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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6:1-10) 201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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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11-06 16:48 조회 14,932 댓글 0
 
주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6:1-10)        2016. 11. 6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죄 없이 흠 없이 사는 인생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죄인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수 없다.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이 곧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경계를 지워 버리며 이웃나라를 점령해 가는 군사 동원 능력이 곧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이나 그가 소유한 재물의 량이 그 자신은 아니다. 사람은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다 죄인이며 연약한 존재이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귀하게 여김을 받는 자가 천대 받는 자나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누구나 다 한 인격이다.

사람이 힘이 세기로 하면 코끼리만큼 셀 수는 없다. 아프리카 코끼리 중에는 7.5t 나가는 것도 있다. 인도코끼리는 평균 5t까지 자란다. 그 힘을 상상해 보라. 사람이 공중을 나르려면 독수리처럼 나를 수는 없다. 기러기는 한 해 동안에 날아서 1만km이상을 이동한다. 사람이 우사인 볼트처럼 빠르게 달려도 치타처럼 빠를 수는 없다. 치타는 시속 113km를 달린다. 토끼도 시속 77km를 달린다. 어려서 뒷산에 눈이 덮이면 그 산토끼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쫓고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쫓아간다고 해서 사람이 따르는 속도로 토끼를 잡을 수는 없다. 물론 인간에게는 과학을 발전시켜서 잠수함을 타고 물속에서 지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이동하며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에 날아오르기도 한다. 기중기와 포크 레인을 발명하여 코끼리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들을 해결한다. 자동차나 빠른 기차의 속도는 치타와 비교할 수 없다. 최첨단 의학 장비들은 나노 수준의 수술 장비들을 개발하여 인간의 몸속 오장 육부에 혹은 혈관 속에 깊게 찾아 들어가 수술도 하고 병을 고치기도 한다. 

이처럼 별의 별 과학의 발전과 문명의 이기를 발명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살아갈 지라도 인간의 본래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은 죄에 갇히고 죄의 수렁에 빠지고 나면 그 죄의 결박으로 인하여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이 세상에 죄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인간은 아무리 권력과 지위가 높아지고 아무리 엄청난 부를 소유하며 누릴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분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입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시편 6편은 다윗의 시이다. 참회시(懺悔詩) 혹은 회개시(悔改詩)로 구분된다. 내용 중에서 만나는 다윗은 죄에 대한 고민과 불안으로 인해서 그의 몸과 마음이 몹시 쇠약해져 있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간절하게 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징계하지 마옵소서.”하는 그의 기도 내용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지 않나. 

다윗은 이와 같은 기도를 그가 왕으로 있을 때에 기도하였다. 왕이라도 죄의 고민에 빠지면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왕인 다윗이 죄로 인하여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리며 몸이 쇠해져 가는 고뇌의 깊은 늪에 빠져서 괴로워하고 있다. 

아마도 다윗이 휘하의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의 일일 것이다.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의 최일선에 보내서 죽게 한 후의 일일 것이다. 다윗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되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죄악을 범한 이후였다. 이미 그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이미 그는 지울 수 없는 죄의 현장에 있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실망스럽고 비참하고 부하들과 주변 방백들과 백성들의 따가운 시선을 이길 수가 없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울며 슬퍼하며 밤잠을 설치며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고민하며 참회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하나님 안에서 청년기를 보낸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런 다윗이 이런 범죄에 연루되어 죄로 무너지고 악으로 병들어 버릴 줄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물론 이는 추측일 뿐이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또 다른 그 어떤 범죄로 인하여 이처럼 처절하게 고뇌하며 괴로워하고 씨름하는지는 하나님과 다윗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처절하게 씨름하며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는 탄식하며 피곤에 지쳐 기도하고 있다.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띄우며 요를 적시며 기도하였다. 다윗의 몸은 수척해졌고 그의 뼈와 영혼이 몹시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죽을 것만 같았고 무덤에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의 눈은 근심으로 쇠해졌고 그의 눈은 그를 비난하고 못마땅해 하며 조롱하고 멸시하고 흉보며 손가락질하는 이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다. 다윗은 스스로도 자기가 한심스럽고 자기가 미웠다. 참회란 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표면적인 행위가 아니다. 참회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회개의 행위를 말한다. 

믿음의 사람 다윗의 고민과 불안은 하나님께서 영영 자신을 버리시고 떠나 신 후에 자기에게 되돌아오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초조함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6:4, Turn, LORD, and deliver me, save me because of your unfailing love.)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이 곧 심판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윗의 참회하는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기도 응답의 확신 가운데 간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기도의 내용이 과거 시제로 되어 있다. 

