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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전쟁(삿7:1-8)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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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9-28 16:44 조회 20,437 댓글 0
 
조선 시대 말기에 충청남도 예산의 어느 처녀가 17살에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하다가 이태 만인 19살에 남편을 사별하고 홀로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만나면 "에게게... 꽃이 피다 말았네." 하면서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겼다. 그녀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며 어느 날 거울 앞에 앉아서 비녀를 꽂았던 긴 머리카락을 풀어 내리고 사정없이 가위로 잘라 버렸다. 얼마 후에 단발머리로 그녀는 서울에 와서 남의 집 식모살이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주인에게 "나는 무슨 일이나 다 할 터이니 주일날에는 예배당에 가고 틈틈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해서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남의 질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일제시대 초기에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일본에 건너가 고학을 하며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서 얼마동안 장학사로 일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녀는 숙명여고 교사와 경상도의 경북여자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던 중에 숙명여자전문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교장이 되었다. 그녀는 6. 25 전쟁이 끝난 1955년도에 숙명여자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숙대의 초대 총장을 지낸 임숙재(任淑宰, 1891-1961)박사이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의상학을 전공하였으나 나중에 법학박사가 된 그녀는 숙명여대를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온 위대한 신여성이요 여성 교육가였다. 그녀는 감리교인이었으며 조선감리교부인연합회 즉 YWCA의 회장직도 역임한 바 있다. 1906년 조선시대 말기에 왕실로부터 경비를 보조받아 설립된 한국 최초의 국립 여학교인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가 오늘 날 숙명여자대학교의 모체이다. 명신여학교의 설립자는 고종황실(高宗皇室)이다. ‘정숙(貞淑)·현명(賢明)·정대(正大)한 한국적 여성 지도자 육성’을 목적으로 시작된 여학교이다. 1906년, 첫해에는 11살부터 26살까지의 여성들 중에서 다섯 명을 첫 입학생으로 받아 들였지만 오늘 날은 이화여자대학교와 함께 세계적인 여자대학교로 발전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힘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개인적인 환경이나 처지에 안주하거나 자만하거나 혹은 낙담하여 주저앉지 않고 전능하신 만군의 주 여호와의 도우심을 힘입고 앞으로 계속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사사 시대였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청년기를 보내던 때에는 미디안과 아말렉의 침략으로 인해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疲弊)하기 그지없었다. 불안한 나날을 지내던 기드온은 먹고 살기 위하여 밀단을 베어다가 조심스럽게 포도주 틀 사이에 숨어서 밀 이삭을 훑어서 식량을 마련하려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상상해 보라. 아니 밀 타작이란 널따란 들판이나 마당에서 수십 명의 농부들이 요란법석을 떨며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서로 품앗이를 해 가며 수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숨을 조이며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한 움큼씩 한 끼니의 빵을 구워 먹고 죽을 끓여 먹기 위해서 포도즙 틀 사이에 숨어서 밀 이삭을 훑고 있었다니 당시의 시대 상황이 상상이 되지 않는가.

