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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그러므로 너희는(골3:12-17) 20211226 송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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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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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2-27 18:45 조회 484 댓글 0
 

                     그러므로 너희는(골3:12-17)             2021. 12. 26 송년주일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모든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갈아 입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8절에서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고 하였다. 무엇을 벗어 버리라는 말인가.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입의 부끄러운 말, 거짓 말”을 벗어 버리라고 했다. 5절에 보면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우상 숭배”를 땅에 속한 지체로 여겨 죽이라고 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경고하였다. 그리고나서 오늘 본문으로 읽은 12절에서는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 새 옷이란 “긍휼, 지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이다. 

 

“왜 이 다섯 가지 옷일까?” 하고 질문하게 된다. 동서양의 문명의 발달은 다양한 의복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가령 남성들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혁대를 매고 검정색 구두를 신기까지의 오늘날의 정장 문화가 하루 이틀에 자리 잡히게 된 것은 아니다. 남들이 다 양복을 입은 자리에 나만 청바지에 스웨터를 걸치고 가면 왠지 결례를 한 것 같고 지나치게 남의 눈에 띄게 되고 말 것이다.

 

옷이라는 것이 남들 보기 좋으라고 입는 것은 아니라지만 말이다. 사도 바울은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은 신앙생활에 견주어서 교훈해 주었다. 

 

바울 사도가 언급한 다섯 가지의 옷은 무엇인가.

 

첫째, 긍휼이다.

둘째, 자비다.

셋째, 겸손이다.

넷째, 온유다.

다섯째, 오래 참음이다.

 

긍휼(矜恤)이란 “고난에 처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너그러운 마음”이다.

자비(慈悲)란 “부드럽고 친절한 성품”을 말한다.

겸손(謙遜)이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낯추는 모습”을 말한다.

온유(溫柔)란 “회개하는 마음을 통한 부드러운 마음 상태”를 말한다.

오래참음 즉 인내(忍耐)란 “앙갚음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오래도록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성도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위의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자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사랑으로 서로 용납(容納)하고 용서(容恕)하라.

사랑이 머리 속에서만 맴돌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손 끝의 사랑, 발끝의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랑이 행동으로 실천될 때에라야만 사랑이 사랑다워지는 것이다. 종이 울릴 때 종인 것처럼 사랑은 행동으로 옮겨질때에 사랑인 것이다. 예수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 나온 여인에게 돌을 치켜든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저들은 한 사람씩 치켜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그 현장을 떠나 갔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정의를 잘 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힘든 것은 그 아는 것을 생활 속에 실천하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어떤가. 사랑의 극치가 용서라면 용서가 쉽나. 누구와 원수 맺은 적이 있나. 누가 내 속을 빡빡 긁어내릴 때에 용서가 쉽나. 누가 나를 원인 모르게 비난하고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면 내 마음이 어떤가. 누가 나를 이유도 모르게 미워하고 못마땅해 하고 대적하면 그런 상대 방에 대하여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어디 쉽나. 누가는 나를 왕따 시키면 그 상대 방에 대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나. 우리가 일상 생활 중에 누군가를 용서하며 용납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을 때”용납하고 용서하는 일이 쉽난 말이다. 예전 성경에서는 ‘불만’을 ‘혐의’라고 번역했다. 원래의 뜻은 ‘비난, 다툼’을 의미한다. 누가 나를 비난하고 누가 나에게 끈적거리며 시비와 다툼을 걸어 올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무례한 행동이나 못 마땅 언행을 용납하고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기도문을 생각해 보자.“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누군가를 용서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주님도 우리의 죄를 쉽게 용서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용서는 해도 그만이고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니다.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지옥 같던 내 마음에 천국의 평화가 찾아 든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거나 못 마땅해 하거나 대립하거나 증오심을 가지면 나 스스로 그 모든 것의 올무가 되고 만다. 결국은 내가 불행해 지고 마는 것이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누구와 원한을 갖거나 반목하고 지냈거나 소원한 관계를 갖고 서먹하게 지냈으면 화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성도와 성도 간에 성도와 목회자 간에, 목회자와 성도 간에 서로 서로 못 마땅했던 기억이 있으면 용납하고 용서하고 화해 하고 화목한 관계를 회복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주님의 관심이요 기대이시다. 

 

존 비비어는 그의 글 <용서의 기초>에서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를 체험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한 삶을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이어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용한 성경 말씀이 요한일서 4장 7-8절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며 사는가.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며 구체적인 실천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는 것은 마치도 옷을 입고 띠를 띠는 것과 같다고 교훈해 주었다. 

 

그리스도의 평강(平康)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사랑과 평안은 하나이다. 사랑할 때 평안이 찾아 온다. 평안하다는 상태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찾아 오는 내 마음의 상태이다. 그렇지 않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사랑하는데 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답답하고 괴로운 경우가 있나. 없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생활을 한다면 내 마음에 평강이 찾아 들고 평안이 찾아 들고 평화가 찾아 드는 법이다. 다 같이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를 찬양하자.

 

엊그제 성탄 이브 날 새벽에 이사야 11장을 묵상하였다. 거기에 보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11:6-8)는 내용이 있다. 

