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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속한 전쟁(삼상7:41-49)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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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7-09 23:09 조회 21,449 댓글 0
 
우리나라는 식민지의 아픔과 6.25 전쟁의 페허를 딛고 일어난 20세기의 기적을 이룬 민족 중의 하나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16개국의 유엔군의 도움도 감사하다. 희생에 빚진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도중 한반도로 건너와 전장(戰場)의 생사기로에서 운명이 엇갈린 미군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로 하고 먼저 떠난 경우도 있고, 아버지가 아들을 앞세워 보내고 정전협정 뒤 홀로 고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패주를 거듭하다 모처럼 아군이 큰 승리를 거뒀다. 그 승리의 주인공이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아버지는 미국 정부가 아들에게 수여한 은성무공훈장을 가슴에 직접 달아주기 위해서 지프를 타고 달려가는 중이었다. 남한의 육해공군의 전선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13일, ‘워커힐 호텔’의 이름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월튼 워커 중장이 주한 미 8군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국군은 비로소 체계적인 전투를 할 수 있게 됐다. 우락부락한 외모 때문에 ‘불도그’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월튼 워커 사령관. 1950년 성탄절을 이틀 앞둔 날, 미 제24사단에 이승만 대통령을 대신해 부대 표창을 전하고 승리의 주역인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미국 정부의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경기도 양주군(현 서울 도봉구 도봉동 596-5)에서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며칠 전 대장 진급이 상신된 지도 모른 채 유명(幽冥)을 달리한지 이틀 후 도쿄의 UN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아들 샘 워커 대위를 불러 말했다. “귀관에게 선친인 고 월튼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긴다.” 워커 대위는 슬픔을 꾹 누르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는 일선 보병 중대장입니다. 부하들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으니 그럴 수 없습니다. 의전부대에 맡겨주십시오.” 그러나 맥아더는 낮은 목소리로 “명령이다!”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결국 워커 대위는 아버지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한국 땅을 떠났다. 훗날 그도 대장이 되어 미군 최초의 부자 대장(父子 大將)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차기 육군참모총장으로 유력하던 대장 재직 중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입장에 반대하다 예편되어 한국과의 질긴 인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다른 사연이다.
“저는 지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한국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저도 아버지에게 힘을 보탤 시기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짐 플리트 중위가 6.25 한국전에서 죽기 전에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다. 역시 한국전에 참전한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을 잃고도 참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적지(敵地)에서의 아들의 시신이라도 거두어야 한다는 작전을 무모하다는 이유로 중지시키고 흐트러짐 없이 지휘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전통이 없는 건 아니다. A, D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의 장군들과 그 아들들이 보여준 모습이 대표적이다. 백제 계백 장군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신라군이 수세에 몰리자 김흠춘 장군의 아들 반굴과 품일 장군의 아들 관창이 단신으로 적진에 달려들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아들을 사지(死地)로 보내면서 두 장군이 앞세운 건 ‘충성과 효도’ ‘군인의 모범’이었다. 국방위 국감 때마다 장성(將星)의 아들들이 편한 부대와 보직에 배치 받는다는 이른바 ‘장군의 아들’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근무가 고된 전투병으로 근무하는 비율은 극히 낮은 반면 인기 좋은 해외파병 비율은 높다는 것이다. ‘장관의 딸’ 특채 파문도 있었고 최근에는 장군 출신 국회의원이 자기 딸을 사무관의 직책으로 이름만 걸어 놓고 출근한번 하지 않은 채 수천 만 원의 고액 연봉을 받아 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한국전쟁에 142명의 미군 장성 아들들이 참전해 이 중 35명이 사상했다. 하물며 적군이었던 마오쩌둥 역시 참전한 아들을 잃고도 그 시체를 다른 중공군 전사자들과 똑같이 한반도에 묻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탄의 유혹 앞에 무너져서 영적 전쟁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담이 하와를 통해서 낳은 장남 가인은 미움과 증오심에 넘어가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린 후에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일방적인 싸움으로 패륜적인 인생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노아 시대의 세상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외모와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좋아하는 여자들로 아내를 삼으면서 인생의 영적 전쟁에서 무너져 가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노아 당시의 인생들을 바라다보시며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6:3)고 탄식 하셨다. 노아 시대의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영적 자기 관리와 영적전쟁에 실패하여 결국은 홍수 심판을 피하지 못하였다.

