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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사11:1-10) 201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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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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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12-11 22:23 조회 15,664 댓글 0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사11:1-10)        2016. 12. 4



시내를 다니다 보면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 주세요.”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볼 수 있다. 현수막에는 17년 전인 1999년 2월 13일 친구를 만난 후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실종되었다. 현수막에는 당시 평택 송탄여자고등학교 2학년이던 송혜교 양의 사진 두 장이 함께 걸려 있다. 한 장은 실종 당시의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중학교 때의 사진이다. 지금 살아 있다면 3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딸을 찾다 엄마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17년 째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다. 아버지 송길용 씨는 그 동안 딸을 찾는 전단 200만 장 이상을 만들었다. 현수막을 떼어 내면 또 만들어 걸고 또 걸었다. 4000장 이상의 현수막을 만들어 걸었다. 아버지는 이제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이도 들었다. 지금은 기초 생활 수급자로 지내며 60만원 중에서 40만원으로 딸을 찾는데 비용을 쓴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이젠 그만 잊고 살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며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아니 그것이 우리 각 사람의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그것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시도록 보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우리가 바라보는 울창한 나무숲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작은 씨앗이 싹이 나고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고 100년, 500년, 아니 천년씩, 그 이상 씩 자라나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식물이든지 어린 싹에서부터 자라나는 것이다. 그것이 씨앗을 심어 키우든 혹은 꺾꽂이를 하든지 다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메타세콰이어 나무숲이 장관인 곳들이 곳곳에 있다. 그 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 전남 담양이라고 한다. 가로수 길의 총 길이는 약 8.5km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에 높이 20m의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져 있다. 이 길이 조성된 시기는 1970년대 초반으로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때 담양군이 3-4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은 것이 현재의 울창한 가로수 터널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거대한 나무숲의 시작도 처음에서는 한 싹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사야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한 싹으로 표현하였다. 그 싹이 자라나서 결실하므로 인류 구원의 대업을 완성하셨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자마자 애굽으로 피난하여야만 했다. 헤롯이 베들레헴 주변에서 태어난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다 찾아내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나자마자 그 인생의 한 싹이 헤롯의 발에 밟혀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애굽에서 돌아 온 예수는 나사렛에서 자라났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목수 요셉의 아들 정도로만 여겼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마을의 낭떠러지로 끌고 가셔 밀쳐서 죽이려고도 하였다. 예수는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되어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예수의 생명을 보존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례 되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 내신 것이다.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은 우리가 믿는 신앙생활의 큰 틀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살아가신 그 생애의 시작을 이사야는 한 싹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실하도록 자라난 한 싹.
아무리 싹이 좋고 푸르러도 결실이 문제다. 결실하기 전에 병균과 해충의 피해를 입고 말라 버리고 죽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우리 중에 농사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 주말 농장을 하시는 분들 정도이다. 우리가 식탁에 올리는 그 모든 채소와 먹을거리들이 다 싹에서 시작한 것들이다. 김장 재료인 무와 배추가 그렇지 않나. 양념으로 쓰는 고추, 파, 마늘, 생강도 모두 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고 한 싹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으로 태어났고 자라났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 이름이다. 이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유다 지파의 후손이다. 이새는 베들레헴에서 살았다. 그 가정의 여덟 번 째 막내아들이 다윗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1장 1절 말씀처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로 태어 나셨다. 예수는 이스라엘 변방 마을인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왕궁에서 태어난 분이 아니었다. 그 싹이 자라고 그 가지가 자라서 결실한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여러 차례 그를 죽이려는 이들로 인해서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가셨다가 거기서 붙잡혀 심문을 당하시고 영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끌려 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 죽음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께 실망한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가 버렸다. 예수만이 고독하고 외롭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 곳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를 비롯한 갈릴리에서 온 많은 여인들이 울고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결실이 없는 헛된 죽음 같았다. 예수는 “다 이루었다.”하며 크게 소리 지르시고 운명하셨다. 그 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다. 땅이 진동하였다. 바위가 터졌다. 무덤들이 열렸다.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 그들이 예수의 부활 후에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 예수 처형을 주관한 백부장과 그 곁에 있던 병사들은 지진과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심히 두려워했다. 그 때 백부장이 말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예수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시들시들한 인생을 사시다가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고 잊혀져버린 싹이 아니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무리들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러나 그는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는 무덤에서 다시 사심으로 결실하신 믿는 자의 구주이시다. 그 한 싹과 한 가지가 받아들여지는 가정마다 살아났다. 나라마다 살아났다. 시대마다 살아났다. 그 한 싹은 한 영혼을 살리고 한 가정을 살리고 한 나라를 살리고 한 민족을 살리고 한 시대를 살리고 역사를 살리는 생명력이 넘치는 한 뿌리에 근거한 것이다. 이사야 11장 10절을 보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그렇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이 인생을 죄에서 구원하고 인류를 악과 불의에서 구원하고 역사를 사탄의 결박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되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예수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신 한 싹.
1절과 10절에서 “한 싹” 혹은 “한 가지”라고 말씀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위에는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셨다. 2절에 보면 여섯 가지로 설명하였다. 자세히 보면 둘씩 묶어서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라고 하였다. 이 여섯 가지를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한 2절의 말씀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지혜와 총명의 영”이 무엇인가. 영어로는 “wisdom and understanding"이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의 지적 능력의 완전성을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는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고 사물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이시다. 세상 학문과 세상 학자들의 지식이란 것은 대단히 세분화 되어 있다. 이는 과학자, 의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의 세계도 천문학, 해양학, 지질학,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곤충학 등등 세분화하면 수 천 가지, 수 만 가지를 세분화해서 자기의 영역을 연구한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총명은 그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지혜와 총명의 근원이시고 근본이시다. 여호와의 영의 임재란 그런 것이다. 예수는 메시아로서 그리스도로서 진리를 진리 되게 온전히 밝히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안에 자유함이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 그 자체를 향한 예수의 지혜와 총명은 부족함이 없으신 완전한 지혜요 완전하신 총명이시다. 

