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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그 때에(사35:1-10)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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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9-08 19:56 조회 142 댓글 0
 

                             그 때에(사35:1-10)               2024. 9. 8

 

 

사람들은 누구나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길 원한다. 지금보다는 나중이 더 좋아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부유해지고 더 행복해 지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맞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이다. 하나님은 자녀된 성도들이 주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신다. 회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고 범죄하고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평안하고 복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으로 인간의 역사에 불행이 찾아 들어 왔다. 

 

이 땅에 예수께서 계신 동안에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각 사람을 좋게 해 주셨다. 각색 병자를 그 병으로부터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 못 걷던 자가 걷게 해 주셨다.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던 자가 말하고 듣게 해 주셨다. 보지 못하던 이가 두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손이 마른 자가 손이 펴지게 해 주셨다. 한센병으로 격리되어 외롭고 불행하게 지내던 이들을 고쳐서 깨끗하게 해 주셨다. 귀신 들려 불행한 나날을 지내던 이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주셨다. 새 삶을 선물해 주셨다. 벳세다 광야의 배 고픈 무리들에게 배 불리 먹게 해 주셨다. 어린아이가 들고 나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만도 오천 명이 먹게 해 주셨다. 이만 여명이 먹은 것이다. 먹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가 되게 해 주셨다. 배불리 먹고도 남게 해 주신 것이다. 바람과 파도라도 고요하게 잔잔하게 다스려 주셨다. 

 

이사야 35장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축복과 영원한 상급에 대하여 그림처럼 아름답게 묘사해 주고 있다. 1-2절을 보라.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황무지에도 꽃이 필 것이다. 사막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 산처럼 푸르고 갈멜과 사론의 목장처럼 아름다울 것이며 모든 사람이 여호와의 영광과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이처럼 죄와 악이 가득하고 고단하고 피곤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소망과 기대 가운데서 어떤 자세,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나. 3-4절을 보라.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라

겁내지 말고 굳세어라

두려워 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오셔서 보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오셔서 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때마다 일마다 역사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각 사람의 생로병사를 다스리신다. 인간의 흥망성쇠가 주의 손 안에 있다. 전도서 3장의 말씀처럼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전3:1)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전3:4)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에 보면,  5, 6절에 ‘그 때에’, 8 ,9절에 ‘거기에’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 시간과 공간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이사야 35장은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 사역과 장차 재림 주로 완성하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주 안에서 총체적으로 누릴 완전한 구원과 회복과 환희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예수 앞에 나오면> 187장 찬송가를 보라. 

 

예수 앞에 나오면 죄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면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라고 찬송하고 있다. 그렇다. 성도의 삶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다. 오늘 본문을 좀 더 자세힘 묵상하자.

 

 

이어지는 기적의 현장.

5-6절을 읽다가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려서 장차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 때가 되니 맹인의 눈이 밝아졌다. 못 듣던 이의 귀가 열려졌다. 제대로 못 걷던 자가 사슴같이 뛰며 걷게 되었다. 말을 못하던 자가 노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신 일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기적들은 죄인된 인생들을 장차 온전한 구원의 세계로 인도하실 주님 완전한 구원의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렇지 않나.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죽은자도 살리셨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12살된 죽은 딸도 살리셨다. 예수님은 베다니의 죽은지 이미 나흘이나 된 나사로도 살리셨다. 이미 장사 지낸 무덤 앞에 가셔서 그를 불러 내셨다. 그러나 그들 모두 다 이 땅에서 살다가 언젠가는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다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살다가 주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어야 한다. 예수께서는“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기적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하나님은 기적의 근본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와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아브람과 사래에게 약속하셨다.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을 낳으리라. 그리고 일년 후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아내 사라의 나이 90세 때의 일이다. 하나님은 하시려는 일을 이루시는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은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결심하시면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백성들도 얼마든지 자유하게 해 주신다.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시니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광야로 이끌어 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간 날마다 만나로  배 불리 먹이셨다. 하나님은 광야 사십 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다.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로 마시도록 해 주셨다. 때가 되니 요단 강도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여리고 성도 전쟁하지 않고 이기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6절의 말씀 그대로 “광야에서 물이 솟게 하시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하나님은 쓸모 없이 황량한 땅도 얼마든지 기름지고 아름다운 땅으로 바꾸실 수 있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 생명의 주님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된 인간이 그 지은 죄로부터 용서 받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우물가에서 그 동안 다섯 남자와 살다가 헤어지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나서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수가 성 여인을 만나셨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을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요한 계시록 21장 6절에 보면 예수는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주님”이시라고 하셨다. 

