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 0328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3-26 14:05 조회 4,506 댓글 0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

 

 

신랑을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들의 비유는 또 하나의 천국 비유이다. 여기 열 명의 처녀들이란 신부의 들러리들을 말한다. 유대의 결혼 풍습에는 10명의 결혼식 들러리를 세우는 전통이 있었다. ‘1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유대의 전통 결혼은 신랑이 신부의 집을 찾아간다. 신부의 집에서 일정한 유대교 전통의 결혼예식 순서를 가진 후에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이 다 같이 신랑의 집으로 이동해서 결혼식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보통 일주일씩 밤낮으로 성대한 결혼식이 진행된다. 길게는 두 주 동안 결혼식을 이어가기도 한다. 하객들은 잔치 자리에 제공되는 맛있고 풍성한 음식을 날마다 먹고 즐기며 마음껏 신랑과 신부의 장래를 위하여 축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는 시간에 결혼식을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는 시간이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면 곧 어두워지므로 들러리들의 중요한 임무는 횃불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다. 여기 등과 기름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등이 아니라 횃불이다. 횃불은 긴 막대기 끝에 솜방망이로 만들어서 한 시간에 서너 번씩 감람나무 기름을 계속 부어야 횃불이 활활 타오르게 된다. 그 횃불의 화려한 불빛이 신랑의 오는 길을 밝히고 결혼식을 알리는 중요한 예식 중의 하나였다. 깜깜한 밤중에 많은 횃불을 밝히는 것은 잔치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유대인의 전통 결혼식을 예로 들어서 비유로 천국 교훈을 하신 것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열 명의 처녀들은 예수의 재림의 날까지 이 세상에 살아가며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롭다고 하였다. 예수의 비유의 말씀을 차근 차근 대하며 교훈을 깨닫도록 하자.

 

 

등과 기름을 준비하라.

신랑의 결혼식에 신부 들러리로 초대를 받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 열 명이 들러리 처녀들을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로 구분하였다. 이유가 무엇인가. 미련한 처녀들이나 슬기로운 처녀들이나 모두 다 등은 준비하였다. 그러나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도착할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신랑이 나타나질 않았다. 열 명의 들러리 처녀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다 졸며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얼마를 졸며 자고 있는데 깊은 밤중에보라 신랑이라다 맞으러 나오라는 큰 소리가 들렸다. 졸며 자다가 깨어 보니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그때까지 충분한 기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머지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었다. 저들은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데 여분의 기름이 모자라는 상태였다. 다급해진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서로 나누어 쓰기에는 부족하니 차라리 가서 사다가 쓰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등은 무엇이고 기름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은 성도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생활 모습을 말한다. 반면에 기름성령을 상징한다. 문제는 기름이다. 기름이 떨어지면 등은 아무 소용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신랑을 기다리다가 당황해하는 다섯 명의 처녀들을 미련하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앙생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성령 충만의 상태를 계속해서 지속해 나가는 생활이다. 그렇지 않나. 성령 받기 전의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의 모습을 보라.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가. 그처럼 다양한 기사와 이적을 체험한 제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왜 예수를 버리고 다 도망가 버렸는가. 성령 받지 못해서 그렇다. 나중에 보아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몇 차례 만나 주셨다. 사랑에 대하여 확인하시기도 하셨다. 승천하시기 전에는 성령 받기를 기다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권면하셨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성령이 임하기를 사모하던 맛디아를 포함한 12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의 동생들을 포함한 120여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지난 2천 년의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다.

 

교회는 철저히 성령 중심이어야 한다. 세상은 어느 학교 출신이냐, 전공이 뭐냐,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냐, 기술이 얼마나 좋으냐, 경력이 어떠하냐 등등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서 판단한다. 그러나 주께서 세우신 교회의 모든 사역들은 성령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고 불길처럼 번져 가고 이룩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늘 사모하여야 한다. “불과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말세 시대, 즉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날마다 순간마다 사모하여야 하는 제일가는 사명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기도의 바탕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어야 한다.

 

신랑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라.

신랑이 더디 오자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들이 다 졸며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하고 너무 졸리면 졸고 자는 것은 당연하다. 5절에 보라.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고 하였다. 이는 지난 2,000년 세계 교회의 역사가 그러하였다. 물론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는 대부흥기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어느 교회나 어느 성도들이나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에 있어서는 설마하며 그냥 세상 낙에 빠져 사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 상태가 다 졸며 자는 상태이다.

 

신랑과 열 명의 처녀들의 비유는 예수의 재림에 관한 비유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고단해서 졸며 잘 수 있다. 신랑을 기다리던 열 명의 처녀들도 다 졸며 잤다. 그러나 문제는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깊은 밤중에 갑자기 들려 올 그 순간에 충분한 기름이 준비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종말 신앙, 재림 신앙은 등 뿐만 아니라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는 신앙이어야 한다. 이는 곧 누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인가를 구별하는 구원과 심판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느 깊은 밤 중에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는 큰 소리가 들릴때에 기쁜 마음으로 깨어 일어나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때와 그 시를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하며 신랑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의 마지막 교훈이 무엇인가. 13절에 보면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신앙생활이란 기다리는 생활이다. 신부의 들러리들인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등과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듯이 주님을 기다리는 생활이다.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신랑과 신부의 잔치 자리에 초대받은 그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갖고 항상 깨어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다리는 잔치 자리의 영광스러운 신랑으로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다. 잠결에라도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이 음성이 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문이 닫힐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라.

유대인들의 결혼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도착하고 나면 문을 닫아걸고 잔치를 시작하는 전통이 있다. 결혼 잔치 자리에 강도와 도둑 등의 나쁜 세력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결혼식 자리에 문이 닫히고 나면 그 누구도 절대 열지 못한다. 이와 같은 저들의 결혼 풍습을 가지고 예수는 세상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에 대하여 교훈하고 계시다. 그 후에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뒤늦게 도착해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간청을 해도 굳게 닫힌 문 안에서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냉정한 대답이 들려 나올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냉엄하지 않나. 그렇다. 천국과 지옥은 그런 세계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라. 더이상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영원한 지옥의 심판이 하늘과 땅처럼 구분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태복음 24장 마지막 절인 51절 끝에서 예수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경고하셨다. 달란트 비유의 끝인 마태복음 2530절에도 미리 보면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셨다. 양과 염소의 비유의 마지막 절인 마태복음 2546절에 보면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교훈하셨다.

 

한 해 농사만 지어 보아도 알곡과 쭉정이의 교훈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하신 모든 천국 비유는 다 사실이다.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설교문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더욱 그리하자(히10..최고관리자
"만왕의 왕 내 주께..최고관리자
"호산나"최고관리자
"더욱 그리하자"최고관리자
"높으신 주께서 낮아..최고관리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최고관리자
"비아 돌로로사"최고관리자
"사랑은 언제나 오래..최고관리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최고관리자
"주 없이 살 수 없..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