어느 날 기드온을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 즉 천사는 그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쳐서 이기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2, 16)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표징을 요구한 기드온은 집에 돌아가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잡아서 그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무교병을 준비하고 국물을 양푼에 담아다가 상수리나무 아래로 가져 왔다. 그 때에 천사가 그 모든 것을 바위 위에 차려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으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천사는 손에 잡고 있던 지팡이 끝을 내 밀어 염소 고기와 무교병 위에 대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서 고기와 무교병을 불사른 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현장에서 슬픈 기색을 띠고 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삿6:23)고 하셨다. 기드온은 그 곳에서 다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고 그것을 ‘여호와 샬롬’(삿6:24)이라고 하였다. ‘여호와 샬롬’이란 ‘하나님의 평화’를 일컫는 말이다. 그 후에 기드온은 칠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다가 바알 제단과 앗세라 목상을 찍은 나무를 불쏘시개로 하여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다. 그 날 이후로 기드온은 ‘바알과 다투었다.’는 뜻에서 ‘여룹바알’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기드온의 하나님 시험이 반복되었다. 미디안과 아말렉을 비롯한 하나님을 믿지 않던 동방 사람들이 연합 군대를 형성하고 이스라엘을 쳐들어오려 하였다. 그 때에 기드온은 여호와의 영에 충만해져 서 양각 나팔을 불 때에 각 지파마다에서 많은 백성들이 그의 앞으로 나아왔다.(삿6:34) 그 때에 기드온은 하나님께 여쭈었다. 양 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고 이슬이 양털에만 가득하고 주변이 마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으로 여기겠다는 시험이었다. 하나님은 그대로 증거를 보여 주셨다. 다음 날 일찍이 기드온이 양털을 가져다가 쥐어짰더니 이슬이 물이 되어 그릇에 가득하게 고였다. 기드온은 그 밤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 하였다. 그 날 밤에는 양털은 보송보송하고 주변의 타작마당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 달라는 시험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증거를 보여 주셨다. 기드온을 따르는 이스라엘의 군대는 32,000명이었다.(삿7:3)반면에 미디안과 아말렉을 비롯한 동방 사람들의 군대는 메뚜기 떼처럼 많았고 전쟁용 낙타의 수만도 모래알처럼 많았다.(삿7:12) 상대 할 수 없는 엄청난 군대였다. 기드온의 군대가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상대편의 무수한 적군들은 모레 산 앞의 골짜기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착잡해 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7:2) 아니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군대를 더 모병하여도 이길까 말까한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 하나님은 기드온 곁에 불려 나온 이스라엘의 군대가 너무나 많다고 하셨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쟁 방법이시다.
 

겸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 하신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기드온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만약에 32,000명의 군대가 나가 싸워서 미디안을 비롯한 적군과 싸워 이긴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랑하여 말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할까봐 지금 이스라엘 군대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이때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드온을 떠나서 제 집으로 돌아가 버린 이스라엘의 군대가 22,000명이었다. 이제 10,000명만 남았다. 사사기 7장 12절에 보면 적군은 메뚜기 떼처럼 많은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나마 22,000명이나 다 제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단지 10,000명만 남겨 놓으셨다. 기드온의 마음이 불안하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이쯤에서 우리가 고백하여야만 하는 하나님 신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숫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시란 말이다.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고 이루시려는 의도가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적은 량을 가지고도 많은 량을 대신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 때에 벳세다 광야의 그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실 때에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20,000여명의 무리들을 배 불리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하신 것을 보라. 그 것이 하나님의 산수가 아니신가.

또한 하나님은 작은 것을 가지고도 큰일을 행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작은 자를 택하셔서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사무엘 상 17장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매 돌 다섯 개 들고 나가서 한 개의 물매 돌로 때려눕히고 전쟁에 승리한 것을 보라. 전쟁은 다윗의 고백처럼 칼과 창에 달린 것이 아니다. 전쟁은 만군의 주 여호와의 손에 달린 것이다.

