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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감사(요엘2:21-27)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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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3 22:58 조회 169 댓글 0
 

                                              오직 감사(요엘2:21-27)                     2021. 11. 21

                                                                                           추수감사주일

                                                                                    교회 설립 제 12주년

 

감사도 습관이고 불평도 습관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매사에 감사한다. 그러나 불평군은 사사 건건 불평한다. 싱겁다 혹은 짜다고 자기 입맛을 기준으로 툴툴거리는 사람은 매사가 그러하다. 광야생활하던 백성들이 왜 가나안에 못들어갔나. 그 원인이 무엇인가. 불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 하시는 것이 원망과 불평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 앞에서 나란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내 생명, 내 건강, 내 능력, 내게 주어진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있나.

 

벌써 교회의 나이가 12살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13살이 되면 ‘바르 미쯔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한다. 유대인은 성인식의 주인공인 아들과 딸에게 세가지 선물을 준다. 성경과 시계와 돈이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독립된 인격으로 살아가는 독립심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의식이다. 

 

성경을 주는 이유는 그동안은 부모를 통해서 성경을 배웠으나 앞으로는 성경을 통해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의미이다. 또 하나 시계를 주는 것은 네 앞날의 일생은 네게 주어진 네 시간이나 하나님 앞에서 시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책임감 있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기대이다. 또 하나 돈을 준다. 평균 200-300불을 준다. 우리돈으로 30-40만원 정도를 준다. 일가 친척들에게서 받는 돈을 다 모으면 평균 5,000-6,000만원이 된다. 그걸 본인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준다. 그 돈의 주인은 13살의 성인식을 치룬 아들딸이다. 본인은 그 돈으로 주식에 투자도 하고 돈을 늘려 가는 방법을 강구한다. 18살 쯤 되어서 부모 곁을 떠나갈 때가 되면 그 돈은 5년 쯤 후에 꽤 큰 목돈이 되어서 부모에게서 분가할 수 있는 자금이 된다.

 

오늘 날 유대인들이 미국이나 세계 경제와 금융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살 때부터 스스로 자기 몫의 돈을 늘려 가는 법을 연구한다. 그러하다 보니 역사적으로 대 부호의 가문들이 줄줄이 탄생하는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대 노벨 상 수상자의 23%가 유대인이다. 미국 아비리그 즉 명문 대학 교수의 20%가 유대인이다. 하버드 대학 30% 학생이 유대인이다. 예일 대학교 학생의 25%가 유대인이다. 미국 100대 부자의 20%가 유대인이다. 세계 300명의 부자 중에서 35명의 유대인이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영화의 스티븐 스필버그,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로비치, 패션 디자이너 라프 로렌,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 공동 창업자 레리 페이지, 아마존의 제프 베죠스, 죠지 소로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이 모두 다 유대인이다. 

 

부자로 사는 것만이 다는 아니지만 도대체 유대인은 뭐가 다른걸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차이다. 성인식에 성경을 손에 들려준다. 그들이 받는 성경은 책꽂이를 장식하는 그냥 소장품이 아니다. 그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씨름한다. 그리고 시계 선물에 담긴 의미처럼 저들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남다르게 보낸다. 그 노력의 열매가 명문대학 입학율로 드러난다. 결코 타 민족, 타 인종들과 비교해서 머리가 더 좋아서가 아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IQ가 엄청 높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 안에서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대하며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느냐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바탕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 신앙이 있다.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고난을 많이 당한 민족이다. 근대사로 하면 나치 히틀러에 의한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그 당시 지구상의 유대인 900만명 중에서 60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 남은 자들이 오늘 날 미국과 독립된 이스라엘 나라와 구라파와 열방에 흩어져서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그 바탕이 여호와를 향한 감사 신앙이다. 요엘 선지자의 이름은‘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1장 1절에 보면 아버지의 이름으로부터 기록이 시작된다. 아버지 이름 ‘브두엘’이란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뜻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 뜻을 보면 경건하게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 브두엘이 아들의 이름을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의 ‘요엘’이란 이름을 지을 정도이면 그 아버지의 믿음을 짐작할 수 있다. 1-2장의 내용 중에 소제와 전제 등의 제사 용어(1: 9, 13, 2: 14)를 사용한 점을 미루어 보아서 아마도 제사장 가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유다의 8대 왕 요아스(BC 835-796) 때에 활동하던 선지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당시는 요아스 직전 왕인 아달랴 여왕으로 인해서 나라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댤랴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다. 정략적으로 남 왕국의 여왕에 등극해서 6년 동안 나라를 엉망을 만들어 놓았다 바알을 숭배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났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사악한 여왕 아달랴를 몰아 내고 요아스를 왕위에 등극하게 도왔다. 