동서고금에 크든지 적든지 나라와 나라, 부족과 부족, 이웃과 이웃, 심지어는 지역과 지역, 마을과 마을, 가문과 가문, 가정과 가정, 개인과 개인 사이에 전쟁과 싸움과 경쟁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에는 늘 싸우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경쟁과 불신과 명예다”라고 했다. 그렇다. 지나친 경쟁심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끝이 없는 명예를 향한 욕망의 추구가 개인 간의 다툼과 싸움으로 이어지고 부족과 민족과 국가 간에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전쟁과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의 호전성(好戰性)은 심지어는 스페인 사람들은 사람과 소가 힘을 겨루는 투우(鬪牛)를 보며 열광하게 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싸움, 닭싸움과 같은 싸움을 만들어 민속놀이처럼 보고 즐겨 왔다.

아브라함도 싸움과 전쟁을 겪었던 인물이다.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 간에 양과 소를 먹이며 풀을 뜯길 들판과 물을 마시게 할 샘 줄기를 갖고 늘 다툼과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은 “네게 좌하면 내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히리라”(창13:9)고 조카 롯에게 우선 선택권을 주었다. 롯은 결국 물이 범람하는 요단 지역의 소알 땅의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풍요한 땅을 먼저 선택하고 삼촌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갔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비롯한 네 왕국의 연합군과 상대방 다섯 왕국의 연합군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저들이 싯딤 골짜기에서 싸웠는데 결국은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은 달아났고 나머지는 모두가 다 산으로 도망을 쳤다. 달아난 것이나 도망한 것이나 그것이 그것이지만 여하튼 성경은 그렇게 따로 따로 표현하였다. 결국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앞장 선 4 왕국의 연합군은 소돔과 고모라에 쳐 들어 갔고 그 성 안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 결국은 소돔 성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붙잡혀 갔고 그의 재물도 모두 다 노략질 해 가 버렸다. 조카 롯과 그의 친척과 부녀자들을 모두 다 붙들어 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안의 남자 318명을 거느리고 쳐들어가서 저들 모두를 되 살려 돌아 왔다. 아브라함의 생애 중에 들어나는 놀라운 전쟁 승리의 장면이다.

아브라함의 늦게 얻은 아들 ‘이삭’도 늘 그의 종들과 원주민들과의 사이에 더 좋은 샘과 우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투고 싸워야만 했다.

본문인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보면,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고 용감하게 선언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이시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아브라함 때에도 전쟁은 있었고 모세 때에도 여호수아와 갈렙 때에도 전쟁은 있었다. 사사 시대인 삼손 때에도 기드온 때에도 드보라의 때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사울이 임금이던 때에도 불레셋과의 전쟁은 늘 심각하였다. 결국은 사울 임금 말년에는 성막의 법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다윗도 전쟁으로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요 솔로몬의 때에도 전쟁은 그칠 날이 없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칼과 창과 활을 동원하여 싸우던 부족 시대의 원시적인 싸움도  전쟁이요 요즘처럼 총과 포와 대륙 간 탄도 유도탄을 동원하고 핵의 위협까지 계속하는 육해공군의 현대전도 전쟁이다. 인류는 나라와 나라 간에 민족과 민족 간에 이와 같은 싸움과 전쟁을 끝이 없이 계속하여 왔다.