8절부터 미리 보자.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다윗은 무슨 내용을 기도하고 있나.


여호와여 나에게서 분노와 진노를 거두소서.
인간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가운데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를 통해서 인간에서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부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분노를 발하시거나 진노하시면 살아남을 육체란 없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라. 하나님이 사십 주야를 하늘의 창문을 열고 비를 쏟아 부으시니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이 땅의 인생이 다 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을 내리실 때를 보라.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심판을 농담으로 여기던 롯의 두 사위가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모세 때에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니 나일 강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변하였다.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짐승이 죽어 가는 재앙, 독종, 우박, 메뚜기, 어둠의 재앙에 이어서 온 애굽의 장자를 치는 재앙이 임하였다. 재앙이 임하고 나니 애굽 땅과 나일 강과 곡물과 과실과 짐승과 인생을 지키는 힘이 애굽 백성들이 믿는 우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욥기를 보라. 욥은 십 남매를 두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그에게는 일곱 아들과 세 딸이 있었다. 형제자매의 의리도 좋았다. 그는 양과 낙타와 소와 나귀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종의 수도 많았다.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욥1:3)는 평을 받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가정의 10남매가 맏아들의 집에서 잔치하다가 하루 한 순간에 다 죽었다. 그 많던 짐승들도 다 죽고 따 빼앗겼다. 그 많던 종들도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들의 침략을 받아 욥의 짐승들과 종들은 초토화 되었다. 다 빼앗기고 다 죽고 말았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남은 양과 종들을 불살라 버렸다. 

욥기 1장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탄과 하나님의 대화 내용이 나온다. 그러므로 욥이 당한 재난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탄의 세계에 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대하는 다윗의 기도 내용 가운데서는 단지 다윗의 기도와 다윗의 불안과 다윗의 염려와 다윗의 초조한 긴장만을 묵상해 보자. 왜 다윗은 이처럼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 것일까.

왜 다윗은 “여호와의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다윗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시면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왜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진노하실까. 언제 어떤 경우에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일까.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용서와 긍휼과 자비가 넉넉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죄의 용서를 구하며 기도하고는 한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의 심각성을 갖고 진지하고 정직하게 회개하지는 않고 다만 하나님이 분노의 칼을 뽑아 드시거나 진노의 채찍을 들지 않으시기만을 바란다면 얼마나 얄팍한 인간의 심보인가. 

그러므로 지금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와 악을 문제를 갖고 아파하고 씨름하고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면서 처절하게 회개하고 참회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고민하는 가운데 그의 몸이 수척해졌다. 그의 뼈가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다윗은 그의 영혼도 매우 떨려서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초조하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분노의 손을 거두시고 진노의 팔을 거두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죄와 악 가운데서 살아가는 죄인 된 인간이 피할 곳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품뿐이다. 여호와만이 인생이 피할 바위이시다. 그래서 찬송시인은 이렇게 찬송한 것이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찬송 70장 1절)
“높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되시는 주 하나님”(찬송 70장 4절)