 

지금 답답한 날들을 지내고 있나. 요즘 먹먹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나. 낙망하지 말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때마다 일마다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시다. 그렇지 않나. 성령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다. 하루는 오후 3시인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다. 성전 입구의 미문 앞에는 나면서 걸어 본 적이 없는 사십 살 된 걸인이 구걸하고 있었다. 날마다 사람들이 그를 메어다가 그곳에 두었다. 그는 늘 그 곳에서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였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뭐를 좀 도와 달라고 구걸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우리를 보라” 그리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하며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순간에는 그는 발과 발 목에 힘이 생겼다. 뛰어 서서 걷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라고 우리도 찬송하지 않나. 맞다.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다. 사십 년 동안 못 걷던 인생이라도 걷고 뛰게 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이시다. 요즘 포로 생활 150년 만에 느헤미야를 앞장 세우신 하나님께서 폐허로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곽을 중건하는 장면을 묵상하고 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다. 이번 가을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런 응답의 계절이 되길 바란다. 

 

 

좋게 변하는 삶의 현장.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그런 비유가 있지 않나.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아비가 있겠느냐.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아비가 있겠느냐.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 좋은 것이란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맞다. 하나님은 택하신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 성령은 좋은 영이다. 성령은 도움의 영이다. 성령은 유익하게 하는 영이다. 성령은 가르치는 영이다. 성령은 생각나게 하는 영이다. 성령은 각양 좋은 은사를 공급해 주시는 영이시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는 것을 성령은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전능하신 영이시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시다. 좋으신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모든 것을 주 안에서 좋게 하신다. 복되게 하신다. 은혜롭게 하신다. 6-8절을 다시 보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물이 솟게 하신다.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게 하신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신다.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되게 하신다. 

승냥이가 눞던 황량한 땅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무성하게 하신다.

거기에 대로가 놓이게 하신다. 

 

본문을 읽다가 보면 점층적으로 점점 좋아시고 점점 은혜로워지는 것을 알수 있다. 맞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좋으신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을 은혜롭게 바꾸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7절의 “뜨거운 사막”이란 ‘빛나는 모래’라는 뜻인데 이는 신기루를 말한다. 생각해 보라. 신기루를 찾아 나섰다가 잘 된 이가 있는가. 없다. 인생은 신기루를 따라가서는 않된다. 헛된 것을 쫓아가다가는 자기도 죽고 함께 하는 자들도 다 죽고 만다. 하나님은 그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지키시고 도우시며 은혜와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다. 

 

정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하지 않나. 좋은 것으로 양육하고 복되고 잘 되기를 소원하지 않나.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이 변하여 마실 만한 단 물이 되게 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가나안의 복락을 누리길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은 약속하셨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28:1-10)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행하길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택한 민족에게 복 주시고 은혜 주시고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지금, 요즘 그 어떤 고난과 역경과 환난과 질병과 곤고함 가운데 갇혀서 답답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낙망하지 말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이런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고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구속(救贖)함을 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기쁨.

8, 9 ,10절에 보면 “구속”(救贖)이란 단어를 두 번, “속량”(贖良)이란 단어를 한번 사용하였다.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이룩하신 죄 사함의 은총이 곧 구속이며 속량이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서 선조의 땅에 돌아가게 된 것이 속량이며 구속이다. 출애굽기 6장에 보면 ‘속량’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출6:6-7)라고 하셨다. 

 

8절에 보면 구속 받는 길, 속량을 받는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고 하였다. 그 길은 대로라고 하였다. 그 거룩한 길은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우매한 자도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거룩한 길에는 사자도 없고 사나운 짐승도 없으리라고 하셨다. 그 거룩한 길은 오직 속량 받은 자, 구속 받은 자를 위한 길이라고 하셨다.

