로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카마라는 세상에 나온 지 9년 만에 요독증에 걸려 눈을 감았다. 늑대 굴에서 7, 고아원에서 9년을 산 것이다.

싱 목사 부부의 관찰 일기와 사진에 근거한 이 기록은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7년간 늑대에게 길 드려진 카마라는 재능의 가능성을 거의 잃어 버려 말을 배우는 것도 아주 느렸다. 말을 배운다는 능력에서 보면 17살에 죽을 때에 겨우 생후 12개월 된 아이의 재능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나느냐가 중요하다. 그 부모와 양육자의 영향을 벗어 날 수가 없다. 엄마의 성격, 아빠의 습관과 기질을 그대로 전수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양육 받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은혜인지 모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인 신명기와 에베소서 본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 교훈을 나누려고 한다.



부모자녀 관계.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이라는 말씀은 아비와 자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말씀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특별히 구분해서 아비들아라고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서는 짧지 않은 말씀을 통해서 부부의 관계에 대하여 교훈하였다.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그리고 6장의 앞부분에서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언급하였다. 자녀로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 언론에 소개되는 뉴스에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고 순종할 상황은커녕 패륜한 아버지 혹은 못된 엄마를 만나서 학대 받는 어린이가 적지 않다. 지난 215일 신문 기사에 보면,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 지방에서 한 여성이 2살 된 아들을 방치하고는 4일간 집을 비워 이 아기가 저체온증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낮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이며, 밤에는 20도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주민은 아기 어머니가 집을 비우고 이틀째 되던 날 방치된 아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인근 주민은 개가 아기 곁에서 떠나지 않고 마치 새끼를 돌보듯 품에 안고 있었다.”고 그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얇은 옷을 입고 있었던 아기가 키우던 개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주민의 도움으로 아기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현지 경찰은 집을 비우고 나흘 만에 돌아온 여성을 체포했고, 이 법원은 실형 선고와 함께 양육권 박탈을 검토하고 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는 더욱 더 그렇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표현하거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정상적이지 못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라난 어린이들은 청년이나 어른이 되어서도 미성숙한 어린아이와 같은 판단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대인관계가 서툴고 공격적이고 비판적이고 상대방을 왜곡되게 보고 상대방의 좋은 면보다는 단점만 꼬집어서 비난하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시의 눈으로 보면 세상을 반듯하게 볼 수 없듯이 말이다. 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을 그런 색깔로만 보게 된다. 운전 중에 선글라스를 쓴 채로 터널 안을 지나가 보라. 얼마나 답답하고 어두운가. 내가 쓰고 있는 색 안경을 벗어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고 상대방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대인 관계의 훈련이 가정에서부터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무슨 과목에 몇 점을 받느냐. A 학점을 받느냐 B학점을 받느냐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나이만 어른이지 실제로는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상태에 방치된 모습일 수 있다는 말이다. “성인 아동의 모습을 말한다. 부모자녀의 관계에서 소중하게 배워야만 하는 것은 감사, 칭찬, 인정, 격려, 수용, 용납, 위로, 보호, 응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받아주고 덮어주고 가려주고 가능성과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고 사랑의 보자기로 감싸서 서로를 대하는 곳이 가정이어야 하고 가족이어야 하고 부모자녀이어야 한다. 세상 어디에도 가정과 같고 가족과 같고 부모자녀와 같은 곳은 없다. 그러므로 가족 관계, 부모자녀 관계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물론 그런 관계가 너무 지나쳐서 시집가고 장가 간 후에도 엄마 아빠와 분리가 되지 않아서 마마보이혹은 그 이상의 복잡하고 결손 된 인간관계로 살면 곤란하지만 말이다.

 

요즘 군대에서 지뢰 제거 반의 지휘관이 부모 동의를 받은 후에 지뢰 제거 작업반 투입을 결정하게 한 웃지 못 할 일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사사 건건 집에 전화 해서 엄마 총을 쏠까요 말까요, 수류탄을 던질까요 말까요" 이런다면 군대가 어떻게 되겠나.

 

인간관계의 5가지 법칙이 있다.

1.노크의 법칙

마음의 문을 열려면 먼저 노크하라. 그리고 나에 대해 알려주라.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2.거울의 법칙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먼저 웃어야 거울 속의 내가 웃듯이 인간관계도 내가 먼저 웃어야 한다.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으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배려하라.

 

3.상호성의 법칙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세상에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항상 호감을 갖고 대하라. 반려 동물에게 기울이는 사랑이나 관심을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녀에게 기울인다고 상상해 보라. 목욕시키고 빗질해 주고 산책하고 말 걸고 품에 안아 주고 병원 데리고 다니고 똥도 치워 주고 그 정도의 사랑과 정성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기울인다면 가까워지지 않을 인간관계가 있겠는가.

 

4.사랑(로맨스)의 법칙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멘스란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이런 이중 잣대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비난하지 말고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라.


