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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자(시29:1-11)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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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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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1-13 17:08 조회 3,544 댓글 0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자(시29:1-11)       2024. 1. 7  

 

 

시편 29편은 다윗에 의해 기록된 ‘감사 예배시’의 한 편이다. 길지 않은 내용 중에 1, 2, 9절에 ‘영광’이란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그의 성전에서...영광이라 하도다”라고 하였다. 

 

다윗은 어떤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 1절의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다윗은 나라의 온 백성을 향하여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자고 권면하고 있다. 

 

과거에 서울 시장을 지냈던 이가 ‘서울 성시화 운동’을 벌이며‘교동협의회’라는 것을 조직한 적이 있다. ‘교동’(敎洞)이란 교회와 동사무소 간의 협의체이다. 요즘에는 주민센터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때에는 동 사무소라고 부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잘될 것 같았지만 불교를 비롯한 타 종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럴수 밖에 있었겠는가.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는 교회도 많지만 얼마나 타 종교의 세력이 강한데 말인가.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와 같은 민족적인 제안과 초대를 한 것이다.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왕으로서 나라인 이스라엘과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중심의 나라, 하나님 중심의 민족으로 통일하고 일체화하고 싶은 강렬한 신앙심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우여곡절이 많은 한 생을 살았다. 그는 사악하고 패륜한 범죄를 저지른 적도 있다. 도저히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 같은 엄청난 죄악의 나락에 빠졌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처절한 회개와 변화의 삶을 살아가려고 씨름하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충심을 아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사람이 나라의 왕의 눈에 들고 왕의 마음에 들면 왕이 그를 자기의 곁에 두고 싶어한다. 좌의정, 우의정 삼으려고 한다. 하물며 하나님이 마음에 흡족하게 여기시는 그 누군가라면 한 시대 주님이 그를 얼마나 존귀하게 붙들어 쓰시겠는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 홍수 시대를 준비하였던 창세기의 노아가 아닌가. 히브리서 11장 7절에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라고 하였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던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건설한 사람, 자기 자신과 여덟 식구의 가족을 모두 구원한 사람, 세상에 가득하던 죄의 편에 서지 않던 사람, 하나님이 기대하신 믿음을 따라 의의 상속자란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다.

 

이처럼 다윗은 7번이나 반복되는 ‘여호와의 소리’라는 표현과 함께 마치도 노아의 홍수 시대를 염두에 둔 고백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온 민족을 향하여 올바른 신앙의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 그러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자의 삶의 모습이어야 하며 어떤 복을 누리게 될까.

 

 

여호와께 예배하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의 삶이란 여호와께 예배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언급하는 ‘거룩한 옷’이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막과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기 위해서 구별된 옷을 입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맞다. 성도는 오늘날도 가운을 입고 찬양하고 가운을 입고 봉헌하고 가운을 입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과 성결된 태도를 갖고 예배하여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예배하여야 한다. 우리가 8장 찬송가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의 찬송으로 찬송하지 않나. 그 4절 가사에 보면,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천지 만물 모두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성 삼위 일체 우리 주로다. 아멘”

1826년에 쓰인 가사이다. 200년 동안 불리어지는 찬송가이다. 오늘 읽은 본문인 시편 29편은 3,000년간 예배 감사시로 고백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에녹의 때에도 찬송과 예배를 받으셨고 노아의 때에도 찬송과 예배를 받으셨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다. 단을 쌓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말이다. 2절 끝의 “예배할지어다”를,

 

<공동 번역 성경>에 보니까 “여호와께 머리를 조아려라”

<새번역 성경>에 보니까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현대인의 성경>에 보니까 “그에게 경배하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성도의 생활 제 1조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여호와께 예배하는 민족으로 삼으시려고 저들을 출애굽하게 하신 것이다. 출애굽기 5장 1절에 보면, 평생 못 만날 것 같던 형 아론을 만난 모세가 애굽으로 내려갔다. 온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그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설명하였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 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바로 왕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출5:1)

 

그렇다. 출애굽의 목적이 예배 민족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출애굽기 5장에 보면 3, 8, 17절에 반복해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한다.”는 말씀이 반복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현장에 먹을거리가 없고 입을 거리가 없어서 뽑아내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하게 하셔서 하나님 중심, 제사 중심, 절기 중심, 말씀 중심, 예배 중심의 민족으로 삼으시려고 출애굽하게 하신 것이다.

 

이는 다윗의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또 돌리는 민족과 개인을 찾으신다. 날마다 순간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하는 민족과 개인을 주목하신다. 성결된 마음과 거룩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 오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개인과 민족을 주목하신다. 

 

신앙생활은 예배 생활이다. 예배 생활이 기본이다. 예배 생활이 시작이다. 예배 생활이 전부이다. 예배가 살면 일상이 살고 예배가 무너지면 매 순간이 무너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개인과 민족을 주목하신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하였다.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 10. 1- )는 올해 100세이다. 그의 부인 로잘린 카터(Rosalynn Carte, 1927-2003) 여사가 지난 해인 2023년 11월 19일, 96세를 살고 주님 품에 안겼다. 결혼 생활이 77년이다. 조지아 아틀란다 글렌 메모리얼 교회에서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19살 소녀가 친구 오빠인 해군사관학교 출신 초급 장교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플레인스 감리교회에서 결혼하였다. 나중에 평생을 침례교인으로 지냈다. 복지학을 공부한 로잘린은 남편 곁에서 시아버지의 땅콩 농장 경영과 조지아주 상원 의원의 아내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부인의 역할도 검소하고 지혜롭고 겸손하게 잘 감당하였다. 저들 부부의 평생 집 지어 주기 운동인 ‘헤비타트 운동’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평생 ‘땅콩 농부’(peanut farmer)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주 안에 성실한 삶을 살았다.