조앤 캐슬린 롤링(Joanne Kathleen Rowling, 1965-)은 영국의 브리스톨 근처의 평범한 가정의 큰 딸로 태어났다. 여동생과 함께 사이좋은 어린 시절을 지냈고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 하였다. 나중에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녀가 25살 되던 1990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직장을 잃게 되자 포르투갈로 건너가서 영어강사로 일하던 중에 현지에서 만난 기자 생활을 하던 남편과 결혼을 하였고 딸 제시카를 낳았다. 그러나 남편과의 불화로 결혼 3년이 못 되어 이혼하고 갓 태어난 지 네 달이 된 어린 딸과 함께 영국으로 되돌아가서 에든버러에 정착했다. 일자리가 없어 3년여 동안 매주 우리 돈으로 15,000원 정도의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겨우 겨우 연명하던 그녀는 동화쓰기를 결심하였다. 이혼 후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가난했던 시절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에딘버러 대학교의 연설에서 그런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적도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딸에게서 힘을 입고 몇 개월에 걸쳐 고생하던 우울증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가난한 상태에서 어린 아기를 돌보아야 하던 그녀는 생활 보조금을 받으면서 <해리 포터 시리즈> 제1탄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1996년 6월에 첫 소설을 완성했다. 책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는 소득이 전혀 없어서 집안의 냉난방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주변의 카페에 눌러 앉아 집필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완성한 원고를 들고 출판사 12곳을 일일이 찾아 다녔으나 가는 곳마다에서 퇴짜를 맞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저작권 대행업자인 크리스토퍼 리틀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롤링의 책을 영국의 블룸스버리 출판사에 팔아주었다. 책의 이름은 <해리포터와 철학자의 돌>이었는데, 나중에 미국에 출판되었을 때 이름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변경되었다. 출간된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얼마 후에 세계 최우수 아동도서로 선정되었고, 이후 ‘네슬레 ​​스마티 니어스 상’, ‘브리티시 북 어워즈’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신인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2,000년에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그녀의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오늘 날 <해리 포터>시리즈는 현재까지 6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총 4억 5,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녀의 책들은 워너브라더스와 영화 제작 계약을 시작으로 2001년 제1탄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2011년 마지막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까지 10년 동안 지금 까지 영화만도 일곱 편이나 제작되었다. 영화의 엄청난 흥행 성공과 더불어 그녀는 2004년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부자'리스트에 올랐고 현재 롤링의 재산은 47억 달러인 우리 돈으로 약 5조원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부족한 자를 들어서 능력 있는 자들을 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리석은 자들을 통하여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고개 숙이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을 택하셔서 라합의 아내로 삼아 보아스를 낳는 예수의 선조가 되게 하시고 모압의 홀로 된 여인 룻을 보아스의 아내로 택하셔서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게 하시는 멋진 하나님이시다.

