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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왕하4:1-7) 2016.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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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 16-06-05 16:16 조회 17,672 댓글 0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왕하4:1-7)      2016. 6. 5

제시카 콕스(Jessica Cox: 1983~ )는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두 팔 없는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두 팔 없이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팔 없이 두 발로 세수하고 화장도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발만으로 콘택트렌즈까지 착용한다. 그녀는 손이 없으니까 타자를 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관점을 바꾸어 발로도 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결과 그녀는 더디긴 하지만 1분에 25단어 정도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핸드폰 자판으로 문자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주고받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끝이 없는 도전과 그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어려운 고비마다 못한다는 생각을 바꾸어 도전을 계속하였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시카는 도전에 도전을 계속하였고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고 있다.

 

그녀는 14살 때 태권도 1단을 땄고 애리조나대학 심리학과 재학 시절에는 2단을 취득했다. 두 발로 수영을 배우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서핑과 스쿠버 다이빙도 익혔다.

 

장애 여건에 맞춰 일부 개조한 차량으로 운전하는 장애인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제시카 콕스는 개조하지 않은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그녀는 장애인 면허가 아니라 일반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그녀는 "하늘을 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환상적일 것이라고 판단되자 곧 바로 비행기 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일반인이라면 통상 6개월 교육을 받으면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제시카 콕스는 3 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2008년에 그녀는 항공 역사상 처음으로 양팔 없이 비행기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꿈처럼 하늘을 날아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2013년에 한국을 방문하여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기’(Thinking Outside the Shoe)란 제목으로 가톨릭대학교에서 강연하였다.


하나님을 잘 믿고 경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불행한 일은 일어난다. 이는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가령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라고 해서 백년, 천년 전쟁이 없이 살 수 있었던 민족이나 국가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위협과 핍박과 환난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1889-1945) 정권 아래서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학살당한 것을 감히 어떻게 한 두 마디의 말로 설명하고 그 참담한 역사를 해석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잘 믿으며 살아보려고 씨름하였지만 질병과 사고와 사건과 실패 가운데 불운한 일들을 겪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 언제나 형통하고 항상 복되고 창성하게 된다.”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안 된단 말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 부부의 가정에도 장애를 가진 자녀가 태어나기도 한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잘 믿으며 살아도 어려운 일, 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의지하며 살아도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충격적인 일들을 온전히 다 피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의 인생사를 어떤 태도, 어떤 자세, 어떤 믿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기고 극복하며 살아가느냐는 질문 앞에 대답할 대답을 갖고 살아가야만 한다. 지금 당장 슬프고 괴롭고 가난하고 어렵고 답답하고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도 주 안에서 잘되고 복되고 형통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요 유대인이었던 아인쉬타인은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는 기적이란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요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기적의 연속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는 말을 남겼다. 

엘리사 때의 선지자의 제자들이란 엘리야 때에 활동하던 50명의 선지자의 제자들일 것이다. 이제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로 불려 올림을 받고 저들의 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부여 받은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나 엘리사와 다르게 결혼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선지자의 제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당시에 선지자의 제자가 되려면 결혼을 하면 안 된다든지 혹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한다든지 그런 제한이 없었음을 말한다.
역사학자 요세프스는 본문에 소개 된 선지자의 제자란 열왕기상 18장에 등장하는 아합 왕의 곁에서 왕궁 맡은 자로 출세하여 지내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던 오뱌댜 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바댜는 악명 높던 왕후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다 죽이려고 하던 때에 몰래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따로 따로 동굴에 숨겨서 지내게 하고 떡과 물을 공급하던 신실하게 하나님을 잘 경외하던 이였다. 역사학자 요세프스는 오바댜가 100명의 선지자들을 공궤하느라 경제적으로 많은 빚을 지고 지내던 중에 결국은 빚을 해결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의 추측일 뿐 성경 본문에 보면 그런 유추를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다른 설명도 더 이상 없다. 그러나 본문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 놓고 빚만 잔뜩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선지자의 제자가 어느 누구인지에 대하여 더 이상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선지자의 제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던 한 가정의 가장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더군다나 유산은커녕 빚만 잔뜩 남겨 놓고 죽고 말았다. 앞으로 살길이 묘연해진 아내는 어린 두 아들들과 함께 답답한 심정을 안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울며 부르짖으며 하소연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이리 이리하라고 처방을 말씀하셨다. 이웃에게 가서 빈 그릇을 빌릴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려다 놓고 집의 바깥문을 닫고 집 안에서 한 병 남아 있는 기름 그릇의 기름을 그 빌려온 그릇마다 붓기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났고 빈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 가득 담기는 이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더 이상 채울 빈 그릇이 없게 되자 기름 그릇의 기름이 멈추었다. 집 안에는 발 디딜 공간이 없이 크고 작은 그릇마다 기름이 넘쳐 나게 되었다. 이 기적의 사실을 엘리사에게 가서 전하였다. 엘리사는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두 아들과 함께 생활비를 충당하라고 축복해 주었다. 


