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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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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그리스도의 탄생( 마2:1-1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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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1-17 23:46 조회 19,483 댓글 0
 
일정한 지역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을 왕이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king'이라고 하고 중국어권에서는 왕(王)이라고 하는데 한글 말로는 임금이라고 한다.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역사적인 기원은 동양과 서양이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왕은 백성과 신의 매개자로 여겨져 왔다. 고대 수메르 왕국에서는 왕을 신의 대리자로 인정해 왔다. 애굽 즉 이집트에서는 왕을 신성시하였다. 그와 같은 왕의 절대 권력은 헬라 시대를 거치고 로마 시대의 황제 칭호를 사용하게 되면서 더욱 절대화 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신의 대리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려고 하였다. 16-18세기의 절대 권력자들은 국가 교회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왕권을 강화하려고 힘썼다. 그러나 17세기 이후부터는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경향이 짙어 지면서 왕을 비롯한 국가 최고 권력을 헌법화 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는 은나라 때의 갑골문자에 왕이라는 글씨가 나타나는데 BC 4세기 말부터 3세기 초에 이르는 전국시대부터 상용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로 구별되는 삼국 시대에 각기 다른 언어의 의한 왕의 칭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몽골어의 탱그리(tengri)라는 단어의 뜻이 ‘신의 대리자 혹은 하늘’인데 제사장을 뜻하는 단군(檀君)과 우리말 발음인 ‘임금’을 고대에는 왕검(王儉)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삼국사기〉에는 신라가 BC 57년, 고구려가 BC 37년, 백제가 BC 18년에 각각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왕의 제도는 그 역사가 오래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인 사울(B.C 1117-1077)은 선지자이자 사사인 사무엘에 의해서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다. 기원전 1117년 전의 일이니까 오늘날부터 약 3,130 여 년 전의 일이다. 사사 시대 마지막 사사이며 선자지인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는 등 무능하게 행동하자 원로들은 왕을 세워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고 결국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그 사울 왕 40년이 끝나고 새롭게 기름 부음 받은 왕 다윗의 왕권이 아들 솔로몬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남북이 나뉘면서 20대를 흘러갔고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망하고 586년에 남 유다도 망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은 끊이지 않았고 그의 천년 후손의 혈통을 따라서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신 것이다.

세상 왕은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왕은 그 어떤 왕이라도 동서고금에 완전한 왕이나 영원한 왕이란 없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왕의 개념은 창조주이시며 삼라만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섭리의 근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히브리말의 메시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의 그리스도를 일컫는 말이다. A.D 1741년에 헨델이 작곡한 오라토리오의 제목이 메시아여서 세상에 그 표현이 더 익숙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헨델의 메시아는 예수의 탄생과 수난과 부활의 생애를 3부 53장으로 구성하였다.

성탄절은 그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절기이다.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 마을에서 탄생하실 때에 그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의 권력자는 헤롯왕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거리에 위치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헤롯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으로 이두메 사람인 안티파터 2세의 아들이다.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반감을 많이 받던 인물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지은 성전이 제 3 성전으로 알려진 헤롯 성전이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 보면 그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탄생 사실을 헤롯왕에게 알린 것은 동방에서부터 먼 길을 찾아 간 동방박사들이었다. 바벨론이었을 것으로 알려진 동방의 어느 지역을 출발한 천문학자들은 별 자리의 이동을 따라서 찾아 간 곳이 예루살렘이었고 잠시 동안 헤롯 왕을 만난 후에 베들레헴 마을을 찾아가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아기 예수를 보고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성경에는 저들 동방 박사들이 몇 사람이었는지와 저들의 이름이 소개 된 바가 없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황금 유향 몰약을 드린 것에 빗대어 세 사람의 동방 박사라고 흔히 말한다. 사실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저들 동방 박사들은 세 사람이었으며 가스팔, 메키올, 발다살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동방 박사들을 가리키는 헬라말 ‘마고이’(magoi)는 이방의 왕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성경적인 근거는 시편 68편 29절의 예언의 말씀에 근거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시68:29)라고 하였다. 이사야 49장 7절에도 보면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동방 박사들로부터 경배와 예물을 받으신 성탄의 의미를 되 새겨 보자.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 헤롯왕은 유대의 모든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왕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로란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인데 특별히 왕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동방에서 먼 길을 찾아간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헤롯왕을 만나서 물은 질문이 그것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예수님은 이처럼 왕이시며 그리스도이다.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이시다. 이것은 미가서 5장 2절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이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베들레헴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매우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 라헬을 잃은 곳이 바로 베들레헴이다. 라헬은 베들레헴의 길가에서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아 놓고 베냐민이라 이름하고 죽었다.(창35:16-20) 남편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슬픔 속에 길가에 장례한 곳이 베들레헴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에게 있어서 죽음과 슬픔의 땅이었던 베들레헴이 이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기쁨의 땅이 요 소망의 땅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들레헴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1,000년 선조인 다윗이 태어난 마을이다.

