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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내신 보혜사(保惠師)(요16:7-15) 5. 27 성령강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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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5-27 21:58 조회 21,647 댓글 0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나시고 성령 안에 성장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평생을 사셨다. 예수님을 잉태할 당시에 마리에게 말한 천사의 선물도 성령이었다.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고 알려주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임했다.(눅3:22) 예수님께서 광야로 40일간 금식하러 가실 때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상태에서 나가셨고 성령이 그를 이끄셨다.(눅4:1) 40일 금식을 마친 예수님이 갈릴리로 돌아 갈 때에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눅4:14)라고 했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펼쳐서 읽으실 때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이사야 61장 1절을 읽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나셨고 성령과 함께 사셨고 부활 하신 후에도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셨다. 사도행전 1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곁으로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언제나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성령 세례를 명령하셨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드디어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이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 충만을 받았다. 성령은 기도할 때 임한다.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면 누구나 성령을 받을 수 있다. 바람처럼 불처럼 임한다. 성령은 크게 호흡하면 맑은 공기기 폐에 가득 들어오듯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기다리고 고대하는 이의 마음에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성령 받은 베드로의 설교에 보면 사도행전 2장 33절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라.”고 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면 질병이 떠나가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기뻐지고 감사가 넘치게 된다. 문제의 산이 작아지기 시작하고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는 믿음의 말과 믿음의 생각과 믿음의 꿈이 점점 커져 가게 된다.

성령은 회개하고 죄 사함 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행2:38) 성령 충만하면 각양 은사가 나타난다. 방언하는 것, 담대히 복음을 전도하는 것, 섬기는 것, 나누는 것, 돌보는 것 등의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입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순종하고 기도하고 말씀 경청하고 금식하고 안수 받고 하는 그 모든 때에 성령이 임하신다. 성령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게 하시는 영이시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고 했다.

성령 받은 증거는 열매를 보면 안다. 육에 매어서 육신의 열매만 맺는 사람이 있고 성령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도 열매를 보면 어떤 나무인지 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접붙임이 되어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느니라.”(마7:17)고 하셨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고도 하셨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고 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말은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이다. 영어성경인 NIV에서는 ‘counselor’이라고 하였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협조자’라고 했다. 보혜사란 협조자 즉 도우시는 성령을 일컫는 것이다. 요즘처럼 교회 건축의 과정이 불의한 일들로 엉키면 법 전문가를 통해서 법적 대응이 되도록 자문을 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성령 즉 보혜사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고 의지하면 우리 각 사람의 삶에 구체적인 도움과 협조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혜사란 표현은 요한복음 14장 16절과 26절에 처음 나온다. 그리고 15장 26절에 다시 나온다. 그리고 16장 7절인 본문에 또 다시 나온다. 그 앞뒤의 말씀을 골고루 읽어 보면 성령이신 보혜사란 어떠한 영이신가를 자세하게 깨닫게  된다. 먼저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 자신이 이미 이 땅에 오신 보혜사이시다. 그런데 주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실 것을 자세하게 말씀하신 것이 요한복음 14장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의 범사에 도우시는 영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이 보혜사이시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각색 병자가 나았다. 귀신이 떠나갔다. 광야의 무리들의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하시는 일들마다 보혜사이셨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도움의 일이 일어났다.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협조가 이루어졌다. 그렇다. 예수님이 보혜사이시다. 그 예수님이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성령을 소개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여 장차 보내 주실 성령이신 보혜사는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하실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 성령이신 보혜사는 요한복음14장 17절에 보면, ‘진리의 영’이라고 했다. 26절에 보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영’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영이라고 했다. 다시 15장 26절에서 ‘진리의 영’이시라고 반복하여 강주해 주셨다. 오늘 본문에 와서 보면 성령이신 보혜사는 예수님과 매우 관련이 깊은 영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이 보혜사이신 성령은,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시다.
출애굽기 28장 3절에 보면, ‘지혜로운 영’이시다.
느헤미야 9장 20절에 보면, ‘주의 선한 신’이시다.
시편 51편 10절에 보면,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는 영이시다. 또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는 영’이시다.
시편 51편 11절에 보면, ‘주의 성령’이시다.
시편 51편 12절에 보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는 영이시다.
또한 ‘자원하는 심령’을 갖도록 회개하는 각 사람의 영혼을 붙드시는 영이시다.