 

이 말씀은 장차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는 어제 성탄절을 맞았다. 어떤가.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 이제 365날이 지나야 다시 성탄절을 맞게 될 것이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나 성령 강림절을 그냥 절기로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교회의 절기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와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중심으로 한해의 교회력이 채워진다. 우리는 세상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일요일이라고 하지 않고 주일이라고 부른다. 주님의 날이란 뜻이다. 이 날을 주님의 날 답게 살아야 한다. 물론 세상에는 슬픔, 걱정, 근심, 불안, 초조, 두려움이 없는 날이 없다. 그러나 매 순간마다 주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그 평강을 누리고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주님의 기대이시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마음에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평강’이 아닌가.  예수는 이 땅에 그를 주로 영접하는 백성들에게 ‘평강’을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여기서 말씀하는 그 평화란 것이 평강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것이다. 이 계절이 되면 연말연시에 사람들은 더 많이 환락가를 넘석거린다. 왜 그럴까. “어데서 기쁨, 만족, 즐거움, 쾌락을 찾을 데가 없나” 하고 넘석거린다. 그러나 세상 그 어디에도 그런 만족을 채워 줄 곳은 없다. 그래서 마약에 손을 대고 마약에 빠져 들고 성 매매 업소를 넘석거리고 도박을 하고 향략에 빠져 들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주 안에 사는 성도라면 ‘그리스도의 평강’을 깨달아 알고 체험하며 그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내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평강이라면 이 세상에 그 무엇이 더 필요한가. <주는 평화>라는 찬양을 부르자. 

 

편안한 것과 평안한 것은 다르다. 편안한 것은 몸의 상태이고 평안한 것은 마음의 상태이다. 안락한 침대에 누우면 자세가 편안할 수 있다. 

 

71억원 짜리 침대가 있다. 영국 디자이너 스튜어트 휴즈(40)가 최고가 침대를 공개했다. 다이아몬드와 금 등으로 장식돼 400만 파운드(약 71억원)이다. 이 침대는 24k 금 107kg을 사용해 잎사귀 모양의 장식들이 100% 수공예 세공됐다. 밤나무로 틀을 만든 이 침대는 최고급 물푸레 나무로 조각 장식됐으며, 체리나무로 캐노피 부분을 제작했다. 침대보는 최고급 이탈리안 실크와 면으로 만들어졌으며, 헤드보드는 다이아몬드나 다양한 보석들로 주문제작이 가능하다. 이 침대의 제작 기간은 3개월로 이 침대를 오직 두 대 만 제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제품을 소개한 영국 언론인 뉴스라이트는 “불행히도 곁에 누운 배우자의 코골이를 고쳐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평화를 목말라 한다 평강을 갈급해 한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나라든 민족이든 열방의 모든 민족 중에 평화와 평강을 원하지 않는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다 평화를 원하고 평안을 원하고 평강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평강’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려면 성령 받아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본 받아야 한다.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 위의 것을 바라 보아야 한다. 주 안에 거해야 한다. 주님의 나를 다스려야 한다. 주님의 내 안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 그런 평화와 평강이 주장하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感謝)하라.

오늘 말씀에 보면 3번이나 감사하라고 했다. 15, 16, 17절에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주를 믿는 성도인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 자신의 마음 속에 풍성하게 거하도록 해야 한다. 성도는 서로 간에 가르치고 권면하고 더불어 찬양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바탕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가족 간에 친구간에 직장 선후배 간에 서로 서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다. 어린 아기 때에는‘구강기’라는 때가 있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입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위험하다. 먹을 수 없는 것도 입으로 가져간다. 정상적인 아이의 구강 단계는 태어난 후 18개월 동안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갓난아기에게는 입이 즐거움을 주는 가장 흥미진진한 기관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이는 입을 통해서 리비도(성적 에너지)의 최초의 대상인 어머니의 가슴과 접촉하게 된다. 아이는 손가락을 빨거나 주위에 있는 인형·장난감·이불 같은 대상을 입 속에 집어넣는 행위를 통해서 입의 욕구를 만족시킨다. 대략 생후 1년이 지나면 구강기가 끝나고 항문기가 시작된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했다. 아기가 구강기에 머문다면 어떻게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겠는가. 프로이드에 따르면 구강기에 이어지는 성장 과정이 ‘항문기’이다. 대개 2-3살 때이다. 이 때에 배변을 구별하고 청결하게 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그것이 잘못 되면 어른이 된 후에도 싫증을 자주 느끼고, 인색하고, 고집이 세며, 질서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진 모습으로 고착되게 된다. 이런 모습을 설명할 때 쓰이는 정신분석 이론(psychoanalytic) 용어가 항문기 성격(anal character)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정상적인 어른이 되어야 한다. 견고하고 딱딱한 음식도 받아먹을 수 있어야 한다. 골로새서 3장 17절을 화면을 보고 다 같이 읽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렇다.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디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입어 말도 하고 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여야 한다. <감사하라 내 영혼아>를 찬양하자.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감사해> 라는 찬양의 가사가 무엇인가.

 

감사해 시험이 닥쳐 올 때에 주께서 인도하시니 두려움 없네

모두 감사해 절망속에서 새 힘을 새로운 용기 주심이 승리하리라

나의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이 함께하시니 주님의 성령 나를 인도하시리

시험이 나를 찾아올 때 주님 지켜주시리 주님의 성령 나를 인도하시리

 

감사해 시험이 닥쳐 올 때에 주께서 인도하시니 두려움 없네

모두 감사해 절망속에서 새 힘을 새로운 용기 주시니 승리하리라

나의 모든 생활속에서 주님이 함께하시니 주님의 성령 나를 인도하시리 

시험이 나를 찾아올 때 주님 지켜주시리 주님의 성령 나를 인도하시리

 

올 한해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을 겪었을지라도 무슨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자. 주 안에 희망에 가득한 새해 2022년 맞이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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