5.짚신의 법칙

짚신에도 짝이 있듯이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짝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관계란 악연도 있고 좋은 인연도 생기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는 없다. 나와 통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신자라면 일부러 편을 가르고 누구를 따돌리거나 왕따 시키지 말고 서로 서로 주 안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발전 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관계의 형성이다. 그 출발이 가정이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잘 체득한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도 성공적이고 행복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사탄이 뱀과의 관계를 맺고 타락하고 말았다. 가인은 동생 아벨과 하나님께 제사 드린 후에 동생 아벨과의 관계를 살인의 파국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가롯 유다는 주님과 12사도의 살림살이를 맡던 유능한 제자였음에도 마지막에는 사탄과의 관계를 맺고 주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므로 불행한 종국을 맞는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물로 인한 유혹을 뛰어 넘지 못해서 베드로 사도와 초대 교회 앞에 범죄하고 남편과 아내가 차례대로 생명이 떠나는 불행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생각해 보라. 가정과 직장과 사업의 현장과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신앙생활 한다는 것도 결국은 모두가 다 관계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가정은 관계를 배우는 학교요 관계를 훈련하는 훈련소요 관계를 교정하는 병원과 같은 곳이다. 복음적이고 원만하고 사랑에 근거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나사렛의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어린 시절과 30세까지의 청년기를 보냈다. 부모에게 사랑 받고 자란 아들딸들이 나중에 사회생활, 교회 생활의 인간관계도 잘 하게 마련이다.

 

 

노여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다. 자녀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몸과 마음에 가혹한 상처를 입히거나 상대적으로 편애하거나 하면 그 나중에 걷잡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 자녀는 부모의 종속물이 아니다. 아들딸은 부모의 성공의지나 출세의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의 아들딸,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그 다음 세대로 가정에, 부모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선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학대하거나 노엽게 대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이라도 인격적으로 대하여야 한다. 아들딸을 욱박질려서 노엽게 키우면 안 된다. 자녀들은 가정에서도 보호받고 세상에서도 보호 받아야만 한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원주민 추장에 의해서 겁탈 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이 디나를 자기 집에 끌어 들여 욕보였다. 들판에서 돌아 온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히위 족속들의 남자들에게 할례 할 것을 요구한 후에 남자들을 모조리 쳐서 죽이고 하몰과 그의 아들 추장 세겜도 칼로 쳐서 죽였다. 아브라함의 언약 후손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벌인 참담한 장면 중의 한 사건이 창세기 34장 전체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상은 악은 악을 부르고 화는 화를 부르고 보복은 보복을 부른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부터 잘 해야 한다. 가족들의 출입과 생각과 가는 길과 앉는 자리를 구별해야 한다. 순간의 불행이 평생의 삶을 고난과 슬픔의 늪으로 빠져 들게 할 수도 있다. 야곱의 가정에서 디나는 그 여러 아들들 가운데서 귀하게 태어나 성장한 야곱의 외동딸이다. 그런 디나가 불행한 일을 겪은 것이다. 우리의 아들딸들은 가정 안에서도 사랑 받고 성장해야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도 보호 받고 출입할 수 있어야만 한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부르고 악은 또 다른 악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지정의(知情意) 모두 다 중요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지식, 감정, 의지가 골고루 형평을 이루어야 한다. 지식도 중요하고 의지도 강조되어야 하지만 사람은 언제가 감정에 의해서 지배 받을 때가 많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기분 나쁘면 하던 일도 집어 치우게 된단 말이다.

 

그러므로 부모자녀의 관계에서도 감정처리가 중요하다. 부모 자녀 사이에 지구 온난화나 북핵 문제나 미세 먼지 문제 해결의 의견 때문에 가정에 불행을 초래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젊은 주부 A씨는 만 세 살 된 아들이 부엌에서 과자를 만들겠다며 밀가루와 계란을 그릇에 들이 부으며 질질 흘리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들에게 직접 만들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순간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A씨는 마냥 참다가는 자기가 화병이 걸릴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들의 등짝을 발로 두세 번 걷어찼고 크게 소리까지 질렀다. 기겁한 아들이 울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어린 아들의 모습을 보니 A씨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A씨는 올바른 훈육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체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애들을 그런 식으로 키우면 그 불행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고성을 지르거나 가벼운 체벌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문제는 어린 아들딸에게 가볍게 시작한 체벌이 점차 도가 지나쳐 감정이 앞선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식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겨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이는 훈육이 아닌 아동 학대가 되고 만다. 실제로 아동학대는 대부분 밖에서 보다는 아동이 살고 있는 가정 내에서 친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아동학대는 매년 증가한다. 아동학대는 해마다 늘고 수법도 잔인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629669건으로 눈에 띄게 증가 추세다. 특히 아동학대의 약 81%가 친부모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4개월 동안 아들을 화장실에 감금하고 학대해 사망한 평택 원영이 살해 사건,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훼손 사건 등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무속신앙에 빠져 생후 6개월 된 젖먹이 아들을 죽인 친모 원모(38)씨가 7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원씨는 20102월 무속인으로 부터 아기에게 액운이 들었다는 말에 아들의 몸을 향불로 지지는 의식을 치르다가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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