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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믿음(눅5:18-26) 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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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 17-02-05 20:25 조회 14,661 댓글 0
 
그들의 믿음(눅5:18-26)                  2017. 2. 5


중풍병은 완치되기가 쉽지 않는 병들 중의 하나이다. 손발과 다리의 기능이 마비되거나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중풍병이 심하게 오면 물 한 컵 마시거나 음식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화장실 출입도 어려워지고 만다. 말하고 싶어도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답답하게 지내기도 한다. 오늘 날의 현대 의학으로도 중풍병은 쉽게 치료되기 어려운 병들 중의 하나이다. 더군다나 의료 혜택이 열악하였을 이천 년 전에 중풍병이 들었다는 것은 환자 자신에게 엄청난 충격이요 시련이었을 것이다. 

교회 뒤 북한산 자락의 둘레 길로 중풍병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곁에서 부축하며 산책을 도와 드리는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가끔씩 볼 때가 있다. 육십 대 후반이나 칠십대 초반 쯤 되는 아버지와 젊은 아들의 모습이다. 토요일에 연신내 역에서 전도 하다 보면 일정한 시간에 되면 한 쪽 손이 오그라들듯이 마비된 상태에서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듯이 힘겹게 걸으며 지나가는 50대 중반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늘 그 시간이 되면 어디를 가는지 거의 일정하게 만나게 된다. 

이처럼 중풍병은 그 자신도 힘겹고 지켜보는 이의 마음도 착잡하게 하는 어려운 병  중의 하나이다. 본문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다.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왔다는 말은 중풍병자의 병세가 몹시 중한 상태를 말하지 않나. 제 발로 걸을 수 있었다면 구태여 침상 째로 메고 올 이유가 있었겠나. 힘들고 서툴러도 자기 발로 조금 씩이라도 발을 띄어 옮겨 놓을 ㅅ후 있고 걸을 수 있었다면 그런 상태에서 곁에서 부축해 주었을 텐데 이 중풍병자의 상태는 그런 정도 경미한 환자가 아니었다. 그러하다 보니 여러 사람이 침상에 눕혀 있는 상태의 중풍병자를 어깨에 멘 채로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찾아 나선 것이다. 

마태복음 9장과 마가복음 2장에도 똑 같은 본문이 실려 있다. 그런데 마가복음 2장 3절에 보면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라고 되어 있다. 네 사람에게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께로 가도록 부탁한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해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예수님을 쉽게 만날 길이 없었다. 저들은 포기하지 않고 중풍병자를 메고 끌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기와를 벗겨 내고 지붕을 뚫고 천장에 구멍을 낸 후에 병자를 침상 째 집안에 계신 예수님께 줄로 달아 내렸다.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가. 무슨 작은 물동이 하나를 달아 내리거나 배구공만한 물건 하나를 달아 내린 것이 아니다. 지붕과 천장을 뚫은 후에 환자를 침상 째로 달아 내린 것이다. 그 집의 집안에는 예수님과 그의 곁에 둘러앉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온갖 잡다한 먼지와 부스러기들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지진으로 집이 무너진 듯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장면이라 모두 다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그렇다. 이것은 믿음의 사건이다. 생명의 주님이시오 치료의 근본이신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었다면 그 누가 감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중풍병자의 지금 병세가 심각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반드시 나을 수 있다. 반드시 고침 받을 수 있다. 반드시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와 소망이 없었다면 어느 누가 감히 남의 집 지붕의 기와를 걷어 내고 지붕을 뚫고 천장을 다 부수듯이 큰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릴 수 있었겠는가. 그들의 믿음. 중풍병자를 천장에서 달아 내린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자세한 내용이 본문이다. “그들의 믿음”...


죄 사함을 받게 한 믿음.
중풍병자를 고쳐 보겠다고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 침상 채로 지붕과 천장에 구멍을 내서 달아 내리는 그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께서 하신 첫 말씀이 이것이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5:20) 우리 성경에서는 왜 그를 이 사람아라고 번역하였는지 모르겠다. 영어 성경에 보면 ‘친구여’(friend)라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침상에 눕혀진 채 천장에서 방 안으로 줄에 달려 침상 채 예수 앞에 등장한 이 중풍병자를 보시고 “친구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친구여’.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중풍병자는 어려운 병환 중에서이지만 복이 많은 사람이다. 누가 그를 예수께 까지 인도하였든 그에게는 그를 고쳐보려고 애를 쓰는 가족이 있었다.  그 손길이 부모이든 아내이든 자녀들이든 친구들이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는 만나기 어려운 예수님 곁에까지 자신을 침상 째 메고 와준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이 중풍병자를 만나서 하신 첫 말씀이 ‘친구여’라고 하셨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께서는 이 중풍병자의 질병을 먼저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선포해 주셨다는 점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오늘 날의 우리들이나 병에 걸리고 나면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의 죄나 허물이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삶에 대하여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등장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다. “저 앞 못 보는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아니면 자기 부모 때문입니까.”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해 주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그렇다.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시련을 겪는 배후에는 그 사람을 통하여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있단 말이다. 큰 파도가 치고 해일이 일어나고 태풍이 불거나 하면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피해가 닥친다. 그러나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과 온갖 동물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물속의 물고기까지라도 사랑하시고 키우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는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가득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도 사랑하시되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사랑하신다. 바닷물 속에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생명체 까지도 사랑하신다. 해일이나 태풍이 인간에게는 재난이요 큰 피해일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바다 속에서 생명력이 넘쳐 나게 다스려 가신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하지만 자연의 생태계에는 얼마나 필요하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소중한 계절인지 모른다. 어느 환경생태학자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겨울은 겨우겨우 살아가면 되는 계절이라서 ‘겨울’이라고 이름 한 것이다.”라는 설명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겨울은 겨울대로,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 계절의 묘미와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있으신 것이다. 

