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證人)의 증언(證言)(행5:27-32) 2025. 4. 27
증인은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육하원칙으로 증언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증언은 본대로 들은대로 알고 있는 만큼 기억을 되살려서 진실하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언제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원칙에 따라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증언이다. 때때로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그 무엇인가를 증언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미칠 불이익이나 위협당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용기와 담력이 필요하다. 그 불이익이나 위협이란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배우자 혹은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을 향한 것일 수도 있다. 자손에게까지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때로는 감금되기도 하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의 증언이란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 받은 제자들의 나날이 그러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던 그 날, 그렇게 비겁하게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하고 숨어 지내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저들이 달라졌다. 저들이 변했다. 저들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예수 부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가롯 유다 외의 열 한 제자가 그랬다. 빈자리에 충원된 맛디아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초대 교회 부활 복음 전파의 증인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 각종 기사와 표적이 이어지게 하셨다. 예수의 부활 복음을 믿고 따르는 무리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 때처럼 각색 병자들을 사도들의 곁으로 데리고 왔다. 심지어는 베드로 사도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라도 병자에게 비치어지면 낳으리라는 기대와 열망이 가득해졌다. 예루살렘 주변의 수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귀신이 떠나가고 새 삶을 살게되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의 기사와 이적이 그대로 재현되는 현장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싫어하고 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제사장들과 그와 함께 하는 사두개인의 당파였다. 그들의 마음에 ‘시기’(猜忌)가 가득하였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사도행전 5장 17절의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의 당파란 공회원 즉 산헤드린을 말한다. 저들이 앞장서서 결의하고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고 간 당파이다. ‘당파’란 ‘하이레시스’는 ‘편을 가르는 자’란 의미의 모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부흥하고 믿는 자의 수를 점점 더해 가자 이러한 부활 복음의 확장을 싫어하고 시기하는 세력이 있었다. 사도행전 4장 2절에 보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라고 했다.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질문해 보자. 이러한 반응이 주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정반대로 행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이 좋아하는 편에 선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교회는 점점 믿는 자가 늘어났다. 기사와 표적이 여기 저기서 일어났다.
대제사장이 앞 장선 사두개 당파는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서 그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5:20)라고 권면하였다. 주의 사자 즉 천사를 통한 이러한 명령은 곧 주님의 명령인 것이다. 이와 같은 복음 전파의 명령은 그 당시나 오늘 날이나 변함이 없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은 예수 부활 복음의 증인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라.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앞장서서 공회원들 앞에 사도들을 가두었던 감옥에서 끌어내다가 세웠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나서서 위협하였다.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는데 너희는 왜 우리의 명령을 듣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이 내용은 이미 사도들을 옥에 가둔 적이 있던 사도행전 4장의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공회는 베드로 사도가 성전 미문 앞에서 걷지 못하며 구걸하던 사람을 고친 후에 예수 이름으로 복음 전파하는 것을 금지시키려 하였다.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행4:17)라고 위협하고 경고하였었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라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태도는 분명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에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는 증언(證言)을 하였다. 이것이 성도의 사명이다. 이것이 복음 전파자의 태도이다. 증인의 증언이란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복음 전파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고하자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두려움과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는 고작 더 이상 예수 이름을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풀어 놓아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저들 사도를 계속하여 사용하셨다.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 전파의 힘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그러던 중에 사도행전 5장의 앞 부분에 나오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 거짓된 재산 헌신과 죽음에 이르는 심판 사건 말이다. 초대 교회는 점점 소문이 퍼져 나갔고 이 소문을 듣는 이들은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 교회는 점점 부흥해 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핍박과 방해는 점점 극렬해져만 갔다. 사도들은 다시 붙잡혔고 다시 옥에 갇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해서 옥문을 여시고 사도들을 한 밤중에 감옥 밖으로 풀어 내셨다. 사도행전 5장 21절에 보니까 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이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무리를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가 새벽같이 일어나 예배당에 모여서 사순절을 보내고 기도를 계속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성령이 함께 하시고 천사를 동원하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인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백성 중의 모든 병과 보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라고 하였다. 신학교에 들어가니까 첫 학기 어느 시간에 교수님이 이 본문을 찾아 읽게 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삼대 사역을 정리해 주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다”라는 ‘교육, 선포, 치유’의 삼대 사역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 주었다.
teaching
preaching
healing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의 삼대 축이며 사도들이 준행하던 바이다. 또한 오늘 날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져 가야 하는 사명인 것이다. 배우고 가르치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주님의 기대요 분부요 명령이요 사명인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그 앞에 18절부터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복음 전파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개인과 공동체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라.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싫어하고 시기하고 위협하는 인간의 반대 세력 앞에 우리의 마음이 위축되면 안된다.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또 전파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 복음을 가르치지 말고 전파하지 말라는 대제사장과 공회원의 위협 앞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결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저들은 담대하게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사람 눈치를 보고 사람 비위 맞추며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새끼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담대해야 한다. 인간은 작당하고 음모를 꾸며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예수를 무덤에서 살려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예수를 나의 임금 삼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야 한다. 주님만을 높이며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일상이어야 한다.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88장 찬송가의 가사가 그런 고백이 아닌가.
신앙 생활이란 사람에게 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으로 사는 길이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라고 찬양하지 않나.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찰스 쉘돈의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 제목처럼 이와 같은 질문 앞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쪽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쪽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하게 하시며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누리고 증거하게 하실 것이다.