부르짖는 한 여인.
남편은 죽고 두 어린 아들들과 함께 살길이 막연해 진 선지자 제자의 부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부르짖으며 자신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하였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유산이라도 남겨 놓고 죽은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무슨 벌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딱한 형편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이 진 빚으로 인해서 채권자들은 두 아들이라도 내어 놓으라고 강요하는 지경이었다. 채권자들이 빚을 못 갚는 채무자에게 자식이든 가족의 몸을 담보로 요구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에도 있다. 그러나 레위기 25장 39절과 40절에 보면 그런 경우에 상대방을 종으로 대하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채권자를 섬기도록 하라.”고 정해 주었다. 출애굽기 22장에 보면 이방의 나그네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고 하였다.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했다. 고아나 과부에게 해를 끼쳐서 그들이 억울함을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들의 억울한 부르짖음을 들으시겠다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어려운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삼천년 전이나 오늘 날이나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이다. 모세 때의 광야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삼일 만에 마실 물이 없어 당황하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모세 앞에서 하소연하였지만 물의 문제, 만나와 메추라기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모세가 아니지 않나. “물을 주세요, 먹을 것을 주세요”라고 부르짖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해결 해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나절이든 하루 종일이든 당장 나서서 무슨 일이든지 해야만 소득이 생기는 법 아닌가. 그것이 어떤 노동이든, 혹은 시간급으로 벌이를 해야 하는 그 어떤 아르바이트이든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능력이 없다면 어찌 짧은 기간에 두 아들을 빼앗길 정도의 큰 채무를 청산할 경제적인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전관예우를 받는 대한민국의 검사장 출신 변호사라면 몰라도 말이다. 

딱한 형편이 된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 나아가서 부르짖었다. 이는 사실 엘리사에게 부르짖은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본인의 딱한 처지를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 엘리사 앞에서 부르짖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어야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하나님이 돈을 주시냐 떡을 주시냐고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예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에 가나안 여인이 소리를 지르며 부르짖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예수님은 못 들으신 것처럼 한 마디의 반응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의 대답은 냉담하였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 때 그 가나안 여자가 다가 와서 예수께 절을 하며 다시 말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고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 
어린 애기가 울면 엄마가 애기의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엄마는 애기가 먹고 싶어 우는지, 졸려서 우는지, 큰일을 했다고 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우는지, 어디가 아프다고 우는지 그 울음소리를 따라서 상황을 판단하고 아기에게 도움을 준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시다. 지정의의 인격을 가지신 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응답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선지자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처방.
이 여인의 딱한 사정을 들은 선지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하고 물었다. 이는 엘리사 선지자가 그 여인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을 못해서 물은 질문은 아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이어서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재차 물었다. 그 때 그 여인이 대답하기를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이는 마치도 열왕기 상 17장에 소개된 엘리야 선지자와 시돈 땅 사르밧 여인의 일화와 비슷하지 않나. 사르밧 여인도 너무나 가난해서 집 안에 남아 있는 가루 조금과 기름 조금을 가지고 나뭇가지를 주어다가 마지막 떡 한 덩이를 구워서 아들과 먹고 죽을 날을 기다리려 한 처량하고 불쌍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3년 반 동안의 가뭄의 때에 그 집의 가루 통의 가루가 마르지 않고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어느 날 그 집의 외아들이 죽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왕상 17:20-21)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그 불쌍한 여인의 하나 밖에 없는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다. 

본문에 보면 부르짖는 여인에게 엘리사 선지자가 처방한 내용이 이어진다. 두 아들과 함께 이웃집에 다니며 그릇을 많이 빌려다가 집 안에 쌓아 놓고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한 그릇 남아 있는 집안의 그 기름을 부으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하게 채워 질 것이니 그 차는 기름그릇 마다 옮겨 놓으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엘리사의 명령을 대할 때에 “무슨 어린아이들 소꿉장난 같다.”고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라.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하신 기적의 일들은 한 결 같이 쉽게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되는 것들이 아니지 않나. 노아의 여덟 가족들이 홍수 때에 방주 안에 들어가서 살아남지 않았나.

아브라함이 100살 때에 90살이던 아내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은 상식적인가. 

모세가 바로 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며 홍해를 건넌 일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해결하시고 공급해 주셨나. 

40년 후에 여호수아 때에 요단강은 어떻게 건넜나. 여리고 성은 어떻게 무너졌나. 하나님이 하신 말씀들이 인간의 상식으로 쉽게 받아 들여 지는 것들인가. 

다니엘이 사자 굴속에서도 사자의 밥이 되지 않았다. 사드륵 메삭 아벳느고는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던져 졌는데도 그 불에 타 죽지 않았다. 요나는 제비 뽑혀 바다에 던져 졌다.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다. 삼일 간 큰 물고기 배 속에서 회개하며 기도하였다. 큰 물고기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시니까 다시 육지에 토해져서 살았고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며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였다. 

우리가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도 계셨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도 계셨다. 하나님은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고 장래에도 영원히 계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남편을 잃고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답답해하는 여인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처방이다. 이는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조금 빌리지 말고”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많이 빌리라는 말씀이 아닌가. 