 

아달랴는 유대 왕 아하시아의 어머니이다. 여호사밧 왕의 아내였던 아달랴는 아들이 왕이 된지 1년 만에 사마리아 방문 중에 숨어 있던 그를 예후의 세력이 찾아 내서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달랴는 남 유다의 왕족의 씨를 진멸하기 시작했다. 그 때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나서서 죽은 왕 여호사밧의 한 살 된 어린 왕자 요아스를 숨겨 키웠다. 여호사브앗은 죽은 왕 여호사밧의 누이이다. 그녀의 남편인 제사장 여호야다는 지극 정성으로 어린 왕자 요아스를 숨겨 키웠다. 칠년 세월이 지난 후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극악한 여왕 아달랴를 척결하고 일곱 살이 된 요아스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그 어린 왕이 우리가 아는 요아스 왕이다. 요아스는 그 후 40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선한 왕으로 자리 잡았다.

 

요엘 선지자는 그 요아스 왕 당시에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요엘서는 내용을 짧지만 사도행전 2장의 성령 받은 베드로의 첫 설교에 인용된 유명한 선지서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요엘서를 인용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 계시록에서도 요엘서를 인용하였다. 이처럼 요엘서는 신약 성경과 깊은 연관을 가진 예언서 중의 예언서이다. 

 

그 바탕은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복을 받고 영원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타락하고 방종하고 우상숭배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여호와의 복과 구원과 회복을 노래하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요엘서 1장과 2장 17절까지에는 회개를 촉구하고 여호와의 심판을 경고한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을 비롯한 2장 18절 이하의 3장 마지막까지의 내용은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회복과 구원의 약속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요엘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남 유다는 메뚜기떼가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대 재앙의 때였다. 먹을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전무후무한 대 재앙이었다. 1장 4절의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라는 말은 먹을거리가 씨를 말렸다는 뜻이다. 황폐해 진 것이다. 완전 폐허이다. 살길이 없다. 먹을 것이 전무하다. 

 

그러한 시대에 등장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요엘은 울며 회개하고 금식하며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경고하였다. 요엘서의 핵심이 되는 표현은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이다. 살다 보면 풍년이 들기도 하고 살다 보면 흉년이 들기도 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지금 유대 땅에 메뚜기 떼의 대 재앙이 닥친 원인은 아달랴 여왕의 6년 통치를 중심으로 유다 나라가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한 우상 숭배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으로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2장 1절과 11절에 보면‘여호와 날’(Day of the LORD)라는 말씀이 나온다. 요엘의 예언 선포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요엘서 2장 12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고 애통하고 마음을 다해서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는 것이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엘2:13)는 말씀이 바로 요엘서에 기록된 말씀이다. 마음을 찢고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이 생각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거두시며 복을 내리실지 누가 알겠느냐고 도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 백성들아 나팔을 불고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지켜라. 성회를 소집하라고 하였다. 

 

장로, 어린이, 젖먹이, 신랑, 신부 할 것 없이 모든 백성을 그 거룩한 금식일의 모임에 불러내라고 촉구하고 있다. 맞다. 이제는 이 코로나 19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하고 한숨만 몰아쉬지 말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한다. 제사장들은 성전의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라고 했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울며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였다. 이방인들로부터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듣지 않도록 울며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였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신앙의 조상과 선배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감사 신앙을 이어 왔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감사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라고 교훈하셨다. 예수께서는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라고 가르쳐 주셨다.

