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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의 시작(에스라 7:1-10) 신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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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1-07 20:35 조회 15,894 댓글 0
 
한해가 다 가고 또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때와 기한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물론 인간이 계획을 하고 시행하며 살지만 그 모든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전도서 3장 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이 일 후에’라는 말씀은 스룹바벨의 때에 시작된 제 2 성전 공사가 중간에 방해를 받아 중단되었다가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완공되어 봉헌을 마친 그 후를 말한다. 세월로는 이미 58년 세월이 다시 또 흘렀다.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란 지루하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하겠지만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과 세월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편에서 보시면 결코 긴 세월도 아니다. BC 516년에 제 2 성전 봉헌했고 지금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당도한 것은 BC 458년이니 58년 세월의 차이가 난다. 그 사이에 이미 다리오 왕, 아하스에로 왕의 치정기가 끝나고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하고 있던 때였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앞장 서서 제 2차 예루살렘 귀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에스라는 모세의 형이요 초대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16대 손이었다. 모세 시대의 신앙 전통이 1,500여 년 동안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온 경건한 전통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기업을 유산으로 물려준다든지 엄청난 주식을 유산으로 물려준다든지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좋겠지만 참으로 소중한 것은 신앙 유산을 물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에스라에게는 비록 그가 포로의 땅에서 살아 왔지만 언제나 자신은 아론의 후손이요 제사장의 후손이라는 긍지를 갖고 항상 말씀 연구에 철저한 세월을 지켜 왔던 인물임이 분명하다. 시간과 족보도 지금의 나도 다 이처럼 소중한 것이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오늘 없는 내일 없다. 과거와 현재와 장차 다가올 미래의 시간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행을 꿈꾸면 안 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심은 만큼 거두는 것이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는 자연의 법칙은 성경적인 원리이다. 에스라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 아니다. 철저하게 준비된 인물을 하나님이 찾아 쓰신 것이다. 그의 선조들 중에는 다윗과 솔로몬 임금 때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스7:2)같은 인물도 포함 되어 있다.

드디어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 왔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 멀고 먼 길을 가야만 했다. 곧게 가면 900킬로미터이지만 1,500킬로미터의 길을 갔다. 무려 5개월의 기간 동안 이동하고 또 이동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스7:9) 에스라 7장 6절의 말씀에 그런 세월의 배경이 숨겨 있는 것이다. 이 날이 감격의 날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이런 날들을 경험하게 되지 않는가? 시인 이상화의 시처럼 빼앗겼던 땅에 봄이 오는 그런 날 말이다. 올 한 해를 살아가면서 이런 축복과 감격의 순간들을 경험하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아무나 시대적인 주인공으로 쓰신 것이 아니라 존귀하게 준비된 인물을 준비하시고 찾아 선택하여 쓰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이룩한 자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던 인물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아 낼 정도의 능력자

오늘 말씀을 좀 더 상세히 묵상하여보자.

말씀의 능력자들이 되라.
성경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물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준행하며 살아가고자 힘썼던 인물들을 들어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된다. 에스라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라고 했다. 이것이 평범한 것 같지만 대단히 소중한 말씀이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꿀 송이처럼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고 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119:97)라고도 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도 했다. 오늘 말씀 6절에 ‘익숙하다’는 뜻은 ‘잘 알 뿐만 아니라 그래도 실행하는’이란 뜻의 ‘마힐’(mahil)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이 학자의 길이다. 성경은 그냥 공부하고 배워서 아는 것이 많은 것만 가지고 학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사람들이 서기관인 것이다. 에스라는 당대에 유명한 학자였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시는 것이다. 신구약 전체로 하면 하나님이 쓰시는 말씀의 사람의 특징이 있다. 말씀과 기도와 삶이 하나로 엮어져서 함께 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말씀을 주야로 연구하는 자(스7:10, 딤후2:15)

•말씀을 힘써 전파하는 자(스7:10, 딤후 4:2)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스7:11-28)