사실 그와 같은 싸움 이상으로 심각한 싸움과 전쟁은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영적 충돌의 위기를 사도 바울도 겪고 있었다. 로마서 7장 23절과 24절에 보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였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내 안에 있는 두 법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씨름하고 싸우며 영적 전쟁을 벌여 나간다. 이 싸움은 영과 육의 싸움이며 진리와 비 진리의 싸움이요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고 선과 악의 싸움이다. 사람은 마음속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계속하여 싸우고 다툰다. 이 같은 싸움과 영적 전쟁이 없는 사람이란 죽은 사람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내 몸 안에서 건강한 세포와 우리 몸을 병들게 하려는 세포 간에 계속되는 싸움으로 우리의 몸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몸이 몸 안에서 싸우고 생각이 생각과 더불어 싸우고 마음이 마음과 더불어 싸우고 영이 영과 더불어 싸우는 끝이 없는 싸움과 영적 전쟁의 상태에서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싸움이란 무엇이며 전쟁이란 무엇인가. 지금 이겼다고 영원히 이긴 싸움도 없으며 지금 졌다고 영원히 지는 전쟁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말이 있다.

정복하라 하지만 승리감에 도취되지는 말라.
Conquer, bur don't Triumph.

그렇다. 이 세상에 너무 일찍이 샴페인을 터뜨려서 잘못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빅토르 위고는 싸움에 관하여 이런 의미심장한 교훈의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이요,
둘째는 인간과 사회와의 싸움이요, 셋째는 인간과 마음과의 싸움이다.

이제 본문의 전쟁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다윗의 때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 전쟁이 있었다. 당시 나라의 임금은 이스라엘 역사의 초대 임금이었던 사울 왕이었다. 전황은 심각했고 40일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다. 엘라 골짜기의 이쪽 산과 저쪽 산에 항오를 벌인 블레셋의 군대와 이스라엘의 군대는 서로 기 싸움만 벌일 뿐 전쟁의 승패가 쉽게 가려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서로 탐색전만 40일째 계속한 것이다. 블레셋의 군대는 골리앗이란 장수가 총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이었다. 270cm란 말이다. 어마어마한 거인이 어린 갑옷을 입고 베틀 채만한 창을 들고 나타나서 엄청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대고는 하였다. 이스라엘 군대가 자기를 죽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이스라엘을 대표할 자가 나와 싸워서 죽으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종이 되도록 하자고 싸움을 걸어 온 것이다. 시간과 세월만 지날 뿐 전쟁할 용사가 등장하질 못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임금 사울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군대가 큰 두려움에 휩싸여 불안해하며 떨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 보고 낙담(落膽)하지 말라.
사무엘상 17장 32절에 보면,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소년 다윗이 임금 사울 앞에서 왕에게 한 말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은 임금 사울과 온 나라의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떨고 있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이 그런 임금 앞에 충고한 것이다. 지금 전쟁이 일어났지만 이 전쟁 때문에 낙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인가. 사람은 언제나 두려움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망치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영어 성경에 보면 NIV 성경에, “Let no one lose heart.”라고 했다. 직역하면 심장을 잃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우리말에 “아이쿠 놀래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는 말처럼 말이다.