“모략과 재능의 영”이란 무엇인가. 영어로 “counsel and power"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께 임한 여호와의 영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모략의 영 즉 counsel의 영이요,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재능의 영 즉 power의 영이시다. 예수께 임한 여호와의 영이신 모략과 재능의 영은 올바른 판단을 하고 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실 수 있는 완전하신 능력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는 실수나 부족함이 전혀 없으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통치는 완전하며 충분한 능력이시다. 

또한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하였다. 영어로 “knowledge and fear of the Lord"라고 하였다. 예수에게 있어서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족함이 없으시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경건함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온갖 모든 능력이 임재 해 있으시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에게 강림하심으로 예수와 하나님은 완전하게 일치하여 임재 해 있으시다. 두 분이 하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교훈하였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9)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이 임하신다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다. 입체적인 것이며 완전한 것이며 부족함이 없는 것이며 충분한 것이다. 흠과 티도 없는 온전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며 성령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만민을 평화롭고 영화롭게 할 한 싹.
예수는 예수께 임한 여호와의 능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되 그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셨다. 3절에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라는 즐거움이란 호흡 즉 숨을 쉰다는 뜻이다. 즉 “생명을 삼는다.”는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예수의 삶 전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었다. 예수는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 벗어난 적이 없다. 멀리한 적이 없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체로 오신 예수 안에 완전히 거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고 판단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 분의 심판과 판단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며 판단이셨다. 예수의 눈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로 향하셨고 예수의 귀는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로 향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공의와 정직과 성실하심으로 세상을 대하고 다스리셨다. 예수의 입의 막대기는 세상의 불의를 판단하는 막대기이셨다. 예수의 입술의 기운은 악인을 판단하시는 기운이셨다. 예수의 입술에서 나오는 권능의 말씀은 악인을 판단하고 악을 심판하는 기운이셨다.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불법한 자를 죽이시고”(살후2:8)라는 말씀이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 8절 이하의 말씀을 읽다 보면 불의는 멸망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구원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2) 

이 세상에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불의란 없다. 모든 불의와 불법은 해 아래서 어둠 가운데 있던 것들이 형체를 드러내듯이 드러나고 밝혀지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으로 하여금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4)고 하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있어서 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의복을 제대로 차려 입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근동 사람들의 호로 지어 입는 옷은 허리띠를 띠지 않으면 생활에 큰 불편을 준다. 그러므로 반드시 허리띠를 띠어야 한다. 공의와 성실로 허리띠와 몸의 띠를 삼으신다는 말씀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로서 허술함이 없이 신속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구원주이심을 선포한 말씀이시다. 

출애굽기 12장 11절에 보면 출애굽하는 백성들에게 명령한 명령이 그것이다. 이것이 곧 유월절 명령이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그렇다. 우리는 예배의 시간, 말씀의 시간마다 주의 말씀을 대할 때에도 마치 유월절 음식을 먹는 듯한 자세로 먹어야 한다. 주의 말씀을 들어도 그만 못 들어도 그만이 아니다. 반드시 들어 깨달아 알고 믿고 따르고 순종함으로 주의 말씀이 나의 삶에 공의의 허리띠요 성실의 띠가 되도록 하여야만 한다.  “그 때에” 완전한 평화가 임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11장 6-8절에 나오는 내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이다. 

어떻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는가. 
어떻게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울 수 있는가.
어떻게 송아지와 살진 짐승이 어런 사자와 함께 있을 수 있으며 더군다나 조련사도 아닌 어린 아이에게 이끌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암소와 곰이 함께 먹을 수 있는가.
어떻게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어떻게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이 온단 말인가. 
어떻게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하며
어떻게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수 있단 말인가. 

한 마디로 하면 에덴동산의 원 창조와 같은 완전한 평화의 세계가 전개된다는 말씀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화해와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그 날이 오면, 6절의 “그 때에”라고 말씀하는 그 때가 되면 이런 평화가 완성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도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지는 영광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다스리는 세상, 여호와의 통치를 받아  들이는 세상을 말씀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가. 지금 당신은 어떤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가고 있는가. 도대체 무슨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가. 

6절의 “그 때에”,  10절의 “그 날에”라는 시간 설명에 주목하자. 우리는 각 사람이 주 안에서 그 날과 그 때를 경험하여야만 한다. 그런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런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여야 한다. 그런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런 여호와의 영이 우리 각 사람에게도 임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에 그런 영적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강림절, 그런 성탄절 맞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날이 되면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다.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 올 것이다 .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롭게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의 삶의 자리에 그런 평화, 
그런 영화로운 은총과 복이 임하기를 축복한다. 

이것은 주께서 이 땅에 구원의 처소와 방편으로 세우신 교회 회복의 영광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실 재림 주의 영광이시다. 

내 안에 주의 평화와 영화로우신 영광이 가득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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