 

감사 신앙이란 그런 것이다. 매사에 범사에 하나님 중심의 재물관을 가지고 살면 재물의 흐름이 다르다. 재물 사용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재물 사용이 세상적이고 세속적이라면 그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감사 신앙이 무엇인가.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이다. 재물은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동전은 동그란 것이어서 잘 굴러오기도 하고 다시 잘 굴러가 버리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아무것도 없다. 있을 날이 올 것이다. 반대로 지금 많이 가지고 있나. 그것이 영원한 내 소유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억만금을 쌓아 놓고도 그 밤으로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부르시면 다 두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재물과 돈은 내가 사는 동안에 필요를 채우는 것이지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늘 성경이 그런 말씀을 교훈하고 있다. 2장 17절에 보면 울며 금식하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18절에 보니까 “그 때에 여호와께서....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비록 지금은 메뚜기 떼로 인해서 폐허가 되어 있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새곡식가 새 포도주와 새 기름으로 배불르게 하시고 흡족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북쪽 군대의 침략도 막아 주시겠다고 하였다. 20절 끝에 보니까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언제라도 큰일을 행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으로 읽은 내용에 보면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21절에 보니까 지금 먹을거리를 메뚜기 떼에게 다 빼앗겨 버린 두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선포하였다. 아직 폐허인데, 아직 희망이 보이질 않는데 요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 완료형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맞다. 감사 신앙이란 지금 어떤 형편, 어떤 처지, 어떤 곤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신앙이어야 한다. <오 이 기쁨>이란 찬양이 있다.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신 것 주께 영광 할렐루야 주만 찬양해”

 

이렇게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은 세상 사람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의 사람답게 큰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허황된 꿈,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살자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이 광야 백성을 사십년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의 물로 배부르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 절대 신앙으로 살자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불평과 원망과 비교와 탄식을 버리고 절대 감사, 오직 감사의 신앙으로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말씀을 잘 보라.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땅에 인격이 있나. 들짐승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나. 그러나 생각해 보라. 땅에 풍년과 흉년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 바알인가. 앗세라인가. 몰록인가. 힌놈인가. 그 어떤 우상이 이 땅에 풍년과 흉년을 주관하는가.  산과 들의 그 많은 들 짐승들과 공중의 새와 물 속의 물고기를 주관하는 분이 누구신가. 지난해는 국산 땅콩이 너무 비쌌는데 요즘은 국산 땅콩이 길거리 좌편에 넘쳐난다. 누가 주셔야 하나. 22절에 보면“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들이 풀과 무화과와 포도나무가 힘을 얻어 열매는 맺는 비결이 농부에게 있나. 물론 농부가 심고 가꾸고 물을 주고 다듬고 풀 뽑고 가꾸어야 한다. 그러나 자라나고 열매 맺게 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찬송하여야 한다. 오랜 만에 대면으로 합창을 들으니 얼마 기쁜가. 마스크는 못 벗었지만 오랜 만에 소리쳐 찬양하니 찬양단은 얼마나 속이 시원한가. 여호와로 말미암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한다. 23절에 보면 “시온의 자녀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십대 시절과 청년기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내야 한다. 밤이면 이태원 골목길을 넘석 거리고 강남의 술집 골목과 나이트 클럽을 넘석거리는 청년이 아니라 하나님을 밤 새워 찬양할 줄 아는 아들딸들로 키워 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 할 줄 아는 부모와 자녀와 후손이 되어야만 한다. 

 

이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 마당에 밀이 가득하고 독에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해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 우리를 위협하는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를 막아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 우리로 하여금 먹고 풍족하여 배 부르게 하시는 분이 누군신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된 우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고 또 찬송해야 할 것이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가정과 직장과 출퇴근길과 언제 어디서나 찬송하고 찬송하며 살아가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길 축원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라.

26절과 27절 끝에 보면 두 번 반복하신 요엘 선지자들 통한 강조의 말씀이 있다.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다”라는 말씀이다.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큰 일을 행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아버지를 높여 드리자.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복되게 하시고 존귀하게 하실 것이다.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누릴 영원한 기쁨을 위하여 이 땅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고 옷 벗김을 당하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하였다. 그 주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요엘을 통하여 27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이 세상에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이란 없다.

너희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면 내 백성답게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도 신명기 6장의 ‘들으라’는 레마의 말씀과도 같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잘 깨달아 알고 믿고 주를 섬기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받는 복된 주인공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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