성충과 애벌레와 나방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알에서 부화되는 생명체들은 자기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지 밖에서 무리하게 깨치는 과정을 도우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 

질병과 시련 중에는 한 사람을 연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있을 수 있다.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구약의 욥이 그런 주인공이 아닌가. 그의 열 남매가 하루에 다 죽었다. 그 많던 재산이 다 날라 갔다. 그는 동방의 이름 난 부자요 의인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일곱 아들과 세 딸들 십남매의 사이도 참으로 좋았다. 형제자매들 간에 서로 돌아가며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큰아들 집에서 잔치하던 날 재난을 당하였다. 잔치하던 큰 아들네 집이 무너져서 한 자리에서 십남매가 다 죽었다. 그 많던 재산 다 없어지고 욥 자신은 병들고 아내마저 남편을 무어라 하고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드렸다. 정신이 좀 어떻게 된 사람 같아 보이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예배가 되겠나. 그런데 욥은 옷을 찢으며 머리를 빡빡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드렸다. 욥기 1장 20절에 보면 “예배”하였다는 말씀이 나온다. 당신은 어떤가. 그런 상황에서 예배가 가능하겠나. 그런데 욥의 예배는 진심이었다. 그의 행동과 입의 말이 한결 같았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그런 참담한 일을 겪으면서도 욥은 달랐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그런 욥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중에 그의 삶을 싸매시고 어루만지셔서 그의 나중을 하나님 안에서 간증할만한 전혀 다른 인생으로 이끌어 가셨다. 열남매 다 죽고 자기 몸이 그 정도로 병들었고 그 많던 재산이 빈털터리가 된 그 정도 처지면 인생을 불운하게 마쳤을 것 같은데 욥은 달랐다. 욥은 다시 재산을 회복하고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다시 또 낳았다. 원래 목축가였던 욥이 나중에 관리하게 된 양, 낙타, 소, 나귀의 수가 어마 어마하였다. 욥은 말년에 아들과 손자와 증손자들까지 사대를 보며 140년을 살았다. 욥기의 끝은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고 되어 있다. 그 몇 구절 앞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욥42:12)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라도 질병과 환난과 재난과 시험 앞에 무너지거나 주저앉아 버리지 말고 주의 위로를 사모하며 다시 일어날 이유가 반드시 있다. 

물론 질병과 죄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이 그러하였고 예수님도 지금 이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죄의 용서를 선언하고 계시다. 성경은 이 중풍병자의 나이가 몇이었는지 그 동안 건강할 때에 무슨 직업을 가지고 살던 사람인지 혹은 그가 하나님을 알고 믿던 사람인지 아닌지 등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 그가 죄 많은 세상을 어떻게 살다가 그런 어려운 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도 전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신 내용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셔서 그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셨다. 얼마 후에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셨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병자가 그 무슨 죄의 결과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하며 지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예수께서는 본문의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기 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선언으로 신성모독이라면 문제를 삼고 시비를 걸려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관심을 받으셨다. 예수께서는 이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일로 인하여 예수님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것을 주변사람들에게 선포하신 계기가 되었다. 