오늘 날 베들레헴에는 예수탄생기념 교회가 있다. 유대 땅의 평범한 마을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심으로 기독교 이천년 역사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된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는 처소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도 어느 곳에 가면 온 골목이 미술관과 전시실과 갤러리가 즐비한 골목이 있는가하면 어떤 곳은 연극을 공연하는 공연장으로 가득하다. 반면에 어떤 곳은 온 골목 전체가 술집뿐인 곳도 있다.

영국에 잔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활동하던 당시에 그가 복음을 전하고 지나 간 곳은 창녀촌이 변화되고 술집이 문을 닫고 마약하고 놀음하고 싸우고 퇴폐하게 살던 곳이 변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들로 가득 찬 지역과 마을로 변한 것은 유명한 역사의 일화이다. 그는 개인의 구원과 더불어 사회적인 구원에도 큰 관심을 갖고 평생을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개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접되는 개인 전도와 복음의 확산뿐만 아니라 병든 자와 가난한 자와 학대 받는 자와 옥에 갇히 자와 억울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곁에 찾아가서 그들의 삶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들어주고 해결해 나가는 적극적인 구원 활동의 최전방에 섰던 복음 활동가였다. 그는 예수님을 가슴으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손끝으로 믿고 발로 뛰어 다니면 믿던 행동하는 선교의 사람이요 끝없이 누군가를 섬기는 복음의 사람이었다.

1536년을 전후로 해서 잔 칼뱅(Jean Calvin, 1509-1564)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잔 칼뱅은 구교 환경에서 벗어난 마틴 루터의 개신교 말씀 운동을 바탕으로 장로교를 창시한 인물이며 개신교 신학자요 종교 개혁가요 성서학자였다. 그는 제네바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차근차근 강해하였다. 그런 그의 말씀 운동은 일만 명 정도가 살아가던 평범하고 술과 놀음과 매춘을 비롯한 방탕하던 산골 마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말씀 운동의 땅으로 변화시켜 나아갔다. 잔 칼뱅은 제네바의 시민이 아니었지만 그는 오늘 날 제네바를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 해 나가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 되었다. 잔 칼뱅 그 한 사람의 가슴 속에 불붙어 오르던 말씀 신앙이 그런 역사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오늘 날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가 살아가는 곳이 도시이든 농촌이든 그 어디이든지 나로 인하여 지역과 도시와 골목과 거리가 달라지는 말씀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직장이나 사업하고 상업하는 그 어떤 터전에서든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베들레헴은 기독교 이천년 역사의 중심에 있는 마을이 된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살아가는 처처마다에서 그런 영향력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경배를 받으신 왕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간이며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이지만 경배를 받으신 것이다. 이 세상에 어른이 아기에게 절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동서양 그 어디에도 그런 풍습이나 문화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기에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땅을 다스릴 목자로 오신 왕이시다. 예수님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마치도 목자가 양 떼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듯이 인도하고 돌보고 돕고 다스려 주실 왕이시다. 마태복음 2장 2절에 나오는 ‘경배’한다는 단어는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εω)인데 이는 복종한다는 뜻으로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만 사용하는 제한된 의미의 복종을 의미한다. 이것이 오늘 날의 예배의 기원인 것이다. “자신을 굽히다", "상대방의 무릎 앞에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다", "경의를 표하다", "입을 맞추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즉 ”경의를 표하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으로 인해서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나병 환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되돌아 와서 그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고침 받은 것을 감사하였다. 이것이 경배요 곧 예배가 아닌가. 그 때에 예수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7-18)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
유대교에서 비롯되고 오늘 날에 이르는 기독교 신앙의 바탕은 무엇인가. 끝없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예배의 연속이 신앙생활의 바탕인 것이다. 예배를 모르던 민족이 예배드리는 민족이 되고, 예배를 멀리하던 가정과 인생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것이 예배 생활이며 신앙생활이다. 전도가 무엇인가. 예배를 모르던 인생을 초청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인정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할 줄 아는 예배자의 인생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전도요 선교인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어디서나 예배드릴 수 있고 언제나 예배드릴 수 있지만 특정한 장소를 정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시며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고 경배를 드리는 곳으로 정하여 사용되는 건물이 성전이며 교회당이며 예배당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는 곳마다 예배의 단을 쌓던 아브라함의 후손이 복을 받고 성막 중심, 성전 중심의 민족이 복을 받고, 교회 중심, 예배당 중심의 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개인이 복을 받아 온 것이 아닌가.