 

로잘린은 13살 때에 아버지를 일찍 잃었다. 기계공이었고 농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사남매 중의 맏딸이었던 로잘린은 여유롭지 않은 가정의 홀로 되신 어머니 곁에서 책임감이 분명한 맏딸로 자라났다. 

 

지미 카터는 10살 때부터 아버지의 땅콩 농장에서 일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조카인 킴 풀러는 "삼촌께선 내게 ‘가치 있는 뭔가를 할 단 한 번의 삶과 한 번의 기회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게 무엇이든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든 그것을 해야만 한다’”라고 충고해 주신 것을 기억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마라나타 침례교회는 저들 부부가 일생을 다해 헌신한 곳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77년부터 최근까지 약 50년 가까이 한 교회에서 장년부 주일학교 강사로 봉사했다. 플레인스는 총주민 5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에서 카터 전 대통령이 강단에 설 때면 평신도 설교자였던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저들 부부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의 삶을 모범적으로 살았다. 세 아들과 한 명의 딸도 훌륭하게 키워 냈다.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란 매일의 삶이 달라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한다. 예배자 다운 삶을 매일 매일 순간마다 세상 속에서 제대로 잘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다.

 

하이먼 리코버 해군 제독을 만났을때에 제독이 젊은 초급 장교인 지미 카터에게 물었다. “자네 해사 몇 등으로 나왔나?”, “820명 중에서 59등입니다.”, “최선을 다 했나?”,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좀 설렁설렁 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 WHY NOT THE BEST?(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지미 카터는 하이먼 리코버 제독 앞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미 카터는 그 날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일화를 소개하고는 하였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주일을 맞이 예배하고 있다.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 평생토록 최선의 예배자로 살며 최선의 삶을 세상 속에서 살아서 세상 중에서 빛과 소금과 같은 인생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힘을 입게 된다.

10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은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신다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많은 물 위에 계신다. 3-9절에서 7차례 반복되는 ‘여호와의 소리’란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하고 광대하신 능력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그렇다. 다윗은 천둥 소리를 여호와의 우렛소리라고 하였다. 7절에서는 번개를 화염을 가르시는 여호와의 소리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소리는 힘이 있고 위엄차다. 여호와께서 번개와 천둥 소리 가운데 큰 비를 내리시고 거센 바람이 불게 하시면 레바논의 백향목이라도 꺾여 부숴지고 만다. 백향목의 나무 뿌리가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신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시면 남아 나는 것이 없다. 6절의 레바논과 8절의 가데스를 언급하는 것은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라는 말이다. 팔레스틴 전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소리가 힘을 발하시면 천지가 진동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대신할 힘이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라는 말씀은 인생을 비유로 교훈하는 내용이다. 암사슴은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을 비유한 것이고 삼림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비유로 교훈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인생이라면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려야 한다는 초청인 것이다. 성전에 모일 때마다 “여호와께 영광”이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9절을 <새번역 성경>에서는“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하고 외치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며 영원하도록 여호와께서 왕으로 좌정하심을 주목하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신앙 고백과 체험을 간증하듯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라고 말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힘’이란 은혜이며 능력이며 믿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능력을 덧입혀 주신다. 세상을 이기며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해 주신다. 올 한해도 날마다 순간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받는 걸음걸음이 되기를 축원한다. 다윗은 시편 18편 1절에서“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찬양하지 않나. 시편 18편 31-32절에 보면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힘으로 띠를 띠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각 사람에게 평강의 복을 주신다. 11절에서 말씀하는 ‘평강의 복’이란 10절에서 말씀하는‘홍수’의 심판과 대조 되는 복이다. 그렇지 않나. 홍수가 덮치고 지진이 나고 가뭄과 기근과 굶주림이 지구촌을 덮는다면 누가 감히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노아의 홍수 심판 때에 몇 사람이 과연 살아남았는가. 노아 때에 홍수 심판이 시작되자 누가 평강을 잃었는가.

 

인간이 누리는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엇인가. ‘평강의 복’이 아닌가. 운동장 같은 집, 임금의 대궐 같은 집에서 살지만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들은 평생 한번도 못 타보는 세계적인 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만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들은 평생 구경도 못하는 산해진미를 식탁에 올려 놓고 먹는데도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자를 기뻐하신다. 이사야 2장 말씀에 보면,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사2:12)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17-22)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과 은혜를 갈급해 하는 심정으로 여호와께 예배하자. 세상의 유한한 것, 썩어 없어질 것으로부터 힘을 구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힘을 구하자.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서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아 누리자. 성경을 자세히 보면 11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라는 말씀에 주목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힘은 세상의 그 어떤 힘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평강의 복은 세상에 넘석거리면서 찾아 나서는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인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아니하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하셨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라는 찬양을 보라.“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이런 평안, 이런 평화, 이런 평강의 복이 늘 마음 속에 가득차고 넘쳐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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