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의 아들(롬8:12-17) 6. 1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6-16 18:50 조회 23,185 댓글 0
 
부모 자녀의 관계는 내 선택이 아니다. 부모를 통하여 자녀의 관계로 맺어지는 운명적인 것이다. 혈연의 관계란 대대로 주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이 세상의 육신의 부모에 대한 추억이 좋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육신의 부모로 인한 상처나 아픔 때문에 평생을 그 부정적인 상처를 씻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눌려 사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딸의 관계가 참으로 소중하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딸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은총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우리가 어떤 형편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라났고 살아가든지 어머니에 대한 추억도 좋아야 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각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가정 즉 가족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강조한다. 요즘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이단은 죽은 안상홍의 부인을 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신명기 32장의 ‘모세의 노래’에 보면 6절에서,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라고 했다. 우리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거쳐서 레위기를 읽고 민수기를 묵상한 후에 신명기를 거의 다 읽다가 보면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이 같은 교훈을 만나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을 비로소 아버지라고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시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이 문제이지 하나님 아버지는 완전하신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아버지이시다.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 특별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하나님께 대한 이와 같은 사실들을 절절히 깨달았다. 모세의 말년에 이와 같은 하나님 발견이 축복의 노래가 되고 찬양이 되고 유언이 되었다. 52절로 되어 있는 짧지 않은 분량의 모세의 노래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 아버지를 반석이시며 완전하시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시며 거짓이 없으시고 공의로우시고 올바르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칭송하였다.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악을 행하고 흠이 많고 삐뚤어진 세대로 살아가고 있지 하나님 아버지는 실수도 없으시고 부족함도 없으신 완전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악하게 타락한 인간은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들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완전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과 그 권세와 섭리를 깨달아 체험하고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4절에서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이 의도적으로 그런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16절에서 말씀하는 자녀라는 표현과 구별되는 것이다. 모든 성경이 그러하듯이 사도 바울의 편지들은 그냥 그의 생각과 사상을 써 내려 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쓰게 한 편지들이라 심오하고 그 단어 사용 하나 하나가 특별하다. 14절의 ‘하나님의 아들’이란 권리와 의무를 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게 자라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아들’(uiJov", 휘오스)을 의미한다. 그러나 16절의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상태를 강조하는 ‘자녀’(tevknon, 테크논)를 말한다.

우리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해 왔지만 어머니의 역할이나 어머니에 대한 추억 말고 아버지의 역할이나 아버지가 차지하는 가정에서의 비중이 얼마나 큰가. 성경은 신구약 곳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것을 누누이 강조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시작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어떠하신 아버지로 이해하고 경험하고 깨닫고 믿고 따르느냐의 정도에 따라서 각자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시편 89편 26절에 보면,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고 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잘 표현해 준 선지자는 이사야이다. 이사야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는 말씀에서 “전능하시 하나님이라,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9:6)고 선언하였다.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본체로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시다. 이사야 63장 16절에서는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는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의 아브라함은 오늘 날의 우리들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들을 모를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의 아버지요 나의 아버지이시라고 선언해 주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택함 받은 자녀들인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것을 가장 잘 설명해 주셨고 반복하여 강조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구구절절이 반복하여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이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것을 계속하여 강조하고 있다. 가령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성도들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씀하는가.

하나님의 영(靈)으로 인도(引導)함을 받는 아들.
본문 말씀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산상 수훈인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3-48)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받는 아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 즉 성령께서 친히 증언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이란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달라야 한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혹은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햇빛을 비추어 주실 때에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추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는 비를 내리실 때에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골고루 내려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해서는 상급이 없다.
세리도 이 정도는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나에게 잘해주는 이에게만 문안하며 산다면 세상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 정도는 하나님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할 줄 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완전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그 완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인 우리들이라고 하면 우리도 완전한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성숙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가꾸어 가야 한단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사랑이 성숙한 믿음이요 완전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믿음이 되길 원하신다.

에이든 W. 토저 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God)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강조를 묵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는 쉽게 깨달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아 알려는 노력은 마치도 “대양(大洋)이나 대기(大氣)를 두 팔로 껴안으려는 것이요 별들에 도달하려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맑은 공기를 호흡하므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누구라도 공기 없이는 살수가 없다. 아무리 건강하고 튼튼하고 지식이 넘치고 지혜가 뛰어나고 권력과 힘과 재물과 금은보화를 많이 가졌다고 할지라도 대기에 가득한 공기를 한 순간이라도 호흡하지 못하면 살수가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떼려고 해도 도저히 뗄 수 없는 그런 긴요한 관계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중의 한 곡인 ‘에벤에셀 하나님’의 가사를 보라.