올해 54살인 소금 장수 강경환 씨는 충남 서산시 충서감리교회 권사이다. 그는 1급 장애인이다. 두 손이 없지만 무려 1만 2,000평의 소금밭인 서산 바닷가에서 ‘부성염전 1호’를 운영하는 소금장수다. 15년 전 그가 염전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양쪽 손도 없는 사람이 주제 파악도 못하고…." 하지만 그는 큰일을 해냈다. 물을 대는 일, 소금을 긁어모으는 밀대 작업, 삽으로 수레에 퍼 담는 일과 소금창고로 이동하는 일 등 모두 손수 직접 했다. 처음엔 팔 끝에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왼팔로 중심을 잡고 오른팔을 삽의 세모진 곳에 넣어서 소금을 퍼 담았다. 일반인이 다섯 번 소금 삽질을 할 때면 그는 겨우 한번 정도 펐다. 1996년 염전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강씨는 이웃돕기에 나섰다. 형편이 좋지 않은 독거노인들 집 앞에 남몰래 소금 자루를 갖다 놓았다. 1포대를 팔면 2000원을 떼어뒀다. 1000원은 독거노인을 돕는 데 썼고 1000원은 꼭꼭 주일이면 하나님 앞에 십일조뿐만 아니라 특별 감사 헌금을 드렸다. 뒤늦게 선행이 알려지자 그에게 손가락질했던 이들도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매년 나환자촌인 소록도에 소금 30포대씩을 보낸다. 2008년부터는 봉사단체 '밀알'을 만들어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그는 날 때부터 장애인이 아니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1972년 12월24일 성탄절 전날에 서산 벌말 해변에서 지뢰를 돌로 두드리다가 사고를 당했다. "꽝!" 하는 굉음에 정신을 잃었다. 사흘 뒤 깨어나 보니 두 손이 날아가고 없어져 버렸다. 두 손을 잃은 그는 너무나 창피해 문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중학교도 가지 않고 3년간 두문불출하며 우울한 날들을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 그는 두 손을 잃은 뒤 처음으로 직접 부엌에 들어가서 요기를 해결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숟가락질을 연습해 스스로 밥도 먹었다. 10대 후반은 날이면 날마다 마을의 주막(酒幕)에서 살았다. 모든 게 귀찮고 싫었다. 아침부터 술을 퍼 마시기 시작해 밤 12시가 넘어야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1980년 2월 18일은 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도 엄청나게 술에 취해 있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책상 위에 '그루터기'라는 신앙잡지가 있었다. 두 팔과 다리 하나가 없는 정근자씨라는 분의 꿋꿋하게 살아가는 간증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의 심장은 요동을 쳤다. 때마침 황금산교회 전도팀의 심방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천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5가지 큰 소망을 세웠다. 첫째, 집 가까운 곳에 교회를 세우게 해달라는 것과 둘째, 교회에 피아노를 사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셋째는 손이 없는 팔로 글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넷째는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축복도 달라고 기도했다. 다섯째는 사랑하는 배우자를 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기적은 일어났다. 3개월 만에 글씨를 썼다. 하루에 4∼5통 편지를 써서 학생들에게 전도 편지를 보냈다. 13명의 청년들과 함께 가까운 마을인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교회도 세웠다. 교회에 피아노도 생겼다. 1988년엔 그의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두 손 없는 그에게 빛이 된 건강한 아내 정순희 집사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다. 소금창고 옆 컨테이너로 만든 보금자리엔 낡은 성경 책 한 권이 있다. 컬러사진판 갈릴리 성경(1997년판 종로서적 출판)이다. 한 번 펼치자 잠언 6장이 나온다. 몽둥이 손으로 비뚤게 그은 빨간색 볼펜 밑줄이 그어진 6절이 눈에 들어온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강경환 권사는 힘들 때마다 찬송가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428장)를 부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그 어떤 불행에 갇힌 자와 절망하며 사는 사람은 이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세요. 세상이 달라지고 반드시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분이시다. 야고보서 4장 10절에 보면 야고보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다. 요즘 잘 나고 교만한 사람들이 처처에서 국가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고 창피를 당하는 주변의 소식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스스로 자랑하지 말고 스스로 내 삶을 여기까지 이루었다고 교만 떨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나님이 오래도록 기뻐하실 것이다.


믿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기드온 때에도 하나님은 그리하셨다. 하나님은 22,000명이 집으로 돌아가고 10,000명의 남은 군대를 이끌고 물가로 내려가라고 기드온에게 명령하셨다.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삿7:4)고 말씀하셨다. 그들 남은 10,000명의 믿음을 시험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병과 환란과 유혹과 핍박과 시련과 모함과 시기와 질투와 비방과 조롱과 실패와 아니 반대로 대단한 성공과 승리 등을 통해서 우리 각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차라리 불과 같은 시험을 오히려 더 참기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이 아닌 것 같은 변장된 유혹이나 입에 달거나 귀에 즐겁거나 당장 내 코에 향기롭거나 당장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안목의 정욕과 같은 그 어떤 환경을 통하여 나의 믿음을 시험하실 지도 모른다. 

교회적으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에 입당해서 새로운 예배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시험이 내 앞에 전개될 수도 있다. 참으로 지금부터 시작이요 이제부터 새로운 영적 도전 앞에 서는 새로운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도 무슨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처럼 지어진 성전의 외양에 도취해서 사탄과 마귀의 유혹 앞에 병들어 펑펑 넘어져 버릴 지도 모른다. 이는 개인이든 가정이든 그 어떤 누구이든지 다 마찬가지이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고 광야로 나가셨다. 그리고 사십 일 간 들짐승과 함께 들판에 머무시면서 금식하신 후에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차례로 받으셔야만 했다.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내게 절하면 천한 만국의 절반을 네게 주겠다.”고 시험하고 달려드는 사탄의 궤계를 예수님은 침착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차근차근 사탄을 대적하였을 때에  마귀는 예수님에게서 떠나갔고 천사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섬겼다.