일어나 걷게 한 믿음.
예수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고 나서 나중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선언해 주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그 중풍병자는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침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침상에 누어 꼼짝달싹 못하던 중풍병자가 팔과 다리와 손과 발에 새 힘을 얻었다. 
어눌하던 혀가 풀려서 또박 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게 되었다. 그는 건강해진 모습으로 일어나서 자기가 누워 왔던 침상을 들고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향하였다. 이 얼마나 놀랍고 눈물 나도록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우리들 중에는 수술을 받은 적이 있거나 여러 날 혹은 여러 달 혹은 몇 년씩 병원 신세를 지는 분들이 있다. 아니 지금도 병과 씨름하고 내 몸 안에 있는 암과 씨름하며 이겨내고 건강해지고 완치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날을 기다리며 참고 견디며 이겨 나가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 

생각해 보라. 내가 몇 달 혹은 몇 년을 병원 침대에 누워 욕창이 날 지경으로 몸은 쇠약해지고 몸무게는 줄고 체중은 40kg쯤 나가던 뼈만 남아 있던 내가 치료 받고 고침을 받고 원기를 회복하고 새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 동안 알코올 냄새가 풀풀 나던 병원 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짐 보따리를 스스로 챙겨 들고 퇴원할 정도의 힘이 생겼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기뻐 뛰고 춤을 추고 싶겠나. 

아니. 지금 나나 내 가족의 형편은 중풍병은 아니지만 정말 답답하고 꼼짝도 할 수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자처럼 하루하루 숨이 꽉 막히는 그런 날들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내가 예수님께 기도하고 싶고 내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예배드리고 싶지만 그런 용기나 의욕도 사라져 버린 채 무기력에 빠져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상태에서 썰물에 떠내려가듯이 상황과 형편의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지는 않나. 

그런 나를 몇 사람이 나서서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메고 예수님께 가듯이 떠밀리듯이 해서 오늘 교회에 오고 예배에 온 것은 아닌가. 그래도 좋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말씀이 없다. 예수께서 보신 것은 그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침상 채로 메고 예수 계신 곳에 도착해서 지붕 위로 올라가고 기와를 걷어 내고 지붕을 뚫고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침상 째로 달아 내린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이어서 그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 날 나의 믿음이 누군가에게 그런 섬김의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믿음으로 인하여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어머니 아버지가, 내 시부모님이, 내 장인 장모님이, 내 아들딸이, 내 며느리와 내 사위가, 내 손자 손녀들이, 내 형제자매들이 내 직장과 일터의 선후배 혹은 동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역할로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먼 남의 나라에 가서 선교라는 이름으로 그런 거창한 일은 못할지라도 내가 살아가는 내 주변에 내 가족, 내 친척, 내 일상의 주변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그를 침상에 태워 메고 예수께서 나오는 그런 믿음의 야성과 믿음의 도전정신과 믿음의 회복을 가져야 할 것이다. 

최근에 신문과 방송 등의 언론에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 김유미 여사는 현재 미국 메릴랜드 주의 래리 호건 주지사의 부인이다. 그녀는 1970년대에 세 딸을 데리고 시작한 미국 생활 초기에 남편과 이혼하고 세 딸을 억척 같이 키웠다. 둘째 딸은 메릴랜드 주의 검찰청 검사이다. 세 딸들이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어머니 김유미 여사는 하루에 두 시간씩 겨우 잠자며 일하고 공부하고 세 딸들을 키웠다. 어떤 때는 단 돈 2불이 없어서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꾸어 쓴 적도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발견한 미술 재능을 키워 미국에서 미술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6년 전에 미술 전시회에서 지금의 남편인 노총각 백인 사업가를 만나서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하였다. 남편 래리 호건은 3년 전인 2014년에 공화당 출신으로 강력한 민주당 경쟁자를 이기고 메릴랜드 주지사가 되었다. 몇 년 만에 미국 50개 주 중에서 49등이던 메릴랜드의 경제 상황을 11등으로 끌어 올리는데 공헌하였다. 지금은 메릴랜드 주지사의 부인인 퍼스트레이디가 된 김유미 여사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는 마치도 중풍병을 털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과 같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 믿음.
중풍병에 걸린 한 사람. 스스로 한 발짝도 옮길 수 없는 중증. 이 정도의 형편이면 그 마음도 생각도 감정도 모두 다 피폐하고 병들어 있지 않았겠나. 얼마나 좌절하고 얼마나 절망하고 얼마나 비관하고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우울해 하고 얼마나 괴로워하고 얼마나 힘들어 하고 얼마나 답답해하고 얼마나 막막한 인생으로 살아왔겠나. 살아 있는 것을 비관하고 지낸 순간이 얼마나 많았겠나. 