지난 금요일 새벽 기도회를 마친 이른 아침에 교회가 여러 해 째 후원하는 교도소 선교 단체인 교정 선교회 총회에 참석하였다. 마침 곁에 앉은 손광석 목사와 사귀게 되었다. 그는  청년기에 일찍이 호주에 가서 십 수 년 간 시드니에서 사업으로 성공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전에 귀국하여 신학을 마치고 몇 해 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지금은 대천 항에서 40여 분 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삽시도라는 섬에서 삽시벧엘교회를 맡아 섬기는 목회자로 섬 주민들을 섬기며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그날 아침에 교정선교회 총무 채기화 목사의 간증을 들었다. 2006년 5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며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오른쪽 얼굴을 면도칼로 그어서 범행한 지충호라는 범인은 그 후 10년 형을 받고 지금은 청송 교도소에 감호되어 있다고 한다. 인천대학 무역학과 출신인 그는 지금 감옥 문 18개를 열고 또 열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시설에 갇혀서 지내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진심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할 줄 아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요 이유인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번영과 재물만을 섬기는 때에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나면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귀하고 보람된 것이 없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신학교에 가고 누구나 다 목회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직업과 일터와 삶의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발전 시켜 나가는 것이 곧 선교요 복음 전파가 아닌가. 2절과 11절에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려고 한 경배와 8절에 헤롯 왕이 경배하겠다고 한 경배와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요즘 당신은 무엇에 경배하고 누구에게 경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생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왕으로 모시고 살아서 잘못된 인생이 있는가. 어른이든 청년이든 어린 아이이든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신앙을 회복하고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된 우리의 사명이다.

“두 손 들고” 라는 찬양을 부르자.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 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생명 드리리라.

‘찬양합니다’를 ‘경배합니다’로 바꾸어서 다시 한 번 불러 보자.

예물을 받으신 왕 예수 그리스도.
별의 이동을 따라간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의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별이 아기 예수 나신 곳 위에 머물러 섰기 때문이었다. 저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했다. 동방의 박사들은 멀리서부터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갔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께 예물로 드렸다. 모든 종교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기독교는 드리는 종교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육신을 입고 오셔서 나중에는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의 몸을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린 것이다. 동방 박사들이 그 멀고 먼 길을 찾아 가서 예물을 드리고 겅배한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어머니 마리아나 아버지 요셉이 아니라 아기예수께 경배하고 예수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로부터 영원히 경배를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실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

고대로부터 왕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그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에는 예물을 들고 가게 되어 있었다.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유명해진 솔로몬 왕의 명성을 듣게 되었다. 그 때에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갔던 스바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고 갔다. 몇 날간 솔로몬 왕을 대한 스바 여왕의 마음에는 감동으로 가득찼다. 솔로몬이 하는 모든 말들은 지혜로 넘쳤다. 그가 지은 왕궁과 식탁의 식물들과 신하들이 앉은 좌석과 시종들의 모습과 그들이 입은 관복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스바 여왕은 크게 감동을 입었다.