감사하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셨네 감사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셨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하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사도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그런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앞날을 잘 인도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겠는가. 전능하신 아버지요 완전하신 아버지요 영원하신 아버지요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더불어 인치시고 보증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와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세를 앞장세우시고 그의 곁에 아론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막 중심의 예배자로 구별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가리고 덮어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추어서 인도하시는 장면들을 계속하여 보여 주신다. 이처럼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 아버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아들딸인 성도들을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서 길거리에 보면 젊은 엄마나 아빠들이 어린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워서 뒤에서 밀고 다니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요즘 유모차는 참으로 멋지게 잘 만들어졌다. 가방과 짐을 싣는 곳도 있다. 왕자와 공주가 행차하듯이 유모차의 해 가림 덮개도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지 모른다. 겨울에는 투명 비닐로 사방을 둘러씌우고 지퍼로 닫아서 찬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아주 안온하게 만들어져 있다. 어린 아기들은 그 안에서 두 손으로 우유병을 꼭 잡고 간식을 즐기기도 한다.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한다. 가만히 유모차에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 엄마나 아빠가 아기를 정성스럽게  보호하며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서 인도해 간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지 않나. 청소년기를 지내고 청년기를 지내고 장년기를 지내며 노년기를 맞을지라도 나를 인도하시는 분의 손길을 인정할 줄 아는 아들로 살아가는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점점 잘못되어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분의 인도하신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가정생활이든 학업이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하나님 아버지의 영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아들딸의 삶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내 삶을 함부로 막 운전해 가면 안 된다. 조심스럽게 삼가며 최첨단 내비게이션의 인도를 따라 가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방황하거나 배회하지 않고 갈 수 있게 된다.

며칠 전에 미국 구글(Google) 사는 비행기에서 45도 입체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3D입체 지도를 공개한다고 발표하였다. 가령 도시 지도를 보면 건물이 입체적으로 보이고 골목과 다리와 터널 등이 하나하나 입체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지난날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안에서 인도하신 것처럼 앞으로 우리 각 사람의 나아가는 길도 하나님 아버지의 영으로 인도하시고 성령으로 친히 더불어 인도해 주실 줄로 믿는다.

양자(養子)의 영을 받은 아들.
고대로부터 로마 그리스 이스라엘 등지에서 양자의 제도는 있어 왔다. 우리나라도 옛날부터 양자의 제도가 전해져 온다. 양자란 양자로 입적되는 순간부터 양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신분상, 재산상 모든 권리가 승계되는 신분의 놀라운 변화를 말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아들이 태어나지 않자 늙은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으려고 했었다. 창세기 15장 3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모세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 버려졌으나 바로의 딸 공주의 눈길에 들어와 건져졌고 애굽의 법에 따라서 양자로 입양되어 자라났다.(출2:10) 모세는 바로 왕의 공주의 양자로 40년간을 애굽의 왕궁에서 당시 최고의 황실 교육을 받으면서 왕이 될 왕자의 수업을 골고루 수준 있게 받으며 자라났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이 모든 양자로서 누리던 축복들이 나중에 광야 40년을 거치고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에 의해서 쓰임 받던 탁월한 역량을 가진 민족 지도자요 선지자요 제사장으로서의 모세를 모세 되게 한 축복의 과정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어린 아기들과 어린 고아들을 다른 나라에 보내 입양 시키는  희한한 나라 중의 한 국가이다. 그런 버려진 미혼모의 아들딸들이나 사연 많은 부모의 손길에서 버려진 아기들이 미국이나 구라파의 그 어느 나라의 낯 설은 가정에 잘 입양되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면 그 이전의 참담한 출생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성공 스토리를 종종 보고 듣게 된다. 미국에서 잡지, 비즈니스(Business)지(誌)와 워킹(Working)지(誌)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인 찰린 C. 지아네티는 그의 책, <나는 누구인가>(Who am I)에서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에게로 입양된 존재다."

라는 정의를 내렸다. 충분히 동의가 되는 정의이다.

