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과 전쟁이 끊임이 없었다. 이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 국가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셨다.
사무엘 하를 읽다 보면“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8:6)는 말씀을 접하게 된다. 다윗의 군대가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왕으로 있을 그 당시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변 나라들을 이기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런 다윗이었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 한편에서는 항상 떠나지 않는 불안이 있었다. 오늘 시편 25편 16절 이하의 말씀을 먼저 보면 그의 마음에는 외로움과 괴로움과 근심이 많았다. 그의 마음 속은 곤고했고 주변에는 환난이 끊임이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지내야만 했다. 16절에 보면 “주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17절에서는 “나를 고난에서 끌어 내소서.” 18절에서는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20절에서는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마지막 절인 22절에서는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라고 자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비탄시(悲歎詩)로 구분되는 시편 25편은 다윗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쓴 시편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다윗이 왕으로 있던 그 어느 때에 고백한 기도이며 간구임이 분명하다. 1절로 돌아 가 보자.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다윗이 고백하는 표현인 ‘나의 영혼’이란 그 ‘영혼’은 ‘네페쉬’(נֶפֶשׁ)라고 하는데 이는 ‘생명’(生命)을 말한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천국과 영원을 믿지만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오늘, 지금 내 목숨이 붙어 있고 내 생명이 보존되어 있는 그 여건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것이다.“우러러 본다”는 것은 “고개를 쳐들고 위를 바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외롭고 괴로울 때가 없지 않았다. 다윗은 전쟁마다 싸워 이기는 강성한 임금이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근심이 많았다. 다윗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왕이었지만 그의 마음에 쌓이는 곤고와 그의 주변에 끊임이 없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여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라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8번째 아들, 막내로 태어나 자라던 어린 시절부터 기도하는 법을 알았다. 다윗은 어려서도 기도했고 소년기에도 기도하였다.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 간다”고 소리치며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무서워하지 않고 물매 용 돌맹이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던 소년 다윗에게 이미 그런 믿음과 그런 기도 생활의 충만함이 있었다.
다윗의 하나님 신앙은 결코 막연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2절에서도 보면,“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1절에서는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봅니다.”
3절과 21절에서는 “주를 바랍니다.”, “내가 주를 바랍니다.”
5절 끝에서는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립니다.”
15절에서는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봅니다.”라고 고백한다.
다윗의 마음 속에는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늘 가득하였다.
다윗의 그 많은 시편의 구석 구석을 보면 다윗은 참으로 깊고 넓고 높고 끊임이 없는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시편 25편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나.
첫째,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2, 3, 20)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전쟁이란 것이 이겼을 때에 전쟁이지 지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전쟁이란 것은 이겨도 불안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게 마련이다. 다윗은 그가 임금으로 있던 당시에 수 많은 전쟁에서 이기고 또 이겼다. 아니, 이겼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이기게 해 주셨다. 어떻게 알 수 있나. 사무엘 하 5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의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라고 하였다.
그런 다윗이 지금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 나의 원수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해 주십시오.”2절과 3절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한다” 3절에 보면 다윗에게는 이와 같은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20절에 보니까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와 부르심을 망각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에 붙잡히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게 되는 법이다. 다윗은 기도하는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 날 때에 전쟁 중에 부하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취하였다. 부하 우리아 장군을 전쟁 일선에 배치해서 죽임 당하게 하였다.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이는 다윗의 생애에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의 용서가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끝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 연약한 다윗을 하나님이 붙들어 쓰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누구나 매 순간 드리고 또 드려야만 한다. 왕이라도 거짓되면 부끄러워지고, 죄악을 범하면 수치를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사람이 언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나. 진실해야 하는데 거짓되면, 의로워야 하는데 불의한 편에 서면, 선으로 악을 이기지 못하면 언제라도 부끄러워지고 만다. 이는 왕이든 평민이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과 이웃에게 대하여 진실하고 성실하고 거룩한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둘째,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교훈하소서.
여기서 접하는 도(道), 길, 진리(眞理)는 다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각기 달리 표현한 것 뿐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길에서 벗어나면 탈선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서 탈선한 인생은 죄를 범하고 타락하게 되고 만다. 요즘과 같은 세상에는 오프라인 언 라인 다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해커들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를 해킹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국제적으로 부끄럽고 중대한 범죄이다. 뭐 이런 예는 국가간에, 지도자들 간에, 기업 간에, 개인 간에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넘어질까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셋째,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