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드리는 기도
크고 작은 사고나 사건 혹은 질병이나 재난을 겪어 보면 평상시의 하루라는 일상이 얼마나 값지고 귀하고 감사한 날들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오대양 육대주의 지구촌 전체로 하면 사고와 사건이 전혀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러나 이번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신종 바이러스 감염의 재난을 겪는 일은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는 코로나 19의 폐해가 어서 가라앉고 평온한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감염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형국에 이 사태가 얼마나 더 심각하게 번져 갈지 아직은 그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의료진과 보건 담당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가. 이미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그 유족들의 슬픔과 현재 확진된 상태에서 회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뿐 만 아니라 감염자의 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살아가다 보면 전쟁을 치르는 나라들과 테러와 살인과 강도로부터의 위험을 겪는 이들이 있다. 지진, 해일, 쓰나미, 태풍, 홍수, 폭우, 폭설, 가뭄, 기근을 비롯하여 메뚜기 재앙 등 별의별 재난을 다 만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피하기 어려운 질병 중의 하나가 각종 전염병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적지 않지만 특히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갈 때의 공포와 두려움을 상상하여 보라. 어찌 기도가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지난 2011년 10월에 독일과 캐나다의 공동 연구팀이 660여 년 만에 흑사병 병원균을 찾아냈다. 14세기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흑사병 병원균은 들쥐에 붙어사는 쥐벼룩에 의해 옮겨졌고 현재 유행하는 선(線)페스트 균과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당시에는 기후와 약한 면역력과 빈약한 영양 상태로 인해서 오늘 날에 비하여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내고 말았다.
흑사병이라고 말하는 페스트는 1347년에 무역선에 실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 처음 들어갔고 곧 유럽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균에 감염되면 환자의 몸이 검게 변하며 죽어가기 때문에 흑사병(黑死病)이라고도 불렀다. 그 당시에 오랜 기근으로 인한 영양실조는 신체 저항력을 감소시켜 페스트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 찾아온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서 활발한 무역 활동이 가능해졌고 발달한 도로망이 흑사병 확산을 도왔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들어선 도시의 뒷골목에 널려 있는 쓰레기와 오물은 병균을 옮기는 쥐가 살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페스트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며 유럽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고 1352년에는 러시아에까지 번져 갔다.
그 당시 이탈리아의 학자요 시인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 Petrarca, 1304-1374)가 남긴 1348년 5월의 편지를 보면 그때의 참상을 더욱 체감하게 한다.
형제여, 아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사방팔방이 온통 비탄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아니 이런 세상이 오기 전에 차라리 죽었어야 할 것을.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집과 폐허가 된 도시뿐.
사람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고,
들판은 너무 좁아 시체를 다 묻을 수도 없고,
온 세상은 정적으로 뒤덮여 두렵기만 하구나.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들이.
그 당시의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오는 징조라고도 생각했다. 유럽 인구의 30% 이상이 죽었다. 7,500여만 명 정도였던 유럽 인구 중에서 약 2,500여만 명이 흑사병으로 죽어갔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도시나 항구 및 시장에서는 사망률이 더 높았다. 인구가 줄어들자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일손이 부족해졌다.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이 썩어 가고 방치되었다. 어떤 지역은 수확기에 낫을 든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건비는 점점 치솟았다. 주인을 잃어버린 토지를 차지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일손이 부족해지자 방치된 토지가 늘어났고 곡물의 가격이 하늘로 치솟았다. 지주들은 호황을 누렸고 살아남은 사람들만 오히려 시대적인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혼인율이 증가하고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흑사병의 발원지는 중국이었다. 대륙인 중국의 그 당시 기후는 큰 기근이 들었다가 바로 이어 비가 많이 오면서 대홍수가 났다. 이 홍수는 중국인들 7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홍수가 범람하자 취수 시설이 황폐해 졌고 마을마다 마실 물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대 홍수는 주거 환경을 악화시켰고 쥐를 포함한 야생 동물들도 서식지를 잃고 말았다. 그러하다 보니 흑사병 병균을 옮기는 들쥐 떼가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찾아 들어왔고 결국은 사람들에게 흑사병을 감염시키고 말았다. 흑사병은 사회생활의 익숙하던 습관과 경제 활동은 물론이고 교육과 건축 및 각종 종교와 정신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성경, 역대하 6장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낙성하는 자리에서 솔로몬 임금이 드린 기도문이 실려 있다. “만일 이 땅에 전염병이 있거든....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모든 행위대로 값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대하6:28-30)
위 내용 중에는 전염병을 주제로 한 기도가 실려 있다. 아마 솔로몬 왕도 전염병의 두려움을 미리 알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전염병 앞에서는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다. 최근의 뉴스에 의하면 이란의 마수메 엡테카르 부통령도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중국 우한의 안과 의사였던 리원량(李文亮, 1986-2020)도 숨졌다. 그는 중국 내에서 최초로 코로나 19의 위험성을 동료 의사들과 공유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서 '불법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방역 일선에서 애쓰던 중에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솔로몬은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들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거나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들으시고 사유해 주십시오”(대하6:28-30)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기도하였다.
어려움이나 고난이나 질병 앞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특별히 재난이나 극심한 질병이나 사고나 사건을 겪을 때에 겸비한 마음가짐으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어느 날 밤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2-14)
주여. 간절히 비오니 중국과 열방과 특별히 대구와 경북을 비롯한 우리나라를 코로나 19의 위협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