서울 연회가 지난 목, 금요일 이틀간 열렸다. 올해는 1885년에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스크랜턴 모자의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Mary Fitch Scranton, 1832 - 1909)은 누구인가. 미감리교회 한국 최초의 여선교사. 아들 윌리엄 스크랜톤 박사의 어머니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벨처타운에서 감리교 목사인 벤톤(E. Venton)의 큰 딸이다. 대학을 마치고 스크랜톤과 결혼하였으나 40세에 홀로 되었다. 52살 때인 1884년 10월 한국선교사로 지원한 후 1885년 2얼 27일 일본을 경유하여 6월 20일 서울에 왔다. 메리 스크랜턴은 서울 정동에 자리를 잡은 후 이화학당 설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가부장적 가치관이라는 전통과 인습의 굴레 속에서 양반집 아녀자가 아니면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렇듯 여성 교육을 기피하는 사회풍조에 서양인에 대한 배타적 심리가 더해져 설립 초기 학생 유치에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데 1886년 5월 31일, 한 관리의 소실인 김 부인이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관이 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왔다. 이로써 단 1명의 여학생으로 역사적인 첫 영어수업이 이루어졌다. 이 날이 이화학당의 창립일이다. 1887년 학생수가 7명으로 늘어났다. 과목도 성경과 국어가 추가되었다. 11월에는 200평 규모 기와집 학교 건물을 건축했다. 그리고 명성황후로부터 ‘배꽃같이 순결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는 뜻의 ‘梨花’라는 친필의 교명을 받았다.
의사인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1856~ 1922)은 1878년, 22살에 예일대학 졸업하고 4년 후에 뉴욕의과대학 졸업하였다. 크리브렌드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잘 자리 잡았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모두 미국 감리교의 목사였다. 정동에 시병원을 운영하며, 정동 밖의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를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 계획을 세우고, 애오개와 남대문 안에 시약소 문을 열었다. 동대문 안에도 시약소를 열고자 하였다. 그는 동대문에 의료사업과 복음 전도를 위해 1889년 대지와 가옥을 구입했지만 사업이 지체되어 1892년에야 비로소 동대문 집회를 시작하였다. 이즈음 미국의 볼드윈(L. B. Baldwin) 부인이 보내온 선교비로 시약소와 예배당 건물이 지어졌다. 볼드윈 시약소(Baldwin Dispensary), 볼드윈 예배당(Baldwin Chapel)이라 불렀다. 그 해 성탄절에는 볼드윈 예배당에서 성인 남자 1명과 소년 6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성찬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볼드윈 시약소는 여선교부에서 운영하였고, 여성 병원의 구심점이 되었다. 7년 후에는 정동의 보구여관(普救女館)과 통합하여 동대문병원으로 승격하였다. 1912년 현대식 건물을 마련하면서‘동대문부인병원’으로 발전했다. ‘릴리안 해리스기념병원(Lillian Harris Memorial Hospital)’으로 불렸다. 이 병원은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병원으로 발전했다. 오늘 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과 병원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볼드윈 예배당에서는 남녀가 같은 예배실을 사용하였는데, 주일예배에서 남녀가 동석한 것은 한국교회에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스크랜턴 대부인(M. F. Scranton)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이로 만든 칸막이를 방 가운데 길게 세워놓고 한쪽에는 남자, 다른 한쪽에는 여자가 앉도록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들은 각기 다른 출입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설교자는 함께 볼 수 있지만 남녀가 서로를 쳐다볼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서양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는 놀라 달아나는 여성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이 방법은 성공적으로 보입니다.”동대문교회, 상동교회, 아현 교회가 스크랜턴 선교사에 의해 탄생하였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한 시대 역사에 큰 증거가 열매 맺게 된다.
성령을 따르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부르심과 그의 뜻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 32절을 보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쥔 성령도 그러하니라”라고 증언하였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의 임재를 바람과 같은 성령, 불의 혀 같은 성령이라고 하였다. 바람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불어 가는가. 솔솔 부는 바람도 있지만 태풍과 같고 토네이도와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닌 바람도 있다. 성령의 역사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큰 힘이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가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과 시대를 깨우는 것이다. 불도 그렇다. 작은 불이 산을 태운다. 불은 태우는 힘이 있다. 불과 강은 성령이 내 마음에 임하시면 내 속의 죄와 악을 소멸하신다. 새 사람이 되게 하신다. 회개하고 변화 받고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거듭나게 하신다.
인사동에 가면 숭동 교회가 있다. 깡패 출신으로 변화 받고 평양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목사가 된 김익두 목사가 숭동 교회의 담임 목사였다. 하나님은 그 어떤 누구라도 성령으로 감화하셔서 새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신다. 비겁하게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가서 숨어 지내던 베드로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담대해졌는가. 성령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 받으면 달라진다. 성령 받으면 변화된다. 성령이 대답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님과 동행하여야 한다. 매사에 범사에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성령 안에서 판단하고 성령 안에서 결정하고 성령님과 더불어 생활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이렇게 찬양하지 않나. 그렇다. 성령이 대답이다.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찾아오셔야 한다. 성령이 임재하셔야 한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꼬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다. 내가 은혜를 받고, 내가 성령 받고 내가 말씀을 깨닫고 내가 변화되고 내가 달라지면 주변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것이다. 내가 문제이고 내게 대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 받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성령 받고 은혜가 임하면 삶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