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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십자가 201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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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5-17 01:05 조회 13,762 댓글 0
 
칼 십자가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는 매년 일천 명 정도의 육군 초급장교를 양성하는 곳이다. 그 중에 한국계 생도의 입학 비율은 매년 20여명 정도라고 한다. 실력과 체력과 지도력과 성품과 자질과 역량 등을 골고루 평가하여 우수한 장교 요원이 선발된다. 입학도 쉽지 않지만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임관하기 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뉴욕 맨하튼에서 한 시간 정도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웨스트포인트(west-point)지역에 강줄기를 중심으로 병풍처럼 아름다운 산세가 사방으로 둘려져 있는 한 가운데 조화롭게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림 같은 푸른 잔디 구장을 중심으로 미 육사가 배출한 장군들의 동상이 몇 개 한 눈에 들어온다. 신축 건물인 도서관 곁에는 제 1차 대전 때에 초급장교 신분으로 멕시코 내전에 참전하여 적의 장군을 사살한 전공으로부터 시작하여 제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프랑스와 독일 등을 파죽지세로 점령해 들어가며 독일 군 10만 명을 포로로 붙잡기 까지 하며 기갑부대의 장군으로 명성을 떨쳤던 패튼(George S. Patton, 1885-1945) 장군의 야전 지휘관의 모습이 세워져 있다.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1890-1969) 장군, 미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 장군의 말을 탄 동상과 6.25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의 대형 동상이 세워져 있다. 캠퍼스의 가장 높은 언덕 자락에 창문마다 스테인 글라스가 영감이 있고 중세풍의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건축된 예배당이 있다. 그 예배당의 높은 외벽 전면 중앙에 대리석 칼 십자가가 부조되어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진 형상의 양날 선 검 모양의 십자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열방 중에 전파 되어 왔다. 십자가는 처형의 나무틀이지만 그 나중 의미와 상징은 승리의 십자가가 되었다. 에베소서 6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주를 믿는 신자의 전신갑주 무장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다. 성령의 검이란 무엇일까. 바울은 성령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 칼 십자가 양편에는 헬라 말로 알파와 오메가란 단어가 새겨져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시작과 끝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창조의 근본이시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이시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인용한 검은 양날 선 검이다. 고대와 중세의 무사들은 양날 선 검을 갖고 싸웠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싸움이며 전쟁이다. 주를 믿는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칼 십자가로 불의를 물리치고 선한 칼 십자가로 악을 대적하며 신실한 칼 십자가를 굳게 붙잡고 거짓을 이기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 정신이다. 이는 칼 십자가를 설계한 건축설계가의 신앙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육해공군사관학교는 임관하기 하루 전날이라도 불의한 사실이 드러나면 퇴교시키는 엄격한 규율을 지켜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정직의 강조는 물론 모든 분야가 다 그러하여야 하지만 말이다. 육해공군 서로가 그러하겠으나 웨스트포인트는 해군을 능가하는 육군”(ARMY BEAT NAVY), “해군을 능가하고 공군을 능가하자.”(BEAT NAVY, BEAT AIR FORCE)는 대형 구호를 잔디 구장과 대형 풋볼 구장의 한편에 새겨 넣었다. 저들은 운동 경기 하나를 해도 이겨야 하고 매사에 그 무엇을 하든지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승리 의식이 대단하였다. 이는 해군도 공군도 물론 서로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무엘 하 8장에 보면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할하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된 후에 사울 때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여호와의 법궤를 다윗 성에 되 모셔 오는 거룩한 일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다윗은 성막 속에 모셔져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잘 지은 성전 안에 모시고 싶다는 소원을 나단 선지자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나단과 다윗의 그러한 대화를 들으시고 그 밤에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의 장래에 대하여 크나큰 축복의 약속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그 후로 다윗의 치적을 매우 안정되게 이끌어 가셨다. 사무엘하 812절에 보면 다윗은 아람, 모압, 암몬, 블레셋, 아말렉을 대적하는 전쟁을 모두 다 이겼고 소바의 왕 하닷에셀에게서 빼앗은 것처럼 엄청난 전리품을 확보하여 그 놋과 은과 금을 모두 다 모아서 하나님 앞에 드렸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는 중에 다윗의 이름은 이스라엘 안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 열강 가운데 점점 유명한 이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계속하여 이기게 해 주셨다.(삼하8:6,14) 다윗 시대에 다윗의 칼을 이길 수 있는 열강은 없었다. 그 강성하던 블레셋이나 아말렉 조차도 다윗의 칼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였다. 그러하다 보니 나라들 마다 조공을 싸 들고 다윗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성경은 그와 같은 다윗 시대의 역사를 다윗의 전술이나 통치능력이나 외교 수완이 탁월해서라고 평가하지 않고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The LORD gave David victory wherever he went.)고 하였다. 미국의 제 34대 대통령(재위, 1953-1961)을 지낸 아이젠하워는 독일에서 미국에 이민한 경건한 개신교 가정의 아들로 택사스에서 태어났고 캔사스에서 자라났다. 그의 부모는 당시에 대단한 부흥 운동의 중심에 서서 쓰임을 받던 영감이 넘치는 설교자 드와이트 무디(Dwight Lyman Moody,1837-1899)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의 이름을 합하여 아들의 이름을 드와이트 다윗 아이젠하워라고 지었다. 그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총지휘하는 유럽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퇴역 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총장도 지냈다. 6.25 한국전이 발발하자 대통령 트르먼은 그를 다시 현역으로 임명하여 한국전에 참전케 하였다. 당시 트르먼 대통령은 만주를 공격하는 등 지나치게 공세적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그를 한국전에 참전한 주한 미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그 다음 해인 1953년에 한국전을 휴전으로 마무리하는데 외교적인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발전되어 가는 것에 대하여도 매우 큰 관심을 보였던 한국을 사랑한 대통령이었다, 요즘처럼 성경의 진리가 왜곡되고 이단과 사이비가 독버섯처럼 고개를 드는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각 분야에서 칼 십자가를 품에 안고 정의가 강같이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시대를 지켜 가야 할 것이다.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필라델피아는 일제 때에 서재필(1864-1951)박사가 정착하여 의료 활동과 조국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던 곳이다. 오늘 날까지도 그가 활동한 역량이 남아 있다. 미주 한인 사회는 올해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우표도 발간하고 각종 기념행사도 다양하게 치루고 있다. 서재필은 고종 1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그는 정변에 실패하자 동료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다가 홀로 미국에 망명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그는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기독청년회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꿈을 키웠다. 지금의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전신인 곳에서 공부하고 의사 고시에 합격한 한인 최초의 의사이다. 1895년에 박영효의 권유를 받아들여 귀국한 그는 다음해에 한글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배재학당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이상재, 남궁억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러시아 등의 외침으로부터 국가를 지켜 나가려는 애국 운동의 중심에 섰던 하나님의 사람이요 가슴에 칼 십자가를 품었던 정의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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