그리고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경하하며 칭찬하고 하나님께 찬송하였다.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 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신하들이여......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왕상 10:7-9) 그리고 스바 여왕은 제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솔로몬 앞에 금 일백 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 앞에 드리고 떠나갔다.

이사야 60장 6절과 7절에 보면 장차 이방의 왕들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예물을 드리며 복종하고 경배하게 될 날이 임 할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드디어 그 날이 왔고 동방의 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경배한 것이다. 황금(黃金, gold)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王權)을 상징하는 것이다. 모세 당시에 광야에서 성막을 건설하고 그 안에 성물들을 만들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여 사용하게 하신 것이 금이었다. 황금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황금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찬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유향'(incense)은 소제를 드릴 때와 결혼식에 요긴하게 쓰이는 향품이다. 레위기 2장에 보면 곡물 제사인 소제를 드릴 때에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놓게 되어 있다. 오늘 날 성도된 우리들의 신앙으로 하면 거친 가루가 아닌 고운 가루 신앙이 되어야 한다. 은혜의 채에 곱게 채질 되어 고운 가루로 준비된 고운 가루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위에 기름을 부어 기름지게 하고 유향을 얹어 향기 나게 한 것을 아론의 자손 제사장 앞에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것 한 움큼과 기름과 유향을 기념물로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제단 위에서 불사른다. 그러면 화제가 되어 그 곡물이 타는 구수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되는데 이것이 소제이며 화제이다. 그 남은 것은 제사장의 몫이다. 화제물로 드리고 남은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30장 34-3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유향 제조법과 관리법을 자세하게 제정하여 주셨다. 소합, 나감, 풍자의 향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어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출30:37)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경배를 받고 예물을 받으실만한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 유향을 드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몰약(沒藥, myrth)은 예수님의 장차 당하신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평화의 왕이 되시고 영존하시는 그리스도가 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몰약은 침상(잠7:17)이나 옷(시45:8)이나 몸을 단장하는 젊은 여인들이 몸(에2:12)에 뿌려 향기롭게 하였다. 또한 술에 타서 마취제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시체를 장사하는데 쓰기도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실 때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이 받지 않으셨다.(막15:2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님을 장사지낼 때에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리트쯤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요19:39-40) 그 리트란 단위는 327그램이니 백 리트이면 32.7 키로 그램의 적지 않은 양이었다.

지난주 중에 혈관 시술을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하신 권사님의 수술 전 기도를 위해 새벽 기도 후에 서울대 병원을 방문하였다. 11층 병실 복도와 1층 현관 한쪽 벽에 부조물로 되어 장식된 흉상 주인공 중에 좌송(坐松) 이순옥 여사에 대한 소개글을 보았다. 이순옥 할머니는 6. 25때 남편을 잃었다. 외동 딸을 데리고 평생을 피난지인 마산에서 삯바느질을 하였다. 그렇게 모은 돈을 조금씩 늘려갔다. 1976년에는 마산중앙중고등학교에 좌송 장학회를 만들었다. 그의 호를 그렇게 지어 드린 것이다. 1993년에는 대원학원에 30억 상당의 상가 건물을 기증해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1997년에는 10억 원을 서울대의대 발전기금으로 기증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도 다시 불우 환자 진료비에 보태 달라고 2억 원을 더 기증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서 자식 형제들 간에 의리만 상하고 집안싸움과 형제자매간에 불화만 일으키는 집안도 적지 않다. 성전 건축 기간에 누군가가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터럭으로 씻던 마리아처럼 향유 나드 한 근의 옥햡을 부어 드리는 헌신의 미담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다른 사람 생각할 필요 없다. 낻가 드리고, 내가 헌신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섬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어 부어드려서 향기가 진동하는 때에 마리아를 책망하던 가롯 유다처럼 처신하면 안 된다. 부디 바라기는 성전 건축이 마무리 되어 가는 동안에 이곳저곳에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님의 발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봉헌하는 미담과 간증이 넘쳐 나기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 건축 시대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마음껏 드려 주님의 몸된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하고 단장하여 그 안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해 가며 우리 모두가 자자손손 대를 이어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찬미하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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