•기도에 항상 힘쓰는 자(스8:21, 10:1)
이번 달에 추천 도서로 <새벽 기도하는 CEO>라는 책을 소개하였다. 기도 생활 하지 않고도 공부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정치도 잘하고 연구도 잘하고 진급도 잘하고 매사에 잘 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남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끌어안고 회개 기도하는 자(스10:6)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자(시119:11, 113)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준비되어 있는 자(시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항상 의지하라.
오늘 에스라의 생애의 특징을 보면 길지 않은 본문에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 6절과 9절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신앙이란 이런 면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내 힘으로 내 손을 무엇이든지 다 해 왔고 앞으로도 내 힘으로 무엇이든지 해 나갈 것이라는 자신감과 의지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자기 교만이다. 매우 어리석고 미련한 소행이다. 이번에도 나라에 일을 보아라. 이미 60만 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를 땅 속에 매장해야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일이 계속될지 모른다. 사람이든 짐승 한 마리이든 공중을 날아다니는 참새 한 마리이든 강과 바다 속의 물고기 한 마리라에게라도 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있어야 한다. 우리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인 것이다. 그런 고백을 누구나 갖고 살아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그 앞의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광야의 모세 때의 백성들의 모습을 언급한다. 사도 바울은 모세 때에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라고 해석했다. 반석은 그리스도이시며 반석의 물을 마신 것은 신령한 음료를 마신 영적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출발을 한 히브리 백성들 중에도 광야 생활 중에서 우상 숭배하고, 음행하고, 주를 시험하고, 하나님과 모세와 서로를 향해서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과 멸망을 받은 광야 백성들의 모습을 예로 들고 있다. 광야에서 음행하던 이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23,000명이 죽었다.(고전10:8)주를 시험하고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세하게 인도해 주셨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

그러므로 우리는 올 한해도 그리고 날마다 평생토록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겸손하고 겸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하겠다. 이번 1월 내내 새벽마다 묵상할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말씀에 보면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에 대한 말씀들이다. 이런 믿음을 갖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곁을 다녀가실 때에 예수님이 남기신 유명한 말씀이 있지 않은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결심(決心)을 새롭게 하라.
10절에 ‘결심하였더라.’고 했는데 이는 ‘마음에 두었더라’는 뜻이다. 에스라는 지난 주일에 묵상했던 느헤미야처럼 이미 바벨론 땅에서 출세한 인물이었다. 왕에게 무엇을 요구하면 허락을 다 받아 낼 정도의 인물이었으니 상상을 해 보라. 6절에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왕도 귀하지만 왕과 이런 관계를 가질 정도면 대단하지 않은가? 창세기의 요셉이 바로 임금 곁에서 그런 인물이었다.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다니엘이 그런 인물이었다.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왕비 에스더가 그런 출세한 인물이었다. 오늘 에스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왕이 되려는 것도 좋지만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축복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안에서 왕 중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런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자.

에스라는 그런 좋은 자리를 뒤로하고 고생이 많이 예상되는 예루살렘 귀환 길을 선택하였다. 이유는 분명했다. 결심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학자로서 동족 히브리 민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가르쳐 주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배워서 남 주는 거룩한 말씀 운동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1-33)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교회에 덕을 세우라
•주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가라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가라
•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해라.

성경은 위대한 결심의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어 온 하나님의 역사이다.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방주 지을 결심한 노아(창6:13-22),
하나님의 말씀 따라 고향 떠날 결심한 아브라함(창12:1-4),
독자 이삭이라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번제로 드리려고 결심한 아브라함(창22장),

루스 광야에서 돌베개 세워 기름 붓고 하나님의 집을 세울 벧엘의 서원과 평생 십일조의 서원을 결심한 야곱(창28:20-22),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주인 마님의 유혹을 피하기로 결심했던 요셉(창39:9),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할 결심을 한 모세(히11:24-27),
오직 하나님만 잘 섬기기를 선언하고 결심한 여호수아(수24:15),
하나님의 뜻대로 바알의 단을 허물기로 결심한 기드온(삿6:25-28),
시어머니 나오미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한 룻(룻1:16),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던 백성들에게 말씀 가르치기로 결심한 에스라(스7:10),
생명 보존을 위해 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기로 결심한 느헤미야
(느6:11),
죽으며 죽으리라고 금식하며 왕 앞에 나아갈 결심을 했던 에스더(에4:16),
온전히 무녀져 버린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 원망 절대 안 하려고 결심한 욥
(욥2:9-10),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니엘(단1:8),
죽을지언정 우상 앞에 절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단3:17-18),
가롯 유대 외에는 온전히 주 예수를 위하여 순교자의 길을 결심했던 주의 12제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 죽기를 결심한 사도 바울(빌1:20-21)을 보라.

기독교 이천년 세계 선교의 거장들을 보라.

이제 사도행전 29장의 새 역사를 써 가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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