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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선교 명령(마28:19-20)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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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4-07 22:34 조회 2,469 댓글 0
 

                           선교 명령(마28:19-20)              2024. 4. 7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복음 전파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성도의 사명이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성도는 땅끝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자녀들이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고 약속하셨다.

 

예수사랑교회는 교회 설립 이후 한결같이 선교지와 선교사를 후원하며 중보하는 일을 우선 순위에 두고 기도해 왔다. 오늘 처음으로 선교사 초청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가 다 저들처럼 오대양 육대주에 흩어져서 선교사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가든지 보내든지”라는 선교의 대명제처럼 우리 각 사람이 언제나 선교해야만 한다는 거룩한 부담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바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는 문화 명령을 하셨다.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이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에서 ‘선교 위임 명령’을 하셨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선교사들은 젊은 지난 날 선교 현장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이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네 가지의 명령이 담겨 있다. 

 

가라

제자를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신앙생활이란 누구나 다 이와 같은 선교 명령을 준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각기 사회적인 신분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사회적인 역량이 다르고 경제력이 다르고 능력도 다르고 건강 상태도 서로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서로 다른 삶의 여건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은 선교 명령을 준행해야만 한다. 노아가 방주 건설 명령을 준행한 것처럼 말이다. 

 

‘가라’는 명령이 무엇인가. 4천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만나셨다. 그리고 저에게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말씀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이것이 언약의 조상이 되는 첫 출발이었다. 야곱은 도망 간 땅에서 12지파의 조상의 기틀을 닦았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 간 땅 애굽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80년을 섬겼다. 모세는 살인 후 피신해서 도망갔던 땅, 미디안 생활 40년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쟁터를 찾아갔다. 세 형들을 만나려고 블레셋과의 전쟁터인 가드 골짜기를 찾아갔다가 운명이 바뀌었다. 거기서 만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 한 개로 때려 눕혔다. 그런 인연으로 다윗은 십수년 후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을 40년간 통치하는 언약 민족의 왕으로 쓰임 받았다. 바사의 수산성에 있던 느헤미야는 멀고 먼 길을 예루살렘에 찾아 갔다. 52일만이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곽을 중건하고 총독으로 섬겼다. 

 

신앙생활은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생활이다. 하나님은 사명의 사람으로 하여금 갈 곳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신다. 때로는 가야만 하도록 환경과 여건을 몰아가시기도 한다. 요셉처럼 팔려 간 곳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게 하신다. 다니엘이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끌려 간 포로의 땅에서라도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행하게 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가정, 우리 직장, 우리 사업장, 우리 일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주님이 가라 하신 그 곳이 되어야만 한다. 가라 하신 그 곳에서 삶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는다.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한다. 삶의 흥망성쇠(興亡盛衰) 앞에 서게 된다. 

 

이처럼 사명을 갖고 복음을 들고 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의 길이며 외로운 길이며 순교의 길이다. 지난 2천년 동안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열방에 나아갔던 수많은 신앙 선배들이 그런 길을 걸어갔다. 

 