이사야 4장 4절에 보면, ‘심판과 소멸의 영’이시다. 그리함으로 인간의 더러움을 씻으시고 죄악의 피를 청결하게 하시는 영이시다.
이사야 11장 2절에 보면,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다.

로마서 1장 4절에 보면, ‘성결의 영’이시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이시다.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양자의 영’이시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시는 영이시다. 16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는 영’이시다.
에베소서 4장 4절에 보면, 유일하신 영 즉, ‘한분이신 영’이시다. 그 곳에 보면. ‘몸, 성령, 부르심, 소망, 주, 믿음, 세례’가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모두 하나인 것을 일일이 언급한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보면, ‘영원하신 성령’이시다.
히브리서 10장 29절에 보면, ‘은혜의 성령’이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에 보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시다.
요한 일서 2장 20절에 보면,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게 하시는 영이시다.
요한 일서 5장 6절, ‘성령은 진리니라’고 하셨다. 곧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요한 계시록 1장 4절에 보면, ‘일곱 영’이시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골고루 동시에 역사하실 수 있는 성령의 사역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요한 계시록 19장 10절에 보면, ‘예언의 영’이시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령이 이 땅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성령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하나님 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하나님의 영이시다.

이제 다시 본문인 요한복음 16장에 돌아와 보면,

성령은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 주시는 영이시다.
보혜사이신 성령이 오시면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의인지, 무엇이 심판인지를 깨달아 알도록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는 책망의 영이시며 고치시는 영이시다.

그러면 8절이 말씀하는 세 가지 즉 죄와 의와 심판이란 무엇인가.
9절에 보면, 죄란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죄란 개인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죄이다. 세상의 보편적인 죄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죄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한다. 이 땅의 모든 성경 공부 입문 교재들이 첫 과에서 다루는 것이 ‘죄론’이다. 그렇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다 죄인이다.” 이와 같은 선언으로부터 인간의 자기 발견이 시작되는 것이다. 에스겔 22장에 보면, 멸망하게 된 유다의 죄몫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소개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불신앙이 죄다.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분노의 불을 발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처럼 나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분노하시게 하는 모든 것들이 구체적으로 죄다. 그 죄의 뿌리인 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고 돌이켜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 영이 보혜사 성령이시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성령 충만을 받은 후의 설교에도 강조되는 것이 이것이다. 특히 그 곳 사도행전 2장 37절이 이하에 보면, 동족 유대인들이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 마음이 찔려 회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요한복음 16장 9절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는 말씀에서 지적하시는 불신앙의 과거 상태가 지금 현재의 상태로 이어지는 불신앙의 연속성 즉 완악한 불신앙의 상태를 지적하신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보혜사 성령 안에서 이와 같은 인간의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불신앙이 녹아지고 변화된다는 사실이다.

10절은 의(義)가 무엇인가를 말씀한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의 상태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가 해결된 상태를 말씀한다. 죄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 죄가 해결되는 것은 동족 유대인들의 어리석인 자기의 의(義)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처참하게 죽였다. 그리고 자기들의 승리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영원한 의이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그리함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의는 영원한 것이다. 성령이신 보혜사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한 의에 대하여 몰라서 어리석고 무지하게 행동한 세상의 그릇되고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꾸짖어 회개 하게 하고 바로잡아 주시는 영이시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은 바로 잡아 주는 교정(矯正)의 영이요 회복(回復)의 영이시다.

또한 11절에 보면,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헨드릭슨(Hendriksen) 같은 주석가는 이 말씀을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 말씀과 연관하여 나름대로 쉽게 해석하였다.
즉 죄(罪)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지 못하고 배척한 것이 죄다. 의(義)란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생긴 것이 의다. 심판(審判)이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거역하고 믿지 못하는 상태가 심판인 것이다. 11절의 ‘세상 임금’이란 사탄의 세력을 말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세상의 사탄의 세력을 대적하여 심판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주로 오셔서 세상을 다시 한번 완전히 심판하실 때까지는 아직 심판과 종말이 유보된 심판의 분량이 있다.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이것을 두 단어로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already’와 ‘not yet’이다. 그렇다. 이미 주님께서 이룩하신 심판이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해 주셨다.