우리는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인하여 불과 같은 시험을 수도 없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언제 마귀의 불화살이 나를 공격하고 사탄의 칼과 창이 나의 심장을 찌를지 모른다.

야곱의 형 에서는 팥 죽 한 그릇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겼다. 아론은 동생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동안에 백성들의 요구 앞에 분별력을 잃고 금을 모아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애굽에서 자기들을 이끌어 낸 신이라고 경배하였다. 아간은 여호수아 곁에서 뽑힌 3,000명의 정예화된 군대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과 금 덩어리에 눈이 가리어져서 자신과 가족이 아골 골짜기에서 몰살당하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사사 삼손은 이방 여인 드릴라를 토안 이성의 유혹 앞에 무너졌고 임금 사울은 교만과 거짓으로 인하여 자신과 세 아들인 왕자들까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에 최초의 성전을 지은 왕이었지만 열왕기 상 11장에 보면 그의 나중은 이방의 처첩들에게 눈이 가리어져서 하나님을 멀리 떠난 불행한 임금이요 나라가 남북으로 두 동강나게 하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열왕기 상 11장 3절에 보면 솔로몬이 타락하자 나중에는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었다. 6절에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같이 따르지 아니하고”라고 솔로몬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다. 가롯 유다는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이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버리고 배반하고 스스로의 인생도 아겔다마 즉 피밭에 피를 쏟은 인생으로 망치고 말았다. 

지금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해서 잘 믿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시험에 이겨야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것이 사탄의 시험이든 하나님의 시험이든지 막론하고 성도는 시험에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기드온 때의 군대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 이미 전쟁이 벌어진 상황인데 물가에 데리고 내려갔더니 무릎을 꿇고 허겁지겁 물만 마시기에 급급한 이들이 9,700명이었다. 나머지 300명만이 전방과 좌우를 경계하며 개가 물을 핥듯이 조심스럽게 목만 적시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저들 300명을 따로 세워서 구별하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시험 앞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남들과 무언가 달라야 쓰임 받을 수 있다.


싸울 만한 자를 따로 구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욱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행하실 역사적인 일에 동참할 자를 찾고 계신다. 4절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나. 하나님은 아무리 군대가 32,000명이요 혹은 10,000명이라고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하고 기드온에게 한 명씩 한 명씩 구별하여 맡기시는 분이시다. 금번에 우리 입당감사예배에 오셔서 격려사 하신 부평제일교회 이천휘 목사님 곁에는 한재룡 장로와 같은 30년 지기가 있다. 그는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동반자 인생을 살아온 성경적인 장본인이다.

하나님은 당시나 오늘 날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영적 전쟁에 함께 할 자를 찾고 계시다. 오늘 날 우리의 삶의 현장과 사역의 현장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단지 남은 자 300명을 통하여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하나님을 모르는 할례 받지 않은 우상 숭배자들의 세력을 이기길 원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이 아닌가. 여호와의 전쟁은 인간의 전쟁과 다르다. 우리가 지난 3년 반 동안 경험한 것이 철저한 하나님의 개입이요 하나님의 이끄심이요 하나님의 전쟁이 아니었나. 드디어 기드온은 그를 따르는 300명을 100명씩 세 편의 부대로 구분하였고 전쟁식량과 나팔을 손에 들게 하였다. 드디어 여호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날 우리들도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영적 전쟁은 시작되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집으로 돌아가 버린 22,000명 중의 한 사람인가. 아니면 하롯 샘의 물가에서 물만 퍼 마시고 제 집으로 돌아간 9,700명 중의 한 사람은 아닌가. 오늘 날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누가 하나님의 300명 용사인가를...여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드온의 300용사처럼 한 손에는 양각 나팔을 들고 한 손에는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어 들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군대답게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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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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