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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복이 있는 자(시119:1-8)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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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2-13 00:35 조회 19,879 댓글 0
 
새벽기도가 끝나면 돌아 와서 성도들이 새벽제단에 드린 일천번제와 헌금에 적은 기도 제목을 읽어 보며 기도한다. 며칠 전에 어느 가정의 가족들이 가정예배를 드리고 가족들이 일일이 일천번제 봉투에 깨알같이 기도 제목을 쓴 내용을 보았다. 중학교 남학생인 작은 아들이 이렇게 썼다.

“하나님 오늘도 귀한 하루 주신 것, 예배를 잘 드리게 해 주신 것, 일천 번제에 기도 제목을 쓰게 해 주신 것, 건강을 지켜 주신 것, 제 질병을 많이 고쳐 주신 것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괄호 속에 ‘축구, 야구, 예배드리기) 등.......주님! 주님께서 제 안에 함께 계셔서 제가 사는 게 모두 재밌고 행동 하나 하나가 흥미가 생기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 주님을 더욱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복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살아가면서 좋고 만족하게 누리며 얻는 행복”이라고 했다. 요즘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좋은가? 여기 천진한 중학생의 고백처럼 사는 것이 재미가 있나 없나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리더십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인 마셜 골드스미스(Marshall Goldsmith) 박사가 지난 2010년에 <모조>(mojo)라는 책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는 한 때 미국의 작지만 유명한 명문대학교인 다트머스 대학교의 교수를 지낸 적도 있다. 지금은 연구소를 차리고 세계 120여 개국의 CEO들에게 컨설팅을 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면서 계속하여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한번 컨설팅 비용이 25만 불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억 8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의 책들 중에 6권은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필독서로 선정될 정도이다. ‘모조’(mojo)란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말로 그 뜻은 ‘긍정의 추진력’이라고 간단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똑 같은 상황 혹은 비슷한 상황에서도 누구는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하고 성공하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 상황에 짓눌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차이가 바로 이 ‘모조’의 차이라는 것이다. 모조란 상황과 흐름을 역전시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말한다. 그는 그와 같은 삶을 위한 자기 진단 15가지를 소개한다. 그 첫 질문이 “오늘 난 얼마나 행복하였나?”라는 것이다. 팔복 말씀에 근거한 행복의 자기 점검이 가능한가? 그것이 성도로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향한 행복 지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에 보면 1절과 2절에 “복이 있음이여,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반복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복이 있는 생활일까? 이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아니 성경의 장과 편들 중에서 가장 긴 말씀으로 되어 있다. 무려 176절이나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히브리 글자 22자를 따라서 8절씩 22연으로 구분된다. 이 긴긴 말씀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다. 답관체시(踏冠體詩)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율법을 잘 따라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강조가 반복된다. 율법에 대해서도 “법, 증거, 도, 법도, 규례, 율례, 계명, 판단, 약속, 말씀”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 본문인 1-8절까지만 보아도 율법에 대하여 구구절절이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관찰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자가 복이 있는 자란 말인가?

시작되는 1절 말씀에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라고 하였다. 그러면 행위가 온전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어디까지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아야 온전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세상에 행위가 온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더 이상 흠 잡을 데가 없이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데 어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했다. 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했다. 율법은 죄를 깨닫는 것이지 죄를 해결하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행위가 온전하다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과 자비를 덧입고 십자가의 은총을 믿는 믿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인생을 평가하시는 기준이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묵상해 보면,

여호와의 증거(證據)를 지키는 자가 복된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과 아는 것이 다 복된 것이지만 지켜 행하는 것이어야 진정한 복이다. 요한 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오늘 본문 2절에서는 ‘증거’라고 했다. 하나님이 선포하시고 확증하신다는 면을 강조해서 증거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복된 삶의 증거로 삼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그것이 복된 것이란 말이다.

음주 운전이나 과속이나 난폭 운전을 하면 남에게 피해가 갈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불행해 지고 만다. 부주위한 운전이나 방어 운전을 하지 않는 것도 큰 사고의 요인 중의 하나다. 교통법규가 가장 엄격한 나라 중의 대표적인 국가가 싱가포르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운전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최고 1,000불의 벌금에 6개월 징역이다. 안전벨트 매지 않고 운전하면 벌금 120불이다. 난폭운전하다 걸리면 최고 5,000불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음주운전은 최고 30,000불에 징역 3년형이다. 초범의 경우 1,000-5,000불의 벌금에 6개월까지 징역형을 부과한다. 무슨 말인가. 음주 운전하지 말란 말이다. 속도위반도 법정 속도보다 20km만 넘어서도 160불의 벌금을 부과한다. 법을 지키라는 말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했다. 2절과 4절과 5절과 8절에 반복되는 강조를 보라. 주의 증거와 주의 법도와 주의 율례를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고 여기지 말라. 가령 십계명의 말씀 중에서 하라는 말씀은 하고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는 엄격함을 지켜가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 속담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린 대개 무슨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한 것만을 죄로 여긴다. 아니다.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함부로 비난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불평불만하고 원망하는 그 모든 것들이 똑 같은 죄다.

