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는 이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은 나사렛 마을의 노총각 요셉과 정혼하고 결혼을 기다리던 마리아의 태에 예수를 잉태하게 하셨다. 예수는 30살에 나사렛을 떠났고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 올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서 예수 위에 임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그 때에 예수는 성령에게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 예수는 광야에서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였다. 마귀는 예수를 세 가지로 시험하려 하였다. 예수는 그 모든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 시험의 내용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모두 네게 주리라는 것이었다.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 마귀는 예수에게서 떠나갔고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예수의 생애는 12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수 없는 기사와 이적과 천국 비유의 말씀으로 이어졌다. 한번은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가신 적이 있으셨다. 평소에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 표적을 본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 마침 유월절(踰越節)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광야의 배고픈 무리를 보신 예수께서는 제자 안드레가 데리고 온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표적을 보이셨다. 오천 명쯤 되는 무리가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둔 것만도 열두 바구니에 가득하였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체험한 무리들은 서로“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하였다. 예수를 임금 삼자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는 큰 무리를 떠나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날은 이미 저물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산 아래 갈릴리 호수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인 가버나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어두워 졌는데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 십 여리 쯤 가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다가오고 계셨다. 어둠 속에서 물 위를 걷는 물체를 보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것을 알고 기쁘게 배 위로 영접하여 맞이하였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호수 건너편인 가버나움에는 예수를 다시 만나 보기 원하는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때 저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반응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교훈해 주셨다.
이 날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과 생명의 물이라는 설명을 길게 해 주셨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6:53-54) 그리고 이어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는 이 말씀을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물으셨다. 그 즈음에 예수는 이미 열 두 제자들 중에 누가 예수를 불신하고 있고 누가 예수를 팔 것인지를 알고 계셨다. 그 날 이후로 예수를 따르던 이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는 예수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 때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신 질문이 이것이다. “너희도 가려느냐”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였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주의 사역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는 신앙 공동체에 새롭게 합류하는 이들도 있고 별의 별 사연으로 떠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귓가에 맴도는 주님의 말씀이 이것이다. “너희도 가려느냐”
살아가다 보면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뭐 이런 표현대로 말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신의 양떼와 삼촌의 양떼가 너무 많아 양을 치는 종들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자 결별을 선언하였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그 날 롯은 요단 지역을 바라다보면서 소알 땅 까지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곳을 택하여 동쪽으로 옮겨갔다.
인생살이는 오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의적인 능동이든 타의적인 피동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홍수 시대를 준비하며 방주를 건설한 노아는 그의 여덟 식구의 가족과 함께 방주 안으로 들어갔고 세상 사람들은 방주 밖에 남았다. 그 나중이 어떻게 되었는가. 여호와의 부르심을 체험한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와 함께 고향과 본토와 친척 집을 떠났고 그의 일가친척들은 여전히 그 곳에 머물러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다. 들에서 사냥을 마치고 돌아 온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집에 머물러 동생 야곱을 죽이려는 증오의 칼을 갈면서 긴 세월을 지냈고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받은 동생 야곱은 지팡이 하나를 들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거기서 장가들었다. 동생 요셉을 팔아 버린 열 명의 형제들은 도단성에서 양을 잡아 요셉의 옷을 찢어 거기에 피를 발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고 요셉이 들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아버지 야곱을 속였다. 그 때에 요셉은 빨가벗겨진 채로 결박되어 노예 신세가 된 채로 애굽의 노예 시장으로 팔리어 갔다. 그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머물 곳은 지리적인 이곳이냐 저곳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께서 물으신 질문은 진리(眞理)의 문제이다. “너희도 가려느냐”예수를 만났던 이들 중에 니고데모도 예수를 떠나갔고 부자 관원도 예수를 떠나갔다. 그러나 근심하며 떠나간 부자 관원은 되돌아오지 않았고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그 시간에 값비싼 몰약과 침향을 섞은 향품 33kg쯤 가지고 와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의 장례를 정성으로 모셨다.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제자 베드로는 없었다. 이미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가 숨어 버린 상태였다. 그랬던 베드로가 회개하고 되돌아와서 성령을 받은 초대 교회의 사도가 된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요 다시 부르신 부르심에 응답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은 오늘 날도 우리 각 사람에게 묻고 계시다.
“너희도 가려느냐.....”
비겁하게 회피하고 숨어 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세상에서 용감하게 진리의 편에 서는 그 한 사람이 그리운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진리의 발견은 제자들의 나중 순교처럼 생명이라도 바치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