두려움으로부터 낙담이 오고 낙담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이다. 두려워하고 낙담하기 때문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다. 본문에 보면 임금 사울과 소년 다윗의 차이를 보게 된다. 사울 왕을 두려워 떨고 있었고 소년 다윗은 임금을 달래고 있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이미 하나님은 정신이 오록가락하고 악령에 지배를 받아 영이 혼미해져서 분별력을 잃고 지내는 임금 사울의 음악치료사로 수금을 잘 타는 베들레헴의 소년 다윗을 임금 곁에 붙여 두신 상태였다. 임금과 베들레헴 시골 마을의 연세 많으신 아버지 이새 사이를 오가면 가정을 섬기고 나라의 임금을 돌보던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시대적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거짓되고 불경(不敬)스런 악행을 계속하던 임금 사울을 버리기로 결심하신 이후였다. 소년 다윗은 수금을 타며 음악성이 뛰어나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좋고 외모도 준수하여 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는 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소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충만해 있었다. 전쟁터에 형님들을 면회 가서 보니 아침과 저녁으로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이 나와서 고함을 쳐 대고 있었다.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다 보고 다 듣고 있었다. 23절 끝에 “다윗이 들으니라.” 다 같이 똑 같은 말을 들었어도 그 반응은 서로 다 다른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의 큰소리치는 조롱의 말을 듣고도 그 반응이 달랐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24절,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골리앗의 큰 소리를 듣고 서로 도망하려 하는데 다윗은 한 발자국씩 골리앗의 앞으로 다가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소리쳤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큰 형 엘리압이 나서서 막내 동생 다윗을 책망하였다. 어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서 들판의 양떼나 칠 것이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허튼 소리를 하느냐고 나무랐다. 네가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전쟁을 구경하려고 왔느냐고 나무랐다. 그러나 결국 다윗은 임금 앞에까지 나아갔고 자신이 골리앗 앞에 나아가서 싸우겠노라고 전투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조금 씩 조금씩 다윗의 손 안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여호와 안에서 용기(勇氣)와 담력(膽力)을 키워가라.
소년 다윗의 용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늘 들판에서 양과 염소와 소를 치면서 짐승들을 사자와 곰의 침입으로부터 막는데 앞장 서 왔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의 새끼를 물어 가려고 하면 막대를 들고 달려가서 사지의 입에서 양 새끼를 구해 낼 정도의 용맹함이 있었다. 35절에 보면 사자의 수염을 잡고 쳐 죽이는 용맹스러운 자신의 경험을 왕 사울 앞에 털어 놓았다. 36절, 다윗은 골리앗을 짐승의 하나와 같이 해결하겠노라고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다윗의 믿음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다. 다윗은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자기를 건져 주신 하나님이 블레셋의 골리앗에게서도 건져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임금 사울조차도 다윗의 용기와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사무엘 상 17장 37절에 보면, 결국 사울 왕은 다윗을 축복하는 말을 하며 다윗이 전쟁의 일선에 나설 것을 허락하였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언제나 싸움의 승리와 전쟁의 결과는 용기 있는 자의 몫이다.

1950년 6월 25일, 주일날 새벽에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 지 어언 62년이 되었다. 6. 25가 일어나자 유엔은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을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그는 전쟁발발 나흘 뒤인 6월 29일에 미국 정부에 전략을 세워 보고하였다. 한강 남쪽의 둔치에서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며 인민군의 후방에 상륙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을 통해 반격에 들어간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미 해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미터로 항에 상륙하기 전에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데다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아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등의 이유를 지적하며 맥아더 장군의 전략을 반대하였다. 상륙작전을 하기에는 최악의 지형이라는 점을 들어서 완강히 반대한 것이다. 미 해군의 일부 인사들이 작전성공률이 5,000 대 1이라며 격심하게 반대하는 와중에서도 맥아더는 이런 난점이 오히려 적의 허점을 찌르는 기습 전략이 될 수 있다며 끝까지 인천상륙을 주장했다. 결국  2달 뒤인 8월 28일 에 미 합참 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어냈다. 9월 15일을 작전개시일로 잡고 함정 206척과 7만여 명을 동원하여 영종도 근처에 집결하는 작전이 시작되었다. 작전의 제 1단계는 월미도의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새벽 5시에 시작된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미 제 5해병연대의 3대대가 전차 9대를 앞세우고 월미도 전면에 상륙하였다. 월미도는 2시간 만에 완전히 미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 작전으로 미군은 7명이 경미한 부상을 당하는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인민군은 108명이 전사하고 106명이 포로로 잡혔다. 작전 제2단계는 국군 제17연대와 미군 제7사단과 미군 제1해병사단의 주도로 인천반도 공격으로 이어졌다. 인민군 제18사단과 인천의 경비 병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미군 제1해병사단과 국군 해병 제1연대는 성공적으로 인민군의 주력이 규합할 시간적 여유를 빼앗고 인천 상륙 작전과 인천시 장악에 성공하였다. 인민군이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데 81일이 걸렸지만 인천상륙 이후 맥아더 장군이 앞장선, 유엔군의 도움으로 아군이 38선까지 되돌아오는데 15일이 걸렸으니 적의 배후를 불의에 공격한 인천상륙작전의 놀랍고 크나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맥아더 장군은 워싱턴의 미 군부가 절대 반대하는 인천 상륙 작전을 자신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용감하게 주장하고 감행하여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세계 전쟁 역사에서 연구하는 탁월한 판단과 전략으로 높이 평가 되고 있다.