출애굽기 19장 5절과 6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라고 하셨다. 교통 법규가 운전자를 불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하려는 것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편하게 하고 자유가 없게 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면서 살아가면 그것이 복된 길이요 은혜의 길이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은총의 길인 것이다. 

2절은 여호와의 율법인 증거를 지키는 자가 복되다는 일반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4절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킬 것을 명령하신 명령을 언급한다. 5절은 하나님의 율법인 법도를 잘 지킬 것을 기도한다. 8절은 하나님의 율법인 율례를 잘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말씀대로 지키는 지속적인 의지와 노력과 성실함이 반드시 뒤 따라야 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로 살아가고자하는 결단과 의지와 다짐을 고백한 후에 8절 끝에서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한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속에 찾아오시고 임재하시어서 각 사람의 영혼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하게 호소하는 기도인 것이다.
오늘 읽지 못한 9절이나 17절에도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키는 생활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젊어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자신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9절의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하는 질문 형식의 기도는 하나님 안에서 한 사람의 영혼이 청년기의 때로부터 정결하고 순결하고 깨끗한 영혼으로 살아가고자하는 몸부림이며 영적 씨름인 것을 보여준다. 
 
전심(全心)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된 자이다.
누가 과연 행위가 온전하며 복된 자인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교훈하셨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신앙의 상태를 가장 위험한 상태로 지적하신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상태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상태를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하셨다. 우리 한국 음식은 뜨겁거나 차거나 한 음식이 맛이 있다. 국이나 찌개도 뜨끈뜨끈해야 “아이쿠 시원하다.”그러면서 먹는다. 국이나 찌개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는 정말 별로다. 동지 팥죽도 뜨겁든지 차든지 해야 맛이 있다. 콩나물국도 뜨겁든지 혹은 아주 차고 시원하든지 해야 맛이 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다.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좋은 것이다. 그래야 세균 번식도 막을 수 있고 곰팡이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뜨거운 열정과 냉정한 이성을 겸비하여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살아가는 자가 복된 자이다. 우리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의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성적이고 열정적인 양면이 균형을 갖춘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나약하고 변덕이 심하고 흐트러진 마음이 아니라 온전하게 모아진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하나님은 신명기 15장 4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福)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福)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온전히 다 모아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복되다는 말씀이다.

지난 주간에 보령시에 부흥회를 한 좋은 교회의 오치인 장로는 보령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숨은 봉사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 세월을 지켜보아도 늘 한결 같다고 한다. 그런 신자가 되어야 한다. 대천 해수욕장이 멀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0여만 명이 살아가는 보령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기독교인이요 봉사와 섬김과 돌봄에 앞장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첫 인상이나 외모는 무협소설에 나오는 장수와 같은 부리부리한 짙고 검은 눈썹의 기골이 장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 없이 따뜻하고 정이 많고 주님 사랑하는 믿음으로 교회와 사회생활에서 모범적으로 빛을 발하고 향기가 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따라서 따르고 구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복이 임하는 것이다. 

신명기의 말씀은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 아끼는 마음을 갖지 않고 돌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福)을 주시리라.”(신15:10)고 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구하고 지키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첫째, 가는 길을 굳게 정하여야 한다.
5절에 “내 길을 굳게 정하사”라고 했다. 그래야 복된 것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면 안 되다. 한결 같고 꾸준하여야 복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편지하는 곳마다 굳은 믿음을 강조하였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믿음이 소중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注意)하며 살아가야 한다.
6절에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다. 신자가 언제 부끄럽게 되나? 우리는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안다.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견주어서 주의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래야 부끄러움 당하지 않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주의할 줄 알아야 한다. 몸을 조신(操身)하고 마음도 조심(操心)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에 비추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주의하며 살아가야 복이 임하는 것이다. 항상 사단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경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의하며 살아가야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셋째,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
7절에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날마다 배우고 평생을 배워도 부족할 뿐이다. 성경은 가치관과 세계관과 인생관을 배우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죄가 무엇인지 인간이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주만물의 그 시작과 마지막을 교훈하는 말씀이 성경으로부터 나온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 학문만 배우는 것 가지고는 반쪽짜리 지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참 진리를 모르고 세상 지식만 배우고 살아가면 돈을 버는 기계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궁금증과 대답이 모두 다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사시시대의 안타까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준이 흐려지는 시대였다는 점이다. 사사기의 마지막 장절인 21장 25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워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하는 의지가 없이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방종이 대세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켜 나가는 과정이다. 여호수아 1장 8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길은 무엇인가? 여호수아서의 가르침대로 하면 밤낮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강조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가까이 대하며 늘 묵상하는 말씀대로 다 지켜 행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살아가는 길이 평탄해지고 하는 일이 형통하고 복되게 된다는 선언이다.

복된 자의 삶에 대한 강조는 시편 1편의 말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이런 복된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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