우리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 방화 사건을 안다. 그해 7월 25일, 평양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미국 무장 상선이 평양부에 접근해서 포를 쏘고 조선인을 학살하며 일어난 사건이다. 그 당시의 유럽 여러나라들과 미국은 강제로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화 하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미국 상선은 개항과 상호 통상 무역을 요구하였다. 평양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 군대는 그해 9월 5일에 배에 급습하여 불을 지르고 선원을 살해하였다. 그 배의 통역관은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였다. 1840년 영국 웨일즈의 라야다 회중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런던대학교 뉴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23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선교사로 부름 받았다. 입국 4개월 만에 그의 아내가 유산과 과다 출혈로 숨지고 말았다. 선교지에 다녀 온 그는 아내의 시체가 다 부패한 일주일 후에야 현장을 목격하였다. 토마스는 슬픔과 충격을 가슴에 묻고 중국 산동성의 청나라 해상 세관에서 통역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때,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와 핍박으로 중국으로 도망쳐 오는 것을 보고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의 상선이 조선으로 가는데 통역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1866년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황해도 연안 창린도에 두 달 쯤 머물렀다. 그 곳 주민들에게서 한국말을 열심히 배웠다. 저들에게 200여권의 한문 성경도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평양 대동강 물줄기를 따라서 조선 땅의 육지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쇄국정책을 펴오던 조선은 미국의 상선이 조선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조선의 병사들과의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제너럴셔먼호는 조선의 군대의 공격을 받고 불에 타게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 변에 끌려 나와 조선의 군대 박춘권의 칼에 목 베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죽어 가면서도 박춘권과 그 곁의 12살된 최치량에게 성경을 건넸다.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는 순교 직전 까지 이 땅에 이미 1,000여권의 성경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토마스를 목 베어 죽인 박춘권은 후에 성경 말씀을 읽고 변화되었다. 세례도 받았다. 나중에 그는 안주교회 영수가 되었다. 성경책을 받아 든 12살 소년 최치량은 그 성경을 박영식에게 건넸다. 박영식은 자신이 경영하는 여관 방에 성경을 낱장으로 찢어 도배지로 사용했다. 박춘권의 조차 이영태는 그 방에 도배된 성경을 읽고 변화 받았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했다. 레이놀즈 선교사의 곁에서 사역하며 나중에 성경 번역 위원으로 활동했다.  

 

어린 최치량은 성인으로 자라났다. 사업에 성공한 그는 돈을 모아 박영식의 여관을 사들였다. 그 여관에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우연히 묵게 되었다. 사방의 벽면이 성경으로 도배가 된 것을 보고 놀란 사무엘 마펫 선교사는 그 여관 방을 월세를 내고 머물렀다. 그 방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3개월 후에 7명이 세례를 받았다. 교인이 늘어나자 최치량은 널다리 골에 사는 홍종대의 집을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널다리골 교회가 탄생되었다. 그 교회는 후에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발화점이 된 평양 장대현교회로 자리매김하였다. 하나님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를 헛되지 않게 하셨다. 그가 죽어 가며 대동강 변에 던져 놓은 몇 권의 성경책이 열매를 맺게 하셨다. 

 

​예수의 열 두 제자들은 사도 요한 외에는 맛디아를 비롯한 11사도가 모두 순교하였다. 바울 사도도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자의 길을 갔다. 히브리서 에 보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6-38)라고 하였다. 

 

오늘날도 선교 현지 곳곳의 도전과 위협은 여전하다. 생명에 위협을 받기고 하고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앞서 보내기도 한다.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일에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

그런데 그만 서둘러 문자를 쓰다가 문자를 잘 못 보내고 말았다.

“어머니 오래 오래 사시네요”

 

우리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면서 선교 현장의 풍성한 열매를 넘치도록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선교 명령 또 하나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라는 명령이다. 모든 족속이 누구인가. 예수께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든 열방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는 언어, 피부색, 풍습, 문화, 경제 수준의 차이가 없다. 주님은 천하 만민이 모두가 다 복음을 아는 예수의 제자가 되길 원하신다.

 

또 하나의 명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물세례와 불 세례와 성령 세례를 명하셨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라고 말씀하셨다. 1906년 스크랜턴 선교사와 데이밍 선교사가 강화도 고향 마을에 찾아왔다. 마을 사람 몇 몇에게 복음을 전했다. 세례 교인이 탄생했다. 고조부 49살, 증조부 26살 때의 일이다. 고조할머니와 증조 할머니도 그 때 세례를 받았다. 선교지마다 이런 일이 넘쳐 나기를 축원한다.

 

마지막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명령이다. 복음은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배운 것을 생활 속에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전도자가 그런 모범이 되는 삶,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교회의 앞날과 선교사들의 선교 사역의 현장에 성령의 충만함과 주님의 풍성한 은혜의 기름 부으심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자.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하시길 바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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