2011년 10월 5일에 56살 나이로 암과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생미혼모 조앤 심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양부모인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미국서부의 농부였다. 그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인이 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해안경비대에 들어가 경비정 기관사로 근무했었다. 전역 후 클라라와 결혼하였고 자동차 정비와 할부금 수금원 등으로 생계를 이어 갔고 아이가 없자 스티브 잡스를 입양하였다. 잡스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작가로 활동하는 모나 심프슨(Mona Simpson)이라는 여동생과 대화 치료사였던 친 어머니와 정치학 교수였던 친 아버지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친부모와 교류가 없었고 언제나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

양부모는 어려서 버려진 자신의 새로운 운명의 보호자요 새로운 축복의 시작이었다. 사람이 이 세상 부모 중에서도 괜찮은 부모에 의하여 입양되면 그 받는 사랑과 그 누리는 혜택과 그 주어지는 상급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모셔 들이고 내가 하나님의 양자되는 은총을 누리기 시작하면 인생은 점점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 아버지께 입양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마음껏 목청 높여서 부르짖을 수 있는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다. 유대인 아이들은 어려서 아버지를 우리나라 어린이들처럼 ‘Abba'’(압바)라고 부른다.

마가복음 14장 36절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기도하셨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하시고”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특권을 부여 받은 자들이다. 여기서 부르짖는다는 말은 양자되어 아들 딸 된 기쁨과 감격을 갖고 아버지께 대한 신뢰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소리 높여 부르는 그런 부르짖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아바 아버지’라는 복음 성가를 보라.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안으시고 바라보시는 아바 어버지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아바 아버지
주는 내 맘을 고치시고  볼 수 없는 상처 만지시네 나를 안으시고
나를 이해 하시네 내 영혼 새롭게 세우시네

우리를 영원히 양자 삼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아빠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을 율법의 심판이나 악한 저주와 결박의 무서운 종의 영에서 풀어주시고 양자의 영을 선물로 주셔서 영원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과 혜택을 끝없이 공급하시는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인 아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복 중의 하나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이냐는 복이다. 이것은 곧 상속자의 복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육신의 부모를 통한 상속자의 복은 서로 다 다를지라도 하나님을 아버지 삼고 택함 받아 살아가는 상속자의 복은 반드시 누려야 하는 복 중의 복이요 은혜 중의 은혜인 것이다.

현대나 삼성과 같은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의 아들딸들이 대를 이어 누리는 재력의 힘과 가문의 힘을 보라. 최근에 영국의 60년 여왕의 권세를 누리며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룬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여왕의 모습을 보라. 그의 아버지 죠오지 6세(George VI, 1895-1952, 재위 1936-1952)의 대를 이어 그녀의 나이 26살 때인 1952년부터 오늘날 까지 60년 동안 왕으로 군림하는 영국을 비롯한 영 연방 53개국을 대표하는 그의 영광은 그의 가문의 영광이요 자신의 영광이다. 물론 영국의 정치 역사가 그를 상징적으로 존귀하게 드높이고 과거 대영 제국의 자존심을 이어가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백성들에게 존경 받고 품위를 잘 지키는 여왕으로 청년기와 장년기를 보내고 86세의 고령에도 청청한 노년기의 품위를 지켜가고 있다. 금번에 그의 재위 60주년 기념 식 행사를 보라.

하나님은 나를 영국 여왕의 그런 존재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영원하고 존귀한 상속자로 택하여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영광이 곧 나의 영광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모든 것이 곧 나의 것이다. 상속자의 영광을 깨달아 알기 시작하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온갖 신비와 기사와 이적이 온전히 나의 심령에 공급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상속자의 영광이란 지금 어떤 고난, 어떤 슬픔, 어떤 역경, 어떤 답답함, 어떤 오해, 어떤 도전,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 살아갈 지라도 존귀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영원한 영광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상속자의 영광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상속자의 영광이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가. 요즘 고난 가운데 있는가. 그 고난의 먹구름 저 너머에 영광스럽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상속자의 영광스러운 영광을 바라보라. 그리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라. 영광의 개선가를 부르라. 348장 찬송에 보면 3절에,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크신 팔을 벌리고
너를 도와 주시려고 서서 기다리시니
너 어서 나오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오! 만유의 주 하나님 아버지여 영원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상속자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칼럼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마6:2..최고관리자
"감사해"최고관리자
"바울의 소식"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최고관리자
"누군가 널 위해 기..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