아삽의 시인 시편 81편 10절에 보면,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8장에 등장하는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나왔던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고 축복하셨다. 그 즉시 그 하인이 나았다. 그 백부장은 예수께서 그 백부장의 집에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시자 가실 것 없다고 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자신도 “부하에게 가라 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하라 하면 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자기 하인이 나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은 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

사람은 생각의 집, 믿음의 집에서 사는 것이다. 누에나 송충이는 자기의 입에서 뽑아내는 실로 ‘고치’라는 집을 짓고 산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과 믿음을 먹고 사는 것이다. 긍정적인 믿음은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과 입의 말은 그 입의 말과 그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하여 갇히고 말게 된다. 

모세시대 때에 출애굽한 백성들 중에서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은 나중에 가나안에 단 한 명도 못 들어갔다. 민수기 21장 4절 이하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 산에서 출발해서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기 위하여 행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길은 멀고 험한 광야 길이었다. 그 때에 백성들의 마음의 많이 상하였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그 때에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들 가운데 보내서 불평하는 백성들이 뱀에 물리게 하셨다.  그 사건으로 불뱀에 물려 죽는 자가 속출하였다. 다급해진 백성들이 모세에게 몰려들어 말하였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 때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처방을 말씀하셨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어 달았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큰 소리를 말하였다. “놋 뱀을 처 다보는 자마다 살리라.” 그런데 불뱀에 물린 자들 중에서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쳐다 본 자들은 살고 믿지 않고 바라다보지 않은 자들은 죽어 갔다. 

오늘 날 모세가 요단 강 건너 가나안을 바라 본 느보 산 언덕 정상에는 기념 예배당이 지어져 있다. 그리고 그 한 편에 높다란 놋 뱀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이 무엇인가.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 12정탐꾼의 일화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 한 후의 보고는 똑 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10명의 정탐꾼과 2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천지차이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13:31)고 부정적으로 말하였다. 언제나 부정과 긍정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큰 것이다. 이 때 백성들 사이에 상상하기 어려운 반역 분위기기 조성되었다. 
온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그 원망소리가 대단하였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2-3) 그리고는 백성들 간에 서로 웅성거리며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에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 앞에서 땅에 엎드렸다. 이것은 백성들 앞에 엎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린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다시 나서서 옷을 찢으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14:7-9)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나타나셔서 그 위기를 막아 주셨다. 

엘리사는 엘리야처럼 임금을 상대하고 국가적인 온 백성들을 상대하는 거국적인 선지자였다. 열왕기 하 3장에서 대한 대로 모압과의 전쟁의 위기를 해결할 정도로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각종 처방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엘리사를 통하여 한 여인과 어린 두 아들이 겪고 있는 불행을 해결해 주는 자상한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로 엘리사를 쓰고 계셨다. 


말씀 순종과 일어난 기적. 
이 여인은 두 아들과 함께 엘리사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온 마을과 이웃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크고 작은 그릇들을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려 왔다. 집안 가득히 빌려 온 그릇을 쌓아 놓았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대로 문을 닫았다. 이는 은밀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시되 골방 기도를 명하시기도 하였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문을 닫은 집 안에서 두 아들은 부지런히 빈 그릇을 날라다 진열하고  어머니는 마빌려온 그릇마다에 기름을 붓기 시작하였다. 부으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옮겨 놓고 부으면 채워지고 가득 차면 옮겨 놓기를 계속하였다. 두 아들들이 이제는 더 이상 빈 그릇이 없다고 말하자 붓던 기름이 멈추었다. 그 여인은 이 사실을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알렸다. 엘리사 선지자는 “너는 가서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왕하4:7)고 말하였다. 

이는 마치도 예수님 때에 벳세다 광야에서 있었던 오병 이어의 기적 장면이 생각나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기적 말이다. 어린 아이가 내어 놓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이 먹고 그 부스러기를 모았을 때에 오히려 12 광주리가 남은 기적의 장면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덧입고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마치도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과 똑 같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신앙생활은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사는 생활이다. 그것이 생명이든 물질이든 건강이든 그 무엇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 후서 6장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4-10)

제 2차 대전 때에 한 쪽 다리를 잃은 참전 용사가 프랑스 파리의 부흥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발을 짚고 가고 있었다. 그를 본 어느 두 남자가 “집회에 가면 잘려 나간 다리가 다시 생길 줄로 아나 보지”하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었다. 그 때 그 참전 용사가 말하기를 “물론 나는 하나님이 새 다리를 주시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두 다리가 성한 사람 못지않게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힘과 믿음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그런 믿음과 희망을 날마다 새롭게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 이 부흥회에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아라. 그리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아들이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거라.”그렇다. 네게 남아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새로운 공급을 체험하는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살아가자. 죄 사함과 성령의 충만함과 구원과 영생의 선물도 그런 믿음의 사람들에 주어지며 주님 안에 행복자로 살게 하시는 은총이다.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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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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