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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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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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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1-29 15:11 조회 3,549 댓글 0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마태복음 1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이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대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2000년 후손이며 다윗의 1000년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은 75세까지 아들이 없이 살아가던 아브람을 말씀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세월이 흐르고 25년이 지난 아브람의 나이 100세에 90세된 아내 사라를 통하여 이삭이란 이름의 아들을 주셨다. 이삭이란 ‘smile’ 웃음이란 뜻이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사라의 늘그막에 아들 이삭을 선물로 주셔서 저들로 하여금 웃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웃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다. 성탄이 무엇인가.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 오 임마누엘이처럼 하나님은 기쁨의 순간을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신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하고 찬송할 날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수 많은 천군 천사들의 찬양의 내용이 무엇인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맞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가운데 평화를 주신다.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신다.

 

마리아의 남편될 요셉이 자신의 아내로 약혼 기간을 보내던 마리아의 태에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겠나. 아니다. 그래서 곤혹스러워 하던 요셉도 가만히 약혼을 파기하려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어느 날 밤에 요셉에게 현몽하셔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18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빌려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 4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의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때가 찬 경륜을 따라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 ‘그 아들을 보내사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강조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말씀한다.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말씀하는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이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이 땅에 보내신 그 아들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가.

 

첫째,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贖良)하신 아들로 보내셨다 .

갈라디아서 45절에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려고라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313절에서도 이미 속량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속량’(贖良) ξαγορζω’(엑사고라조)라는 헬라어는 되돌려 사다라는 뜻이다. 노예를 제값을 주고 사서 자유의 몸이 되게 해 줄 때에 쓰는 표현이다. “대가(代價)를 주고 다시 찾아 완전히 내것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제용어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복음은 죄를 사()함받게 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의 축복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목적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들의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속량에 대하여 로마서 3장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성도가 되는 것은 속량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량의 은총을 선물로 덧입는 것이다. 이 속량의 은혜를 깨닫고 복음을 영접하기 전에는 율법의 자녀일 뿐이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 것 같은데 예수를 통한 속량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율법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종에게는 자유가 없다. 이것이 종과 아들의 차이다. 속량 받는다는 것은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속량하시는 사랑, 죄 사해 주시는 그 큰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누구나 기독교인이 되려면 속량의 은총을 입어야 한다. 그리하지 않고는 교회 마당만 밟는 교인에 불과하다. 참 신자가 되고 참 성도가 되려면 속량의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 예수께서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는 개인적인 체험이 있어야 신자가 되고 제자가 되고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째, 우리로 아들의 명분(名分)을 얻게 하신 아들로 보내셨다.

갈라디아서 45절 후반부에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라고 하였다. 맞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나면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아들이 된다. 이것이 양자의 영을 덧입는 것이다. 아빠 아버지라 부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 중의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주를 믿는 자녀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마음껏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명분을 선물로 주셨다. 이것이 예수 안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다. 이것이 아들의 명분을 선물로 받은 성도의 특권이며 자랑이며 기쁨이다. 이것이 양자됨의 영광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5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아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 감사하라. 만족하라. 하나님의 아들딸의 영광스러운 권세를 깨닫고 누리며 그 은혜와 그 은사를 개발하며 살아가라.

 

셋째, 아버지로 말미암아 유업(遺業)을 이을 아들로 보내셨다.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에게는 아버지의 모든 소유가 그의 유업으로 이어졌다. 4천년 전의 아브라함은 그 당시 거대한 목축을 하던 족장이었다. 그 어마 어마한 아버지의 양과 염소와 소와 말과 약대로 인한 재산이 고스란히 이삭에게 유업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이스마엘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에 붙잡혀간 소식을 듣고 되찾으려고 나섰다. 그 때에 집안에서 그의 말을 듣고 나서는 남자만 318명이었다. 창세기 1414절에 보면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라고 하였다. 오늘날로 하면 사설 경호요원과 같은이들이다. 그 숫자가 318명이라고 하니 그 당시 아브라함의 목축 규모가 얼마나 컸나를 짐작하게 한다.

 

유업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지난 1025일에 78세에 세상을 떠난 삼성 이건희(1942-2020) 회장의 상속세가 거의 12조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도 그 자손들에게 7조 가까운 주식이 남고 에버랜드 재산도 어머 아마 한 지분으로 남는다. 이것이 아들의 명분을 누리는 혜택이다. 유업을 실감나게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드는 것 뿐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아들의 유업이란 그런 정도의 재산을 물려 받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갈라디아서 47절 후반부에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자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여기서 말씀하는 유업이란 하나님의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부르며 누리는 설명으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누리는 각양 은사와 은혜는 한 마디 말이나 한 두 줄의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이걸 절절이 깨달은 찬송시인의 고백이 무엇인가.

 

304장 찬송가인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란 찬송의 찬송시를 쓴 프레드릭 레만(Frederick Martin Lehman, 1868-1953)은 독일에서 태어난 목사이다. 그의 가족은 프레드릭이 4살 때 미국으로 이민하여 아이오와 주에 정착했다. 그는 11살에 예수를 영접하였다. 그는 나사렛 교단의 목사가 되어 아이오와 주, 인디애나 주 등 주로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이나 병원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틈만 나면 찬송시를 썼다. 43살 때에 가족이 미주리 주 캔저스시티로 옮겨가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나사렛출판사(Nazarene Publishing House)의 탄생을 도왔다. 그는 시와 복음성가에 많은 관심을 가져 수 백 곡의 찬송시를 썼다. <뭔가 다른 노래들>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5권이나 출간하였다. 그 중의 한 편의 찬송시가 우리에게 잘 알려지고 불려지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생각하여 보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이건 가졌다고 부를 수 있는 찬송도 아니고 많이 배웠다고 부를 수 있는 찬송도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은혜가 되고 소망이 되고 늘 기쁘고 즐거워서 단 하루를 살아도 주를 찬양하고 단 한 순간을 살아도 사나 죽으나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속자의 영광이 깨달아진 자의 찬송이 아닌가.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가 된 상속자의 특권과 자랑스러움과 영광스러움을 갖고 맘껏 주님을 찬양하며 또 찬양하자.

 

-위 내용은 2020. 12. 27. 주일 설교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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