 

그 거룩한 길을 걷게 될 구속받은 성도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송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의 머리에는 영영(永永)한 희락을 띠게 되리라고 하셨다. 희락이 무엇인가. 성령의 열매가 아닌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였다. 희락이란 기쁘고 즐거운 것을 말한다.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주께 영광 할렐루야 주만 찬양해”

 

 

라고 찬양하게 해 주실 것이다. 이 세상에 영영한 희락, 영원한 기쁨이 있는가. 없다. 그 어떤 권력가도 그 어떤 재벌도 그 어떤 명예를 누리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일지라도 영영한 희락 영원한 기쁨이란 이 세상에 없다. 하늘을 날아 가는 새를 떨어 트릴 정도의 권세라도 영원하지 않다. 기쁨과 즐거움은 권력과 비레하는 것이 아니다. 돈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돈 많다고 기쁘고 재물이 많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다. 물론 재물이 많으면 편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풍요롭게 먹고 마시고 호화롭게 입고 걸치는 것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기쁨과 즐거움, 행복과 평안은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내 평생에 가는 길>이란 413장 찬송을 부른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는 이 찬송가의 가사를 쓴 호레이쇼 스패포드(H. G. Spafford, 1828-1888)에 대하여 수 없이 들었다. 그는 1860년대에 시카고의 법률회사 인 로오펌의 대표였다. 린드 대학교와 시카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였다. 노스웨스트 장로교신학교 이사요 운영위원이었다. 그와 그의 아내 안나 스패포드는 세계적 전도자인 목회자 무디와 절친한 친구였다. 무디 교회의 회계 집사와 주일학교 교사로도 섬겼다. 그는 43세 되던 1871년에 시카고 북쪽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그해 대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 전 해에는 급성 전염성 피부질환으로 첫째 아들을 잃었다. 그들 부부는 심신이 지치고 상심해 있었다. 그는 아내와 네 딸과 영국 등 유럽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때마침 유럽에서 복음전도사역을 전개하고 있던 무디의 전도집회도 돕고 싶었다. 

 

​1873년 11월 15일, 스패포드의 아내와 네 딸을 비롯해 많은 승객을 태운 프랑스 여객선 빌르 드 아브로는 뉴욕항을 출발하였다. 하지만 출항 몇 분 전에 스패포드는 사업 때문에 급하게 배에서 내려야만 했다. 며칠 후의 다음 출항으로 나중에 합류하기로 기약하였다. 아내와 네 딸들을 태운 배는 순항하였다. 그런데 모두들 깊은 잠이 든 11월 22일 새벽 2시경에 그 배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영국 철갑선 라키먼호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배는 226명의 생명을 안고 칠흑 같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226명 중에는 스패포드의 네 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내만 물 위로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9일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웨일즈와 카디프에 도착한 스패포드의 부인은 짧막한 전문을 남편에게 보냈다. 

 

‘Saved Alone’

(나만 홀로 살아 남았음)

 

네 딸을 모두 잃고 아연실색해 있을 아내에게 어서 달려 가고 싶었다. 그가 탄 배가 사고 해역을 지나갈 즈음에 선장에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스패포드는 그날 밤 깜깜한 밤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슬픔과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배의 숙소에 들어가서 밤을 새워 흐느껴 울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에게는 알 수 없는 평안함이 마음을 감쌌다. 그리고 입술로 고백하였다.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God's will be done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날을 밝았고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흐느끼며 뒤척이며 울며 통곡하며 고통 속에 헤메이던 그의 마음에 하늘의 평안이 찾아 들었다. 그는 주님이 주신 영감을 글로 써 내려 갔다.  오늘 날 우리가 부르는 413장의 가사는 그렇게 세상에 탄생하였다. 아내와 함께 슬픔 마음을 다스리며 미국 시카고로 돌아간 스패포드는 같은 교회의 음악 사역자였던 필립 블리스에게 쪽지를 건네었고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이 만들어졌다. 

 

하나님 아버지는 택한 백성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위로의 아버지이시다. 통곡하며 애통하는 슬픈 세상에서 친구가 되어 주신다.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고 우리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신다. 나사로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시던 주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의 희노애락에 함께 하신다. 주 안에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내 마음 속에 풍성하게 깃드는 은혜의 날이 영영히 계속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다 같이 413장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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