그러므로 보혜사이신 성령이 내 마음 속에 오시면 이와 같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나의 어리석음이나 불신앙을 깨달아 알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죄 사함과 거듭남의 은총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眞理)의 영이시다.
요한 일서 5장 6절의 ‘성령은 진리니라.’는 선언의 근거하면 ‘성령은 곧 진리이시다’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겠으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령은 진리를 진리가 되도록 전달해 주는 영이요 깨우쳐 주시는 영이시다. 또한 진리를 전달하고 밝혀 주시는 영이시다. ‘부흥 2000’ 복음성가 찬송의 시작이 그것이다.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의 가슴 정케 하소서......”

그렇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그런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셔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증언하는 일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26절과 27절이 그런 말씀이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는 보혜사 성령께서 진리의 성령으로 역사하신 이와 같은 증거와 증언들로 가득하다. 시각 장애의 고난을 극복한 강영우 박사와 히말라야의 슈바이쳐 강원희 선교사와 불에 숯덩이처럼 타 버린 외모이지만 그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성령의 위로하심을 증언하는 이지선 자매의 마음을 감싸고 격려하고 힘과 용기를 주는 성령이 곧 진리의 성령이 아니신가.

A. W. 토져 목사의 <임재체험>(Man: The Dwelling Place Of God)이란 책에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 거하는 인생’이란 제목으로 말씀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핵심진리만을 따르라’고 권면한다. 그는 뉴스에서 들은 영국의 89년을 살다가 죽은 귀족의 생을 언급한다. 평생을 그것도 89년 중에 70년 동안을 ‘반점 생쥐’를 기르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토저 목사가 언급하는 것은 재산 많은 귀족으로 태어나서 엄청난 유산을 받아 경제적인 부족을 전혀 느끼지 않고 평생을 살았던 그가 평생을 반점 생쥐를 기르는 것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취미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반점 생쥐 곁에서 지내다가 죽었다. 토저 목사는 언급한다. 세익스피어와 같은 존재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창조된 한 인생이 89년의 장수의 복을 받았고 귀족으로 나서 귀족을 평생을 살면서 고작 반점생쥐와 놀다가 죽고 말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언급한 성경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죄와 의와 심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죽음과 영원에 대비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반점 생쥐를 기르다가 죽다니 얼마나 불쌍하고 무의미한 죽음이냐는 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13절의 말씀처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각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좌정하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인생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진리를 깨우치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길이 진리이신 성령 안에서 사는 길이다.

진리이신 성령은 인생을 결코 무의미하게 살고 막 살고 되는대로 살고 육신의 쾌락을 쫓아서 방탕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영이 아니시다. 진리의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면 ‘부흥 2000’의 가사와 고백처럼 ‘거짓과 탐욕과 죄악’이 가득한 세상과 나의 더럽고 추하고 악한 마음을 정결케 하시는 능력이 임한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영이시다.
14절에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라고 하셨다. 독사조(doxavzw)라는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올 재림의 약속 가운데 가득한 영광을 표현하는 특별한 단어이다. 시시한 영광을 추구하지 말자. 풀처럼 시들고 꾳처럼 떨어지고 말 영광을 쫓지 말고 영원한 영광, 위대한 영광, 영광스러운 영광, 녹슬지 않고 썩지 않는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이 성령 안에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다. 성령은 예수님이 한 생애동안 육신을 입고 사시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처럼 또한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영이시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이와 같은 성령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본격적으로 임하여 역사할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남겨 주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고 하셨는데 그 생수의 강이 바로 성령의 충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의 생활 모습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날지라도 강 같은 평화와 바다 같은 사랑과 샘솟는 기쁨을 갖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충만함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내게 강 같은 평화”라는 복음 성가 가사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 성령 충만한 인생의 모습이다.

“희말라야의 슈바이쳐” 기록 영화의 실제 주인공을 보라. 하루 100명 이상의 환자를 보고 마른 반찬 놓고 허기를 채우면서 비틀거려 가면서도 80을 바라보는 연세에 히말라야의 산악지대 외딴 마을을 찾아다니며 순회 진료를 하는 외과 의사 강원희 선교사 부부의 모습을 보라. 어떻게 그렇게 영광스럽게 살아 갈수 있을까. 14절에 보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그렇다.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계시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니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세상에 알리는 영이시다. 사랑, 소망, 믿음, 평화와 행복이 주님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를 계속하여 죄악이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서 알리시는 영이 성령이시다. 15절에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모든 활동이 하나이시라는 선언이시다.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보혜사 성령의 사람이 모두 다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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