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수사랑교회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Ⅰ(요1:29-34) -세례 요한 - 20260104

본문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Ⅰ(요1:29-34)          2026. 1. 4

                         -세례 요한 -



새해에 지표로 삼은 성경 말씀은“예수를 바라보자”라는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이다. 주제 성구에 따라서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복음서를 비롯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바라본 다양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일마다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태어났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반열이다. 우리는 누가복음 1장에 소개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에 대한 일화를 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 누가복음 1장 6절은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라고 소개하고 있다. 저들 부부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게 행하며”살아가려고 씨름하던 경건한 유대인이었다. 아쉽게도 저들 부부에게는 나이가 많이 들어가도록 자녀가 없었다. 마침, 남편 제사장 사가랴가 반차를 따라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기 위해서 주의 성전에 들어갔다. 백성들은 분향소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났다. 사가랴는 순간 놀라워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 때에 천사가 장차 그들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고해 주었다.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는 분부도 하였다. 세례 요한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다.

그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다.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이다.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라고 자세하게 예언해 주었다. “나는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다”라고 말하며 반신 반의하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리라”라고 전해 주었다. 그 날 이후로 사가갸는 아들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까지 말을 못하며 지냈다. 누가복음 1장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에 아들 세례 요한이 잉태되고 탄생하기까지의 내용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 중간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의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되는 내용을 전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어느 가정에나 아들딸이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고 축복이다. 이렇게 태어난 세례 요한은 장성하여 아버지의 반차를 따라서 성전에 머무는 제사장으로 지내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 가까운 광야에서 지냈다. 소문을 전해 들은 많은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내는 그를 찾아 갔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우리가 그를 세례 요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요한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어느 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냈다. 세례 요한을 만난 저들은 “네가 누구냐”라고 질문하였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세례 요한은 차근 차근 대답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라고 대답하였다.


보냄을 받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계속하여 질문하였다. “네게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그 때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신발 끈을 푼다”는 말은 종노릇한다는 의미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과 비교하면 그 분의 종 노릇도 할 수 없는 자라고 말한 것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지내는 그를 주목하고 그를 바라보며 찾아 나서는 수 많은 백성들이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시선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주목하였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바라 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튿날’이라는 표현은 대단히 시간과 공간의 현실감을 갖게 하는 말씀이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광야에까지 찾아가서 세례 요한을 만난 그 이튿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 예수께서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을 만나러 가셨다. 저만치에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 오시는 예수님을 목격한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증언하였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바라 보고 말한 것이다. “예수을 바라 본다”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예수님의 무엇을 바라 본다는 말인가. 여러분은 그 동안 무엇을 바라 보며 살아 왔는가. 누구를 바라 보며 살아 왔는가. 예수님을 바라 보며 살아 왔다면 예수님의 무엇을 바로 보며 살아 왔는가. 


대단히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이 담당하실 죄는 그를 핍박하고 박해하고 죽여 없애려고 하는 동족인 유대인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죄 뿐만 아니라 세상 죄를 담당하실 구주로 보냄을 받으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 죄란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포함한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보냄을 받으셨다. 인간은 결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 로마서 3장은 이러한 내용을 명확하게 다루고 있다.


9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

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11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12절,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13-16절,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다.

17절,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절,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이쯤까지 성경을 대하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지 않나.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나.


20절,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가 없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다.

22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의 의를 입을 수 있다.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선언한다.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한다.


그렇다. 다시 본문에 돌아와서 보면,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천하 만민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 죄 사함이 있다. 가평군 산자락에 찾아가야 죄 사함이 있고, 과천 그 어딜 가야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나의 주님으로 바라 보고 영접하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지고 가는”이라는 말은 영원히 계속되는 속죄의 은혜를 표현한 심오한 말씀이다. 예수님은“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 이사야 53장 7절에 보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표현한 곳은 신약 성경에 단 네 번 뿐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 36절, 사도행전 8장 32절, 베드로전서 1장 19절이다.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보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이 세상 천하 만민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3분 영상을 보자. 김두완 작곡의 “어린 양을 보라”라는 부활절 칸타타 중에서 “승리의 그리스도”편의 찬양과 영상을 보자.



비둘기와 같은 성령이 임하신 분.

세례 요한의 한 일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고 약속해 주셨다.