그런 그가 중풍병을 떨치고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내용은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없는 누가만의 관찰내용이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가 침상 째로 옮겨 주어야나 어디로 자리를 이동할 수 있던 중중의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한 마디 말씀으로 회복되어 일어나 힘을 얻고 활동하게 되었으니 그 자신의 감격이 얼마나 대단하였겠나.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감격스럽고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신나고 얼마나 좋았겠나. 그래서는 그 자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 현장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도 다 같이 놀라워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 왔나. 그 동안 어떤 형편 가운데 있었나. 지금 이 고침 받은 중풍병자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가꾸어 가야 하지 않겠나.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매여 사는 존재가 아니가. 누구든지 믿음의 사람은 과거의 아픔이나 실패나 상처나 고난과 질병을 딛고 앞으로 전진 해 나아가는 자여야만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어려서 열병을 앓았다. 결국은 못 보고 못 듣고 말도 못하는 시각 장애, 청각 장애, 언어 장애 상태에서 자라났다. 그를 삼중고의 여인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부모와 앤 셜리번 선생님의 역할은 헬렌 켈러를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87년 동안 오래도록 쓰임 받게 하셨다. 그녀는 1904년에 못 보고 못 듣는 상태의 장애를 딛고 말 못하는 답답한 여건 가운데서 미국 최초로 세 가지 장애를 딛고 대학을 졸업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녀는 작가요 교육가요 사회 운동가로 탁월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태어난 앨라배마 주에서는 지난 2003년에 의자에 앉아 책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주에서 발행하는 25센트짜리 동전의 한 쪽 면에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해석해 주는 통역관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녀는 통역관과 함께 세계를 날아다니며 장애우 들과 특히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삶을 살아갔다. 그녀가 남긴 유명한 말들이 많다. 그녀는 이런 말도 남겼다. “행복의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을 오랫동안 바라봄으로써 이미 우리에게 열려진 다른 문을 보지 못하고 만다.”(When one door of happiness closes, another opens. but often we look so long at the closed door that we do not see the one which has been opened for us.)

침상에 누워 지내던 중풍병자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는가.
그를 침상 째로 메고 예수께로 데리고 간 사람들의 믿음의 결과이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에만 데리오지 말고 예수께 데려와야 한다. 예수 만나야 한다. 기와를 걷어 내고 지붕을 뚫고 천장에 구멍을 내서라도 예수를 만나야 한다. 예수님을 감동시켜드려야 한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 예수께서 나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재물, 시간, 재주, 은사 등 내가 가진 그 무엇인가를 드려서 섬기고 헌신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영적으로 중풍병자의 상태가 아닐까.

다른 말은 그렇게도 잘하고 오래도록 하면서도 정작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혀가 굳고 생각이 멍해지는 것은 전도의 중풍병자가 아닌가.

벌어서 잘도 쓰고 살면서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예물 드리는 일에는 인색해 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재물 관리에 중풍병이 걸린 상태가 아닌가.

주어진 건강으로 골프도 하고 헬스도 하고 에어로빅도 하고 테니스도 하고 수영도 하고 등산도 하고 다 하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일에는 망설여지는 것도 일종의 중풍병이 아닌가. 

이제 예수를 만나야 한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더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갈 줄 알아야 한다. 25-26절에 보면 중풍병자를 침상 째로 메고 예수께로 가서 예수님 만나게 해 준 몇 사람들의 믿음이 그를 중풍병에서 고침 받게 하였다. 죄 사함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종이든 동양에 살든 서양에 살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가난하든 부하든 능력이 있든 부족하든 사회적으로 뛰어나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건강하든지 병약하든지 그 어떤 형편에 있을지라도 누구라도 예수 만나야 한다. 예수님을 인해서 죄 사함 받고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고 침상에 늘 누워만 있지 말고 자리를 들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변화를 가족에게 입증해 보이고 마을 사람들과 이웃 사람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예수께서 나의 중풍병을 고쳐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신 것을 간증해야 한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144장 찬송의 가사를 쓴 분은 평생 앞을 보지 못하던 파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1820-1915) 여사였다.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는 찬송의 가사도 그 분의 작품이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그 사랑,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낱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그가 쓴 찬송시 23편이 우리 찬송가에 포함 되어 있다. 그녀의 찬송시는 9000곡도 넘는다. 놀랍지 않나. 그녀는 자기의 불행과 불운을 딛고 일어나 평생토록 주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하나님의 딸이었다. 그의 조상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철저한 청교도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설립과 발전에도 공헌하였다. 그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병으로 못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았다. 

미국 역사에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의 최고의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 켄터키 주의 시골 마을에서 비가 줄줄 새는 가난한 통나무집에서 자라났다. 친 어머니는 일찍 돌아 가셨다. 새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믿음을 보고 배웠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노력하고 도전하고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도 되었다. 주 의원, 하원의원도 지냈다. 상원 의원직에 도전했지만 두 번이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그가 미국 남북 전쟁과 노예 해방을 이끄는 역사적인 일들을 해결해 내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는 51살에 대통령이 되었다. 4년 임기를 잘 마치고 재선되었다. 그 다음해인 56살에 큰 아쉬움을 남기고 암살당하여 주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는 키가 197cm 였다. 그는 키도 컸지만 생각도 컸고 사상도 컸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컸다. 그는 거의 성직자와 같았다. 그처럼 미국 사람들과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고 존경 받는 인물도 쉽지 않다. 아브라함 링컨 그는 침상을 들고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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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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