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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그 현장에 내가 있었더라면.......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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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2-16 19:12 조회 7,165 댓글 0
 

그 날의 그 현장에 내가 있었더라면.......

 

 

다른 나라들도 대개 그러하지만 역사의 사건을 날짜로 기록하여 기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역사로 하면 “3.1, 4.19, 5.16, 6.25, 7.17, 8.15” 등의 숫자가 그러하다.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나면 3.1절이다. 국경일인 3.1절은 100년 전인 191931일에 일어났던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1910년에 일본은 강압적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하고 식민 정치를 시작하였다. 일본은 온갖 탄압과 착취를 일삼았고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별의 별 굴욕과 고통을 다 겪게 되었다. 일본의 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내에서는 지식인과 종교인을 비롯하여 학생들과 농민들과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온 백성들 가운데 반일 감정이 점점 더 극심해져갔다. 마침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재위 1913-1921)민족 자결주의원칙을 발표하였다.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미국 의회에서는 14개조 원칙을 발표하였다. 그 요지는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투사들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었다.

 

1919121일에 68세를 일기로 덕수궁에서 눈을 감은 고종의 죽음에 대하여 세간에서는 일본인에 의해서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그 당시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유학생들은 191928일에 독립 선언서와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국내에서는 31일에 태화관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 날 같은 시간에 탑골 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날의 독립 만세 시위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소식을 전해들은 중국 동북 지방과 하와이 등지에서도 독립 운동에 가세하였다.

 

독립만세 운동은 31일에 시작해서 그 해 5월까지 1500여 회에 걸쳐 400만 명 이상이 참여 하였다. 전국 218개 군 중에서 211개 군민들이 참여 하였다. 이중 숨진 이는 7,500여 명실종자가 15,000여 명부상자 16,000여 명이다. 검거된 이들만도 47,000여 명이다. 그 때 희생당한 이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18살의 어린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둔 유관순(1902-1920) 열사이다. 그녀의 친인척 일곱 명이 독립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숨졌다. 그녀의 부모인 유중권과 이소제는 191941, 충남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앞장섰다가 일본 헌병에 의해 총살당하였다.

 

1919415, 일본 군인들은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감리교회로 불러 모은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총살하였다. 이는 1919331, 발안 장터에서 있었던 독립 만세운동 후 계속되는 시위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 현장에서 민간인 29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일본군대는 마을의 민가 31채를 불질렀다. 온 마을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다음 날 참변 소식을 전해들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영사관 직원 일행이 서울을 출발하여 현장에 도착하였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생존자들은 겁에 질린 채 언덕 옆에 모여 있었다. 살해된 시체가 불에 탄 예배당 안팎에 널려 있었고 온 마을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그 다음 날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영국인 선교사 스코필드가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생생한 참상을 일일이 사진에 담았고 생존해 있던 목격자의 증언을 수록한 수원에서의 잔악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미국으로 보냈다. 이로 인하여 일제의 만행이 세계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즈음에서 우리 각 사람은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여야 할 것이다.

 

그 날의 그 현장에 내가 있었더라면....”

 

이라고 말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그 중의 9명이 감리교인이었다. 그 당시 2000만 인구 중에서 천도교 신자가 200만 명, 유교와 불교는 300만 명 이상이었지만 기독교인은 35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 2%에 불과했다. 그러나 독립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된 이는 기독교인이 가장 많았다. 기독교 2,039, 천도교 1,063, 유교 55, 불교 41명으로 60%가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 비밀 문건 속에는 "저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조선의 교회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역사란 산자와 죽은 자가 뒤 섞여서 더불어 써 내려 가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기간에 징용 당하여 끌려간 이 땅의 수많은 아들들의 고통과 전쟁의 성() 노예로 끌려가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처참한 취급을 받았던 어리고 젊은 딸들의 슬픔과 분노가 치밀게 하는 비운의 역사를 우리는 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정중한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또 새해를 맞이하였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E. H. (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그의 책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정의하였다. 그렇다. 역사란 그 역사의 현장에서 비겁하게 반응했던 수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이론처럼 용감하게 응전했던 창조적인 소수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실의 기록이다.

 

고종은 19077, 일본에 의해 강제로 왕위에서 퇴위되었다. 고종이 퇴위된 직접적인 원인은 헤이그 밀사 사건이었다. 고종은 1907420,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李儁),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 3명의 밀사를 파견하였다.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침략상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이 비밀외교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고 고종은 일본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고종은 즉위 초에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나마 친정을 시작한 후로는 명성 왕후의 친족인 민씨의 전횡 속에서 자신의 정치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세계열강들의 이권 다툼의 와중에서 조선의 주권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일본의 불법적인 침략 행위를 세상에 알리려고 힘쓰는 등 조선의 자주 독립을 지키기 위해 발분(發憤)한 점은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3.1 운동은 일본의 잔인한 진압을 견뎌 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굽히지 않는 우리나라 백성들의 자주 독립 의지를 세계 여러 나라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독립투사들은 조직적인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의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 상해 임시 정부는 독립 운동의 중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 통치 방법을 무단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바꾸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126:5)

 

오늘 날 우리는 지난 날 고난의 현장에서 희생적인 생을 살았던 위대한 선조들의 그 눈물과 땀과 피의 열매를 먹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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