성령이 대답이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도 하늘로부터 비둘기와 같은 성령이 임하였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장 32절에 보면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라고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다. 마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 비둘기와 같이 성령이 임하는 것을 세례 요한도 보았고 예수님 자신도 보았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하였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에게 비둘기처럼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보았다는 것이다. 


시작된 올 한해 매 주일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길 바란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운전 중이든 교회에서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잠자리에서이든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영이시다. 지정의(知情意)의 영이시다. 진선미(眞善美)의 영이시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요 가르치시는 영이요 깨우쳐 주시는 영이요 지혜의 영이시다. 성령은 악한 영이 아니시다. 성령은 좋은 영이요 착한 영이요 의로운 영이요 선한 영이요 진실하신 영이시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돕는 영이시다.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영이시다. 요즘 인공 지능인 AI 혁명 시대 속에 새해를 맞았다. 인공 지능의 활용은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게 그 활용도가 점점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능력의 임재를 간절히 의지하여야 한다. 성령의 충만을 갈망하여야 한다.


물 세례는 자신의 죄성에 대한 깨달음과 회개를 촉구하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죄인된 인간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으로 자리 잡으시는 거듭남을 체험하게 한다. 이것은 새 생명의 체험이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사도 바울은“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세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선언하였다.



단회적--->성령 세례(洗禮)

지속적--->성령 내주(內住)

반복적---->성령 충만(充滿)



물 세례를 받은 이들은 성령 세례를 사모해야 한다. 성령 세례를 체험한 이들은 성령께서 내 안에 계속하여 임재하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기를 환영하여야 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령의 임재 안에서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인 것이다. 각 분야의 운동선수들은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연습량이 쌓여서 탁월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충만이란 날마다 계속하여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령의 충만을 계속하여 원하고 바라고 소망하고 갈망하며 살아갈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금관악기, 건반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하루에도 엄청난 시간을 연주에 쏟는다. 지난 번 팜트리 오케스트라 연주단이 지방의 이웃교회에 초청을 받았다. 그 팀원 중에 팀파니를 비롯해서 5가지 악기를 연주 순서에 따라서 분주하게 연주하는 팀원을 주목해 보았다. 팀파니, 심벌즈, 탬버린, 트라이앵글, 실로폰, 큰 북, 작은 북을 분주하게 연주한다. 성령 충만한 생활도 그러하여야 한다. 


사도행전 9장의 사울의 다메섹 체험이 그 좋은 예이다. 핍박자 사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평생 동안 순교하는 순간까지 성령의 충만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삶을 갈망하였던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 


충만함이란 차고도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저수지가 차고 넘치듯이, 물잔이 차고 넘치듯이 풍성하고 가득하고 넘쳐 흐르는 것을 충만이라고 한다. 2026년 한 해 동안 그리고 앞날에 평생토록 예수님을 바라 보고, 성령의 충만함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나님의 아들.

세례 요한은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29, 32, 34절에 반복적으로 ‘보고’라는 단어가 있다. 그렇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았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여 듣고,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임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달아 알았고 증언하였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보내신 성령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내용이 무엇인가. 4세기의 신학자 루피누쓰(Rufinus)에 의하면 12사도가 세계 선교를 위하여 열방으로 흩어지기 전에 짧은 한 문장씩으로 신앙을 고백하였다고 한다. 


베드로, “나는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안드레, “나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유일한 주를 믿는다”

야고보,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요한,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죽어 장사 지낸바 되셨다”

도마,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야고보,“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선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

빌립, “그는 그 곳에서 죽은 자들과 산자들을 심판하러 오신다”

바돌로매, “나는 성령을 믿는다”

마태, “나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들의 교제를 믿는다”

시몬, “나는 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을 믿는다”

다대오, “나는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맛디아, “나는 영생을 믿는다”


그러고 보니 사도신경은 이렇게 열두 문장으로 되어 있다. 12사도의 배열 순서나 12문장의 신앙 고백이 우연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고 하지 않던 도마가 5번째 고백자로 나서서“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라는 부활 신앙을 고백한 것도 우연으로 보이질 않는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로마의 백부장과 그 곁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 본 이들이 지진이 일어나고 무덤이 열리고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렇게 고백하였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태복음 27장 54절에 있는 내용이다. 오늘 본문에서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이 골고다 언덕의 모든목격자들에게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올해도 예배와 말씀 가운데 은혜가 풍성한 신앙생활이 계속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예수사랑 조회 76회 2026-01-0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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