여호와여 긍휼을 베푸사 나를 고치소서.
게속되는 다윗의 기도는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였다. 2절의 ‘은혜’라는 단어는 ‘긍휼’을 구하는 기도이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를 고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다윗은 마음이 괴롭고 심정이 답답하고 불안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몸과 마음이 점점 수척해가고 병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다윗의 몸이 어떤 병으로 고생스러워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죄와 악에 대한 불안과 고민과 마음의 고통으로 인하여 그의 몸과 마음은 점점 수척해져 가고 점점 나약해져 가고 있었다. 다윗은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탄식으로 지쳐 있고 피곤에 빠져 들어 가고 있었다. 그의 눈은 근심에 가득 찼고 눈 마져 쇠하고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다윗은 죄의 대한 고민으로 울며불며 기도하였다. 다윗은 이러다가 그냥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가 누구리이까.”하고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가 뭔가. 60kg쯤 나가던 몸무게가 40kg쯤 나가고 얼굴을 피골이 상접하고 몸에는 살과 근육이 잡히지 않고 미라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나. 그런 중에서도 다윗은 뼈가 떨리고 영혼도 몹시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잠시 떨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몸과 영혼이 벌벌 떨린 것이다. 우리가 몸살이 나고 체온만 2도 쯤 올라도 덜덜 떨면서 다 죽어 가는 자처럼 힘들어 하지 않나. 지금 다윗이 그 지경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고쳐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용서가 임해서 어서 몸과 마음과 영혼에 안정이 찾아오고 평안이 임하길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그의 다른 참회시인 시편 130편에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하도다.”(시130:6)고 하였다. 다윗은 또 다른 참회시인 시편 32편에서도 그런 기도를 드렸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믐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32:3-4) 다윗은 알고 있었다.  주께로부터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지는 자는 복되다는 믿음이 있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죄 사함을 받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 들기 시작하면 몸과 마음에 새 기운이 돋고 새 활력이 임하게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고침을 받고 은혜가 임하여 몸과 마음이 자유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시편 38편에 보면 다윗은 본문과 유사한 고민 가운데 참회하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시38:10) 다윗은 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일까. 여호와의 은혜와 긍휼이 임해야만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네 사람이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예수님이 계신 집 안으로 천장에 구멍을 뚫어서 달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그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 그는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다. 나중에 예수께서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주께 간구하고 기도하여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덧입고 몸과 마음이 고침을 받는 치료와 회복의 절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나라도 고침 받고, 우리나라 정부도 고침 받고, 우리나라 고위층에 있는 지도자들도 고침 받고, 권력자의 곁에서 눈이 멀고 귀가 가리어져서 굶주린 이리처럼 탐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의 피폐해진 몸과 마음에도 치료의 은혜가 긍휼하심 가운데 임하기를 기도하자. 이 땅의 구석구석에 흩어져 살아가는 5천만 국민과 북녘의 2500만 동포들과 오대양 육대주의 모든 인류에게 이 같은 구원의 은혜와 긍휼하게 여겨 주시는 치료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하자. 


여호와여 나의 영혼을 건지시고 구원하소서.
그 누가 우리를 이 환난에서 건질 수 있나. 누가 나를 이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얼굴을 돌리고 떠나셨던 여호와께서 우리의 범죄한 현장, 악을 행하던 현장으로 돌아 와 주셔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그래야 죄사함의 은혜가 임한다. 그래야 다시 살 소망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여호와여 돌아와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말이다. 

여호와께서 돌아오시면 원수들은 부끄러워하며 물러갈 것이다. 4절에 “돌아오시는 여호와”와 10절에 “심히 떨며 부끄러워하며 물러가는 모든 원수들”은 서로 대비가 되는 정황을 그림처럼 그려 놓고 있다. 아침이 찾아오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말이다. 건강이 찾아오면 질병이 물러가고 평화가 찾아오면 불안이 물러가듯이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마음에 찾아오시면 죄악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가 물러가고 원수들과 대적들이 물러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하시는 심판을 당하여 불안해하고 수척해 하며 몸과 영혼이 벌벌 떨던 다윗인데 여호와께서 돌아와 은혜를 베푸시고 다윗의 간구에 응답하시니 상황이 일순간에 반대로 바뀌게 되었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고 뼈와 영혼이 몹시 떨려 하던 다윗이다. 그래서 다윗이 조롱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탄식하며 지내야 했다. 밤이 되면 다윗의 괴로움은 더하였다. 임금인 다윗이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눈물로 요를 적시며 지내야 했다. 그의 눈은 근심으로 가득 찼고 불안으로 어두워졌다. 다윗은 외롭고 고독했다. 범죄에 빠지고 병들어 쇠약해 있는 다윗의 곁에는 그를 무시하고 깔보고 조롱하고 멸시하는 모든 대적, 모든 원수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었다. 사람이 건강을 잃고 병들면 눈의 안력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환자의 눈 상태를 관찰한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2-24)

그렇다. 눈이 밝아야 몸의 모든 활동이 밝아지는 법이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기면 안 된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권력으로 눈이 어두워지고, 재물에 대한 탐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지면 결국은 불행해지고 만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지 권력, 재물, 지위, 명예, 인기 그런 것들을 섬기면 안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사를 대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고 그 것 때문에 불행해지고 그것 때문에 사망에 이르고 만다. 

다윗은 죄 범한 후에 더욱 더 처절하게 깨달아 알았다. 다윗은 울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 은혜와 긍휼하심을 절절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여호와여 돌아 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Turn, LORD, and deliver me, save me because of your unfailing love.)

영어 성경에 보면. ‘unfailing love’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수나 실패나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조금도 없으신 완전한 사랑이시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고침 받고 그래야 건짐 받고 그래야 구원 받고 그래야 행복해지고 그래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천국 백성답게 살게 되는 것이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 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이 같은 사명자의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언제나 강수처럼 넘쳐흐르는 나날이 되기를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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