B. C 1,020년에 있었던 블레셋의 이스라엘 침략 전쟁을 이긴  그 중심이 사울 임금보다 용감하고 담대했던 하나님의 사람 소년 다윗이 있었다면 1950년 한국에서 벌어진 6.25 전쟁에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있었다.

오늘 날 우리는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가 다윗이며 그 누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일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38살에 장군이 된 후로 총사령관으로 있기까지 30년간 장군 생활을 한 그는 고압적이고 도도하다는 인물평도 적지 않았으나 일단 자기의 편이며 자기의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다정하고 용기 있고 가식이 없고 겸손한 장군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중공군의 100만 인해 전술로 전세가 어려워지자 맥아더 장군은 트르먼 미국 대통령에게 중공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병력 증원을 막기 위해서 만주 지역을 항공 폭격할 권한을 승인 받기를 원했고 핵 폭격이라도 감행하기를 원했다. 맥아더 장군의 마음에는 “공산주의를 뿌리 뽑겠다”는 결의가 분명하였다. 그러나 정치가였던 미국 대통령 트르먼은 전쟁이 더 크게 번져 가는 것에 대한 염려를 갖고 맥아더 장군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결국 맥아더 장군은 트르먼 대통령에 의해서 1951년 4월에 해임되고 말았다. 미국은 이미 3. 8선을 중심으로 전선을 정해놓고 전쟁하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이다. 트르먼 대통령은 중공군과 소련군의 개입에 의해서 전쟁 규모가 더 번져 나갈 까 하는 염려가 컸던 것이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라.
성경은 전쟁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구약의 내용은 창세기로부터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책이 아니냐고 쉽사리 혹평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소년 다윗을 전쟁의 일선에 내어 보내는 임금 사울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그래서는 자신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써 보게 하였고 사울의 긴 칼도 옆구리에 차 보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크고 어색할 뿐 다윗을 더욱 불편하게만 하였다. 결국 다윗은 사울 임금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는  제 손에 익숙한 것만 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 나갔다. 소년 다윗의 손에는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터인 엘라 골짜기로 가던 중간에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주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손에는 물매가 들려 있었다. 당시의 다윗은 언제나 외모가 붉게 타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저만치 엘라 골짜기의 맞은편 산 위에 서 있던 골리앗이 다윗을 향하여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왜 막대기는 들고 나아오느냐”고 소리쳤다. 골리앗은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내게 가까이 나아와라 내게 네 살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주겠다.”고 조롱하였다.

이 때 엘라 골짜기를 지나 골리앗의 적진을 향하여 나아가던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소리쳤다. 사무엘 상 17장 45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역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골리앗 이상이었다. 소년 다윗은 계속하여 소리쳤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실 것이다.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벨 것이다.
블레셋의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줄 것이다.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할 것이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너희 무리로 알게 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실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블레셋의 군대가 벌떼처럼 일어나 달려들려 할 때에 다윗은 더욱 빨리 달리며 블레셋 진영을 향하였다.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돌멩이 한 개를 꺼내서 물매에 감아 던졌다. 그 물매 돌은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켰다. 돌멩이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고 골리앗은 순식간에 땅에 엎드러졌다. 손에 막대기와 물매  뿐이었던 다윗은 블레셋 진영을 향하여 뛰어 올라갔고 골리앗의 칼을 빼내어 그의 목을 밟고 머리를 베어 냈다. 블레셋의 군대는 골리앗의 죽음을 보고 이리저리 도망하기에 바빴다. 의기충천한 이스라엘의 군대는 블레셋의 도망하는 군대를 추격했고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사는 것은 싸움이며 전쟁이다. 온 나라가 종북과 친북의 세력들로 시끌벅적하고 국회마저 개원하지 못하는 이 때에 우리는 입체적인 전쟁의 송두리 안에서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이 때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전서 5장 8절과 9절에서 이렇게 편지하였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그리고 10절과 11절에서 선언한다.

“하나님이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에 기도하던 모세와 아론과 훌의 기도를 본받자. 전쟁의 일선에서 싸우던 여호수아의 용기를 배우자.  주께서 도우시리라. 아멘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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