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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속죄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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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8-22 15:24 조회 5,418 댓글 0
 

용서와 속죄

 

 

성경은 죄의 용서(容恕)와 죄 사함을 받는 속죄(贖罪)의 길에 대하여 명확하게 안내 해 주고 있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그 죄를 사해줄 대상에게 진심으로 다가 가야 한다.

 

예수의 비유 말씀 중에 집 나간 둘째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소위 돌아 온 탕자의 비유이다. 물론 그 비유의 말씀에는 큰 아들도 문제가 심각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 아들은 철이 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유산 분배를 요구하였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둘째 아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둘째 아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주색잡기를 즐기며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재산이란 것이 있을 때에 재산이지 허비하기 시작하면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둘째 아들은 몇 해 만에 그 많던 재산이 다 날아가고 거지가 되었다. 그는 돼지우리에서 일하면서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였다. 아버지의 집에는 종들도 자기 신세보다는 더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조차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참담한 신세가 되었다. 그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고국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의 집이 있는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의 남루한 행색을 먼저 알아 본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달려가서 목을 얼싸 안고 반가워하였다. 종들에게 시켜서 목욕을 시키게 하였다. 새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고 새 가락지도 끼워 주었다. 그는 송아지를 잡았고 먹고 즐기자고 말하며 잔치하였다.

 

이렇게 못되게 살다가 한심한 모습으로 돌아 온 둘째 아들을 환대하고 집안에 들인 것은 전적인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들판에서 일하다가 이 소식을 들은 큰 아들은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버지의 재산을 말아 먹고 거지 신세가 되어 돌아 온 동생을 왜 집안에 들이냐는 시비였다. 그 때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난 큰 아들에게 이렇게 설득하였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5:32)

 

우리는 여기서 돌아 온 아들을 용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일컫는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 그러면 아버지가 언제 둘째 아들을 용서하였는가. 저가 회개(悔改)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을 찾아 되돌아 왔을 때에 용서(容恕)하고 용납(容納)한 것이다. 둘째 아들의 회개는 이미 타국의 돼지우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15:18-19)하는 심경의 큰 변화가 있었다. 그 후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조국으로 돌아갔고 아버지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먼 거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알아보고 측은히 여기며 달려 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 때 아들은 아버지께 이런 고백을 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15:21)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서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타국에서 돼지 치는 신세가 된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 된 삶을 뉘우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난 그 때에도 자신의 죄의 문제를 시인하였다. 그는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하는 고백을 하였다.

 

역사 속의 일본은 하늘과 이웃 나라에 용서 받기 쉽지 않은 죄를 범한 민족이다. 해방 이후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어떤 국면으로 전개되어 갈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5,000년 전 쯤에는 한반도와 일본이 하나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한반도의 동쪽에는 바다 같이 넓은 거대한 호수가 있었고 지각 변동에 의해서 현재의 일본 열도가 분리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중국 본토와 한반도의 사이에는 긴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각 변동에 의해서 지금의 서해가 형성되었다. 그를 입증하는 것은 서해 바다의 평균 수심이 35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세계의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민족이든 일본에 대하여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국민적 감정을 가진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지면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인해서 역사적으로 겪은 피해와 쓰라린 아픔과 고난의 경험들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세월만 흘러 갈 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저들이 진정으로 역사의 범죄와 과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자신이 범한 죄를 시인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너그러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의 일본 아베 정권은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의 불손한 정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급기야는 한일간의 경제적인 갈등이 점점 골 깊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때에 93세의 나이로 한국을 방문 중인 일한친선선교협력회의 회장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는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드립니다. 부디 일본인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사죄가 없는 곳에 화해는 없습니다.”라는 말도 이어갔다.

 

저들 일행은 제암리교회를 방문하여 한국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들의 뒤에는 한글로 쓰인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런 마음가짐이 주어지길 바라는 것은 너무 감상적인 마음일까. 요즘의 일본의 극단적인 정치 행보가 변해서

 

언제나 사이좋은 이웃사촌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가시덤불처럼 뒤엉켜 가고 있다 해도 그런 평화와 화해의 날을 꿈꾸어 본다. 이웃집과 사이가 영 서먹하면 한 집이 멀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살 수도 있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지리적, 경제적인 관계는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니 이를 어찌할까...서로 물고 찢고 싸우면 한 쪽만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닐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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